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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한의 세상관심법 | ‘인천 여중생 투신자살’로 본 사이버 집단 괴롭힘

“장난인데 왜 그래”

가해 학생들 놀이 문화처럼 여겨…군중심리 편승, 공감 부족 탓도

“장난인데 왜 그래”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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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학교 안팎에서 신체적 폭행이나 집단 괴롭힘, 집단 따돌림 형태의 폭력이 주로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온·오프라인상에서 성폭력이나 언어폭력 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7월 19일 인천에서 한 여중생이 투신했다. 처음에는 단순 자살로 알려졌지만 여중생의 부모는 “심적 고통에 시달리던 딸이 죽음으로 내몰렸다”며 가해 학생들을 고소했다. 해당 고소장에는 한 고교생으로부터 성추행당한 딸이 같은 중학교 친구에게 알렸는데, 오히려 이 친구가 “소문을 내겠다”고 협박해 딸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딸의 전 남자친구까지 가세해 성관계 사실 등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뜨려 결국 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 성폭행과 악의적인 소문으로 극히 힘들었을 소녀의 심리가 짐작이 간다. 

최근 학교 폭력 양상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 사건을 접한 후 필자의 마음이 더욱 착잡해졌다. 아이들은 왜 사이버공간에서 친구를 괴롭힐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집단의식 때문이다. 사이버공간에서 일대일로 친구를 괴롭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로 여럿이 한 사람에 대한 비방과 인신 모욕을 공유하면서 괴롭힌다. 괴롭힘이 집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가해 아이들은 양심의 가책을 덜 느낀다. 다른 아이도 모두 그렇게 하고,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일 뿐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지 않는 ‘도덕적 마비’가 온다. 

비단 아이들 세계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조직이나 사회에서도 누군가를 매도할 때 너나없이 동참해 난도질을 해댄다. 그 사람이 분명 잘못했다면 이해가 가지만, 확실하지도 않은 소문이나 선입견으로 비난하는 경우가 꽤 많다. 이른바 ‘군중심리’다. 상대방이 실제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자신들의 눈에 거슬리거나 얄밉게 느껴지는 언행을 했다는 것이 이유다. 가해 학생들은 그 문제를 증폭하고, 마치 인격 전체가 엄청난 문제인 양 확대 재생산해 공격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간혹 ‘아이들이지만 무섭고 잔인하다’는 생각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공감 능력, 부모를 보고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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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가 학교 폭력이나 집단 괴롭힘에 가담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버공간에서 악의적으로 헛소문을 유포하고 집단으로 괴롭히는 행위는 잘못된 것임을 아는 아이가 더 많다. SNS에 퍼진 특정 친구의 소문에 대해 반신반의하거나 누군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도 많다. 특히 피해 학생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 더욱 신중하게 판단하려 든다. 이 정도면 매우 성숙한 태도다. 이런 아이들은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상대방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아이가 꽤 있다. 그들은 대체로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공감 능력은 상당 부분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만 후천적 경험과 학습, 교육에 의해서도 길러진다. 만일 누군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봤을 때 부모가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려 한다면 자녀 역시 공감 능력이 발달하게 된다. 반면 무관심하거나 경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 자녀 역시 자연스레 ‘공감 능력 부족’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영·유아기에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혹은 학교가 어떤 교육을 제공하는지에 따라 아이의 공감 능력, 더 나아가 도덕성 발달에 상당한 차이가 생긴다고 할 수 있다. 

셋째, 놀이 문화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문화라고 하면 의문이 들겠지만, 아이들은 정말 놀이로 여긴다. 단체 대화방에 누군가를 비하하는 글을 올리면 서로 ‘키득키득’댄다. 이른바 ‘패드립’이라고 해 부모를 욕하는 글을 올리고 노래 부르는 영상을 공유하면서 ‘장애인 콘서트가 열렸다’는 식으로 조롱한다. 그러나 수위가 지나치면 누군가 상처받고 모욕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수위 조절’을 잘 못 하고, 이의를 제기하면 ‘예민하다’며 재차 비난의 화살을 쏘곤 한다. 마치 ‘너는 왜 심각하게 굴어서 우리의 재미를 반감시키느냐’는 심리다.


비판하고 공격하는 사회 문화

과거에도 아이들이 한 대씩 치고받으며 장난치다 실제 싸움으로 비화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기절시키기 놀이’ ‘목 조르기 놀이’ ‘체벌 놀이’ 등 가학·피학적 놀이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여기에는 기존 문화에 반발하고 일탈을 추구하는 청소년의 시기적 특성이 반영돼 있다. 그런데 그런 잘못된 놀이 문화가 지금은 사이버공간에서 들불처럼 번져나가 거의 통제 불능 수준에 이른 것이다. 

넷째, 기성세대의 댓글 양상 때문이기도 하다. 조회수가 많은 기사의 댓글을 보면 비난과 조롱을 담은 글이 대부분이다. 기사 내용을 강하게 비판하거나,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인격 모독적인 글을 달거나, 심지어 기자 또는 글쓴이까지 비난하는 것이다. 차분하게 수용하고 생각해보자는 내용은 거의 없다. 육아나 생활 정보를 제공하는 기사에는 가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군가의 주장이나 생각에 대해 비판부터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돋우거나 항상 ‘안테나’를 세운 채 타인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일단 ‘방어벽’을 쳐야 한다. 오히려 선제공격을 취하기도 한다. 이런 문화에서는 아이들에게 서로 위로하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성숙한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안타깝지만 학교 폭력은 앞으로도 계속돼 스스로 목숨을 던진 여중생과 같은 희생자가 더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 어른부터 바뀌어야 한다. 상대방의 명예와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캠페인을 벌이거나,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 학교는 초기에 적극 개입하고 가해 부모는 잘못을 인정하면서 반성하는 문화를 길러야 한다. 학교 폭력 문제에서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야말로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가장 중요한 처방전이다. 그리고 사과할 수 있게 용기를 북돋워야 할 사람은 부모와 교사, 즉 어른이다.






주간동아 2018.12.14 1168호 (p64~65)

  • 정신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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