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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산 코로나 백신, “10월 실내감염 공포 때문에 서둘러”

코로나 누적확진자 세계4위, 실내 생활 많은 계절 앞두고 ‘코로나 급속 확산’ 공포…‘제2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도 노린 도전

  •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러시아산 코로나 백신, “10월 실내감염 공포 때문에 서둘러”

코로나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코로나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스푸트니크의 순간)란 옛 소련이 19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 미국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을 때를 말한다. 당시만 해도 과학기술 분야에서 소련을 압도하고 있다고 믿었던 미국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수소폭탄을 실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를 ‘허풍’이라며 코웃음 쳤으나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 성공으로 이 같은 위협은 현실이 됐다. 옛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지 한 달 만에 무게 508㎏의 스푸트니크 2호에 개를 태워 발사했다. 비록 지구로 다시 귀환하지는 못했지만 생명체를 실은 우주선을 발사해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첫 번째로 보여주었다. 옛 소련은 또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을 태운 첫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Vostok)1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해 미국을 다시 한 번 충격에 빠뜨렸다.

러시아 정부가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사용을 승인하면서 ‘제2의 스푸트니크 모멘트’가 될 수 있을지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최소 173개의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이 개발되고 있는데 임상시험을 시작한 물질은 38종이다. 이 가운데 마지막 단계인 3차 임상시험에 착수한 물질은 7종에 불과하다. 전 세계에서 공식 사용 승인을 받은 백신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8월 11일 모스크바 인근 노보 요가료보 관저에서 열린 화상 내각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오늘 아침 세계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백신이 등록됐다”며 “러시아가 전 세계 백신 개발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국가 차원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공식 승인한 것은 러시아가 첫 번째다. 푸틴 대통령은 “이 백신은 필요한 모든 검증 절차를 거쳤다”며 “두 딸 중 한 명에게 이 백신을 투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은 “1차 접종 후 딸의 체온이 38도까지 올라갔으나 이튿날 37도 정도로 떨어졌으며, 2차 접종 이후에도 체온이 조금 올라갔지만 곧 내렸다”며 “지금은 몸 상태가 좋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큰 딸 마리야(35)와 둘째 딸 카테리나(34)를 두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앞으로 대규모 백신 생산이 시작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산 코로나 백신.

러시아산 코로나 백신.

러시아 정부가 승인한 코로나19 백신은 모스크바의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미생물학 과학연구소와 국방부 산하 방사능·생화학 부대 소속인 제48 중앙과학연구소가 공동으로 개발한 것이다. 제48 중앙과학연구소는 에볼라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백신 개발과 시험이 이뤄졌던 곳이다. 러시아 국부펀드인 ‘직접투자펀드’(RDIF)는 이번 백신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해왔다. 러시아 정부는 이 백신의 이름을 ‘스푸트니크 브이’(Sputnik V)라고 명명했다. 키릴 드미트리예프 RDIF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1957년 소련이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올린 것에 버금가는 러시아 과학의 개가”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국제사회에 러시아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군 연구 기관까지 모두 동원하는 등 미국 보다 백신을 먼저 개발해야 한다고 독려해왔다. 백신 이름을 ‘스푸트니크 V’로 지은 것도 미국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하일 무라슈코 러시아 보건부 장관은 8월 말이나 9월 초 의료진과 교사 등에게 우선 백신 접종이 이루어질 것이라면서 10월부터는 자원자를 대상으로 일반인 접종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백신 생산은 가말레야 연구소와 제약회사인 빈노파름이 맡고, RDIF는 해외 판매와 투자를 담당한다. 드미트리예프 CEO는 “현재 외국 파트너들과 함께 5개국에서 연 5억 회 분량 이상의 백신을 생산할 준비가 됐으며 향후 생산능력을 더 확대할 것”이라면서 “RDIF가 20개국으로부터 10억 회 이상 분량의 사전 구매 신청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러시아의 이번 백신은 가장 중요한 3차 임상시험을 실시하지 않았다. 가말레야 연구소는 지난 6월 17일 모스크바의 세체노프 의대와 부르덴코 군병원에서 각각 38명씩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1차 임상 시험을 실시했다. 군병원에선 25∼50세의 군인과 의료진(민간인)들이, 세체노프 의대에서는 학생과 민간인들이 각각 자원했다. 여성도 5명이 참여했다. 1차 임상 시험은 지난 7월 중순 마무리됐다. 이후 2차 임상시험이 진행됐지만 상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알렉산더 긴츠부르크 가말레야 연구소 소장은 “1차 임상시험에서 감기 증상 및 주사 부위 붉어짐 외엔 부작용이 관찰되지 않았다”면서 “2차 임상시험도 마무리됐다”고만 밝혔다. 무라슈코 장관도 “모든 자원자들에게서 높은 수준의 코로나19 항체가 생성됐다”면서 “접종에 따른 심각한 후유증은 아무에게서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등 각국과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백신 개발은 통상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3단계에 걸쳐 진행한다. 1·2차에선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하고, 3차에서는 부작용과 보호력을 검증한다. 백신 검증에는 최소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절차가 끝나면 백신의 사용 승인과 함께 대량 생산과 일반인 접종을 하는 것이 관례다. 러시아 정부는 백신 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수천~수만 명을 상대로 몇 개월 간 진행되는 3차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접종을 추진하고 있어 자칫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러시아 정부도 이런 비판을 의식해 3차 임상시험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연합,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가 성급하게 백신 개발 성공을 발표한 이유는 무엇보다 푸틴 대통령의 통치력을 강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악화로 국민들의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것을 상당히 우려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7월 1일 통과된 개헌 국민투표에 따라 임기가 끝나는 2024년 이후에도 2036년까지 러시아를 통치할 수 있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의 종신 집권 행보에 코로나19가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코로나 누적확진자 90만 명, 10월말 추위 오면 ‘실내 감염 확산’ 공포

러시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지금까지 90만여 명으로 미국, 브라질, 인도에 이어 세계 4위 규모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무증상 감염자들이 많아 공식 통계보다 2~3배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실내 생활이 시작되는 겨울이 오면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이 경우 국제유가 하락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러시아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 때문에 겨울이 시작되기 전인 10월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해 악화된 민심을 수습하려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의 겨울은 극도로 춥기 때문에 주민 대부분은 실내 생활을 한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겨울이 시작되는 10월말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의 규모가 급속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공포 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백신 개발을 서둘렀다는 것이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서방 외교관들의 관측이다. 게다가 현재 개발된 백신이 면역 효과가 떨어지더라도 코로나19 확산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미국 등에서 진짜 백신을 개발했을 경우 이를 비밀리에 복제해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 듯하다.

물론 러시아가 백신 개발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소련은 1959년 소아마비용 폴리오 백신을 미국 등 서방 국가들보다 먼저 상용화하는데 성공한 적이 있다. 당시 소련의 저명한 백신학자인 미하일 추마코프와 마리나 보로실로바 부부는 폴리오 백신을 투여한 각설탕을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먹이는 방식으로 임상 시험을 실시해 소아마비용 폴리오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소련에서 폴리오 백신의 안전성이 확인된 이후 미국은 1961년에야 이 백신을 도입한 적이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소련시절부터 생물학전에 대비해 군 연구소에서 각종 바이러스 연구를 해왔다. 

미국을 비롯해 서방 각국은 일단 러시아 백신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부 장관은 “백신 개발의 핵심은 최초가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공급하는 것”이라면서 “러시아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을 확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타릭 야사레비치 WHO 대변인은 “우리는 여러 백신 후보 물질이 개발되는 속도에 고무돼 있으며 이들 중 일부가 안전하고 효율적인 것으로 입증되기를 바란다”면서도 “절차를 가속하는 것이 안전성과 타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3차 임상을 제대로 마치지 않은 러시아 백신이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 등의 깐깐한 기준을 통과해 승인을 받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백신이 ‘제2의 스푸트니트호’가 될지 아니면 러시아 정부의 무모한 도전이 될지 아직까지 미지수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어떤 백신이라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한다는 것이다.





주간동아 1253호 (p42~44)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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