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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러가 사는 법’ ⑤

폭염에도, 새벽에도 달리는 ‘배달의 투잡족’

월급 오르길 기다리느니 택배·음식 나르며 ‘셀프 승진’ 각종 사고 위험에도 산재(産災) 보장 안 돼

폭염에도, 새벽에도 달리는 ‘배달의 투잡족’

8월 20일 직장인 박지혜 씨가 서울 송파구에서 부업으로 전기자전거를 타고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8월 20일 직장인 박지혜 씨가 서울 송파구에서 부업으로 전기자전거를 타고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8월 20일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서 박지혜(33) 씨를 만났다. 블랙진에 면 티셔츠, 그리고 에코백을 든 그는 평범한 젊은 여성. 하지만 배달대행 서비스 ‘부릉’의 물류 거점 부릉스테이션에서 업무용 조끼와 헬멧을 받아다 착용하자 금세 음식배달 ‘라이더’로 변신했다. 

“이거 해야겠네요.”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그가 ‘콜’을 재빠르게 눌렀다(조금만 지체하면 다른 라이더가 콜을 채간다). 1km 떨어진 맥도날드에서 햄버거세트를 픽업한 뒤 또 1km를 이동해 고객에게 가져다주는 일. 그는 길 안내 기능을 켠 스마트폰을 전기자전거 핸들에 고정한 뒤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기자도 전기자전거를 타고 그를 따라갔다. 페달을 밟으면 전기동력이 함께 작동돼 오르막길을 달리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기온이 30도까지 오른 여름날. 자전거로 달리며 맞는 바람은 시원했지만, 온몸에서 땀이 차오르는 것을 막아주진 못했다. 빨간불이 켜진 횡단보도 앞에 정차할 때마다 박씨는 땀을 닦아내는 대신 부릉 라이더 애플리케이션(앱)을 들여다봤다.


햄버거 태우고 자전거가 달린다

배달대행 서비스 ‘부릉’의 물류 거점에서 배달에 나설 채비를 하는 박지혜 씨. 스마트폰 부릉 라이더 애플리케이션에서 콜을 골라 잡은 뒤 해당 음식점으로 주문 음식을 픽업하러 간다(왼쪽부터). [홍중식 기자]

배달대행 서비스 ‘부릉’의 물류 거점에서 배달에 나설 채비를 하는 박지혜 씨. 스마트폰 부릉 라이더 애플리케이션에서 콜을 골라 잡은 뒤 해당 음식점으로 주문 음식을 픽업하러 간다(왼쪽부터). [홍중식 기자]

“가는 길에 또 할 만한 콜이 떴나 보는 거예요. 여러 개 콜을 한 번에 진행하면 시간은 아끼고 수입은 늘어나니까요.” 

맥도날드 매장에 도착한 그는 주문서에 적힌 메뉴가 제대로 담겼는지 확인한 뒤 햄버거 봉투를 들고 나와 자전거 뒷좌석에 고정된 배달통에 넣었다. 다시 8월의 뜨거운 햇살에 달궈진 거리를 달려 가락동의 한 빌라에 도착, 3층 고객의 집까지 뛰어올라갔다. ‘미션’ 완료. 여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20여 분. 박씨는 6000원을 벌었다. 



택배와 음식배달을 전담 인력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맡기는 업체가 늘면서 주말과 휴일, 그리고 퇴근 이후 등 여가시간을 ‘배달 아르바이트’에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일반인이 자신의 자동차로 택배 물품을 배달하는 쿠팡의 ‘쿠팡플렉스’는 지난해 8월 개시됐는데, 누적 근무자가 1년도 안 돼 3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관계자는 “하루 평균 4000여 명이 쿠팡플렉스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서는 배달대행업체들이 ‘일반인 위탁’에 가세하고 있다. 쿠팡은 ‘쿠팡이츠’,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는 ‘부릉프렌즈’, 배달의민족은 ‘배민커넥트’라는 이름으로 일반인을 음식배달 라이더로 끌어들인다.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강서지역에서 쿠팡플렉스를 꾸준히 하고 있는 중소기업 직원 장모(34) 씨는 “물류센터를 오가며 대화를 나눠본 사람의 절반 이상이 쿠팡플렉스를 부업 개념으로 하고 있다”며 “회사원, 공기업 직원, 자영업자 등 본업은 매우 다양하다”고 말했다. 

박지혜 씨 또한 직장인이다. 서울 강남 한 웨딩홀에서 일식 담당 요리사로 일한다. 주말에 근무하는 대신 월·화요일에 쉬고, 수~금요일에는 남들보다 이른 오후 3시에 퇴근한다. 6월 그는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정보를 접하고 부릉프렌즈 일을 시작했다. 화요일에는 8시간 풀타임으로, 수~금요일에는 퇴근 후 4시간씩 음식배달을 하며 버는 돈은 한 달에 200만 원 가까이 된다. 건당 정규 수수료가 3000원이지만, 현재는 신규 프로모션 개념으로 6000원이 지급되고 있다. 박씨는 “일에 숙달되면서 4시간에 20건 이상 배달하고 있다”고 했다. 

박씨가 음식배달을 하는 목적은 여윳돈 마련. 미혼이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기 때문에 웨딩홀에서 받는 300만 원의 월급으로 혼자 생활할 수 있지만, 노후 대비를 하려면 추가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요리업종은 일자리가 안정적인 대신 경력이 쌓이더라도 급여가 거의 오르지 않는다”며 “젊어서 할 수 있을 때 더 벌어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음식배달로 버는 돈을 월급과 따로 분리해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연금저축에 가입했고, 조만간 적금도 들 생각이다. 무조건 저축만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행을 좋아한다. 분기에 한 번씩 가까운 아시아지역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아이 교육비에 새벽배송 뛰어든 아빠들

일반인 라이더를 모집하는 음식배달 대행 서비스의 광고들. 허용되는 운송수단과 배송 수수료 조건은 서비스마다 다르다. [배민커넥트 화면 캡처, 쿠팡이츠 화면 캡처, 부릉프렌즈 화면 캡처]

일반인 라이더를 모집하는 음식배달 대행 서비스의 광고들. 허용되는 운송수단과 배송 수수료 조건은 서비스마다 다르다. [배민커넥트 화면 캡처, 쿠팡이츠 화면 캡처, 부릉프렌즈 화면 캡처]

인천국제공항에서 정비사로 일하는 강신영(29) 씨와 충남 아산의 한 자동차회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심모(36) 씨는 각각 쿠팡이츠와 쿠팡플렉스를 하느라 주말을 반납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강씨는 주당 이틀의 휴일 중 하루를, 심씨는 심야 시간(밤 11시~새벽 4시)을 배달 일에 할애하고 매달 70만~ 100만 원을 더 번다. 

업무 특성상 새벽 1시에 퇴근하는 강씨는 휴일 오전 9시에 일어나 자신의 스쿠터를 타고 서울 강남으로 간다. 현재 쿠팡이 서울 10개 지역에서 쿠팡이츠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집에서 가장 먼 강남까지 가는 이유는 “이 동네 주문 콜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건당 6000원의 수수료를 받고,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는 시간당 1만5000원을 받으며 음식을 배달한다. 일을 마치고 다시 인천 집으로 돌아오면 자정 무렵. 강씨는 “피곤하긴 하지만 이렇게 일하면 하루에 최소 15만 원은 벌 수 있다”고 했다. 

심씨는 5월부터 쿠팡플렉스를 하기 시작했다. 오후 6~7시에 퇴근해 두어 시간 토막잠을 잔 뒤 밤 11시에 쿠팡 물류센터로 두 번째 출근을 한다. 심야배송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새벽 4~5시. 다시 두어 시간을 잔 뒤 오전 8시 회사로 출근한다. 얼마 전까지 거의 매일 심야배송 일을 하며 월 100만 원 넘는 추가 수입을 올렸다. 최근 회사업무가 바빠져 주 3~4일만 물류센터로 나간다. 심씨는 “그래도 쿠팡플렉스로 최소 월 90만 원은 벌자는 각오”라고 했다. 

강씨와 심씨 둘 다 4000만 원대 연봉을 받는 정규직 직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달 아르바이트에 나선 이유에 대해 이들은 “나 하나 고생하면 우리 가족이 더 윤택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씨는 4세 아들, 심씨는 7세와 4세 두 딸을 둔 외벌이 아빠다. 강씨는 “쿠팡이츠로 번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놓고만 있다. 내 집 마련 시기를 앞당기고 싶고, 아이에게 장난감을 좀 더 흔쾌한 마음으로 사주고 싶고, 가족여행도 가고 싶다”고 했다. 심씨는 “큰아이가 내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학원비를 벌 생각으로 쿠팡플렉스에 나섰다”며 “작은아이까지 초등학교에 입학해 아내와 맞벌이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내가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하는 것이 아빠이자 남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본업에 충실해 ‘몸값’을 올리는 대신 부업에서 추가 수입을 찾는 것은 ‘자녀가 자라나는 속도가 연봉이 인상되는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강씨는 “내가 4년 차 사원인데, 월급이 100만 원 가까이 오르려면 15년 차 과장이 될 때까지 10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음식배달 아르바이트로 추가 수입을 거두면서 10년 앞당겨 과장이 된 셈”이라고 했다. 심씨는 “우리 회사는 매년 연봉 인상이 크지 않고, 아무리 높은 자리로 승진하더라도 연봉 6000만 원을 기대할 수 없다”며 “외벌이로 빠듯하게 살림을 꾸려나간다는 사실을 잘 아는 팀장도 내가 쿠팡플렉스를 하는 것을 용인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직 견디는 ‘안전망’

배달 아르바이트는 실직을 견디는 ‘안전망’ 역할을 일정 부분 하고 있다. 9000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유튜버김사장’을 운영하는 김성연(35) 씨는 자칭 ‘알바생’이다. 6세 딸을 둔 가장이기도 한 그는 3월 8년간 운영하던 프랜차이즈 카페를 접고 백수가 됐을 때 ‘각종 아르바이트로 월 500만 원을 벌자’는 목표를 세웠다. 위탁판매 방식의 온라인쇼핑몰 사업, 식당 아르바이트, 유튜브 채널 운영 등을 했지만 목표 달성은 요원했다. 그래서 쿠팡플렉스를 시작했다. 최소 주 4회, 배송단가가 가장 높은 새벽배송(새벽 2시~오전 7시)을 주로 한다. 그가 유튜브 채널에 간간이 올리는 ‘쿠팡플렉스 브이로그’(일상을 담은 동영상)는 조회수가 꽤 많은 인기 콘텐츠다. 하지만 그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고 돈을 벌려고 쿠팡플렉스를 한다”고 했다. 구독자 수가 증가하면서 유튜브에서 나오는 수익이 늘었지만, 월 150만~180만 원을 버는 쿠팡플렉스가 현재 가장 비중이 큰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가진 김모(33) 씨는 다니던 복지기관을 그만둔 지난해 8월 쿠팡플렉스를 시작했다. 한 달 뒤 새로 복지사 일자리를 구해 쿠팡플렉스를 부업으로 이어오다, 얼마 전 또 복지사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현재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시험을 준비하며 쿠팡플렉스를 본업으로 삼고 있다. 그가 오전부터 하루 8~10시간씩 택배 배송 일을 하고 거두는 수입은 월 250만 원. 최근 결혼해 아직 자녀가 없는 그는 “사회복지사 급여가 워낙 적어 이 정도 수입에도 만족한다”고 했다. 

배달에 나선 투잡족들은 진입장벽이 낮고,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골라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다. 쿠팡플렉스나 음식배달 라이더의 자격 요건은 자동차나 오토바이, 스쿠터, 전동킥보드 같은 운송 수단을 보유했거나 빌릴 수 있느냐가 거의 전부다. 쿠팡이츠는 도보 배달을 허용하고, 부릉프렌즈는 전기자전거를 대여해주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신청한 뒤 해당 업체의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일부 업체의 경우 사전 교육을 받으면 실전 투입 준비 끝. 박지혜 씨는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해봤는데, 아무래도 기존 직원의 텃세가 있었다”며 “배달 일은 사람과 부대낄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퇴근 후 쉬는 것은 罪?!

유튜브 채널 ‘유튜버김사장’에 올라온 쿠팡플렉스 체험 영상 캡처 화면. 이 채널 운영자 김성연 씨는 매주 나흘가량 쿠팡플렉스를 한다. [‘유튜버김사장’ 화면 캡처]

유튜브 채널 ‘유튜버김사장’에 올라온 쿠팡플렉스 체험 영상 캡처 화면. 이 채널 운영자 김성연 씨는 매주 나흘가량 쿠팡플렉스를 한다. [‘유튜버김사장’ 화면 캡처]

하지만 이러한 배달 일자리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전업 택배기사나 라이더가 대부분 그러하듯 일반인 택배기사와 라이더도 업체 소속의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 혹은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이다. 일하다 사고가 나거나 다치더라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쿠팡플렉스를 하는 김씨는 “자동차보험 외에는 다른 대비책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런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쿠팡플렉스를 하는 심씨는 “새벽 운전을 할 때는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며 “혹시나 내가 물품 손상에 대해 배상해야 할지도 모르니 액체류가 담긴 박스가 젖어 있거나 할 때는 쿠팡 매니저의 확인을 받은 뒤 배송한다. 사진도 꼭 찍어놓는다”고 했다. 쿠팡이츠를 하는 강신영 씨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려고 연간 보험료 42만 원짜리 상해보험을 따로 들어놓았다”고 했다. 일반인 택배기사나 라이더에게 보험을 제공하는 곳은 현재 배민커넥트가 유일하다. 배민커넥트를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일반인 라이더에게 산재보험을 제공하며, 오토바이 라이더에게는 유상운송 종합보험을 추가로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릉프렌즈를 운영하는 메쉬코리아 관계자는 “앞으로 전기자전거 라이더를 위한 보호 장치를 마련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송·배달 단가를 업체가 일방적으로 정한다는 점, 업체 정책에 따라 언제든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점도 투잡족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쿠팡플렉스 참가자들은 “초기 1700~2000원이던 상자당 주간배송료가 현재는 900~1200원으로 크게 떨어졌다”고 말한다. 쿠팡이츠나 부릉프렌즈를 하는 일반인 라이더들은 현재는 사업 초기라 건당 6000원씩 주기도 하는 수수료가 곧 인하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심씨는 “쿠팡플렉스의 시간당 벌이가 1만 원 이하로 내려가면 공사장 등 다른 부업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쿠팡플렉스를 하는 김성연 씨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차원이기도 하다”고 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쿠팡플렉스를 하는 장씨는 스마트폰 앱만 켜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배달 일자리에 대해 “주말에 쉬는 나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새벽배송 조정 금액 1800원.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놀면 뭐 하나. 나가서 일하면 돈인데’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에서 더 많은 돈을 주는 배달 일자리를 버릇처럼 뒤지기도 한다”고도 했다. 배달 라이더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플랫폼 노동의 발달이 맞물려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노동 강도가 세지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퇴근 후에는 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9.08.23 1203호 (p34~37)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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