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과 전술훈련을 하고 있는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월 13일 브라질로 출국해 월드컵 본선 기간 베이스캠프로 쓸 포스두이구아수에서 일주일간 담금질을 한다. 이어 브라질과 기후가 비슷한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넘어가 2주일에 걸쳐 코스타리카(1월 26일·이하 한국시간), 멕시코(1월 30일), 미국(2월 2일)과 평가전을 치르고 2월 3일 귀국할 계획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는 3주간 보강훈련을 할 수 있다는 대한축구협회 내부 규정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해외파는 소집할 수 없다. 홍명보(45)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브라질-미국 전훈에 참가할 23명 명단을 1월 2일 발표했다. K리거 21명 외에 소속 팀에서 허락한 일본 J리거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와 김민우(사간 도스)가 포함됐다.
홍 감독은 지난해 말 신년인터뷰 때 “최종 엔트리의 80% 정도는 정해졌다”고 밝혔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는 23명. 골키퍼 3명을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는 20명이다. 이 중 약 15명이 가려졌다는 뜻이다.
2013년 6월 출범한 홍명보호는 그동안 수차례 소집훈련과 평가전을 통해 ‘베스트 11’과 확실한 백업 요원의 밑그림을 그렸다. 역시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주축이다. 손흥민(레버쿠젠), 구자철(볼프스부르크), 김보경(카디프시티), 기성용(선덜랜드), 이청용(볼턴),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은 부상 등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본선행이 확실하다. 국내파와 J리거 중에서는 김신욱과 이용(이상 울산), 이근호(상주상무), 윤일록(서울), 김진수, 한국영(쇼난 벨마레) 등이 좋은 활약을 보였다. 결국 남은 것은 다섯 자리 정도다. 홍 감독은 “1월 전지훈련에서 주축 멤버 뒤를 받쳐줄 만한 선수가 누군지 보겠다. 앞으로 주전 부상 등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K리그 선수도 우리에겐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력한 원톱 공격수 김신욱.
‘유력을 확실로 바꿔라.’ 원톱 공격수 김신욱에게 내려진 특명이다. 김신욱은 지난해 7월 동아시안컵 이후 홍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홍 감독은 당시 “김신욱이 들어오면 우리 플레이가 단순해진다. 상대에게 우리 전술을 알려주고 경기하는 건 아주 치명적”이라는 말로 그를 중용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197.5cm 장신인 김신욱에게 무작정 공을 띄워주는 단순한 플레이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홍 감독은 김신욱에게 ‘이대로라면 대표팀 선발은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다행히 김신욱은 홍 감독의 메시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대표팀 밖에서 자신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홀로 부단한 트레이닝을 통해 유연성과 점프력을 키웠다. 김신욱은 K리그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며 11월 대표팀에 재발탁됐고 스위스,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 당당히 합격점을 받았다. 공격 때 사이드 쪽으로 빠지며 중앙 동료들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등 한층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전에서는 자신의 A매치 데뷔 골까지 성공했다.
김신욱의 경쟁자는 박주영(아스널)과 지동원(선덜랜드)이다. 박주영과 지동원은 최근 소속 팀 경기에 제대로 출전하지 못하면서 대표팀에서도 입지가 좁아졌다. 그러나 이 둘은 경기감각만 회복하면 언제든 다시 홍명보호에 발탁될 수 있는 잠재적 후보다. 특히 박주영은 홍 감독이 가장 신뢰하는 원톱 자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신욱은 이번 전지훈련을 통해 박주영과 지동원이 가세해도 자신이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중앙 미드필더 기성용의 파트너로 누가 낙점받을지도 눈길을 끈다. 홍명호보의 기본 포메이션은 4-2-3-1이다. 2명의 미드필더를 활용하는 홍 감독 전술에서 한 자리는 기성용이 확실히 차지했다. 지난여름 기성용은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에 최강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비방한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잠시 대표팀에서 멀어졌던 그는 지난해 10월 홍 감독에게 처음 부름을 받은 뒤 월등한 실력으로 논란을 잠재웠다. 이젠 기성용의 파트너와 백업 요원으로 누가 발탁될지가 관심사다.
엄청난 활동량과 수비력을 앞세운 한국영이 경쟁자들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모양새다. 이명주(포항), 박종우(부산), 하대성과 고명진(이상 서울)이 호시탐탐 자리를 노린다.
중앙 미드필더 이호(30·상주상무)의 깜짝 발탁도 눈에 띈다. 이호는 2008년 9월 이후 5년 4개월 만에 대표팀에 복귀했다. 팀에 경험 많은 선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려는 홍 감독의 포석으로 풀이된다. 홍 감독은 “우리 팀에는 젊고 재능 있는 선수는 많지만 경험이 문제다. 꼭 베테랑이 들어와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 대표팀 멤버가 주로 22~25세인데 그들보다 조금 나이 많은 선수들을 안다”며 경험 있는 선배의 가세를 예고했다. 이호는 2006 독일월드컵 본선을 비롯해 2007 아시안컵 등을 거치며 풍부한 대표팀 경험을 쌓았다. 홍 감독은 현 대표팀 주축 멤버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으면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경험을 전수해줄 수 있는 선수로 이호를 낙점한 것이다. 이호는 까마득한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겠다며 이를 악물고 있다.
# 세 자리는 골키퍼 몫
좌우 풀백 경쟁도 치열하다. 지금까지는 왼쪽 풀백 김진수, 오른쪽 풀백 이용이 한발 앞선 형국이다. 이번에 대표팀에 뽑히며 생애 처음 태극마크를 달게 된 왼쪽 풀백 김대호(포항), 오른쪽 풀백 박진포(성남)가 이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명 가운데 세 자리는 골키퍼 몫이다. 최근 대표팀 소집 때마다 부름을 받은 정성룡(수원)과 김승규(울산), 이범영(부산) 3명이 무난히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관심은 누가 주전 장갑을 끼느냐다. 골키퍼는 특수 포지션이다. 주전이 정해지면 어지간해선 안 바뀐다. 한 번 밀리면 상황을 뒤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실전 중 교체 투입 가능성도 적다.
2010 남아공월드컵 이후 얼마 전까지 한국 축구 부동의 수문장은 단연 정성룡이었다. 사실상 경쟁자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기류가 변했다. 후배 김승규가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왔다. 2013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에서 김승규의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정성룡은 정규 리그 34경기에 출전해 41실점한 반면 김승규는 32경기 27실점했다. 더군다나 정성룡은 중요한 경기마다 실수를 하며 슬럼프에 빠졌다. 특히 지난해 11월 포항과의 홈경기에서 평범한 공중 공 처리에서 실수해 자책골에 가까운 실점을 하며 주저앉았다. 그 무렵 대표팀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홍 감독은 11월 스위스와 홈 평가전(2대 1 승)에서 주전 수문장으로 김승규를 내세웠다. 정성룡은 나흘 뒤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서 열린 러시아 평가전(1대 2 패)에 나섰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정성룡은 이번에 실수를 만회해야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김승규도 어렵게 잡은 상승 분위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여서 불꽃 튀는 경합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