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아파트 리모델링이 뜬다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나은 이유

재초환 피하고 생활공동체 유지… 1990년대 설립된 아파트 주민들 관심 높아

  • 입력2018-01-23 14: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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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수고 다시 지을까, 뼈대는 남기고 개·보수할까. 새해가 되면서 노후 아파트를 보유한 집주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부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재건축 초기 단계에 있는 단지는 재건축 완공 이후 발생할 예상 수익금에 대한 세금을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부동산업계에선 가구당 최소한 1억~2억 원은 더 부담해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재건축 이후 수익성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소규모 아파트단지, 혹은 집값 상승분이 재초환 납부금을 능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1기 신도시 단지는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저비용  - 고효율로 환골탈태

    리모델링의 개념은 2001년 건축법 시행령 개정으로 처음 등장했다. 건축법과 주택법에선 ‘건축물의 노후화 억제 또는 기능 향상 등을 위한 대수선 또는 증축’으로 규정한다. 아파트가 세워지고 30년이 지나야 추진할 수 있는 재건축과 달리 15년이 지나면 조합을 만들어 리모델링에 나설 수 있다. 리모델링은 재건축과 다르게 기반시설 개선이 포함되지 않고, 사업 범위도 아파트 동 단위 등 일부가 가능하다. 또 재개발·재건축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적용받는 데 비해 리모델링은 주택법과 건축법의 적용을 받는다. 

    서울시가 2016년 12월 내놓은 ‘2025 서울특별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리모델링 사업은 맞춤형으로 진행하는 저비용 리모델링, 증축형인 고비용 리모델링으로 나뉜다. 저비용 리모델링의 유형은 기본형, 평면확장형, 세대구분형, 커뮤니티형 등 4가지로 분류된다. 기본형은 노후설비 교체, 냉난방 성능 향상, 층간소음 저감, 주차장 확충을 개선하는 사업이고, 평면확장형은 기본형 리모델링에 추가로 방과 화장실 설치, 복도식에서 계단식으로 변경, 승강기 신설 등 주거 면적을 확장하는 사업이다. 세대구분형은 기본형 리모델링에 세대에 따라 새로운 출입문을 설치해 공간을 분리, 2개 세대 확보가 가능하도록 실내공간을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커뮤니티형은 기본형 리모델링에 아파트 녹지 및 옥외 모임 공간을 확보하고 단지 외부공간을 재구성해 체력단련실, 사우나 등 주민공용 커뮤니티 시설을 확충하는 방식의 사업이다. 이러한 리모델링은 세대당 5000만 원 선의 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나 리모델링 추진 조합과 건설회사는 대부분 리모델링 사업으로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증축형의 고비용 리모델링 방식을 선호한다. 이는 크게 수직증축형과 수평증축형으로 나뉜다. 수직증축형은 용어 그대로 아파트 위쪽으로 세대를 더 지어 올리는 것을 뜻한다. 저층부를 필로티 및 공용 로비로 활용하고 커뮤니티 시설을 확충할 수 있다. 또 증축으로 늘린 세대를 일반 분양해 분담금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수평증축형은 기존 아파트 건물 옆 여유 대지에 동을 증축해 가구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이 역시 일반 분양으로 사업비 일부를 충당할 수 있다. 수직·수평증축 리모델링의 경우 가구당 약 2억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의 경우 1970~ 80년대 지은 10층 이하 저층 아파트인 데다 용적률이 100%대로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건축 이후 지상 35층, 용적률 300%대인 아파트로 탈바꿈하면 일반 분양 물량이 많게는 1000가구까지 나오기 때문에 건설사는 사업성을 높이고, 조합원들은 건축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1990~2000년대 지은 아파트단지는 대부분 10층 이상 고층 아파트인 데다 용적률이 200%에 이르다 보니 기존 아파트를 헐고 새로 짓는 것이 사업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 단지는 재건축 대신 비교적 합리적인 비용에 새 아파트로 바꿀 수 있는 리모델링을 선호하는 추세다. 



    리모델링이 재건축에 반해 안전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도 진행하는 현대산업개발의 이근우 도시재생팀 부장은 “건축물 일부를 철거하고 구조물을 붙여 골조를 강화하면 법적 기준치인 진도 6.5 지진도 버틸 수 있다. 또 건축물을 공중에 띄워놓는 형식으로 지하주차장을 더 늘릴 수도 있다. 과거 아파트는 4베이형 설계가 많았는데 3베이형으로 평면 변경·확장 공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재건축에 비해 장점도 많다. 이 부장은 “무엇보다 재건이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게 장점이다. 또 재건축은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지어야 하고 시에 기부채납을 해야 하는 등 제약이 따르지만 리모델링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강남 · 분당도 리모델링 추세

    2008년 조합을 꾸려 현재까지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 아파트. [동아DB]

    2008년 조합을 꾸려 현재까지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 아파트. [동아DB]

    일찌감치 리모델링을 선택해 재초환을 피한 단지들이 올해 들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 강남과 분당 등 이른바 부자동네에서 진행되는 리모델링 사업의 경우 특히 그렇다.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는 현재 추진 과정에 있는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 단지 가운데 최대 규모다. 1992년 준공됐고 지하 1층~지상 15층 11개 동 1753가구로 구성돼 있다. 2008년 집주인들은 리모델링을 추진하기로 하고 조합을 설립했다. 

    계획도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리모델링 사업 절차는 조합설립, 안전진단, 건축심의, 행위허가, 이주·착공, 입주 순서로 이뤄진다. 대치2단지는 지난해 안전진단을 받았고 11개 동 모두 B등급이 나왔다. 리모델링은 B등급 이상 받아야 수직증축이 가능하며, 재건축은 D등급 이하를 받아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이후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27일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지구단위계획 결정안’과 ‘특별계획구역 1-2 세부개발 계획 결정안’을 원안대로 가결했다. 조합은 6월까지 건축심의를 통과한 뒤 2019년 3월 이주를 시작해 순차적으로 철거에 들어갈 계획이다. 리모델링이 마무리되면 용적률은 기존 182.75%에서 289.81%로 늘어나고, 층수는 지하 3층~지상 18층으로 높아진다. 가구도 2015가구로 늘어 262가구는 일반 분양될 예정이다. 

    대치2단지를 필두로 인근 소규모 아파트단지들도 리모델링을 계획 중이다. 대치2단지 바로 옆에 위치한 삼익대청아파트는 기존 15층 규모를 18층으로 높여 822가구에서 902가구로 늘리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또 대치동 선경3차(54가구)와 현대1차(120가구), 개포동 구성9차(232가구) 등 대부분 소규모 단지가 리모델링을 검토 중이다. 

    1990년대 초반 대거 입주를 시작한 경기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부천시 중동,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 등 5곳의 1기 신도시에서도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가 늘고 있다. 2014년 성남시는 리모델링을 장려하고자 정자동 느티마을 주공3·4단지, 한솔마을 주공5단지, 구미동 무지개마을 주공4단지, 야탑동 매화마을 주공2단지 등 5곳을 선정했다. 이 가운데 매화마을 주공2단지를 제외한 나머지 단지는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이 밖에도 서현동 시범단지 현대아파트와 인근 삼성·한신아파트도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자 협의 중이다. 평촌의 경우 호계동 목련마을 대우·선경2단지 아파트가 리모델링 추진 과정에 있으며 지난해 11월 건축심의 안정성 검토에 들어가 1월 중순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1기 신도시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조합들은 리모델링을 선택한 것에 대해 “삶의 질 개선이 목표”라고 말한다. 평촌 목련마을 대우·선경2단지 리모델링추진위원회 이형욱 조합장은 “1기 신도시 아파트는 대부분 지은 지 24~25년이 돼 주민 상당수가 노후화 문제로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민영아파트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배관, 수도, 난방 등은 가구별로 수리해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 메인 관은 콘크리트 안에 들어가 있어 밖에서 아무리 교체해봐야 한계가 있다. 주민 공동시설도 부족한 편이다. 리모델링을 통해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추진 과정에서 분쟁 발생하기도

    경기 안양시 평촌 목련마을 대우  ·  선경 2단지 아파트 리모델링추진위원회 이형욱 조합장이 노후배관을 수거해 손으로 만지자 쉽게 부서졌다. [사진 제공 · 이형욱 조합장]

    경기 안양시 평촌 목련마을 대우  ·  선경 2단지 아파트 리모델링추진위원회 이형욱 조합장이 노후배관을 수거해 손으로 만지자 쉽게 부서졌다. [사진 제공 · 이형욱 조합장]

    리모델링은 재건축보다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지만 그만큼 감수해야 할 부분도 있다. 투자수익을 보면 완공 이후 재건축 사업단지가 리모델링 사업단지보다 가격 상승 폭이 크다. 일례로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삼호아파트 14동 96가구는 2002년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해 3.3㎡당 150만 원에 공사를 진행, 2년 뒤 입주했다. 해당 아파트 155㎡의 실거래가가 2008년 1월 10억5500만 원에서 가장 마지막 거래인 지난해 4월 11억7000만 원으로 가격 변동 폭이 크지 않았다. 

    반면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반포주공2단지는 재건축을 통해 2009년 래미안퍼스티지로 바뀌었다. 112㎡의 실거래가는 2009년 7월 13억5900만 원에서 지난해 12월 19억 원으로 8년 새 5억 원 이상 올랐다. 물론 96가구에 해당하는 1개 동 리모델링 아파트와 2444가구로 재건축한 대단지 아파트의 가격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건축 추진 시 인근 2~3개 단지를 묶어 추진하는 아파트도 많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추측이 가능하다. 

    현재 리모델링 건축심의를 앞둔 대치2단지에서도 극소수지만 리모델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단지가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2008년 당시 재건축을 하려면 연한이 40년 이상이어야 했다. 그러나 2014년 정부는 재건축 연한을 30년으로 단축했다. 이에 1992년 완공된 대치2단지는 4년 뒤 재건축이 가능하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시점과는 상황이 변한 것이다. 

    집값 상승도 한몫했다. 현재 대치2단지 인근인 개포LG자이는 158㎡가 2016년 12월 13억2000만 원에 거래된 이후 지난해 11월 15억2000만 원에 거래돼 1년 새 2억 원이 올랐다. 건설업계에서는 통상 일반 분양가가 3.3㎡당 최소 2000만 원은 넘어야 재건축이 가능하다고 본다. 해당 지역 3.3㎡당 매매가가 3000만 원을 넘어서 4년 이후 재건축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처럼 간혹 리모델링 추진 단계에서 부동산시장의 상황 변화로 노선 변경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가격 상승세가 강남권만큼 가파르지 않은 1기 신도시 처지에서는 리모델링이 생활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성남 분당을)은 최근까지 노후 공동주택 리모델링 문제를 논의하고자 토론회를 여는 등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1기 신도시는 165㎡ 이상 대형 아파트와 10층 이상 고층 아파트가 상당수다. 최근 부동산시장은 중·소형 평형이 강세이기 때문에 이런 아파트들은 거래가 드문 데다 용적률도 높아 재건축 이후 수익성이 받쳐주지 않는다. 이들 단지는 지금도 노후화가 진행돼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가는 주민이 많다. 5년 정도 지나면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리모델링, 국가적으로 논의 필요”

    2014년부터 리모델링을 추진해온 경기 성남시 정자동 느티마을3 · 4단지는 현재 건축심의를 통과해 이주를 앞두고 있다. 사진은 리모델링 이후 바뀔 아파트 조감도. [사진 제공 · 성남시]

    2014년부터 리모델링을 추진해온 경기 성남시 정자동 느티마을3 · 4단지는 현재 건축심의를 통과해 이주를 앞두고 있다. 사진은 리모델링 이후 바뀔 아파트 조감도. [사진 제공 · 성남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는 재건축 추진 단지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공사 규모와 향후 수익성 측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 이를 바라보는 주민들 사이에 온도 차가 생기는 것. 또한 재건축 과정에서 공사비를 감당하지 못해 완공 후 자기 집에 들어가 살지 못하고 임대를 줘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재건축을 반대하는 집주인들도 있다. 김명수 전국공동주택리모델링연합회 공동대표는 “재건축·재개발 아파트단지의 원주민 입주율이 보통 30~40%라고 한다. 기존에 살던 주인은 떠나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대거 옮겨와 공동체 파괴 현상이 생긴다. 반면 리모델링은 원주민 입주율이 90%를 넘어서 그런 현상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1기 신도시의 경우 학교, 체육관, 상업시설, 여가시설 등 생활기반이 탄탄하게 마련돼 있다. 이 때문에 20여 년간 이곳에서 생활해온 주민은 대부분 삶의 터전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1기 신도시 주민은 이곳을 ‘고향’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재건축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을 싫어한다. 정부가 싼 땅을 사들여 분양하고 그린벨트를 풀어 공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잘 지어 놓은 1기 신도시를 재생시키는 노력도 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도시재생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1990~2000년대 지은 아파트의 리모델링 사업도 도시재생 사업 일환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민영아파트뿐 아니라 임대아파트 리모델링 사업도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집주인이야 리모델링 사업을 건설사와 논의라도 할 수 있지만 임대아파트의 경우 이마저도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김병욱 의원은 “사각지대에 놓인 임대아파트를 저렴하게 리모델링하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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