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1

2017.08.16

특집 | 8·2 부동산대책 그 후

집값 안정? 키는 실수요자가 쥐고 있다

다주택자 · 실수요자 모두 관망 … 거래절벽 보완책 필요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7-08-14 13: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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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강도 대책이지만 큰 변동은 없어요.”

    8·2 부동산대책 발표 일주일 후 찾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부동산중개업소들은 한산한 분위기였다. 재건축 속도가 비교적 빠른 반포주공1단지의 매물이 대책 발표 이튿날 3억 원 떨어진 가격에 거래됐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급매물이 쏟아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S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32평형(약 105㎡)이 3억 원 떨어진 25억 원에 거래된 건 맞다. 그게 기사화돼 마치 폭락한 것처럼 알려졌으나 이례적인 경우”라며 “최고가에서 1억 원가량 싸게 급매물이 두어 건 나왔지만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하는 9일부터는 조합원 지위가 양도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는 거래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는 내년 부활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려고 사업 속도를 내고 있다. 초과이익환수제가 시행되면 재건축으로 발생한 이익의 최대 절반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이 때문에 조합은 올해 안에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해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반포주공1단지는 최근 6개월 사이 최고 3억 원 오른 가격에 거래됐다. S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8·2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거래된 매물은 5개가량인데 대부분 시세차익을 기대하던 이들이 급하게 내놓은 것”이라며 “이 단지는 20~30년씩 거주하면서 재건축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정부 대책에 따라 헐값에 내놓지는 않는다. 1억~2억 원 낮춰 팔기보다 정권이 바뀌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기다려보겠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대표적 재건축단지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분위기도 비슷했다. 단지 내 상가에 밀집한 부동산중개업소들에 문의전화가 계속 걸려왔지만 거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잠실주공5단지는 8월 말까지 예외조항이 적용돼 거래 여지는 있어 보였다. 원칙적으로 조합설립인가 후에는 조합원 지위를 양도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서 조합 설립 후 2년 안에 사업시행인가 신청이 없고 2년 이상 소유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조합원 지위를 양도할 수 있게 했기 때문. P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그나마 잠실주공5단지는 재건축 추진 속도가 느린 덕에 예외조항이 적용돼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예외조항도 9월 1일부터는 3년 내 사업시행인가 신청이 없고, 3년 이상 소유한 경우로 바뀐다.



    현재 잠실주공5단지는 내년 부활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재건축이 이뤄져도 조합원에게 돌아가는 실익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 거주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9월 전까지 매도하는 편이 나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P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겠지만 그렇다고 급매물이 쏟아지는 상황은 아니다. 매도·매수 문의는 많은데 서로 가격이 맞지 않아 거래가 안 되는  거여서 관망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가격추이에 대해서는 “실거주자가 많고 입주 희망자도 많은 단지라 가격이 어느 방향으로 조정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책 발표 일주일 후, 관망세 지속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재건축단지 가운데 대장주로 꼽히는 개포주공1단지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 단지는 7월 27일 관리처분 총회를 열었고 8월 말까지 한 달 동안 주민 공람 후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할 계획이어서 그 전까지는 조합원 지위 양도가 가능하다. 그러나 7월 중순 50㎡의 호가가 13억4000만 원까지 올랐다 8·2 부동산대책 발표 후 12억5000만 원까지 떨어졌는데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포동 G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피할 수 있고 조합원 지위도 양도 가능하지만, 가격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매수자들이 섣불리 뛰어들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반아파트 상황도 다르지 않다. 입주한지 2~10년 된 일반아파트를 주로 중개하는 반포동 B공인중개사무소 직원은 “대책 발표 이후 문의는 많으나 거래 자체가 안 된다. 매수자는 급매물을 찾는데, 매물을 가진 사람은 일단 시장을 지켜보자는 생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가격 조정 가능성에 대해 그는 “이 지역에 다주택자가 꽤 있는 걸로 안다. 융자가 많아 처분하려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 자금 여력이 있어 급히 헐값에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부동산 가격은 올해 상반기처럼 크게 오르기는 기대하기 어렵고, 지금 수준에서 장기 보합세로 갈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번 8·2 부동산대책의 주목적은 투기 수요를 잡는 데 있다. 국토교통부의 주택시장 동향을 살펴보면 6·19 부동산대책 후 줄어들었던 집값 상승폭이 7월부터 다시 확대됐다. 특히 7월 넷째 주 0.24%이던 서울 아파트 매개가격 상승률은 일주일 뒤 0.33%로 올랐다. 5월 말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었다(그래프1 참조). 그중 재건축 예정 단지가 밀집된 강남·서초구와 양천구 목동, 영등포구 여의도동 등을 포함한 강남 11개 구는 7월 마지막 주 집값 상승률이 0.40%까지 올라 6·19 부동산대책 발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등 과열이 지속되는 양상이었다.

    정부는 그 이면에 투기 수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다주택자의 추가 주택 구매량은 꾸준히 상승해왔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주택 거래량에서 1주택 이상인 유주택자의 비중이 2006~2007년 31.3%에서 2013~2017년 43.7%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2주택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가 주택을 또 구매하는 비중은 서울의 경우 2015년 이전과 비교해 2016~2017년 2배 이상 증가했다(그래프2 참조). 

    또한 정부는 2010년 이후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인 전세가율도 지속적으로 올라 단기 투기 수요도 증가한 것으로 판단했다. 전세가율이 70%를 넘는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 30%만으로도 살 수 있기 때문에 갭투자가 어렵지 않다. 실제로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은 7월 기준 74.2%를 기록했다. 또한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만연하면 갭투자자의 구매 결정 속도도 빨라진다. 올해 상반기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갭투자’라는 용어가 빈번히 오르내렸을 정도로 초미의 관심사였다.



    갭투자자 스트레스 커질 듯

    그러나 8·2 부동산대책이 발표돼 단기 수익을 기대하던 갭투자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번 대책에 따라 내년 4월부터 2주택 이상 다주택자는 조정대상지역의 주택을 팔 때 양도세를 더 내야 한다(표1 참조). 3년 이상 보유 시 보유 기간에 따라 양도차익의 10~30%를 공제받던 장기보유특별공제도 더는 없다. 하반기 대출금리 인상 가능성도 논의되면서 세금과 대출이자를 제하면 갭투자의 매력은 크게 떨어진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부동산 정보공유 카페에서는 갭투자의 향방을 놓고 ‘이번 정책으로 실수요자들이 나서지 않아 보합세가 계속되거나 하락하는 단지가 나오면 그때부터 대출을 많이 끼고 갭투자에 나섰던 사람은 잠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또 ‘전세금이 버텨주면 기다리기라도 하지만, 전세금이 떨어지는 날에는 집주인이 빚을 내서 차액을 메워야 하는데 대출이 더 되지 않을 경우 매도밖에 도리가 없다’는 전망도 뒤따랐다.

    전문가들도 이번 대책이 투기 수요를 단기적으로 잡는 데 상당한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노무현 정부 때도 8·31 대책, 1·11 대책 등 고강도 수요억제책이 나왔지만 이번처럼 매도·매수 양쪽을 한꺼번에 조이는 정책은 아니었다”며 “양도세를 올려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를 줄이고 대출도 많이 받을 수 없도록 했기 때문에 투기 수요가 확실히 줄어 집값 안정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이 안정되고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는다고 실수요자가 반색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 전체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대출길이 막혔기 때문. 8월 중순부터 투기과열지구 및 투기지역은 LTV(주택담보대출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가 기존 50%에서 40%로 줄어든다. 또 주택담보대출을 1건 이상 보유한 세대에 속한 가구원이 추가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LTV, DTI가 10%p씩 강화된다. 심지어 투기지역 내 이미 주택담보대출이 1건 있는 세대는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없다(표2 참조).



    무주택 실수요자도 발 묶여

    다만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고자 무주택 세대주이면서 부부 합산 연소득 6000만 원 이하인 경우 투기과열지구 및 투기지역의 6억 원 이하 주택을 매입할 때 LTV, DTI를 50%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또 이들이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 외 조정대상지역 혹은 수도권에 집을 살 경우 LTV 70%, DTI 6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서울은 강남 4구 말고도 용산·마포·노원·강서구 등 실거주 수요가 많은 곳까지 투기지역으로 지정돼 매매를 고려하던 이들은 곤란해졌다. 마포구 상암동에 전세로 거주하는 직장인 박모(37) 씨는 “지난해부터 서울 집값이 많이 올라 살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이번 대책으로 집값이 안정되는 것 같아 잠깐 좋았지만 막상 보니 크게 이득인 것이 없다”면서 내 집 마련 계획에 대해서는 “지금 사는 집이 5000만 원가량 떨어진다 해도 대출이 40%까지밖에 안 되면 1억 원이 더 필요한데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맞벌이로 부부 합산 연소득이 6000만 원을 넘어 대출도 더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파트 청약을 기대하는 무주택 실수요자도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다. 9월부터 1순위 자격 요건이 강화되고, 청약 가점제 적용 비율이 100%(투기과열지구 85㎡ 이하)로 바뀌면 어차피 가점제에 따라 당첨이 결정되기 때문에 청약에 기대를 걸기 어렵다. 8월 예정된 강남구의 한 재건축 일반분양 청약을 기다리던 직장인 서모(38) 씨는 “무주택자이긴 하지만 부양가족 수가 적고 청약저축 가입 기간도 짧은 편이라 가점제가 부활해도 당첨이 어렵다”며 “청약시장이 40, 50대 장기 무주택자들 위주로 돌아갈 것으로 보여 우리처럼 애매한 사람은 대책 발표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대출길이 막힌 것을 놓고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의 최대 허점이라고 지적했다. 고종완 원장은 “투기 수요를 잡으려다 보니 자금력이 있는 20, 30대 실수요자가 오히려 피해를 보게 됐다. 청약도 막히고, 전·월세 탈출길도 막혀 보완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 대책의 목적이 집값 안정이지 거래절벽은 아니지 않나. 새로운 수요층이 나타나야 매물을 소화할 수 있을 텐데, 이번 정책은 부동산시장의 입구와 출구를 동시에 봉쇄한 격”이라고 우려했다.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가을 이사철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책이 효과를 나타내는 데 한 달가량 걸리고, 9월 이사철에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전세와 매매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집값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특히 대출 규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금력 있는 무주택 실수요자에게는 적정 가격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지난해 가을 자녀 교육 문제로 서초구 한 신축 아파트단지에 10억 원대 전세계약을 해 살고 있는 직장인 최모(42) 씨는 이번 대책으로 한시름 놨다. 무주택자인 그는 “상반기 집값이 계속 오를 때는 괜히 전세를 선택했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는데, 이제는 매매를 천천히 알아봐도 될 것 같다”며 “하반기에 집값이 오를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떨어질 것 같지도 않다. 점찍어둔 아파트단지에서 어느 정도 조정된 가격에 매물이 나오면 매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을 이사철이 분수령 될 듯

    한편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오르는 것이라 부동산대책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다음 달 공급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8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2019년 이후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공적 임대주택 17만 호 공급 방안과 신규 주택 공급 방안, 5만 호 신혼부부 희망타운 등을 다음 달 추가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대책으로 집값 안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몇 달 동안은 거래절벽이 예상되고, 특히 재건축은 가격이 더 떨어질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이것도 길면 6개월이지,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수요를 억제한다고 집값을 잡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다주택자는 달리 보면 임대주택자이니, 이들이 공급을 더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9월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다주택자 임대주택 등록 시 세제, 기금 등 인센티브 방안을 발표하기로 했지만 자발적 등록으로 이어질지 두고 봐야 한다.

    이번 정부가 집값 안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고종완 원장은 “다주택자 가운데 일단 정권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이가 많다”며 “정부가 인위적으로 주택 수요를 눌러버리면 규제가 풀렸을 때 매수가 몰리면서 집값이 급등할 수 있다. 5년 후에는 지역에 따라 지금보다 집값이 더 오를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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