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美 프런티어냐, 中 슈광이냐

초강대국 향한 미국과 중국의 슈퍼컴퓨터 대전(大戰)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9-05-20 10: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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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1위 슈퍼컴퓨터인 미국 서밋.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세계 1위 슈퍼컴퓨터인 미국 서밋.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슈퍼컴퓨터란 연산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순서로 500위 안에 드는 컴퓨터를 말한다. 국제 슈퍼컴퓨팅 콘퍼런스(ISC)는 매년 6월과 11월 성능에 따라 세계 모든 슈퍼컴퓨터의 등수를 매긴다. 현재 세계 1위 슈퍼컴퓨터는 미국 에너지부 산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가 보유한 IBM의 ‘서밋(summit)’이다.

    서밋은 122.3페타플롭스(PFlops)로 1위 자리에 올랐다. 1페타플롭스는 초당 1000조 번의 연산 처리 속도를 말한다. 슈퍼컴퓨터는 기상과 재난 예보는 물론 인공지능(AI), 우주, 로봇, 바이오와 신약, 신소재, 양자역학, 핵융합과 핵분열 제어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분야를 개발하고 활용하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다. 

    예를 들어 신약 개발 시 단백질을 구성하는 수십만 개 분자의 행동을 일일이 파악해야 하는데 분자 움직임을 예측하는 물리학 공식을 슈퍼컴퓨터로 계산하면 경우의 수를 미리 알아내 치매, 파킨슨병, 당뇨, 암 같은 질병의 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다. 슈퍼컴퓨터는 국가가 보유한 정보기술(IT)과 과학 역량을 상징한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은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필수 아이템

    세계 2위 슈퍼컴퓨터인 미국 시에라. (왼쪽) 세계 3위 슈퍼컴퓨터인 중국 선웨이 타이후라이트.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china.org.cn]

    세계 2위 슈퍼컴퓨터인 미국 시에라. (왼쪽) 세계 3위 슈퍼컴퓨터인 중국 선웨이 타이후라이트.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china.org.cn]

    과거 슈퍼컴퓨터는 미국이 선도했다. 세계 최초 슈퍼컴퓨터는 1976년 미국 시모어 크레이가 만든 ‘크레이(Cray)-1’이었다. 이후 미국은 슈퍼컴퓨터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려왔다. 하지만 중국이 21세기 들어 슈퍼컴퓨터 개발 기술을 급속히 발전시키면서 미국에 도전장을 던졌다. 중국은 2010년 2.5페타플롭스의 성능을 가진 세계 1위 슈퍼컴퓨터 ‘톈허(天河)-1’을 만들었다. 이후 2년간 일본과 미국에게 슈퍼컴퓨터 1위 자리를 내줬지만,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톈허-2’와 ‘선웨이 타이후라이트(神威 太湖之光)’로 다시 정상에 올랐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IBM, 엔비디아, 인텔, 크레이, AMD 등 주요 컴퓨터 및 반도체업체에 막대한 자금과 연구비를 지원해 세계 1위를 되찾아왔다. 

    중국은 지난해 6월 서밋에 1위 자리를 빼앗긴 데 이어 11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가 보유한 ‘시에라(Sierra)’에 2위도 내줬다. 하지만 세계 500위 슈퍼컴퓨터 가운데 중국이 227대(45.4%)를 보유해 2위 미국(109대·21.8%)을 능가하고 있다. 일본은 31대(6.2%), 영국은 20대(4%)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6대. 



    중국 정부는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 보유국 자리를 탈환하고자 향후 3년간 수십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엑사플롭스(EFLOPS)급 슈퍼컴퓨터인 ‘슈광(曙光)’ 시제품을 선보였다. 중국 서버 기업 수곤(Sugon·中科曙光)이 개발한 슈광은 초당 100경(京) 번을 연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엑사(exa)는 100경을 나타내는 단위로, 1엑사플롭스는 초당 100경 번의 연산 처리 속도를 말한다. 중국 정부는 2020년 칭다오 해양과학기술 국립연구소, 2021년 톈진 국립슈퍼컴퓨터센터, 2022년 선전 국립슈퍼컴퓨터센터에 엑사플롭스급 슈퍼컴퓨터를 각각 설치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가 슈퍼컴퓨터 등 첨단 기술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이유는 초강대국이 되려면 기술패권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의 기술을 베끼는 방식으로 세계 공장으로 부상했고 세계 제2 경제대국이 됐다. 막대한 무역흑자를 통해 엄청난 달러를 보유하게 된 중국 정부는 현 전략으로는 더는 발전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기술 개발에 전력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미국 정부의 강력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최첨단 산업 육성책인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최첨단 고성능 컴퓨팅 기술의 결합체

    미국이 개발에 들어간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 프런티어. [AMD]

    미국이 개발에 들어간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 프런티어. [AMD]

    미국도 중국에 뒤질세라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5월 8일 반도체업체 AMD와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크레이와 공동으로 2021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엑사플롭스급 슈퍼컴퓨터인 ‘프런티어(Frontier)’ 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프런티어 개발에는 6억 달러(약 7022억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차세대 고성능 컴퓨팅(HPC)과 AI 기술에 최적화할 수 있도록 개발되는 프런티어의 최대 연산능력은 1.5엑사플롭스가 될 전망으로 현재 1위인 서밋보다 7.5배나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1.5엑사플롭스는 초당 150경 번의 연산 처리 속도다.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는 프런티어를 활용해 기후모델, 원자 구조, 유전학, 물리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를 연구할 방침이다. 릭 페리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엑사플롭스급 슈퍼컴퓨터를 확보하는 것은 과학계의 발전뿐 아니라 미국인의 삶을 개선하는 데도 시급한 사항”이라며 “프런티어는 세계를 이끌어가는 미국의 능력을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패권을 차지하려고 경쟁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슈퍼컴퓨터 전쟁’에 나서면서 기술패권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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