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글로벌 5G시장 판도, 인도 결정에 달렸다

인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모디 총리에 화웨이 세일즈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9-10-28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말라푸람의 힌두교 사원들을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트위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말라푸람의 힌두교 사원들을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트위터]

    마말라푸람은 인도 타밀나두주의 주도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60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힌두교의 ‘사원도시’다. 7~9세기 인도 남부지역을 통치한 팔라바 왕국의 수도이자 무역항이던 이곳에는 힌두교 유적들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으며,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특히 ‘라타스(Rathas)’라는 수레 모양의 석조사원과 인도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속 주인공 아르주나의 고행상으로 알려진 거대한 야외 암석부조가 유명하다. 

    높이 15m, 폭 27m의 바위를 깎아 만들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아르주나의 고행상에는 각종 인도 신화가 새겨져 있다. 시바 신에게 물을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나 히말라야에서 머리에 이고 온 물을 주는 모습, 소원을 성취하고자 고행하는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조각돼 있다. 심지어 실제 크기의 코끼리까지 벽에 새겨져 있다. 고양이가 고행하는 모습도 있다. 팔라바 왕국은 벵골만에 접한 코로만델 해안가의 마말라푸람을 통해 현 푸젠성(福建省) 등 고대 중국의 항구도시들과 교역하기도 했다.

    건국 70주년 행사 후 첫 해외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월 11일 1박 2일 일정으로 인도 타밀나두주를 비공식으로 방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 주석이 건국 70주년 행사 후 첫 해외 방문지로 인도를 선택한 것은 상당히 전략적인 행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인도, 일본, 호주 등과 연대해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왔다. 미국, 일본, 인도 정상들은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3자 회담을 갖기도 했다. 또 일본은 올해 말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인도를 방문해 군수지원협정을 체결할 예정이다. 군수지원협정이란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때 식량, 연료, 탄약, 수송·의료 서비스 등을 주고받는 조건을 규정하는 협정이다. 

    이에 중국은 인도를 우군으로 확보해 미국의 이 같은 전략을 깨려는 속셈인 듯하다. 특히 시 주석이 힌두교 사원도시인 마말라푸람을 모디 총리와의 회담 장소로 선택한 것은 인구 대부분이 힌두교 신자인 인도 국민의 마음을 사려는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첫째 날 두 정상은 마말라푸람의 힌두교 사원들을 함께 거닐며 양국의 교류 역사와 문명에 관해 환담했다. 

    마말라푸람과 교역했던 푸젠성 성장을 역임한 시 주석은 “예부터 타밀나두주는 중국과 왕래 역사가 깊고 중국과 긴밀하게 해상무역을 한 곳으로, 고대 실크로드의 해상화물 중개 기지였다”며 “중국과 인도 모두 수천 년 역사를 가진 문명국으로 양국 조상은 폭넓게 교류하면서 양국 모두에 큰 혜택을 줬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또 “중국과 인도는 수교 70주년을 계기로 인문 교류를 확대하고 다른 문화와 대화, 협력을 넓혀가 아시아 문명에서 빛나는 새 역사를 써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모디 총리도 “인도와 중국은 수천 년간 발전해 이미 중요한 신흥 국가들로 성장했다”며 “교류와 협력 강화가 양국 발전에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됐다”고 화답했다. 또한 “인도와 중국의 문명은 유구하다”면서 “이들 문명에 내포된 지혜는 현 세계가 직면한 각종 도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둘째 날 두 정상은 첸나이 남쪽 유명 휴양시설인 ‘타지 피셔맨스 코브 리조트 앤드 스파’에서 단독과 확대 회담을 갖고 양국 교역을 비롯해 투자와 인적 교류 확대, 테러 공동 대응, 군사 협력 등을 논의했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양국의 국경 및 영유권 관련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양국은 최근 카슈미르 인근 라다크, 부탄 동쪽 아루나찰프라데시주의 국경 및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중국 정부는 인도 정부가 8월 인도령인 잠무 카슈미르의 주(州) 지위를 없앤 뒤 연방 직할지로 직접 통치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라다크는 인도가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지역으로, 1962년 중국과 인도가 영유권을 놓고 무력 충돌을 벌인 이후 아직까지도 국경 분쟁이 해소되지 않은 지역이다. 지난해 4월 중국 우한에서 열린 시 주석과 모디 총리의 비공식 회담도 이 때문에 냉랭했다. 당시 양국은 도카라(중국명 둥랑, 부탄명 도클람)의 영유권 문제로 국경에 군사력을 증강 배치했다. 게다가 최근 시 주석이 카슈미르 영유권과 관련해 파키스탄 정부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혀 인도 정부가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중국은 인도와 카슈미르 영유권을 놓고 대립해온 파키스탄과는 사실상 동맹이라 할 만큼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다.

    인도, 5G 구축에 300억 달러 투자 계획

    중국 화웨이가 인도에서 운영하고 있는 한 매장의 모습. [china.org.cn]

    중국 화웨이가 인도에서 운영하고 있는 한 매장의 모습. [china.org.cn]

    그 대신 시 주석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모디 총리를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교역 확대 카드를 내밀었다. 모디 총리가 대규모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인도 복제약과 정보기술(IT) 서비스 산업의 중국 진출을 적극 지지해줄 것을 요청하자 시 주석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도는 중국과의 2018〜2019 회계연도(매해 4월 시작) 교역에서 570억 달러(약 66조8000억 원)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비자이 고칼레 인도 외교부 차관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두 정상이 무역과 투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 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주목할 것은 시 주석이 모디 총리에게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가 인도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시 주석이 ‘화웨이 세일즈’에 나선 것이다. 인도는 2020년까지 5G 이동통신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인도는 현재 이동통신 가입자 수와 인터넷 사용자 수 모두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인 초대형 시장이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에 따르면 인도의 5G 가입자 수는 2025년 88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또 인도의 3대 이동통신사(릴라이언스 지오·바르티 에어텔·보다폰 아이디어)는 앞으로 5년간 300억 달러(약 35조 원)를 5G 구축에 투자할 계획이다. 인도의 5G 네트워크 시장 파급 효과는 1조 달러(약 1197조5000억 원)에 달한다. 시 주석이 직접 나선 이유는 인도의 5G시장을 놓고 미국 정부가 화웨이의 진출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10월 4일 인도 뉴델리를 방문해 “화웨이 장비를 사용해 안보 위험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인도 정부에 대놓고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반면 화웨이 처지에선 미국 측 제재로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만큼 인도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화웨이는 지금까지 50여 개국에서 60여 건의 5G 기지국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유럽 28곳, 중동 11곳, 아시아·태평양 6곳, 중남미 4곳, 아프리카 1곳 등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전문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닐 샤 애널리스트는 “인도는 화웨이에게 남은 유일한 거대한 시장”이라며 “화웨이는 반드시 인도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 2위와 3위 이동통신사인 바르티 에어텔과 보다폰 아이디어는 저렴한 화웨이의 5G 장비를 고려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인도 일부 지역 2G, 3G, 4G 망에 화웨이 장비를 구축한 바 있다.

    인도 5G시장 선점 위한 삼성전자의 노력

    5G 구축을 강조하고 있는 인도 최고 부자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 [지뉴스]

    5G 구축을 강조하고 있는 인도 최고 부자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 [지뉴스]

    반면 인도 최대 이동통신사 릴라이언스 지오는 삼성전자 장비로 4G를 구축한 데 이어 5G도 삼성전자 장비를 사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월 6일 인도 서부 대도시 뭄바이를 방문해 인도 최대 재벌인 무케시 암바니(62)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과 회동한 것도 이 때문이다. 540억 달러(약 63조 원) 재산을 보유해 세계 10대 부자 가운데 한 명인 암바니 회장은 2016년 9월 릴라이언스 지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인도 이동통신시장에 진출했다. 이 부회장의 인도 방문은 3월 암바니회장의 장남 아카시(28)의 결혼식에 참석한 이후 7개월 만이다. 아카시는 릴라이언스 지오의 전략담당 이사다.

    삼성전자와 릴라이언스 지오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인도 모바일 콩그레스(IMC) 2019’에서 5G 서비스를 시연하고 있다. [힌두스탄타임스]

    삼성전자와 릴라이언스 지오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인도 모바일 콩그레스(IMC) 2019’에서 5G 서비스를 시연하고 있다. [힌두스탄타임스]

    이 부회장의 의도는 화웨이가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를 받고 있는 틈을 이용해 인도 5G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뉴델리에서 열린 ‘인도 모바일 콩그레스(IMC) 2019’에서 릴라이언스 지오와 함께 5G 서비스를 시연하며 일단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삼성전자는 7월 한일 경제분쟁에도 일본의 2위 통신기업 KDDI의 5G 기지국 장비 주요 공급업자로 선정됐다.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에 일본 정부가 적극 동참한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목표는 2020년까지 5G를 포함한 전 세계 통신장비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5%에서 20%로 높이는 것이다. 

    인도 정부는 그동안 5G 문제에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왔지만, 시 주석 방문 이후 화웨이를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제이 첸 화웨이 인도법인 최고경영자(CEO)는 “인도시장은 화웨이를 환영할 것”이라며 “현재 인도 이동통신회사들과 백도어 금지 협약 체결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도어는 인증 없이 전산망에 침투해 정보를 빼돌리는 장치를 말한다. 인도 정부는 화웨이를 배제할 경우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를 우려하고 있다. 물론 전략적 파트너인 미국 측 요청도 묵살하기는 어렵다. 인도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5G시장 판도가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