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로 예정된 스코틀랜드 독립투표에 세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외 언론은 스코틀랜드 거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이 투표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독립을 원하십니까’라는 투표용지 질문에 ‘노(No)’라고 답하는, 즉 영국의 일부로 잔류하는 데 찬성하는 유권자가 훨씬 많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표를 한 달여 앞둔 8월부터 ‘독립 찬성’으로 기울어지는 유권자 수가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기 시작했다. 9월 첫 주 영국 ‘선데이 타임스’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서 독립을 원하는 유권자가 51%라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BBC TV가 9월 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독립 찬성이 38%, 반대가 39%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아직 (의견을) 정하지 않았다’는 부동층이 전체 응답자의 23%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신생 독립국 스코틀랜드 탄생 여부가 새삼 세계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잉글랜드와의 긴 역사적 갈등
스코틀랜드의 독립 여부를 예측하기 전 먼저 드는 의문은 ‘대체 왜 스코틀랜드인들은 독립을 원하는가’다. 국외자 시각으로는 인구 6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이후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영국에서 독립한 인접 국가 아일랜드는 깊은 경제 불황의 수렁에서 10년 이상 허덕이고 있다. 영국이란 큰 우산을 벗어난 스코틀랜드가 아일랜드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영국 정부의 물밑 작전으로 이미 유럽연합(EU)은 “스코틀랜드가 독립국가가 된다면 EU 가입을 장담할 수 없다”고 선언한 상태다. 스코틀랜드가 독립국이 되면 영국 통화인 파운드도 쓰지 못하게 될 전망이다. 스코틀랜드가 이런 정치적, 경제적 불안을 안고 굳이 독립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의 긴 역사적 갈등이 숨어 있다.
영국의 정식 국호는 ‘잉글랜드’가 아니라 ‘그레이트 브리튼 섬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다. 이 중 ‘브리튼 섬’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세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잉글랜드가 이웃두 나라를 차례로 점령해 자신의 영토로 만들었다. 12세기 웨일스 왕국이 먼저 잉글랜드 영토가 됐고, 이어 1603년 후사가 없던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자신의 7촌 격인 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연합왕국이 됐다. 이어 1707년 스코틀랜드 의회가 잉글랜드 의회에 병합되면서 두 나라는 공식적으로 한 나라가 됐다. 그러나 그 직전까지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끊임없이 국경 분쟁을 벌였으며, 양국은 서로를 인접국이라기보다 적대국으로 인식했다.
한 나라가 된 지 3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갈등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적잖은 잉글랜드 소설과 TV 프로그램이 스코틀랜드 사람을 ‘억센 사투리를 쓰며 위스키만 마시는 촌스러운 주당’으로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인 역시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모든 지폐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얼굴이 그려진 잉글랜드와 달리, 스코틀랜드 파운드 지폐에는 13세기 잉글랜드에 맞서 싸웠던 독립투쟁의 영웅 로버트 브루스, 스코틀랜드 민족시인 로버트 번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심지어 스코틀랜드 대학들은 스코틀랜드와 EU 출신 유학생의 학비는 면제해주면서, 잉글랜드에서 온 학생에게는 학비를 받는다.
1997년 집권한 영국 노동당 정부는 스코틀랜드인의 반감을 무마하려고 스코틀랜드 의회에 행정과 보건, 교육에 대한 자치권을 부여했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 학교는 잉글랜드-웨일스와 다른 학제를 채택하고 있고, 대학 입학시험도 따로 치른다. 그러나 2011년 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이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군사와 외교 권한까지 갖는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SNP 당수이자 스코틀랜드 의회 수석 장관인 알렉스 새먼드는 “스코틀랜드에는 북해 유전이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작아도 부강한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코틀랜드가 독립국가가 되면 브렌트 원유를 생산하는 북해 유전 대부분이 스코틀랜드 소유가 되는 건 맞다. 현재 북해 유전에 매장된 원유의 가치는 약 43조 원으로 추정된다. 이것만으로도 스코틀랜드는 인접한 산유국인 노르웨이 못지않은 부국이 될 수 있다는 게 독립 찬성파들 주장이다. 반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를 비롯한 독립 반대파들은 “영국 연합은 현재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며 굳이 이 연합을 분리해 경제적 불안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경제 불안에 불투명한 미래
최근 들어 스코틀랜드에서 독립 찬성 목소리가 높아지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스코틀랜드인은 독립보다 연방 잔류를 선호하는 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캐머런 총리가 지적한 경제 불안이다. 현재 스코틀랜드 인구는 영국 총인구의 8%에 불과하다. 긴 불황에 허덕이는 영국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굳이 독립이라는 불투명한 미래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밝히기를 꺼리는 영국인 성향에 비춰볼 때 투표 결과는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중·장년층과 여성이 연방 잔류를 선호하는 데 비해 청년층과 남성은 독립 찬성 경향이 높은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독립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BBC 정치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콜링은 “스코틀랜드 밖에서 태어나 스코틀랜드에서 살고 있는 이번 선거 유권자의 절대 다수가 독립에 반대한다. 투표 결과는 연방 잔류로 나올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현재 스코틀랜드 출신이 아닌 유권자 수는 48만 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10분의 1이 넘는다. 여론조사 전문가 폴 커티스 역시 “몇 달 전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독립 찬성 43%, 반대 57%였다. 현재도 유권자 의향은 이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투표를 한 달여 앞둔 8월부터 ‘독립 찬성’으로 기울어지는 유권자 수가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기 시작했다. 9월 첫 주 영국 ‘선데이 타임스’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서 독립을 원하는 유권자가 51%라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BBC TV가 9월 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독립 찬성이 38%, 반대가 39%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아직 (의견을) 정하지 않았다’는 부동층이 전체 응답자의 23%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신생 독립국 스코틀랜드 탄생 여부가 새삼 세계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잉글랜드와의 긴 역사적 갈등
스코틀랜드의 독립 여부를 예측하기 전 먼저 드는 의문은 ‘대체 왜 스코틀랜드인들은 독립을 원하는가’다. 국외자 시각으로는 인구 6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이후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영국에서 독립한 인접 국가 아일랜드는 깊은 경제 불황의 수렁에서 10년 이상 허덕이고 있다. 영국이란 큰 우산을 벗어난 스코틀랜드가 아일랜드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영국 정부의 물밑 작전으로 이미 유럽연합(EU)은 “스코틀랜드가 독립국가가 된다면 EU 가입을 장담할 수 없다”고 선언한 상태다. 스코틀랜드가 독립국이 되면 영국 통화인 파운드도 쓰지 못하게 될 전망이다. 스코틀랜드가 이런 정치적, 경제적 불안을 안고 굳이 독립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의 긴 역사적 갈등이 숨어 있다.
영국의 정식 국호는 ‘잉글랜드’가 아니라 ‘그레이트 브리튼 섬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다. 이 중 ‘브리튼 섬’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세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잉글랜드가 이웃두 나라를 차례로 점령해 자신의 영토로 만들었다. 12세기 웨일스 왕국이 먼저 잉글랜드 영토가 됐고, 이어 1603년 후사가 없던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자신의 7촌 격인 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연합왕국이 됐다. 이어 1707년 스코틀랜드 의회가 잉글랜드 의회에 병합되면서 두 나라는 공식적으로 한 나라가 됐다. 그러나 그 직전까지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끊임없이 국경 분쟁을 벌였으며, 양국은 서로를 인접국이라기보다 적대국으로 인식했다.
한 나라가 된 지 3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갈등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적잖은 잉글랜드 소설과 TV 프로그램이 스코틀랜드 사람을 ‘억센 사투리를 쓰며 위스키만 마시는 촌스러운 주당’으로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인 역시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모든 지폐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얼굴이 그려진 잉글랜드와 달리, 스코틀랜드 파운드 지폐에는 13세기 잉글랜드에 맞서 싸웠던 독립투쟁의 영웅 로버트 브루스, 스코틀랜드 민족시인 로버트 번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심지어 스코틀랜드 대학들은 스코틀랜드와 EU 출신 유학생의 학비는 면제해주면서, 잉글랜드에서 온 학생에게는 학비를 받는다.
1997년 집권한 영국 노동당 정부는 스코틀랜드인의 반감을 무마하려고 스코틀랜드 의회에 행정과 보건, 교육에 대한 자치권을 부여했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 학교는 잉글랜드-웨일스와 다른 학제를 채택하고 있고, 대학 입학시험도 따로 치른다. 그러나 2011년 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이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군사와 외교 권한까지 갖는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SNP 당수이자 스코틀랜드 의회 수석 장관인 알렉스 새먼드는 “스코틀랜드에는 북해 유전이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작아도 부강한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코틀랜드가 독립국가가 되면 브렌트 원유를 생산하는 북해 유전 대부분이 스코틀랜드 소유가 되는 건 맞다. 현재 북해 유전에 매장된 원유의 가치는 약 43조 원으로 추정된다. 이것만으로도 스코틀랜드는 인접한 산유국인 노르웨이 못지않은 부국이 될 수 있다는 게 독립 찬성파들 주장이다. 반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를 비롯한 독립 반대파들은 “영국 연합은 현재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며 굳이 이 연합을 분리해 경제적 불안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경제 불안에 불투명한 미래
최근 들어 스코틀랜드에서 독립 찬성 목소리가 높아지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스코틀랜드인은 독립보다 연방 잔류를 선호하는 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캐머런 총리가 지적한 경제 불안이다. 현재 스코틀랜드 인구는 영국 총인구의 8%에 불과하다. 긴 불황에 허덕이는 영국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굳이 독립이라는 불투명한 미래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밝히기를 꺼리는 영국인 성향에 비춰볼 때 투표 결과는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중·장년층과 여성이 연방 잔류를 선호하는 데 비해 청년층과 남성은 독립 찬성 경향이 높은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독립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BBC 정치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콜링은 “스코틀랜드 밖에서 태어나 스코틀랜드에서 살고 있는 이번 선거 유권자의 절대 다수가 독립에 반대한다. 투표 결과는 연방 잔류로 나올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현재 스코틀랜드 출신이 아닌 유권자 수는 48만 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10분의 1이 넘는다. 여론조사 전문가 폴 커티스 역시 “몇 달 전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독립 찬성 43%, 반대 57%였다. 현재도 유권자 의향은 이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