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규제를 많이 받는 땅은 매매가 활발하지 않다. 환금성이 떨어지는 데다 개발에 따른 이익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부동산개발업자 사이에서는 규제로 꽁꽁 묶인 땅이 오히려 ‘작업’하기 좋은 땅으로 여겨진다. 규제만 걷어낼 수 있으면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완구 후보자의 장인과 장모가 2001년 각각 매입한 뒤 2002년 이 후보자의 배우자에게 증여하고, 9년 뒤인 2011년 다시 이 후보자 차남에게 증여한 대장동 땅값은 11년 동안 공시지가가 11배 이상 폭등했다.
2000년 1월 1일 기준으로 단위면적(㎡)당 12만5000원 하던 1-37번지는 2001년 20만4000원으로 올랐고, 2003년 55만7000원으로 2년 만에 3배 가까이 치솟았다. 2004년에는 94만9000원으로 1년 만에 다시 70% 이상 올랐다. 2000년 기준으로는 4년 만에 8배 가까이 뛰었다.
1-71번지도 마찬가지. 2000년 단위면적당 13만4000원 하던 공시지가는 2001년 21만9000원으로 올랐고, 2003년 59만9000원, 2004년 99만9000원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뛰었다. 이 후보자 차남 소유의 대장동 땅을 둘러싸고 투기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토지를 단기간 내 매매한 사실이 없고, 많은 세금을 내고 계속 보유하고 있으므로, (단기매매로) 투기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상위 0.1%가 거주하는 고급 주택단지
맹지였던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1-37번지는 1-71번지에서 1-75번지가 분할되면서 도로와 이어지게 됐다.
이 후보자의 차남은 대장동에 장인→배우자→차남(이 후보자 기준) 순으로 소유권이 이전된 1-37번지와, 강모 씨→장모-배우자→차남 순으로 소유권이 바뀐 1-71번지 등 두 필지를 보유하고 있다.
먼저 1-37번지에 대해 살펴보자. 이 땅은 도로와 접하지 않아 그 자체로는 개발행위를 하기 힘든 이른바 ‘맹지’다. 남의 땅을 지나야만 해당 토지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맹지는 도로와 인접한 땅에 비해 일반적으로 공시지가가 낮다. 2000년 1월 1일 기준으로 1-37번지의 공시지가는 12만5000원이었고, 바로 인접한 1-71번지 공시지가는 13만4000원이었다. 1-37번지는 맹지인 탓에 도로와 접한 1-71번지 토지에 비해 공시지가가 7% 정도 낮게 매겨진 것. 그러나 이는 취득세와 등록세, 증여세 등 각종 세금 부과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가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 거래에서는 더 큰 가격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토지를 매매할 때 맹지는 제값을 받기 힘들다”며 “맹지와 도로를 잇는 토지를 별도로 확보해야만 개발행위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맹지 매입 때는 통행을 위한 별도의 토지 매입비만큼 가격을 낮춰 매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의 장인 이모 씨가 매입하기 전까지 대장동 1-37번지는 자매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지분의 절반씩을 보유하고 있었다. 소유권 이전은 2001년 4월 30일 이뤄졌다. 맹지인 1-37번지는 인접한 1-71번지를 지나야 도로로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이 후보자의 장인이 1-37번지를 매입하고 소유권을 이전하기 직전, 맹지 1-37번지에 모세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소유권 이전 일주일 전 1-71번지에서 1-75번지가 분할돼 떨어져 나온 것.
1-75번지는 도로와 1-37번지를 잇는 가늘고 긴 모양의 땅으로 맹지인 1-37번지를 도로와 잇기 위한 용도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땅의 소유주는 이 후보자의 처남인 경기대 교수 이모 씨다. 이 후보자 장인과 장모가 대장동 토지를 매입한 시점에 그 아들인 이씨가 분할 매수한 이유를 묻고자 이씨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72㎡에 불과한 1-75번지는 통행로 외에 마땅히 활용 방법이 없다”며 “맹지인 1-37번지와 1-75번지를 묶어 한 사람이 매입하면 1-37번지의 값을 높여 받을 수 있고, 반대로 1-75번지 소유주는 1-37번지를 사려는 사람에게 더 후한 값으로 팔 수 있다”고 말했다. 즉 1-75번지가 분할돼 나오면서 맹지 1-37번지 지가가 뛰고, 1-75번지의 효용가치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것. 이는 부동산업자들이 맹지 가격을 높일 때 흔히 쓰는 수법이라고 한다.
대장동 1-71번지는 이 후보자의 지인 강모 씨가 샀다. 그러나 석 달도 안 돼 이 후보자의 장모 김모 씨에게 되팔았다. 강씨는 조경업을 하는 사업가로 올해 초까지 충청향우회 강서연합회장을 지냈다. 강씨는 이 후보자와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청향우회 명예회장 강모(67) 씨는 이날 서울 강서구 충청향우회 사무실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이 후보자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며 땅(대장동 1-71번지)을 사라고 권유했다”며 “이후 이 후보자와 함께 현장으로 가서 땅을 직접 둘러보고 샀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완구를 사랑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후보자가 경찰에 재직하던 1990년대 초반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알려졌다. 강씨는 당시 이 후보자의 권유로 ‘대장동 1-71번지(589㎡)’ 땅을 2000년 6월 29일 매입했다가 1년여 뒤인 2001년 7월 23일 이 후보자의 장모인 김모 씨(사망)에게 팔았다. 강씨는 “아내가 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지관을 불러 땅을 봤더니 그다지 좋지 않은 땅이라고 했다”며 “이 후보자에게 말해 이 후보자의 장모에게 팔았다”고 말했다.’(‘동아일보’ 1월 28일자 보도 중)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차남이 보유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토지의 최근 모습.
석달 만에 땅을 되판 강씨는 1-71번지 토지 매매로 ‘이익’보다 ‘손실’을 봤을 공산이 크다. 당시 공시지가 기준으로 땅값의 4%에 달하는 취·등록세를 납부하고, 1년 이내에 되팔았기 때문에 양도세 50%까지 부담해야 했다. 강씨가 1-71번지를 이 후보자 장모에게 되판 2001년 7월은 공시지가가 가파르게 뛰면서 대장동 땅값이 막 꿈틀거리기 시작하던 시점. 그런데 막대한 시세차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강씨가 서둘러 땅을 되판 이유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강씨에게 △1-71번지 매입가는 얼마였는지 △1-75번지 분할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이 후보자 장모에게 얼마에 매도했는지 △취·등록세는 얼마나 냈는지 △양도세는 얼마나 냈는지 등을 묻고자 2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강씨의 휴대전화는 줄곧 꺼져 있었다. 강씨로부터 1-71번지를 매입한 이 후보자 장모가 누구 돈으로 토지를 매매했는지도 논란거리다. 자신의 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돈으로 매매했다면 사실상 증여로 볼 수 있기 때문.
이 후보자 장인과 장모는 2002년 4월 12일(접수일 4월 19일)에 각각 1-37번지와 1-71번지 소유권을 딸(이 후보자 배우자)에게 넘긴다. 그런데 증여 시점이 절묘했다. 공시지가가 폭등하기 직전에 증여함으로써 세 부담을 대폭 낮춘 것. 만약 2003년이나 2004년에 증여했다면 증여세 부담은 최소 2배에서 최대 4배 이상 늘었을 수 있다.
한 세무 전문가는 “증여세는 1억 원 이하 10%, 5억 원 이하 20%, 10억 원 이하 30% 등 증여 가액에 따라 세율이 달라진다”며 “증여세를 낮추려면 세금 납부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가 낮을 때 증여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 후보자 장인과 장모가 증여한 시점이 공시지가가 크게 오르기 전이라는 점에서 세무적 측면에서 보면 ‘성공적인 절세’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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