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12

2019.11.01

김민경의 미식세계

가을에 맺히는 탱자의 무한매력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9-11-0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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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김민경]

    [사진 제공 · 김민경]

    며칠 전부터 손끝이 부쩍 시리기 시작했다. 사무실 책상 앞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그날이 그날 같아 몰랐건만, 계절의 변화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챈다. 냉장고 문을 여는 것보다 전기주전자를 켜는 횟수가 확실히 늘었다. 

    11월이 코앞인데 겨울 준비를 하나도 못 했다. 준비라고 해봐야 내년 3~4월까지 먹을 차를 만드는 정도다. 즐겨 만드는 건 딴딴한 모과를 잘게 썰어 설탕에 켜켜이 잰 모과차다. 모과는 하도 야물어 3~4개만 손질해도 손목이 얼얼하다. 수분이 적어 설탕이 녹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달콤한 모과차를 마시면 은은한 향과 뜨끈한 기운에 기분까지 따사로워진다. 다음으로는 굵고 연한 햇생강을 잔뜩 사다 껍질을 벗긴 뒤 한 무리는 큼직하게 썰어 냉동실에 넣고, 다른 한 무리는 잘게 썰어 꿀을 부어 둔다. 시나몬 스틱 또는 계피 조각이 있으면 모과나 생강을 재운 병에 끼워 넣는다. 참고로 얼린 생강에 남은 과일이나 마른 과일, 다른 차를 섞어 끓여 마시면 겨울철 차가워진 몸에 온기를 더할 수 있다. 하루면 해치울 갈무리지만 올해는 이대로 건너뛰나 했다. 집으로 탱자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피부 가려움과 피로를 없애주는 약효가 가득~

    텃밭을 가꾸면서 다양한 토종 씨앗을 심고, 그 수확물도 아낌없이 선물하는 지인이 있다. 철마다 땀으로 일군 귀한 산물을 보내주는데 이번 꾸러미에는 참깨, 토란, 빨간 고추, 탱자가 가득했다. 특히 야무지게 생긴 탱자가 눈에 들어왔다. 유자와 가까운 사이인 것 같고, 색은 귤색이며, 살구처럼 보드라운 털로 덮여 있다. 생김새는 금귤(낑깡)처럼 동그랗고, 꼭지가 작으며, 과육은 꽤 단단하다. 탱자 특유의 향이 아주 진하게 퍼지는데 향내로 치면 유자나 귤은 비교도 안 된다. 잘 익은 모과처럼 농후하지만 산뜻하고 새금하다.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탱자는 봄 끝자락에 흰 꽃이 핀다. 6월부터 작은 초록색 열매가 맺히고 10월이 되면 노랗게 익는다. 탱자는 잘 익혀 먹기보다 초록색일 때 수확해 약재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확 시기에 따라 ‘지실’ ‘지각’으로 불리는데, 주로 말려서 유통된다. 잘 알려진 약효로는 피부 가려움증을 진정시키고, 더부룩하거나 체한 속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이외에 피로를 풀어주고 눈, 혈관, 장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특히 아토피피부염 같은 피부 질환이나 피부 건조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탱자즙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좋은하루식품’의 김기태 농부 역시 그 시작이 아토피 때문이었다. 탱자즙을 꾸준히 마시고, 탱자즙과 물을 섞어 몸을 헹구거나 피부에 바르니 가려움증이 쉬이 가라앉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차부터 드레싱까지 요리에 다양하게 쓰여

    [사진 제공 · 김민경]

    [사진 제공 · 김민경]

    다만 노랗게 잘 익은 탱자는 그냥 먹기가 힘들다. 착즙을 시도한 김기태 농부도 이 점에서 애를 많이 먹었을 듯하다. 탱자는 먹을 과육이 거의 없는데 굵직한 씨까지 가득 들어차 있다. 당연히 즙이 적고, 맛은 떫고 쓰며 시다. 그런데 이리저리 살펴볼수록 유자나 모과만큼 제 역할을 톡톡히 하겠다 싶었다. 타고난 향기로움과 신맛이 독특하면서도 부드러운 편이고, 썰어놓으니 앙증맞은 단면이 예뻤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은 양이지만 즙을 얻을 수 있으며, 보송보송한 겉껍질은 잘게 썰면 ‘제스트(zest)’로도 활용 가능하다. 무엇보다 몸에 이로운 점이 가득한 과일이니, 쉽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1 탱자 향이 나는 버터연어구이. 2 탱자 제스트와 올리브 오일을 올려 구운 토란. 3 탱자청은 설탕, 꿀, 탱자를 섞어 만든 뒤 병에 보관한다. [사진 제공 · 김민경]

    1 탱자 향이 나는 버터연어구이. 2 탱자 제스트와 올리브 오일을 올려 구운 토란. 3 탱자청은 설탕, 꿀, 탱자를 섞어 만든 뒤 병에 보관한다. [사진 제공 · 김민경]

    탱자를 과일답게 활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청을 만드는 것이다. 탱자 단면을 살려 동글동글하게 얇게 썬 뒤 설탕과 켜켜이 쌓는다. 씨는 너무 굵고 크면 쓴맛이 우러날 수 있으니 빼는 것이 좋다. 탱자에서 나오는 수분이 적기 때문에 설탕을 과육 양보다 좀 더 넣거나 꿀을 섞어 재우면 된다. 탱자 맛을 빨리 우려내고 싶다면 설탕, 꿀, 탱자를 큰 그릇에 넣고 수분이 나올 정도로 섞은 뒤 병에 보관한다. 청은 담그고 일주일 뒤부터 먹어도 되지만 한 달가량 숙성시키면 한결 진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청은 따뜻한 차로, 차가운 음료로, 음식 양념으로 두루 사용 가능하다. 

    싱싱한 탱자는 소스나 드레싱을 만들 때도 활용할 수 있다. 먼저 탱자를 도톰하게 썬 뒤 씨를 뺀다. 달군 팬에 버터를 녹이고 탱자를 넣어 뭉근하게 볶아 향을 충분히 낸다.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 뒤 구운 생선이나 고기에 뜨겁게 끼얹어 먹는다. 욕심을 내 핑크 솔트를 몇 알 통째로 뿌리거나, 아스파라거스 같은 채소를 함께 낸다면 눈과 입이 훨씬 즐거워진다. 기름에 마늘이나 대파를 볶아 향을 내듯이, 탱자도 기름에 볶으면 톡 쏘는 향이 그대로 우러난다. 취향에 맞게 요리에 탱자를 사용할 수 있을 듯하다. 탱자 겉껍질은 얇게 깐 뒤 잘게 썰면 오렌지나 레몬껍질처럼 요리에 제스트로 쓸 수 있다. 탱자 제스트와 즙을 오일에 섞어 새콤하면서도 향긋한 드레싱을 만들면 된다. 단, 탱자 껍질과 즙은 레몬이나 라임보다 떫은맛이 있으니 신맛 전체를 탱자로 내기보다 독특한 향을 더하는 정도로 사용하길 권한다. 


    [사진 제공 · 김민경]

    [사진 제공 · 김민경]

    [사진 제공 · 김민경]

    [사진 제공 · 김민경]

    오븐에 구운 탱자 역시 쓰임새가 다양하다. 둥근 모양을 살려 얇게 썬 탱자를 100~110도로 예열한 오븐에 펼쳐 넣고 20~30분가량 굽는다. 식품건조기나 채반에 널어 말리는 것보다 오븐에 구웠을 때 달콤한 향이 더 진하게 난다. 구운 탱자를 컵에 한두 조각 담은 뒤 따뜻한 물을 부어 잠시 우려낸다. 신맛과 쌉싸래한 맛이 은은하게 우러난 향기로운 차는 탱자 그대로의 참맛을 보여준다. 카페에서 흔히 맛보는 레몬수보다 훨씬 품위 있다. 구운 탱자를 피클이나 장아찌를 만들 때 몇 조각 넣으면 고운 향이 채소에 골고루 밴다. 먹을 때 채소와 함께 그릇에 담아 내면 모양도 예쁘다.

    개성 넘치고 쓰임새 많은 탱자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여럿 있다. 그중에는 수령이 400년 가까이 된 것도 있다. 탱자나무 줄기에는 장미와 엄나무조차 겁먹을 만큼 뾰족하고 커다란 가시가 줄지어 나 있다. 희고 여린 꽃, 노랗고 탐스러운 과일과 상반된 나뭇가지 모양 덕에 탱자나무는 예부터 울타리 대용으로 많이 심겼다. 오랫동안 주변에 있었는데도 탱자는 과일로서는 사랑받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먹어본 탱자는 개성도 넘치고 찬란하도록 매력적인 과일이었다. 싱싱한 것을 바짝 말려 약용으로만 쓰기에는 아깝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신선한 탱자즙 모으는 곳

    [사진 제공 · 좋은하루식품]

    [사진 제공 · 좋은하루식품]

    탱자는 과즙이 적어 착즙이 쉽지 않고, 그대로 마시기도 힘들다. ‘좋은하루식품’에서는 두 가지 탱자즙이 생산된다. 입에 쓰지만 몸에는 약이 되는 100% 탱자즙, 사과즙과 섞어 누구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과탱자즙이다. 탱자즙은 약처럼 마셔도 좋고, 물에 희석해 피부 치료제로도 쓸 수 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탱자즙에는 향료, 산도 조절제, 감미료, 유화제가 들어가지 않으며 모든 과일은 직접 생산해 즙을 얻는다. 

    좋은하루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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