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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걸고 담장 위 투자, 아찔한 재미보다 출구 찾을 때

WTI 원유 선물 연계 파생상품 투자 위험성 증폭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석유 걸고 담장 위 투자, 아찔한 재미보다 출구 찾을 때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디어파크 원유 시추시설. [AP=뉴시스]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디어파크 원유 시추시설. [AP=뉴시스]

국제유가가 5월 4일(현지시간) 배럴당 20달러 선을 회복했다. 4월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유(WTI)가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한지 2주 만이다. 코로나19 확산 저지에 나섰던 미국 등 세계 각국이 지역 간 이동 제한 등 경제 봉쇄 조치를 완화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원유 수요 증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아직 경기 회복을 낙관하기엔 이르다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코로나19 치료제가 나와도 상용화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당분간 계속해야할 것이란 점에서다. 저유가 기조의 장기화와 그에 따른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이도 적잖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5월 4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대다수 전문가들은 2/4분기를 저점으로 전망한다”며 “최근 한달 간 글로벌 금융시장의 일시적 소강은 시작의 끝일 뿐이며 실물경제 침체나 실업 등 본격적인 충격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국제유가가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폭락을 기록할 만큼 변동성이 확대된 점을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실정이다.

직격탄 맞은 원유 DLS

올해 초 WTI는 배럴당 60달러 선이었으나 3월에는 30달러로 반토막이 났고 이후 계속 급락하다 급기야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원유 수요가 감소했는데도 생산을 계속하다보니 원유 저장고가 꽉 차 처치 곤란한 원유를 웃돈을 주고 처분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로 인해 원유와 연계된 금융상품들은 큰 손실을 봤다. 특히 원유를 기초자산에 넣은 DLS는 직격탄을 맞았다. DLS는 기초자산이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확정된 수익을 지급하는 증권인데 원유 가격이 폭락하며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해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현재 기준의 환매 가격을 공개하지 않는 증권사가 있어 피해 규모를 단정하긴 어렵지만, 한국예탁결제원의 집계에 따르면 2020년 1/4분기에 발행된 원유 DLS 발행금액은 4264억원으로 직전 분기보다 42.9%나 늘었다. 

주가지수나 개별주식종목의 가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도 유가 폭락의 영향으로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 ELS 역시 기초자산인 주가지수가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아야 확정된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증권이다.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한 4월 20일(현지시간)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44%, 스탠다드앤푸어스(S&P) 500 지수는 1.79% 하락했으며 나스닥종합지수도 1.03% 떨어졌다. 석유 주를 대표하는 엑슨모빌과 쉐브론이 각각 4% 이상 떨어지며 지수 하락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이날 5월 인도분 WTI 가격은 장중 한때 –40.32달러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전 거래일 종가 18.27달러에서 58달러 넘게 폭락한 것이다. 선물 계약 만기일이 임박한 점도 비정상적인 유가 폭락에 힘을 보탰다. 원유 등 상품에 대한 선물 계약의 경우 만기가 지나면 실물을 인수해야 한다. 5월 인도분 WTI의 선물 만기일은 4월 21일이었다. 원유는 아무 데나 버릴 수도 없는 상품이다 보니 만기일이 지나기 전 돈을 주고라도 처분하는 것이 선물 투자자에겐 최선의 해결책이었던 셈이다.



금감원, 원유 연계 ETN에 ’위험‘ 경보 발령

원유 선물 가격이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6, 7월 인도물 가격도 동반 하락했다. 원유 가격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원유 선물 가격과 연계된 상장지수증권(ETN)과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유가 등락에 따라 투자 손익이 결정되는 ETN과 ETF에 몰린 자금이 1조원을 넘어섰을 정도다. 이 때문에 WTI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한 ETN과 ETF 가격은 급락하는데도 ‘괴리율’이 급등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괴리율은 시장가격과 순자산가치(ETN의 경우 지표가치)간 차이를 백분율로 나타낸 것(시장가치-지표가치/지표가치x100)을 말하며. 지표가치는 ETN 1증권당 실질가치를 뜻한다.


특히 주가가 상승할 때 수익이 커지는 레버리지 ETN의 경우 유동성 공급 및 괴리율을 조정하는 유동성공급자(LP)의 보유 물량이 모두 소진된 상태에서 투자자들의 매수 물량이 급증하며 괴리율이 크게 확대됐다. 파생상품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레버리지 ETN에 투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원유 선물 연계 ETN의 원금 손실 가능성이 매우 커진 상황이므로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기초자산인 원유가격이 상승하더라도 기대수익을 실현할 수 없고, 오히려 큰 투자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LP의 유동성 공급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면 ETN의 가격이 지표가치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아 괴리율에 해당하는 가격차이만큼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TN는 시장가격이 아닌 지표가치를 기준으로 상환되기 때문에 지표가치보다 이를 높게 매수한 투자자는 원금 손실이 불가피하다. 

금융감독원은 사상 첫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하기 전 이미 WTI 선물 가격과 연계된 ETN과 ETF에 대해 최고 수준인 ‘위험’ 등급의 소비자 경보를 발령한 바 있다. 증권사가 상장하는 ETN과 자산운용사가 상장하는 ETF는 모두 주식처럼 거래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유동성 공급 면에서 ETF가 우위에 있다. LP들의 발행량과 자체 보유랑이 적었던 ETN은 개미들의 ‘묻지마 사자’ 광풍이 일면서 가격 조절에 쓰일 물량 부족으로 적정가치와 엄청난 괴리가 발생한 반면, ETF는 LP들의 발행량과 자체 보유량이 충분해 가격 조정이 가능한 상황이다. 

문제는 ETF 역시 매월 기초자산인 선물의 만기를 연장할 때 비용이 발생하는 데 있다. 이 비용을 ‘롤오버’라 한다. ETF의 실제 수익은 기초자산의 시세차익에서 롤오버 비용을 제한 것이다. 만기가 가까운 달의 선물보다 먼 달의 선물 가격이 비싼 상태를 ‘콘탱고’라 하는데, 만기가 먼 달의 원유 선물 가격이 최근처럼 급등한 ‘슈퍼 콘탱고’ 상황에서는 선물 만기 연장에 따른 롤오버가 발생한다. 또한 최근 월물과 다음 월물을 동일한 평가금액으로 맞추기 위해 더 적은 수량을 계약해야 하기에, 롤오버와 각종 수수료를 제한 순자산가치와 현재 거래 가격 간 차이를 나타내는 원유 ETF의 괴리율은 더욱 벌어지는 추세다. 이에 따라 원유 ETF 투자자가 큰 손실을 볼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원유 시추업체들, 줄도산 위기

코로나19로 한산한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한 주유소. [신화=뉴시스]

코로나19로 한산한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한 주유소. [신화=뉴시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의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미국 원유 관련 기업들은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미국 원유 시추업체인 화이트닝 페트롤륨은 4월 1일, 나스닥에 상장된 석유 시추업체인 ‘알타 메사 리소스는 4월 8일 각기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셰일가스업체인 유닛코퍼레이션도 파산보호 신청을 준비 중이다. 6월 인도분 WTI 선물가격은 20달러 초반까지 회복됐지만 이 같은 저유가 쇼크가 장기화하면 미국의 셰일가스업체들이 연쇄적으로 파산할 것으로 관측됐다. 원유 컨설팅업체인 리스타드 에너지에 따르면 원유 가격이 배럴당 20달러일 경우 2021년까지 미국 원유 시추업체 533곳이 문을 닫고, 10달러일 경우 1100곳이 파산에 이를 전망이다. 

경제학자들은 글로벌 수요 침체로 현재의 저유가 상황이 지속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석유화학제품은 우리나라가 반도체 다음으로 많이 수출하는 주요 수출품이다. 또한 저유가로 인한 수출 부진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 경기 침체로 이어져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4월 수출 실적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4.3% 감소했으며 수출액이 수입액보다 적어 무역수지 또한 8년 3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저유가 장기화는 수출 부진-디플레로 이어져 자칫 코로나19로 일시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가 V자 반등을 시도할 때 발목을 잡는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주간동아 1238호 (p55~57)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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