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면세구역이 출국을 앞두고 쇼핑하는 인파로 붐비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인천공항 면세점 운영권을 따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인천공항공사는 1월 30일 제3기 면세사업권 입찰을 마감한 결과 일반기업 구역(8개 권역)에 5개사, 중소·중견기업 구역(4개 권역)에 6개사 등 총 11개사가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번 입찰 대상 구역은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3층과 탑승동 1만7394㎡ 78개 매장이다. 인천공항은 입찰 제안서를 토대로 3곳 이상의 일반기업과 중소·중견기업 4곳을 새로운 사업자로 선정할 계획이다. 2월 내 사업자가 결정되면 새로운 사업자는 9월부터 5년간 면세점을 운영할 수 있다.
인천국제공항은 전략적 요충지
일반기업 구역에는 기존 공항 면세점 사업자인 호텔롯데, 호텔신라, 한국관광공사 외에도 신세계, 동남아시아에서 면세점을 운영하는 외국계 업체 킹파워 등이 사업제안서와 가격입찰서를 제출했다. 중소·중견기업 구역 입찰에 참여한 곳은 시티플러스, 여행사 하나투어와 화장품업체 토니모리 등으로 구성된 10개 기업 컨소시엄 에스엠이즈(SME’S)듀티프리, 참존, 대구 그랜드관광호텔, 외식업체 엔타스, 동화면세점 등이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현대백화점과 워커힐은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화갤러리아는 1월 29일 입찰 의향서를 제출했으나, 최종 입찰에는 불참했다.
신세계는 인천공항 면세점 입점과 시내 면세점 유치 시 백화점, 대형마트, 아웃렛에 이어 유통 포트폴리오를 추가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회장은 지난해 김해공항 출국장 면세점 입찰에서 연간 임대료인 500억 원보다 140억 원가량 더 많은 금액을 써내 낙찰받는 데 성공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인천공항 면세점 입점은 전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 기업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수익성 이야기가 나오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기업 성장을 위한 투자인 셈이다. 지금은 면세점이 부산에만 있는데 백화점, 대형마트, 관광호텔 등을 운영해온 유통 전문기업의 역량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사업자에게도 인천공항은 놓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다. 지난해 신라면세점은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의 화장품·향수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됐다. 당시 세계 1위인 인천공항에서 화장품·향수 면세점을 운영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2기 사업자로서의 운영 노하우를 기반으로 1월 30일 입찰 제안서를 제출했다. 시내 면세점은 입찰 공고를 검토해 참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어렵사리 인천공항에서 면세점 사업을 시작한다 해도 당장 이득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인천공항의 막대한 임대료 때문에 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해온 기존 업체들이 해마다 거액의 적자를 기록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인천공항공사는 12개 구역의 연간 임대료 하한선을 종전보다 15% 인상한 7086억 원으로 정했다. ㎡당 4074만 원꼴이다. 높은 가격을 써낼수록 운영권 획득에 유리한 점을 감안한다면,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개연성이 있다. 그럼에도 업체들은 인천공항 입점이 주는 상징성과 홍보 효과, 그리고 관광업계 큰손인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를 잡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이다.
불황에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2~3%대 저성장,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동안에도 면세점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면세점협회 통계에 따르면 2009년 3조8523억 원이던 국내 면세점 총매출액(잠정치)은 2010년 4조5260억 원, 2011년 5조3730억 원, 2012년 6조3293억 원, 2013년 6조8323억 원, 지난해 8조3077억 원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해외 공항 면세점 입찰에 참여할 때, 평가 요소 중 하나가 ‘현재 국제공항에서 공항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지, 운영 경험이 있는지 여부’다. 이런 측면에서 세계 1위인 인천공항의 면세점 운영권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유통업체들에게도 매력 있는 시장이다. 내수 불황으로 백화점, 대형마트 등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면세점 채널만 좋은 실적을 거둔 게 국내 유통업체들의 관심을 끈 것으로 보인다. 규모가 큰 시장인 만큼 바잉 파워(buying power·구매력)를 통한 원가 절감 효과도 있을 테고, 세계 1위 공항인 만큼 브랜드 홍보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내 면세점에서 ‘2라운드’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들은 국내 면세점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쇼핑업계 ‘큰손’으로 불린다.
관세청은 2월 2일 서울 지역 3곳, 제주 지역 1곳에 신설 면세점을 세우기로 하고 사업자 신청 공고를 냈다. 이날 공고가 난 4곳의 면세점 가운데 서울과 제주 각 1곳은 중소·중견기업에게 할당된다. 서울 지역 2곳은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다. 대다수 업체가 인천공항에 이어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려고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제주 지역 시내 면세점 특허신청 공모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됐는데 호텔롯데와 호텔신라, 그리고 면세점업계에 첫 진출하려는 부영 등 3개사가 신청했다.
특히 업체들이 눈독을 들이는 건 서울 지역 면세점. 관광객 수요가 많고 인천공항 면세점처럼 임대료가 부담스럽지 않아 수익성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 신규 면세점이 문을 여는 건 2000년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현재 서울 시내 면세점 6곳은 각각 호텔롯데(3곳), 호텔신라(1곳), 워커힐(1곳), 동화(1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인천공항 입찰을 포기한 한화갤러리아를 비롯해 현대산업개발 등 대기업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1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권 입찰에 참여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1000억 원을 초기 투자해 현대아이파크몰의 3, 4층 정도를 면세점으로 꾸밀 계획이다. 현대아이파크몰이 위치한 용산이 발전 가능성과 지리적 강점을 갖춘 만큼 면세점으로서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면세점 혼잡을 해소하고 급증한 중국 관광객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며 “경기 활성화와 투자 활성화, 일자리 창출, 관광 산업 발전 같은 측면에서도 수요와 정책적 필요성이 있어 시내 면세점을 추가로 열게 됐다”고 말했다.
공항 면세점과 달리 시내 면세점은 최고가 입찰방식을 적용하지 않고 관세청이 직접 사업자를 선정한다. 정부에 내는 돈은 매출 수수료뿐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은 매출액 기준 0.05%가 특허수수료로 부과되며, 중소·중견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은 0.01%가 부과된다. 사업계획서만 좋으면 특허권을 딸 수 있어 대기업과의 자금 경쟁에서 딸릴 법한 중소·중견기업의 시장 진입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류만으로 심사, 약일까 독일까
관세청 관계자는 “중소·중견기업은 자금력 때문에 대기업에 비해 특허권을 따내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이들에게 확실하게 기회를 주고자 서류만으로 심사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성과만 보고 특허권을 주라고 한다면 신규 업체는 아예 시장에 들어오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신규 기업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한 조치이고, 그만큼 다각도에서 면밀히 검토하고 평가할 것이다.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 안고 가야 할 위험 부담”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시내 면세점이라고 사정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시내 면세점을 운영하는 한 기업 관계자는 “시내 면세점은 인천공항처럼 높은 임대료가 없는 대신 여행사의 단체관광객을 유치할 때 일정 부분 수수료를 지불하는 데 이것이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내국인의 면세점 매출액은 동결, 감소 추세인 반면 외국인 매출은 늘고 있다. 자유여행객도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단체관광객 비중이 크다. 기업으로선 시내나 인천공항 면세점만 운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세계적으로 면세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이라 해외 시장에 진출할 정도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중소·중견기업의 면세점 운영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 대기업 면세점 관계자는 “면세 사업에서 중요한 건 구매력과 협상력이다. 중소·중견기업들이 높은 임차료를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고, 특허권을 따낸다 해도 해외 기업들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구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 문은 열렸지만 사실상 사업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해외 기업과 경쟁할 만한 실력을 갖춘 기업이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화장품이든 드라마든 어느 정도 경쟁 대상이 있어야 발전도 있는 법이다. 국내에서 면세 사업 주체가 늘어난다면 기업 간 경쟁을 토대로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같은 경쟁을 제 살 깎아먹기가 아닌 파이를 늘일 기회로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