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곡선을 중시한다.
독일에서 태어나 프랑스 소르본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디자인 작업을 시작한 콜라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꼽힌다. 보잉, BMW, 피아트 등 세계적인 기업과 함께 5000종 이상의 제품을 내놓았다. 1986년 캐논의 T-90 모델을 통해 기존 카메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유선형 디자인을 선보이며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디자인상도 휩쓸었다. 그가 디자인한 소니 헤드폰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1980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2008년 중국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여는 등 아시아 국가와 인연이 깊은 콜라니는 이번에 충북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참석차 한국에 왔다. 그는 “한국은 기술이 발달하고 질서정연하다는 점에서 독일과 비슷하다.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다만 자동차와 건물 등에서 직선이 많이 보이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대도시가 공통적으로 가진 특징이다. “인간이 만든 어떤 구조물도 거미줄보다 뛰어나지 않다”고 말하는 콜라니는 이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세상엔 원래 직선이 없다. 지구는 둥글고, 모든 천체도 둥글다”는 것이다.
한국에 디자인센터 설립 추진 중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유려한 곡선은 콜라니의 트레이드 마크다. 플라스틱 식기류부터 의자, 자동차,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디자인한 제품은 하나같이 부드러운 곡선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 디지털 카메라 대부분에서 볼 수 있는 손잡이 부분의 둥근 곡선도 콜라니가 창안한 것.
그는 사진기자가 촬영하려고 가져온 캐논 카메라를 받아들고 디자인 뒷얘기를 들려줬다. 1980년대 캐논으로부터 “미래형 카메라를 디자인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당시 사각형 일변도이던 카메라에서 벗어난 이 형태를 처음 제안했다고 했다. 미학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손에 자연스럽게 감겨 셔터를 누르기에도 편한 이 곡선은 산업디자인계의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 꼽힌다. 콜라니는 “디자이너는 늘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사용자를 더 편안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많은 디자이너가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불만거리다. 콜라니는 한국행 비행기에서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에어버스 A380’ 기종을 타고 왔는데 무척 불편했다는 것이다.
“넓은 기내 공간을 계단과 각종 인테리어에 할애하는 바람에 정작 승객은 좌석에 몸을 움츠리고 앉아야 했다. 디자이너가 겉모습을 꾸미는 데만 치중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하지 않는 건 끔찍한 일이다.”
현재 중국 5개 대학에서 강의하며 주로 중국에 머무는 그는 앞으로 한국에 콜라니 디자인센터를 세워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펼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설립 장소로는 국제공예비엔날레를 개최한 청주를 고려하고 있다. 콜라니는 “한국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다. 뛰어난 기술력도 갖고 있다. 스스로의 문화를 돌아보고 위대한 과거에 창의력을 결합하면 세계 최고의 디자인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