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31도까지 오른 7월 14일 오후 서울 명동은 활기찬 분위기였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광고 전단지로 햇볕을 가리며 거리를 활보했다. 중국 여성들은 화장품과 옷 쇼핑백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명동 십자로에서 관광 안내를 하는 A씨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관광객이 줄었다 최근 조금씩 늘고 있다”며 “특히 중국인, 일본인에게 명동은 필수 관광 지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근 남대문시장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손님은 대부분 50대 이상 한국인이었다. 가끔 서양인 관광객이 흥미롭다는 듯 ‘짝퉁 명품’과 통이 큰 ‘냉장고 바지’를 구경하고 있었다. 남대문시장에서 32년째 가방 장사를 하는 박순례(69·여) 씨는 “하루에 1만 원짜리 가방 10개 정도 팔린다. 5평(16.5㎡) 가게 월세가 300만 원인데 이렇게 적자가 난 건 처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명동과 남대문시장. 두 지점 사이는 직선거리 500m로 가깝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외국인이 명동을 찾고, 남대문시장은 들르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명동 방문율은 2010년 66.7%에서 2014년 77.6%로 증가했다. 반면 남대문시장 방문율은 2010년 45.5%에서 27.8%로 줄었다. 외국인 관광객은 2014년 ‘한국 여행 중 좋았던 관광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고궁, 명동, 동대문시장, 남산·N서울타워, 신촌·홍대 앞 순으로 꼽았다. 외국인들이 남대문시장에 등을 돌리고 있다. 잘나가는 명동과 쇠퇴하는 남대문시장. 그 격차는 어디서 비롯한 걸까.
쇼핑 편의시설 없는 재래시장
첫째는 상품군의 차이다. 명동은 한류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상품을 내세우고 있다. 패션, 화장품, 미용 서비스 등이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명동에는 패션·의류·소매점(화장품 제외) 1095개, 화장품점 136개, 마사지숍 63개, 미용실 50개가 성업 중이다. 특히 화장품점이나 의류가게 앞에는 한류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가 종종 나온다. 한류를 좋아하는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반면 남대문시장에서 파는 상품은 10~20년 전과 비슷하다. 저렴한 가재도구, 식기, 한복, 유아용품, 짝퉁 명품 등이다. 의류는 젊은이가 아닌 중·장년층용이 대부분이다. 화장품점은 200~300m마다 한 곳이 있을 정도로 드물다.
상인들도 남대문시장의 위기를 ‘품목’ 때문으로 인식하고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황인철(41) 씨는 “외국인들의 소비 패턴 변화를 상인들이 따라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예전에는 주요 관광객이 일본인이었고 이들은 ‘물건값 싼 맛’에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인도 재래시장 물건보다 세련된 한류 상품을 더 좋아한다. 요즘 주요 관광객인 중국 젊은이들은 처음부터 싼 제품에 관심이 없다. 결국 남대문시장은 한류 트렌드와 젊은이의 취향을 놓쳐 불황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둘째는 접근 용이성이다. 명동은 인근 롯데백화점 주변에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지만 남대문시장 주변은 그렇지 않다. 시장에 들어와도 단체 관광객이 다니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백승학 남대문시장㈜ 기획부장은 “시장 특성상 단체 관광객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개별 점포들이 협소해 쇼핑이 불편한 측면이 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은 다수가 함께 다니는 경향이 있는데 가게가 비좁을 경우 단체로 들어오기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영세상인이 가게를 무리하게 확장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셋째로 관광 중 휴식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남대문시장의 약점이다. 명동에는 카페가 90개 넘게 있어 여행객들이 관광 중 잠시 쉴 수 있다. 하지만 남대문시장에서는 그 흔한 카페조차 찾기 힘들다. 서울메트로 4호선 회현역 5번 출구 근처 관광안내소 직원은 “이 주변에 카페가 3~4개다. 띄엄띄엄 있으니 미리 지도에서 위치를 파악하고 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또 명동에는 외국인들이 쾌적하게 쉴 수 있는 관광안내소가 있다. 명동관광정보센터와 서울글로벌문화체험센터다. 두 곳 모두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안내 서비스를 받으며 자유롭게 휴식하거나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반면 남대문시장에는 관광안내소 두 곳이 있지만 직원 한 명씩 일하는 작은 부스다. 관광객이 잠시라도 머무를 공간이 없다.
“65억 지원 개발” 소식에 상인들 “회의적”
앞으로 남대문시장이 관광명소로 재기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서울시·중구청·중소기업청·신세계·남대문시장 상인회는 6월 24일 ‘남대문 글로벌명품시장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남대문시장에 3년 동안 65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서울시와 중구청이 각 12억5000만 원, 중소기업청이 국비 25억 원, 신세계가 15억 원을 출연해 외국인 대상 관광 상품 개발과 편의시설 개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이러한 계획이 탁상행정에 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A상가 상인회에서 일하는 김모 씨는 “2~3년 전에도 중소기업청 등이 남대문시장에 100억여 원을 지원했지만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길바닥 공사를 조금 한 것이 전부다. 65억 원이라는 예산 규모가 아니라 예산이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활용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예산 기획 및 집행을 맡은 공무원들이 시장 현실을 너무 모른다. 남대문시장의 역사와 특수성을 잘 아는 전문가가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외국인 관광객 특수를 누리고 있는 명동 역시 미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 관계자는 “명동은 최근 메르스 위기로 외국인 손님이 확 줄어 매우 힘들었다”며 “내·외국인이 모두 즐겨 찾는 지역으로 개발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관광 전문가들은 남대문시장이 내·외국인 손님에게 모두 매력적인 장소를 지향하며 장기적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정화 서울연구원 연구위원(관광경영학 박사)은 “남대문시장은 규모가 워낙 크다. 큰 시장이 발전하려면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방문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남대문시장은 재래시장의 특색을 고려해 개발돼야 한다. 명동처럼 일시적인 유행에 맞춰 판매 품목을 자주 바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고유의 전통 가치를 지키면서도 트렌드 변화에 발맞출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근 남대문시장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손님은 대부분 50대 이상 한국인이었다. 가끔 서양인 관광객이 흥미롭다는 듯 ‘짝퉁 명품’과 통이 큰 ‘냉장고 바지’를 구경하고 있었다. 남대문시장에서 32년째 가방 장사를 하는 박순례(69·여) 씨는 “하루에 1만 원짜리 가방 10개 정도 팔린다. 5평(16.5㎡) 가게 월세가 300만 원인데 이렇게 적자가 난 건 처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명동과 남대문시장. 두 지점 사이는 직선거리 500m로 가깝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외국인이 명동을 찾고, 남대문시장은 들르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명동 방문율은 2010년 66.7%에서 2014년 77.6%로 증가했다. 반면 남대문시장 방문율은 2010년 45.5%에서 27.8%로 줄었다. 외국인 관광객은 2014년 ‘한국 여행 중 좋았던 관광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고궁, 명동, 동대문시장, 남산·N서울타워, 신촌·홍대 앞 순으로 꼽았다. 외국인들이 남대문시장에 등을 돌리고 있다. 잘나가는 명동과 쇠퇴하는 남대문시장. 그 격차는 어디서 비롯한 걸까.
쇼핑 편의시설 없는 재래시장
첫째는 상품군의 차이다. 명동은 한류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상품을 내세우고 있다. 패션, 화장품, 미용 서비스 등이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명동에는 패션·의류·소매점(화장품 제외) 1095개, 화장품점 136개, 마사지숍 63개, 미용실 50개가 성업 중이다. 특히 화장품점이나 의류가게 앞에는 한류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가 종종 나온다. 한류를 좋아하는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반면 남대문시장에서 파는 상품은 10~20년 전과 비슷하다. 저렴한 가재도구, 식기, 한복, 유아용품, 짝퉁 명품 등이다. 의류는 젊은이가 아닌 중·장년층용이 대부분이다. 화장품점은 200~300m마다 한 곳이 있을 정도로 드물다.
상인들도 남대문시장의 위기를 ‘품목’ 때문으로 인식하고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황인철(41) 씨는 “외국인들의 소비 패턴 변화를 상인들이 따라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예전에는 주요 관광객이 일본인이었고 이들은 ‘물건값 싼 맛’에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인도 재래시장 물건보다 세련된 한류 상품을 더 좋아한다. 요즘 주요 관광객인 중국 젊은이들은 처음부터 싼 제품에 관심이 없다. 결국 남대문시장은 한류 트렌드와 젊은이의 취향을 놓쳐 불황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둘째는 접근 용이성이다. 명동은 인근 롯데백화점 주변에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지만 남대문시장 주변은 그렇지 않다. 시장에 들어와도 단체 관광객이 다니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백승학 남대문시장㈜ 기획부장은 “시장 특성상 단체 관광객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개별 점포들이 협소해 쇼핑이 불편한 측면이 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은 다수가 함께 다니는 경향이 있는데 가게가 비좁을 경우 단체로 들어오기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영세상인이 가게를 무리하게 확장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셋째로 관광 중 휴식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남대문시장의 약점이다. 명동에는 카페가 90개 넘게 있어 여행객들이 관광 중 잠시 쉴 수 있다. 하지만 남대문시장에서는 그 흔한 카페조차 찾기 힘들다. 서울메트로 4호선 회현역 5번 출구 근처 관광안내소 직원은 “이 주변에 카페가 3~4개다. 띄엄띄엄 있으니 미리 지도에서 위치를 파악하고 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또 명동에는 외국인들이 쾌적하게 쉴 수 있는 관광안내소가 있다. 명동관광정보센터와 서울글로벌문화체험센터다. 두 곳 모두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안내 서비스를 받으며 자유롭게 휴식하거나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반면 남대문시장에는 관광안내소 두 곳이 있지만 직원 한 명씩 일하는 작은 부스다. 관광객이 잠시라도 머무를 공간이 없다.
“65억 지원 개발” 소식에 상인들 “회의적”
앞으로 남대문시장이 관광명소로 재기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서울시·중구청·중소기업청·신세계·남대문시장 상인회는 6월 24일 ‘남대문 글로벌명품시장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남대문시장에 3년 동안 65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서울시와 중구청이 각 12억5000만 원, 중소기업청이 국비 25억 원, 신세계가 15억 원을 출연해 외국인 대상 관광 상품 개발과 편의시설 개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이러한 계획이 탁상행정에 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A상가 상인회에서 일하는 김모 씨는 “2~3년 전에도 중소기업청 등이 남대문시장에 100억여 원을 지원했지만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길바닥 공사를 조금 한 것이 전부다. 65억 원이라는 예산 규모가 아니라 예산이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활용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예산 기획 및 집행을 맡은 공무원들이 시장 현실을 너무 모른다. 남대문시장의 역사와 특수성을 잘 아는 전문가가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외국인 관광객 특수를 누리고 있는 명동 역시 미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 관계자는 “명동은 최근 메르스 위기로 외국인 손님이 확 줄어 매우 힘들었다”며 “내·외국인이 모두 즐겨 찾는 지역으로 개발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관광 전문가들은 남대문시장이 내·외국인 손님에게 모두 매력적인 장소를 지향하며 장기적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정화 서울연구원 연구위원(관광경영학 박사)은 “남대문시장은 규모가 워낙 크다. 큰 시장이 발전하려면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방문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남대문시장은 재래시장의 특색을 고려해 개발돼야 한다. 명동처럼 일시적인 유행에 맞춰 판매 품목을 자주 바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고유의 전통 가치를 지키면서도 트렌드 변화에 발맞출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