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16

2019.11.29

국제

美 홍콩 인권법 서명에 中 보복전 나설 태세

트럼프發 미·중 무역전쟁, 홍콩 사태 이후 인권전쟁으로 확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9-11-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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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시위대가 미국 성조기를 들고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HKFP]

    홍콩 시위대가 미국 성조기를 들고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HKFP]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1971년 7월 9~11일 국가안보담당 대통령보좌관 시절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국 베이징을 비밀리에 방문해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공산당 총리와 만났다. 키신저 보좌관과 저우 총리는 1950년 6·25전쟁 이후 철천지원수로 지내던 양국의 화해 방안을 논의했다. 

    이를 계기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2년 2월 21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국가주석과 양국의 적대관계 청산, 외교관계 수립,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 대만 문제 등을 논의하고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양국은 1978년 5월 연락사무소를 상호 개설했으며, 1979년 1월 1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당시 미국이 중국과 손잡은 것은 소련을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미국의 전략은 중국과 소련이 국경분쟁 등으로 대립하자 중국과 협력해 소련을 압박하려는 의도였다. 이후 소련 붕괴와 냉전체제 종식이 미·중 수교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40년간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협력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를 두고 ‘키신저 질서(Kissinger Order)’라고 한다. 국제사회에서는 최근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본격적으로 벌이자 키신저 질서가 붕괴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대일로 vs 인도태평양전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1월 22일 블룸버그통신 주최로 베이징에서 열린 ‘신경제포럼’에 참석한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나 미·중 무역협상의 1단계 합의 조건으로 상호존중과 평등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먼저 미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한 것이 아니고, 원한 것도 아니다”라며 “우리는 필요하면 미국에 반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미·중은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찾는 것)를 통해 상호이익을 얻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신경제포럼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냉전의 언덕에 올라서고 있다(foothills of a Cold War)”며 “미·중 갈등이 계속 악화할 경우 제1차 세계대전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은 비교적 사소한 위기 때문에 발생했다”면서 “이를 막으려면 미·중이 서로 상대방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갈등의 영향을 억제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미국 외교계의 거두인 키신저 전 장관이 미·중이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고 경고한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패권 도전, 이에 맞선 미국의 전방위적인 대응으로 양국 간 갈등과 대립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특히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기치로 내걸고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초강대국이 되기 위해 군사력과 경제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원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게다가 시 주석은 중국식 사상과 정치·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서구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배울 필요는 없다”며 “새 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통해 두려움을 모르는 자세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목표를 향해 계속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7월 중국 정부의 야심찬 프로젝트인 ‘중국제조 2025’와 관련된 첨단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전쟁의 포문을 연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또 중국 정부가 추진해온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저지하고자 인도태평양전략을 내놓았다.

    홍콩의 중국화에 대한 반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govHK]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govHK]

    미·중이 현재 팽팽히 맞서고 있는 대결의 무대는 홍콩이다. 지금 홍콩은 6월 9일 이른바 ‘송환법’(범죄인 인도법) 반대로 촉발된 시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중국 정부가 1997년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반환받은 이후 추진해온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일국양제는 하나의 국가에 2개 체제, 다시 말해 국가는 사회주의체제의 중국이지만 홍콩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자유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따른 각종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시 주석과 중국 공산당 정권은 2013년 덩샤오핑의 일국양제 약속을 깨뜨리고 새로운 일국양제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국양제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체제를 홍콩에 도입해 ‘홍콩의 중국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전체주의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다. 반면 홍콩 시민들은 기존에 누려온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특히 홍콩의 미래라 할 수 있는 10대와 20대 등 젊은 층은 중국의 전체주의체제에서는 살 수 없다며 ‘폭력 시위’까지 벌이는 등 결사항전하고 있다. 

    그러자 시 주석은 11월 4일 홍콩 정부의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을 접견하고 시위 사태에 강경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시 주석은 이어 11월 14일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해 홍콩 시위대를 ‘폭력 범죄 분자’로 규정하고 “폭력을 중단시키고 혼란을 제압해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홍콩의 가장 긴급한 과제”라고 강조함으로써 무력 개입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이후 홍콩 시위 사태는 긴박하게 흘러갔다. 홍콩 경찰은 비무장 학생 시위자에게 실탄을 발사하는 등 인권을 무시한 과격 진압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홍콩 경찰은 시위대의 마지막 보루인 홍콩 이공대를 완전 포위하고 고사작전까지 벌였다.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하자 홍콩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HKFP]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하자 홍콩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HKFP]

    그러자 홍콩 시위 사태를 예의주시하던 미국 의회가 시위대를 지원하고 나섰다. 미국 상원에 이어 하원은 11월 20일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홍콩 인권법)을 통과시켰다. 홍콩 인권법은 전날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데 이어, 하원에서 찬성 417표 대 반대 1표로 가결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27일 이 법에 서명했고 중국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에 따라 홍콩 인권법은 미·중 정면 대결의 촉매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이 법에 미국 국무부가 홍콩의 자치 수준을 매년 검증해 홍콩이 누리는 경제·통상에서의 특별대우를 유지할지 여부를 결정하고, 홍콩의 인권 탄압과 연루된 중국 정부 관리 등에 대해 비자 발급을 제한하면서 미국 내 재산 등을 동결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2년 미국·홍콩정책법을 제정해 홍콩이 중국에 반환(1997)된 후에도 관제·투자·무역·비자 발급 등에서 홍콩을 중국과 달리 특별대우를 해왔다. 홍콩이 중국에 주권이 반환된 후에도 ‘아시아의 금융 허브’ 지위를 유지하고 경제발전을 해온 것은 이 법 덕분이다. 홍콩 인권법에 따라 중국 정부가 홍콩의 자치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미국 정부는 홍콩에 사실상 ‘경제제재 조치’를 내릴 수 있고, 이 경우 중국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

    홍콩은 그동안 중국 경제에서 비중이 많이 감소했지만 중국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관문 역할은 줄어들지 않았다. 중국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1997년부터 올해 9월까지 역내가 4450억 달러(약 523조6300억 원), 역외가 4190억 달러인데, 이 가운데 홍콩 증시가 3350억 달러(약 394조2950억 원)를 끌어들였다. 홍콩달러화의 환율이 미국 달러화와 연동되는 페그제로 운영되는 데다, 중국 정부의 자본 통제도 받지 않아 홍콩은 상하이 등 중국의 다른 도시들보다 경쟁력에서 우위를 지켜왔다. 게다가 홍콩은 중국 기업들이 역외에서 가장 많이 채권을 발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홍콩은 아직도 중국에겐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 충돌 시나리오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권총을 겨누고 있다. [Apple Daily]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권총을 겨누고 있다. [Apple Daily]

    홍콩 학생들이 경찰의 총기 사용에 항의하며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왼쪽). 홍콩 한 시민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포스터에 달걀을 던지고 있다. [HKFP]

    홍콩 학생들이 경찰의 총기 사용에 항의하며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왼쪽). 홍콩 한 시민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포스터에 달걀을 던지고 있다. [HKFP]

    중국 정부는 미국의 홍콩 인권법에 대해 “홍콩 내정에 간섭하지 마라”며 “보복하겠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는 “미국이 홍콩의 폭력 분자들을 ‘민주 전사’로 치켜세우면서 지지하고 있다”며 “미국의 이런 이중 잣대에는 패권주의 사고가 공고히 자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 정부의 이런 격한 반응으로 볼 때 아예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 

    반면 홍콩 시위대와 시민·인권단체들은 미국의 홍콩 인권법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일부 시위대는 미국 성조기까지 들고 환호했다. 홍콩 범민주 진영이 11월 24일 실시된 구의원 선거에서 전체 452석 가운데 388석(85.8%)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도 미국의 홍콩 인권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홍콩의 중국화’로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고 자치권이 축소되는 상황에 분노한 홍콩 시민들은 미국이 홍콩 인권법을 통해 간접 지원에 나서자 이번 선거에서 중국 정부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이에 따라 홍콩 민주화 시위는 앞으로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 분명하고, 이에 맞서 중국 정부 역시 강경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석학인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 충돌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홍콩에 대한 중국의 억압 조치를 제시했다. 그 시나리오 내용을 보면 중국 인민해방군이 시 주석의 명령에 따라 홍콩 시위대를 1989년 톈안먼(天安門)광장의 민주화 시위 때처럼 무력 진압하자 미국의 대중(對中) 경제 봉쇄가 단행되고, 결국 양국이 전쟁까지 벌인다는 것이다. 홍콩 인권법이 자칫하면 미·중 충돌의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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