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9

2019.10.11

풋볼 인사이트

‘우리 흥’은 괜찮은데 흥네 직장은 글쎄?

토트넘 선수 임금 등 문제로 팀 내 불협화음 커져

  •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입력2019-10-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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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트넘 홋스퍼 손흥민(오른쪽)이 9월 21일(한국시간) 레스터 시티 FC와의 원정경기에서 자신의 어시스트로 득점한 해리 케인(왼쪽)을 축하하고 있다. 그러나 손흥민은 후반 추가골이 VAR 결과 오프사이드로 노골 처리됐고 팀은 역전패했다.[AP=뉴시스]

    토트넘 홋스퍼 손흥민(오른쪽)이 9월 21일(한국시간) 레스터 시티 FC와의 원정경기에서 자신의 어시스트로 득점한 해리 케인(왼쪽)을 축하하고 있다. 그러나 손흥민은 후반 추가골이 VAR 결과 오프사이드로 노골 처리됐고 팀은 역전패했다.[AP=뉴시스]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에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 팀 내 생기는 온데간데없고,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고개를 푹 숙였다. 넉 달 전만 해도 유럽 최고를 다투던 팀이 이렇게나 망가지다니. 근심 가득한 얼굴로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하던 포체티노 감독의 모습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짐작게 했다. 

    토트넘은 최근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첼시 FC, 아스널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등이 가라앉는 동안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FC와 선두 그룹을 형성한 팀이었다. 상위 4개 팀이 나서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단골손님이기도 했다. 지난 시즌 대회 준우승까지 차지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랬던 팀이 시즌 초반부터 삐걱대고 있다. EPL 8라운드 현재 3승 2무 3패로 9위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는 1무 1패. 안방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2-7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 이 지경에 이르다 보니 미디어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코너명이 있다. ‘긴급 진단.’ 승률이 30%로 곤두박질친 건 말 그대로 ‘초비상’이다.

    유망주의 힘에 리그 정상으로 부상

    명실상부 세계 최정상급 공격수로 거듭난 손흥민. [뉴시스]

    명실상부 세계 최정상급 공격수로 거듭난 손흥민. [뉴시스]

    이는 토트넘이 어떤 팀이었는지 되짚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영표가 뛰던 2000년대 중후반만 해도 상위권 클럽이라고 하기엔 모호했다. 당시 박지성의 맨유가 ‘국민 클럽’으로 이름을 날렸고, 그보다 몇 단계 아래 수준이었다. 피스컵코리아라는 국제대회로 방한한 적도 있지만 관심을 끌기엔 부족했다. 

    하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흐름이 크게 변한다. 포체티노라는 인물이 지휘봉을 잡은 시기다. RCD 에스파뇰, 사우샘프턴 FC 등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은 그는 토트넘의 체질을 완벽에 가까울 만큼 개선했다. 해리 케인, 델리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 등 비교적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공격진을 구성했다. 또한 얀 페르통언, 토비 알데르베이럴트, 위고 요리스 등으로 후방까지 챙기면서 확실히 균형을 잡았다. ‘우승 청부사’로 불릴 만한 톱클래스 자원은 없었지만 모두 합심해 승수를 쌓아갔다. 



    2015년 여름에는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올라서던 손흥민이 가세했다. 당시 토트넘이 이적료로 3000만 유로(약 394억 원)나 쓴 것은 꽤 파격적이었다. 이적 첫해 족저근막염 등으로 꽤 험난한 적응기를 보낸 손흥민은 이후 대폭발했다. 한 시즌에 EPL 이달의 선수상을 두 차례나 따내더니 최근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 베스트 공격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소속팀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공격수 15인에 든 것이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통틀어서도 최초다.

    유망주 부상으로 팀 재정도 부상

    역설적으로 문제는 여기서 기인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감당해야 할 반대급부도 커지기 마련이다. 토트넘은 ‘반열에 오르고자 대규모 투자를 강행하느냐’, 아니면 ‘그저 그런 팀으로 유지만 하느냐’는 기로에 서게 된다. 선수단 가치는 올라갔고, 대형 클럽의 레이더망은 호시탐탐 이들을 가리켰다. 이적설 섹션에서 토트넘 지분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만 봐도 쉬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크고 좋은 차를 몰려면 유지비가 많이 드는 것과 같은 이치. 휘발유, 부품 등 들여야 할 돈도 크게 뛰었다. 몸값이 올라간 이들을 잡아두려면 처우 개선이 필수다. 여러 조건이 있겠지만,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임금 인상’만 한 게 없다. 짠돌이로 유명한 대니얼 레비 토트넘 회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홈구장 신축에 투자한 비용도 만만찮던 시기다. 확실한 대비 없이 승승장구하는 게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말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도 토트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케인, 알리, 손흥민 등과 계약을 연장하면서 적잖은 돈을 쏟아부었다. 다만 모든 선수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한 팀에서 동고동락했다 해도 결국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축구판이다. 에릭센은 줄곧 재계약을 미뤘다. 선수 스스로 “새로운 도전”을 거론하면서 이적 의사도 내비쳤다. 가장 유력해 보인 건 레알 마드리드행이었다. 현 계약이 내년 여름 만료되는 만큼 가능성 또한 꽤 높았다. 

    문제는 동기 차원에서 생겼다. 최근 에릭센의 경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이미 마음이 떠난 선수가 팀에 모든 걸 바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토트넘은 이를 대체할 즉시 전력감을 마련해두지 못했고, 주축 공격형 미드필더의 들쑥날쑥한 퍼포먼스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레비 회장이 지난여름 에릭센을 처분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레비 회장은 지난 몇 년간 에릭센에게 천문학적 이적료를 매겨놓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EPL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거물이 됐기 때문. 하지만 전세는 역전됐다. 시간은 이제 선수 편이다. 에릭센 측은 ‘보스만 판결’에 따라 올겨울부터 제3 클럽과 자유롭게 교섭할 수 있다. 또 토트넘과 계약이 끝나는 내년 여름에는 이적료 없이 다른 팀과 손잡을 수 있다. 이대로만 버티면 훨씬 큰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중견보다 더 버는 막내라니

    토트넘이 프랑스 리그1 올랭피크 리옹에서 고액에 영입해온 탕기 은돔벨레. [올랭피크 리옹 홈페이지]

    토트넘이 프랑스 리그1 올랭피크 리옹에서 고액에 영입해온 탕기 은돔벨레. [올랭피크 리옹 홈페이지]

    아쉬운 대목은 또 있다. 주급 체계가 박살났다는 것. 토트넘은 선수단 운영비, 즉 개개인에게 들어가는 인건비를 최소화하며 예산을 맞춰나갔다. 이를 그나마 올린 것도 선수들의 이탈을 우려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신입 선수 탕기 은돔벨레의 급료가 알려지면서 잡음이 일었다. 현재 팀 내 최고 주급자는 케인이다. 매주 20만 파운드(약 2억9000만 원)를 수령한다. 그런데 은돔벨레가 받는 돈이 옵션을 포함하면 케인과 큰 차이가 없다. 

    이는 토트넘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맨유가 홍역을 앓은 바 있다. 알렉시스 산체스를 데려오면서 주급을 최대 7억 원까지 제공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팀 분위기가 요동쳤다. 아무리 조직에 충성하는 선수라도 동료가 그렇게 많은 액수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위화감이 들 수밖에. 축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뉴 페이스 은돔벨레가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멤버들보다 많은 임금을 챙긴다는 것이 알려졌으니 묘한 기류가 흐르는 건 당연하다. 

    물론 아직 시즌 초반이다. 토트넘이 반등할 여지는 충분하다. 이를 수습해 다시 올라설 저력도 갖춘 팀이다. 지난 수십 년간 상위권을 유지해온 클럽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토트넘 또한 그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있으며, 우승권 팀으로 올라서 ‘명문’이라는 수식어를 쟁취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우승도 해본 팀이 계속한다’는 ‘승자 효과’ 이론 등에 비춰봤을 때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토트넘이 마지막으로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시기는 반세기도 더 된 1961년이다. 

    손흥민이 더 큰 선수로 거듭나는 데 필요한 조건으로 이적을 꼽는 이가 많다. 유럽 최정상급 공격수로 올라섰지만, 제대로 된 우승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그다. 함부르크 SV, 바이엘 04 레버쿠젠, 그리고 토트넘 모두 정상과는 거리가 있었던 게 사실. UEFA컵(유로파리그)을 두 차례나 석권하며 전설이 된 차범근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각종 최다골 기록만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이 아무리 날아다녀도 트로피로 표현되는 팀 커리어는 또 다른 영역이다. 우승을 더 쉽게 탐할 수 있는 빅클럽으로 향하느냐 여부가 훗날 지금의 손흥민을 평가하는 중대 지표가 될 개연성이 높다. 리오넬 메시가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성을 확실히 넘어섰다는 말을 듣지 못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아직 오르지 못한 FIFA 월드컵 정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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