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4

2015.11.23

한류 날개 달고 세계로 50년 맞은 고전번역사업

한국고전번역원, 역사의 보물창고 열다…‘광해군일기’와 ‘별에서 온 그대’, ‘승정원일기’와 ‘명량’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11-23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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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 날개 달고 세계로 50년 맞은 고전번역사업
    ‘그것은 매우 크고 빠르기는 화살 같았다. 우레 소리를 내며 천지를 진동시키다가 불꽃과 함께 사라졌는데, 이때 하늘은 청명하고 사방에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다.’

    지난해 한류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의 첫 장면이다. 드라마 시작과 함께 화면을 가득 채운 이 문장은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1년(1609) 9월 25일자에서 가져온 것이다. 당시 강원감사 이형욱은 지역에서 목격된 ‘기이한 자연현상’을 ‘天氣晴明 (중략) 午時有火光 (중략) 其疾如矢(중략) 震動天地而止’ 등으로 적어 조정에 보고했다. 약 400년이 흐른 뒤 고전번역자가 이를 우리말로 풀어 옮겼고, ‘별그대’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조선을 찾아온 외계 생명체’를 떠올렸다. 그렇게 역사는 되살아나고 풍성한 이야기로 재창조돼 세상에 퍼졌다.

    2012년 개봉 후 1200만 명 이상 관람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출발점도 조선왕조실록의 한 문장이었다. 광해군일기 8년(1616) 2월 28일자에 실린 ‘숨겨야 될 일들은 조보(朝報)에 내지 말라’가 그것이다. 지난해 개봉작 ‘명량’에서 1700만 명 넘는 관객의 마음을 울린 이순신 장군의 최후 장면은 ‘승정원일기’에서 나왔다. 인조 9년(1631) 4월 5일 고령의 신하 이원익이 왕을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부분이다.

    “왜란 때에 이순신이 죽음에 임박하자 이예(이순신의 아들)가 아버지를 안고서 흐느꼈는데, 이순신이 적과 대치하고 있으니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예는 일부러 그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전투를 독려하였습니다.”

    ‘번역’ 여의주 물고 깨어나는 용



    서울 종로구 비봉길에 있는 한국고전번역원은 바로 이 풀이들을 세상에 전해주는 곳이다. 수천 년 우리 역사의 보물창고를 열어 현대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해주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승현 한국고전번역원 콘텐츠기획실장은 이에 대해 “매우 보람된 일”이라며 “‘잠들어 있던 용’(고전)이 깨어나 창공을 자유롭게 날며 조화를 부리려면 ‘번역’이라는 여의주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도전 문집 ‘삼봉집’이 번역되지 않았다면 그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거예요. 번역은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과 사건을 세상에 드러내주는 구실을 하죠. 이후 관련 연구가 활성화되고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 뿌듯합니다.”

    하 실장의 말이다.

    대한민국 출범 전까지 생산된 거의 모든 문헌은 한자로 기록됐다. 반면 대중의 한문 이해력은 나날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문화를 창조하는 작가, 연출자뿐 아니라 학술 연구를 주도하는 학자 중에서도 상당수가 한문을 직접 해독하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서 ‘책 속에 갇혀 있는 글자’들을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고전번역의 가치는 매우 크다. 우리나라에서 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965년 11월 당대 학계 원로들이 민족문화추진회(민추)를 만들면서부터다. 월탄 박종화, 외솔 최현배 등이 주도한 민추는 1971년 조선왕조실록 번역을 시작해 93년 말 완역하는 등 여러 성과를 냈고, 이들의 뜻과 노력은 2007년 교육부 산하 학술기관으로 재탄생한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이어졌다. 민추 42년과 한국고전번역원의 역사 8년을 합치면 올해는 한국 고전번역이 꼭 50년을 맞는 해가 된다.

    한류 날개 달고 세계로 50년 맞은 고전번역사업

    전문 번역가들의 노력을 통해 현대에 되살아난 고전들과 한국고전번역원이 최근 고전 대중화를 위해 제작 출간한 CD롬 및 도서들(왼쪽부터).

    그사이 여러 전문가의 손 아래서 신라 최치원의 ‘계원필경집’부터 구한말 황현의 ‘매천집’에 이르기까지 많은 개인문집이 한글로 옮겨졌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위에 드리워졌던 독해불능의 장막도 차츰 걷히는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가 있다. 2011년 창작활동 종사자 1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고전에 대한 관심도는 ‘많은 편’(65.6%)이었다. 하지만 응답자 대부분이 ‘한글로 번역된 고전이 적고’(84.7%, 중복응답), ‘이해하기 힘들게 번역돼 있다’(66.2%)는 등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최영록 한국고전번역원 대외협력실장은 “고전을 현대화하는 건 쉬운 작업이 아니다. 선현들의 삶과 지혜가 담겨 있는 옛 문장을 우리말로 옮기려면 한자 해독력뿐 아니라 뛰어난 국어 실력도 요구된다. 책이 완성된 시대의 생활상과 문화, 제도, 철학 등에 대한 폭넓은 이해도 필요하다. 옮겨야 할 책은 매우 많은데 이런 수준의 번역자가 크게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최근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원문 데이터베이스(DB)화 작업을 마친 조선 사료 승정원일기만 봐도 그렇다. 오늘날 대통령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에서 왕을 수행하며 적은 기록 모음집인 승정원일기는 전해지는 것만 3243책, 2억4300만 자에 이른다. 태조부터 광해군까지 자료가 전란 과정에서 소실됐는데도 그렇다. 현재 남은 사료 안에는 인조부터 순종까지 이어진 조선왕조 288년간 왕의 주요 일정과 매순간 기분, 신하들과 주고받은 이야기 등이 속속들이 적혀 있다. 이것을 정리, 편집한 책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지난해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단순히 왕조의 역사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조선 사회사 자체 아니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그 책의 원전인 승정원일기 안에는 말 그대로 조선 사회의 속살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깊이를 제대로 풀어내려면 남다른 ‘내공’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승정원일기 번역에 참여했던 하승현 실장은 “‘고전을 번역하려면 문리(文理)가 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책을 읽으며 그 안에 담긴 내용과 문장의 결까지 느끼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이 수준에 이르는 데 최소 10년쯤 걸린다”고 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 사학, 철학 등을 공부한 뒤 한문번역을 최소 3~4년은 집중적으로 익혀야 이르게 되는 경지다.

    웅문속필의 세계

    최근 고전번역을 시작하는 이들은 학위를 마친 뒤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에서 추가로 전문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교육과정은 연수과정 3년과 각 2년의 전문과정 1, 2를 더해 총 7년으로 이뤄져 있다. 이러다 보니 고전번역가들은 30대가 넘어서야 본격적인 번역을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전문가로 자리 잡으려면 이후에도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고전번역원은 매년 2차례씩 번역자들의 결과물을 평가해 오역이나 어색한 표현을 골라내고 평점이 85점(100점 만점)을 넘지 못하면 재번역을 요구한다. 재번역에서 다시 85점을 넘지 못하면 역자 위촉을 중단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가 번역가의 길을 포기한다. 2012년 한국고전번역원 연감에 따르면 직전 해 번역 작업 참여 인력 268명 가운데 40대가 96명(35.8%), 50대가 81명(30.2%)이었다. 20대는 2명(0.7%)에 불과했다. 학력도 박사학위 소지자가 136명(50.7%)으로 가장 많고 석사학위 소지자(36명·13.4%), 박사 수료자(26명·9.7%)가 뒤를 이었다.

    이런 전문가들에게도 승정원일기 번역은 쉽지 않은 도전이라 한다. 방대한 분량과 폭넓은 내용 때문이다. 승정원일기를 기록한 주서(注書)의 필수덕목은 ‘웅문속필(雄文速筆)’이었다고 알려진다. 문장력이 뛰어나면서 글도 빨라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한자 흘림체인 초서(草書)로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촘촘히 기록하면서도, 작은 표현 하나까지 허술히 하지 않았다.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꼭꼭 씹어 읽을수록 새롭게 했다.

    기록 곳곳에 대명사가 쏟아지는 것도 번역자에게는 부담이 된다. 당대 왕과 신하들은 성리학 지식으로 무장한 최고 엘리트였다. 중국 고사를 언급하거나 옛 학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그 당시’ 혹은 ‘그 사람’으로 지칭하는 일이 흔했다. 당대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를 기록하는 주서까지도 어려움 없이 알아들었을 표현이지만, 오늘날 번역자들은 이 대명사의 바른 의미를 해독하려면 일일이 사료를 뒤지고 백번을 거듭 읽으며 함의를 헤아려야 한다. 이러다 보니 승정원일기는 1994년부터 번역을 시작했지만 아직 공정률이 20%가 채 안 되는 상태다. 선조들이 남겨준 보고(寶庫)에는 뽀얗게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 우리 사회가 고전번역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더 많은 인력이 이 분야에 진출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다 고전 읽기의 매력에 빠져 번역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최두헌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은 “사료를 읽다 보면 드라마나 영화로 가공된 것보다 실제 역사가 훨씬 흥미진진하다고 느낄 때가 적잖다.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 선인들의 문집 안에도 인상적인 부분이 많다. 이 재미와 행복을 좀 더 많은 이가 경험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고전이 번역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인터넷으로 만나는 수천 권의 양서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역사’의 사례로 승정원일기의 한 대목을 소개하기도 했다. 1741년 6월 영조가 경덕궁 경현당에서 여러 신하와 사도세자를 함께 만난 날의 기록이다. 영조는 이 자리에서 여섯 살 된 세자에게 ‘동몽선습’을 읽게 했고, 잠시 후 세자시강원에 있던 박필간에게 어려운 글자를 골라 물으라고 명했다. 주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적었다.

    박필간 : 어떤 자가 ‘귀(貴)’ 자입니까.

    세자 : (글자를 가리키며) 이 자.

    박필간 : 어떤 자가 ‘친(親)’ 자입니까.

    세자 : 이 자.

    영조 : ‘보(輔)’ 자가 어려울 것 같으니

    한 번 물어보라.

    박필간 : 어느 자가 ‘보’ 자입니까.

    세자 : (책장을 한 줄 한 줄 자세히

    보더니 이내 손으로 가리키며) 이 자.

    영조 : 배운 지 여섯 달이나 지났는데도 잊지 않았구나.

    총명한 아들을 기특하게 여기는 영조의 웃음소리까지 생생히 들릴 듯한 묘사다. 최 연구원은 “승정원일기의 여러 대목에서 영조는 ‘아들바보’ 같은 모습을 보인다. 훗날 뒤주의 비극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장면들”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승정원일기에는 왕의 일상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성균관 유생이 올린 상소에 진노해 책상을 내리치고 상소를 계단 아래로 집어던지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이 내용들을 대중이 편하게 접하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최소 수십 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다행스러운 건 한국고전번역원이 최근 고전의 전문(全文) 번역뿐 아니라, 여러 문헌의 정수(精髓)를 뽑아내 정리, 출간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 청소년용 ‘눈높이 고전’도 펴낸다. 젊은이들이 선인의 지혜를 배우고 역사 지식을 기를 수 있는 이야기를 골라 묶은 것이다.

    2013년 말 출간한 ‘후설(喉舌)’은 고전선집의 한 사례다. 후설은 목구멍과 혀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는 승정원에 붙었던 별칭이다. ‘승정원일기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다’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아직 번역이 끝나지 않아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승정원일기 속 인상적 장면들이 가득 담겨 있다.

    한국고전번역원 인터넷 홈페이지(www.itkc.or.kr)나 한국고전종합DB(db.itkc.or.kr)에 접속해도 고전 전문가들이 50년에 걸쳐 이뤄온 번역 성과물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하승현 실장은 “회원 가입도 필요 없다.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를 인터넷 즐겨찾기에 등록하는 순간 누구나 수천 권의 좋은 고전을 소장하게 되는 것”이라며 “고전번역을 통해 더 많은 이가 우리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만끽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인터뷰 | 이명학 한국고전번역원장

    “고전번역대학원대학교 만들어 전문 인력 길러내야”


    한류 날개 달고 세계로 50년 맞은 고전번역사업
    “대학에 있을 때는 한국고전번역원이 정부 예산을 받아 편하게 번역서를 펴내는 곳인 줄 알았습니다. 막상 원장으로 부임해보니 전혀 아니더군요. 아직도 석유난로로 난방을 할 만큼 환경이 열악하지만, 좋은 고전을 널리 알리겠다는 구성원들의 사명감과 열정 덕에 이만한 성과가 나오고 있어요. 이런 노력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명학 한국고전번역원장(사진)의 말이다.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한국고전번역원에 부임한 그는 고전대중화 사업에 특히 힘을 쏟고 있다. ‘고전에서 구하는 마법 같은 지혜’(고구마)라는 이름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초중고교생과 일반인을 위한 교양 고전도 꾸준히 펴낸다. “더 많은 국민이 고전을 읽으면 사회 전체가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고전은 시대를 떠나 반드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을 말합니다. 우리 민족의 정신을 이어온 핏줄과도 같은 것이고요. 경쟁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성이 날로 피폐해지고 있는데, 이런 때 고전은 ‘사고(思考)의 평형수’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인문정신을 퍼뜨리는 씨앗도 되고요. 고전을 ‘내일로 가는 옛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좋은 선현의 글을 읽으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수한 번역인력 양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이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고전번역을 앞장서 이끌었던 한문 1세대는 이미 모두 고인이 됐다. 현재 70, 80대인 2세대 분들이 학생을 지도하는 상황”이라며 “이분들의 역량과 지식을 빨리 전수받으려면 전문번역자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른바 ‘고전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이다. 이 원장은 “고전에 담긴 정치, 경제, 문화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번역할 인재를 기르려면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또 졸업생들이 전문가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균관대 사범대학장 시절 중국, 몽골 등 세계 각국에서 한글 백일장을 개최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던 이 원장은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믿는 학자다. 대학생들조차 ‘게재(揭載)’를 ‘게제’ 또는 ‘개제’라고 잘못 쓰고 ‘대각선(對角線)’의 뜻을 제대로 풀이하지 못하는(마주 보는(對) 각(角)을 이은 선(線)) 현실을 타개하려면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말 이해를 돕는 한자 읽기 교육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이 원장의 바람은 사회 전반에 우리 글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고전번역에 국가적 지원이 확대되는 것. 이 원장은 “보이는 곳에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마음의 길을 열고 닦아 정신을 살찌우는 일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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