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의 심중일언

“홀로 있을 수 없다는 이 크나큰 불행!”

팔순의 평론가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친일과 용공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9-07-01 08: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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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현대문학]

    [사진 제공 · 현대문학]

    문학평론가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의 나이는 올해 여든넷이다. 그런 그가 두 권의 책을 동시에 펴냈다. 그가 특히 애착을 갖는 시와 시인에 대한 글을 모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민음사)와 팔십 평생 살아온 시대에 대한 성찰적 에세이를 모은 ‘그 이름 안티고네’(현대문학)다. 책을 집어 들고 실린 글 중 아무 편이나 하나 골라 읽어보라. 평범한 질문에 비범하게 답하는 우문현답, 그리고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서양속담의 화신이라도 된 듯한 정밀한 독해와 치밀한 기억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문학은 죽고 스토리텔링만 남았다’는 말이 운위되는 시대, 문학의 진가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개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권의 책을 들고 6월 26일 그가 사는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를 찾아갔다. 1984년 목동신시가지가 처음 개발될 때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였다. 그곳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교수로 재직한 이화여대와 연세대를 오가며 시를 읽던 그를 지켜봤을 어린 나무들이 지금은 아름드리로 자라 있었다. 

    1935년생인 유 평론가는 학교를 일찍 들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광복을 맞았다. 그때까지 그는 한글을 읽을 줄 몰랐다. 당시를 회고한 글(‘꾸불꾸불 걸어온 길’)에서 고향 충주에서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드물어 농업학교(중학교) 출신인 그의 아버지가 중학교 국어교사로 바로 채용될 정도였다고 한다.

    열 살 한글 배우고 스물둘 등단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아버지가 저에게 따로 한글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저도 뒤늦게 한글을 배웠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정지용 시집을 읽고 매료된 이후 김소월, 서정주, 청록파 시집을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되풀이해 읽다 보니 저절로 외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외워지는 시가 좋은 시’라는 지론이 생기게 됐습니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 도중 시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줄줄이 암송했다. 특히 정지용의 동시 ‘말’을 암송하면서 이 시를 접하고 난 뒤 비로소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 같은 주변 가축들이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이산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됐음을 설명할 때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말아, 다락같은 말아, / 너는 즘잔도 하다 마는 / 너는 웨 그리 슬퍼 뵈니? / 말아, 사람편인 말아, / 검정 콩 푸렁 콩을 주마. //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 밤이면 먼데 달을 보며 잔다.’ 

    “시의 화자인 아이의 관점에서 말은 다락같이 높은 위치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다락 같은 말’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눈에 포착된 말은 왠지 슬퍼 보입니다. 1연 5행에선 그 말이 사람편이기 때문에 힘내라고 보양식인 콩을 주는데 ‘검정 콩’과 각운을 맞추기 위해 ‘푸렁 콩’이라는 표현을 쓴 겁니다.  그리고 말미에 그 슬픔의 이유가 밝혀지는데, 밤마다 달을 보며 누군지 모르는 부모를 그리워한다는 거죠. 새끼 때 팔려온 가축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고아여서 외롭고 슬플 것이라는 이런 발상의 전환에 경탄했습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탁월함은 여기에 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이 감동받지 못한 것에 대해선 결코 주례사비평 따위를 하는 법이 없다. 반대로 문학작품의 진가를 알지 못하면서 주워들은 이론에 의거해 작품을 분석하는 이들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는다. 

    열 살 때 한글을 처음 배운 그가 스물둘에 한글로 된 문학을 비평하는 평론가로 등단한 것은 엄청난 집중력으로 우리말로 된 문학작품을 섭렵했기에 가능했다. 거기에 더해 진실된 작품, 그래서 감동을 주는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을 가려내는 자신만의 심미안에 투철했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는 다른 예가 있다.

    백석과 윤동주 사이

    [사진 제공 · 민음사]

    [사진 제공 · 민음사]

    유 평론가는 1961년 월북문인이라며 금기시되던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발굴한 뒤 시인의 이름을 감추고 발표하면서 “이 페시미즘(염세주의)의 절창이 한국 최상의 시의 하나”라고 천명했다. 당시 서른도 되지 않은 문학평론가의 패기 넘치는 감식안은 40여 년 뒤 문단 시인들의 압도적 지지로 입증됐다. 2000년대 들어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이 작품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가운데 한 명인 윤동주의 시에 대해 “문학청년의 습작 수준을 면치 못하는 졸작도 많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까칠한 평론가이기도 하다. “윤동주는 요절하는 바람에 시인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만개할 기회를 갖지 못했으니 당연한 겁니다. ‘쉽게 쓰여진 시’ ‘자화상’ ‘슬픈 족속’ 등 10편가량은 기가 막힌 작품이지만 나머지 시들은 오랜 세월 훈련된 시인들의 작품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인 상당수는 먼저 윤동주의 시를 접하고 그보다 5년 선배인 백석의 시를 뒤늦게 접했다. 그래서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 등장하는 프란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이국 시인의 이름이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 등장하는 것에 당황한다. 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꿈꾼 윤동주의 시 세계가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살고자 했던 백석의 시 세계를 닮아 있음에 놀라게 된다. 

    “윤동주는 백석의 시집 ‘사슴’을 필사해 간직할 정도로 백석을 좋아했는데 ‘별 헤는 밤’은 ‘흰 바람벽이 있어’가 발표된 이후 쓰인 시이기 때문에 확실한 모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윤동주는 정지용의 시도 많이 모방했습니다. ‘서시’에 등장하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구절은 정지용이 가톨릭 신자가 된 이후 쓴 신앙시편 '또 하나 다른 태양'에 나오는 '나는 나의 나이와 별과 바람에도 피로웁다'란 구절의 변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윤동주 유고시집 제목('히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등장하는 하늘, 바람, 별은 정지용의 신앙시편에 되풀이해 등장하는 어휘입니다.” 

    기자가 윤동주와 백석의 시 세계를 굳이 비견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한국 사회의 한편에서 치를 떠는 단어가 ‘친일’이라면, 다른 한편에서 용서 못 하는 단어가 ‘용공’(최근에는 ‘종북’이 그 대체어가 되고 있다)이다. 윤동주가 일본 제국주의자에 의해 희생된 순결한 영혼을 상징한다면, 백석은 북한 정권에 토사구팽당하고 무참히 짓밟힌 영혼을 대변한다.

    에즈라 파운드와 서정주

    에즈라 파운드(왼쪽)와 서정주. [위키피디아, 동아DB]

    에즈라 파운드(왼쪽)와 서정주. [위키피디아, 동아DB]

    어느 쪽이 더 비극적일까. 서른도 채 못 된 나이에 생체실험 대상으로 숨진 윤동주의 비극성에 비할 만하겠느냐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했던 백석이 굴욕적인 대남방송까지 감행했음에도 결국 숙청돼 삼수갑산의 삼수에서 30년간 농장일꾼으로 일하다 쓸쓸히 숨진 비극성 또한 가볍지 않다. 더군다나 말년엔 매일 시를 짓고는 부끄러워 그날이 가기 전 다 태워버렸다는 유족의 묵직한 증언이 더해지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윤동주나 백석은 결코 저항시인이 아니었어요. 계절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내면의 순수함을 추구한 서정시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국주의 일본이나 공산주의 북한에선 그런 순수한 시심까지 용납할 수 없었던 거죠. 윤동주가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라며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예감했듯이, 백석 또한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고 노래한 그대로 삶을 살아야 했으니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의 실천 아니었나 싶습니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친일’과 ‘용공’으로 넘어갔다. 먼저 미당 서정주의 친일 행적과 그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유 평론가는 에즈라 파운드의 예를 꺼내 들었다. 

    “에즈라 파운드는 미국을 싫어한 미국 시인이었어요. 현대 미국 문명이 싫어 고대 로마시대의 원형을 간직한 이탈리아로 건너가 살았는데, 무솔리니가 집권하니까 사실상 그 영어권 대변인이 됩니다. 심지어 미군 대상으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는 영어방송까지 했습니다.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반역죄로 재판에 회부됐습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반역자로서 행위와 시인으로서 업적 양자의 무게를 달아보면 시인으로서 업적이 훨씬 더 무겁다며 석방했습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미국 랜덤하우스가 1927년 ‘The Best American Poetry’라는 미국 시선집을 펴냈는데 여기에 파운드의 시가 여러 편 실렸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개정판을 낼 때 파운드의 시를 빼려 했는데, 당시 랜덤하우스 고문을 맡고 있던 영국시인 W. H. 오든이 결사적으로 반대해 결국 그대로 둡니다. 이게 정말로 문학적 행위죠. 일제 말기 친일 시 몇 편 썼다고 반역자라며 그 시를 읽지 말자, 교과서에서 빼자는 건 비문학적 행위입니다” 

    프로이트도 무솔리니에게 자신의 책을 선물로 보냈고, 영국 사회주의 작가였던 버나드 쇼도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글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들의 사상과 문학이 매장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유 평론가는 “모범적 삶을 산 문학인의 작품만 문학으로 인정하자는 기준을 세계문학에 적용하면 세계문학의 90%가 사라질 것”이라며 “미당의 문학은 문학대로 평가하면서 그의 삶이 반듯하지 못했던 것은 반면교사로 삼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친일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해방됐을 때 우리가 크게 기여하지 못한 데 대한 자격지심의 반영입니다. 그렇다고 대다수 국민이 목숨을 내놓고 독립투쟁을 할 수는 없었던 것 아닙니까. 생존 논리에 위반되는 이런 단선논리를 가지고 해방 전 시기를 일관 처분하려 드는 것은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고, 삶의 복잡성을 무시하는 것이며, 현실에 맞지 않는 겁니다. 이야말로 과거 주자학의 잔재라고 생각합니다. 인촌 김성수만 해도 중앙고, 보성전문학교, 동아일보를 세워 한국 문화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습니까. 그런데 일제 말년 5년간의 부득이한 언동을 가지고 친일파라 매도하면서 동상도 때려 부수자는 것은 민족주의적 소아병에 불과합니다. 자신들의 체면을 세우려고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어서라도 애국심에 불타는 사람들로 행세하는 겁니다.”

    재판관의 고민

    유 평론가의 날 선 비판은 ‘친일’만 향한 것이 아니다. ‘용공’ 문제도 함께 겨냥하고 있다. ‘그 이름 안티고네’에선 해방 후 충주에서 중학교 국어교사를 하던 아버지가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인민군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교사활동을 계속했다는 이유로 부역자로 낙인찍힌 체험담 끝에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정의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또 진보당 사건 1심에서 죽산 조봉암의 간첩죄를 인정하지 않은 유병진 판사의 '재판관의 고민'을 읽고 ‘우리에게도 이런 인물이 있었구나’라며 감복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제가 본디 문장이 조잡한 글은 문학작품으로 여기질 않아 바로 덮어버립니다. ‘재판관의 고민’이 그런 지리멸렬한 비문으로 점철된 책이었죠. 그래도 내용이 무척 감동적이라 통독했습니다. 6·25전쟁 직후 부역자로 몰린 사람들의 경우 ‘내가 그 처지가 돼도 부역 안 할 수 있었는가’라는 기준을 적용해 그럴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은 모두 무죄 방면했다는 내용을 읽고 진짜 윤리적이며 문학적인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하게 됐습니다. 윤리적이란 게 딴 게 아닙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고를 할 수 있는 겁니다. 문학적이란 것 역시 상대의 처지가 돼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무리 짓기와 쏠림현상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이야기는 한국인의 지나친 쏠림현상으로 넘어갔다. 표제작이 된 ‘그 이름 안티고네’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여주인공 안티고네와 그 대척점에 섰던 크레온의 갈등을 다룬다. 유 평론가는 한국에선 천륜을 강조한 안티고네 지지자가 압도적이지만 미국에선 국가이성의 논리를 강조한 크레온 지지자가 더 많음을 지적하며, 양자의 의견에 모두 귀 기울일 줄 아는 균형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티고네만큼 크레온 역시 비극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또 다수 의견과 차별화되는 소수 의견도 존중할 줄 아는 문화풍토가 조성되지 않은 사회는 전체주의의 온상이 될 수 있음을 준엄하게 경고한다. 

    “한국에선 신임 대통령이 취임할 때 지지율이 90%가 넘지만 퇴임할 무렵이면 30% 이하로 떨어지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이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빨리 실망해서도 안 되는 겁니다. 그런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부화뇌동하고 주류파에 섞임으로써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려는 못된 습성이 작동하기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주견(主見), 주체적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에요.” 

    책을 읽다 보면 필자의 놀라운 기억력에 감탄하게 된다. 어린 시절 자신이 보고 들은 것, 대학입시 당시 문제와 답은 물론, 자신의 수험번호뿐 아니라 앞뒤 번호의 인물까지 다 복기해내고 있다. 가히 ‘디테일의 왕’이라 부를 만하다. 이 놀라운 기억력의 원천은 뭘까. 

    “굳이 차이를 끌어내자면 술, 담배를 멀리한 것밖에 없습니다. 술은 원래 싫어한 데다 돈도 없어 안 마셨고, 담배는 15년간 피우다 나 자신이 너무 의존적이 되는 것 같아 30대 중반 대오각성하고 끊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술, 담배 안 하면 친구들이 다 떨어져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썼어요.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습니다.” 

    유 평론가의 글에선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풍자작가 장 드 라 브뤼에르의 ‘홀로 있을 수 없다는 이 크나큰 불행!’이라는 표현이 되풀이돼 발견된다. 그 구절은 이렇게 귀결된다. ‘자유와 고독에 대한 감내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이 쉽사리 다수에 부화뇌동하는 군중으로 변한다.’ 무리 지어 다니지 않으면 쉬 외로움을 타는 한국 남성들이 진짜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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