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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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특허를 깨라! 토종 제약사들의 반란

무효 결정 시 판매독점권 획득…무더기 소송에 독점 이익 없어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04-27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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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합의된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 생소한 이름의 이 제도는 발효 후 3년의 유예기간이 지난 올해 3월 15일 본격 시행됐다. 이에 따라 관련 제도를 둘러싼 국내 제약사들의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먼저 제도의 목적을 살펴보면 오리지널 제약사(대부분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사)의 특허권 보장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복제약 제조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의약품 판매 허가 신청을 하면 특허 침해 여부를 따지지 않고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만 판단해 허가를 내줬다. 이 때문에 오리지널 제약사의 특허가 침해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에 불만이 컸던 미국 본사의 다국적 제약사들은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특허권이 보장되는 방책을 마련해달라고 미국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고, 이에 따라 새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새 제도에 따르면 복제약 제조사가 식약처에 복제약의 생산 및 판매 허가를 신청할 경우 오리지널 제약사가 최장 9개월 동안 판매를 중지시킬 수 있는 ‘판매금지권리’를 부여받는다. 즉 과거처럼 사후에 특허권 침해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특허분쟁 가능성이 있는지를 따진 뒤 허가를 내주는 것.

    새 제도 시행되자 소송 봇물

    이 때문에 앞으로 복제약 제조사는 식약처에 등재된 의약품 특허 관련 목록을 확인한 뒤 저촉될 가능성이 높은 특허권을 소지한 제약사 측에 해당 약품의 생산 및 판매 허가 신청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해당 오리지널 제약사는 특허권 침해 가능성 여부를 판단하고 식약처에 판매금지 신청을 할 수 있다. 식약처는 신청이 정당하다고 판단될 경우 최장 9개월 동안 해당 의약품의 판매를 금지한다.



    앞서 설명한 제도는 오리지널 제약사의 권리 보장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미 FTA 협상 당시 국내 제약사들의 반대 목소리가 컸고, 이에 따라 복제약 제조사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인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가 보강됐다. 이 제도는 복제약 제조사가 오리지널 제약사를 상대로 특허무효 심판을 제기해 이길 경우 9개월 동안 ‘우선판매권리’, 즉 독점판매권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그림 참조).

    새 제도가 시행되고 한 달여 동안 오리지널 제약사의 특허권을 무력화하기 위한 국내 제약사들의 공세가 이어졌다. 새 제도의 첫 번째 취지에 따라 복제약 제조사가 식약처에 복제약 시판 허가 신청을 낸 뒤 오리지널 제약사가 판매금지 신청을 내고, 또 식약처가 9개월 동안 판매금지 처분을 내리면 손해가 크다. 이 때문에 복제약 제조사들은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에 따라 특허무효 심판을 제기하는 쪽을 선택했다. 특허심판원 관계자에 따르면 4월 중순까지 특허심판원에 접수된 우선판매품목허가제도 관련 심판청구 건수는 1000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특허법인 관계자는 “유예기간에 국내 제약회사들과 특허법인들이 차근히 준비해서인지 3월 15일까지 오리지널 제약사를 상대로 특허심판원에 제기된 특허무효 심판청구 건수가 굉장히 많았다. 특허무효 소송을 대리하는 국내의 한 대형 특허법인은 한 달 사이 오리지널 제약사 수백여 곳을 상대로 특허무효 심판을 800여 건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오리지널 제약사 한 곳이 보유한 특허권 하나를 상대로 국내 50여 제약사가 동시에 특허무효 심판을 청구한 경우도 있다”며 최근 동향을 설명했다.

    제약회사들이 이처럼 소송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특허무효 결정 시 보장받을 수 있는 ‘9개월 독점판매권’의 보상이 크기 때문이다. 복제약 한 건으로 한 해 동안 국내 제약사 전체가 벌어들일 예상 수익이 1000억 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무효 심판 승소로 독점판매권을 얻은 회사는 9개월 동안 전체 수익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750억 원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편 다수 제약사가 동시에 특허무효 심판청구에 나설 경우 무효 결정 시 판매권을 나눠 갖게 된다. 만약 참여하지 않았다 무효 결정이 나면 영업 손실을 입을 공산이 커 이를 노린 제약사들이 오리지널 제약사의 특허권을 무효화하기 위해 총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있지만 없는 ‘독점판매권’

    의약품 특허를 깨라! 토종 제약사들의 반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따라 3월 15일부터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시행돼 국내 제약사들이 잇따라 특허무효 심판청구 소송에 뛰어들었다. 삼진제약 연구소 모습.

    특허무효 심판청구는 제도 시행 첫날인 3월 15일 이전부터 접수를 받았는데, 이 건들은 약사법상 모두 3월 15일 접수된 것으로 처리된다. 제도 시행 첫날까지 특허무효 청구를 가장 많이 한 곳은 아주약품, 네비팜, 하나제약 등이다. 특히 네비팜은 의약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아니라 의약품 연구개발과 제약 관련 특허 컨설팅을 주로 하는 업체여서 의약품 생산을 위주로 하는 다른 제약업체들로부터 의문 어린 시선을 받았다.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특허무효 청구를 회사 차원에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준비하려 했는데, 네비팜에서 초반에 걸 만한 건은 다 걸어버리는 통에 회사 특허법인팀에 비상이 걸렸었다. 최초 청구 이후 같은 특허 건에 대해서는 약사법상 14일 이내에만 추가 청구를 할 수 있어 마감 기간이라 할 수 있는 3월 28일까지 사업성이 있는 특허권에 대해 검토하고 청구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그는 “보통 특허무효 소송을 걸 때 ‘제조법’ 등 무효 가능성이 높은 것에 대해 걸기 마련인데 네비팜은 특허의약품의 ‘물질’ 등 무효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까지 다 걸었다. 업계에서도 이를 두고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네비팜 측은 “바뀌는 새 제도에 따라 독점판매권 확보 차원에서 나선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의약품 생산시설이 없는 연구개발 회사라는 점에 대해서도 “무효 결정이 내려진 뒤 독점판매권을 확보하면 이후 생산시설을 갖추면 되는 것이다. 회사 비전을 생각해 특허무효 심판청구를 했고, 외연을 넓히기에 좋은 기회라는 판단 하에 움직인 것”이라며 반박했다. 오히려 네비팜 측은 “시장 변화를 앞두고 오랜 기간 준비해 초창기에 특허무효 심판을 청구한 것인데 14일 안에 다른 회사들도 참여할 수 있다 보니 특허심판원에 올라온 자사의 청구목록을 본 회사들이 덩달아 청구를 다해버렸다. 지금 이대로라면 ‘독점판매권’의 의미가 없어진다. 제도 보완 차원에서 적어도 최초 청구 이후 14일 동안 특허심판원에서 정보 보안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제도의 미비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초반에 국내 제약사들이 청구한 특허무효 소송과 같은 건에 후발업체들도 3월 28일까지 줄줄이 뛰어들었다. 28일까지 접수된 후발업체들의 심판청구 건수는 500건을 넘겼고, 한미약품 같은 경우 3월 27일에만 23건의 특허무효 심판을 청구하는 등 과열 현상을 보였다. 이로 인해 단일 특허 건에 대해 50개 제약사가 동시에 특허무효 심판청구를 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약값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

    제약사들의 잇따른 심판청구에 대해 조명선 특허심판원 심판관은 “가만히 있다 판매권을 갖지 못할 경우 손실이 클 것이라고 판단한 회사들이 다 같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메이저 제약사들이 특허무효를 해놓으면 중소제약사들은 같이 팔면 됐는데, 새 제도에 따르면 소송을 청구한 제약사들만 9개월간 판매권을 갖게 되니 상황이 불리해진 셈이다. 예를 들어 다른 회사들이 시장을 9개월 동안 선점해 의사들이 독점판매 약을 지속적으로 처방했을 경우 9개월의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의사들이 갑자기 처방을 바꾸기는 힘들다. 환자들은 먹어왔던 약을 선호하는 데다 의사도 성분만 같다고 별다른 명분 없이 갑자기 처방을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제약사들이 독점 기간 안에 약을 팔 수 있도록 특허무효 심판청구에 너나없이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제약사들의 무더기 특허무효 소송으로 복제약값이 낮아지면 환자들은 더 싼값에 약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조 심판관은 “많은 제약사가 심판청구를 제기한다고 약값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약값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데, 특허권이 소멸된 약의 가격은 이에 따라 일괄적으로 매겨진다. 그는 “기본적으로 약값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내려가는 구조에 따라 책정된다. 따라서 이번에 많은 제약사가 심판청구를 한 것과 환자들의 약값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관련성이 낮다고 본다. 이번 제약사들의 심판청구 건은 독점판매권을 획득해 시장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업체 간 경쟁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제약사들은 바뀐 제도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형국이다. 한미약품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제약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라며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기도 하지만, 몇조 원의 피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 피치 못하게 따르는 측면도 있다. 애초 국내 제약사들은 한미 FTA 협상 당시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 도입을 반대했다. 오리지널 제약사들의 ‘판매금지권’만 보장해주면 피해가 막심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후속 조치로 ‘우선판매권리’가 도입된 셈인데 새 제도가 탐탁지 않다고 따르지 않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견해를 밝혔다.

    이번에 특허심판원에 접수된 의약품 특허무효 심판청구 건수는 1000여 건이 넘지만 업계에서는 특허품목으로 따지면 70개 안팎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제약사들이 대부분 상품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의약품들로, ‘독점판매권’ 확보 차원에서 제기한 것들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청구할 만한 건은 대체로 다 청구한 상황으로 보고 특허무효 심판청구가 한동안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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