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문이 열리면 순은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순의 자리는 낯선 사람으로 채워져 있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필승은 온몸의 신경 줄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충격을 받았다. 북한행 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필승은 브로커의 주선으로 연길행 비행기를 탔다. 입국 수속을 끝내고 공항 밖으로 나왔는데 세련된 옷차림의 여자가 다가왔다.
“남필승 씨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연락 받고 나왔습니다.”
필승은 가방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조수석에 앉았다. 여자는 대시보드에 지도를 펼쳐놓고 필승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연길(延吉·옌지)인데 도문(圖們·투먼)까지 갈 거예요. 자동차로 한 시간도 안 걸려요.”
여자는 연길에서 도문까지 초록색 형광펜으로 길게 선을 그었다. 그 끝은 한반도의 최북단, 두만강 끝자락에 닿아 있었다. 잠시 후 톨게이트가 나왔다.
“연길과 도문을 잇는 고속도로예요. 여기선 도문을 투먼이라고 해요.”
“성함이 어떻게 되죠?”
“아, 죄송해요. 김하나예요.”
경찰관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옥은 핸드백에서 설순의 마지막 편지, 아니 유서를 끄집어내 경찰관 앞에 내밀었다.
“이 편지 제가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어졌네요.”
경찰관은 여옥을 힐끔 쳐다보고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닐봉투에 싼 설순의 편지는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둘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아마 지금쯤 밀입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쉽지 않아요.”
“제가 가서 잡아오겠습니다.”
“여기서도 할 수 있어요. 기다려보세요.”
“어떻게요?”
경찰관은 여옥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옥은 그를 따랐다. 경찰관은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문 앞에 서서 여옥을 기다리다 손을 내밀었다.
“필승이 그 친구, 한 번 오라고 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갔네요. 곧 돌아올 거예요.”
경찰관은 여옥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주소록에서 진보라의 이름을 찾아 꾹 눌렀다. 여옥은 빨간색 스포츠카의 조수석 문을 열었다. 판수의 스포츠카가 경찰관의 시선에서 사라져갔다.
필승은 그리움과 설렘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간간이 울리는 기적 소리도 가슴 저변의 향수를 자극했다. 날이 밝아올 무렵 산책을 나섰다. 호텔 앞 두만강에는 안개가 깔려 있었다. 강둑을 따라 걷는데 한 결음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공안에 끌려가는 북조선 아이를 보았소.”
“언제 말이오?”
“아, 바로 어제였소.
“어케 되었소?”
“무심합디다. 놓아달라고 애원하는 아이를…. 울부짖는 소리에 구경꾼이 쫙 깔렸더랬소.”
“기어이 북조선에 넘겼단 말이오?”
“애원하는 애를 중조 다리로 끌고 갔지 않았겠소. 오줌을 쌌는지 바지가 축축하게 젖었습데다.”
“짐승만도 못한…. 아, 북조선도 좀 잘살면 얼마나 좋기요.”
“기린데 말이오. 울며 발버둥 치던 애가 인민군을 보자마자 뚝 그쳤지 뭐요.”
필승은 걸음을 멈췄다. 강둑을 따라 쌓아올린 담장에 기대어 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숲속에 참호가 있고, 그 사이로 인민군의 움직임이 보였다. 중국 쪽 두만강은 사람의 땅이었고, 북한 쪽 두만강은 인민군의 땅이었다.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필승은 로비에 보이지 않았다. 하나는 프런트 데스크에서 객실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올라가 객실 문을 두들겼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하나는 호텔을 나섰다.
출입문 옆에 있던 공안의 시선이 하나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있었다. 하나가 호텔을 나가자 공안은 프런트 데스크로 걸어갔다. 여직원과 몇 마디 나눈 후 제자리로 돌아와 어디론지 전화를 걸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이 호텔 로비로 퍼져나갔다.
하나는 두만강 둑에 올라섰다. 북강과의 경계에서 잠깐 생각하다 두만강을 택했다. 한참을 가도 필승은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하나는 전화를 받으면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알겠습니다.”
도문시 광장에 이르러 전화를 끊었다. 그곳에서도 필승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는 다시 호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른쪽에서 흐르는 두만강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하나는 듣고만 있었다. 간간이 그런 일이 있었군요라는 말과 알겠습니다라는 말이 섞여 들렸다. 단호한 어조로 전화를 끊었다.
“알겠습니다만, 고객 관리 차원에서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필승은 돌아와 두만강과 북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낚시꾼을 발견하고는 강둑 아래로 내려갔다. 두만강 쪽에 한 명, 북강 쪽에 세 명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필승은 두만강 쪽 남자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좀 잡았습니까?”
“물살이 너무 쎄서리 한 마리도 못 잡았소. 어디서 오셨소?”
“서울에서 왔습니다.”
“여기는 어떻게?”
“정암촌에 가보려고요? 사람을 찾고 있거든요.”
“내가 정암촌 출신이데.”
“네? 지금도 거기 사세요?”
“투먼시로 나와서 살아.”
“설씨라는 분들이 아직 살고 있습니까?”
“설씨요? 오래전에 떠나서리….”
노인에게서 뭔가를 기대했으나 그의 입에서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나가 저쪽에서 헐레벌떡 달려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노인은 필승을 힐끔 쳐다보았다.
“강짜를 만났나 보오. 어서 가보오.”
노인은 낚싯대를 걷어 북강 쪽으로 걸어갔다.
자동차로 20분쯤 달렸다. 개울 하나를 건너 비포장도로에 들어서자마자 한자로 쓴 정암촌(亭岩村)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한 마디도 하지 않던 하나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을 믿으면 큰일 납니다.”
“정암촌 출신이라던데요.”
정암촌, 1938년 일제의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청주, 청원, 보은, 옥천의 80여 가구 농민이 이주해 일군 마을이었다. 뒷산 정자 모양의 바위를 보고 동네 이름을 정암촌이라고 지었다. 마을 회관에는 원로 네댓 명이 모여 있었다. 필승은 큰절을 올린 후 입을 열었다.
“함자는 모르는데요. 설씨입니다.”
“설씨라 했소? 난 열 살 때 부친을 따라 이곳에 왔어. 부모님은 고향땅을 그리워했지. 설씨와 우리 집은 아주 가까운 사이였어. 북조선으로 이주해갔는데 예전엔 자주 나왔더랬지. 발을 끊은 지 10년도 넘었어.”
“아, 설씨 손녀라고 다녀간 적이 있지 않았소?”
옆에 있던 노인이 거들었다.
“근자에 중조 다리를 건너 일하러 가는 길에 들렀다는 그 처자야. 다시 오겠다더니 여의치 않은가 보오.”
필승은 순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여길 왔었단 말씀이세요?”
“북조선 사람들은 중조 다리를 건너 일하러 오지. 어딘가 공장이 있다고 했어. 그 처자는 선걸음에 돌아갔어. 감시원도 한 사람이 있었고. 뒷돈을 많이 주고 왔을 게야.”
“혹시, 어디로 간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음, 글쎄….”
노인은 하나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하나가 자리를 떴지만 필승은 끝내 다음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휴대전화를 든 손이 심하게 떨렸지만 필승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돌아가는 길에야 비로소 필승은 보라의 문자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필승아, 급히 서울로 오래. 아마 설순 씨에 대한 정보가 있나 봐!’
“남필승 씨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연락 받고 나왔습니다.”
필승은 가방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조수석에 앉았다. 여자는 대시보드에 지도를 펼쳐놓고 필승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연길(延吉·옌지)인데 도문(圖們·투먼)까지 갈 거예요. 자동차로 한 시간도 안 걸려요.”
여자는 연길에서 도문까지 초록색 형광펜으로 길게 선을 그었다. 그 끝은 한반도의 최북단, 두만강 끝자락에 닿아 있었다. 잠시 후 톨게이트가 나왔다.
“연길과 도문을 잇는 고속도로예요. 여기선 도문을 투먼이라고 해요.”
“성함이 어떻게 되죠?”
“아, 죄송해요. 김하나예요.”
경찰관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옥은 핸드백에서 설순의 마지막 편지, 아니 유서를 끄집어내 경찰관 앞에 내밀었다.
“이 편지 제가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어졌네요.”
경찰관은 여옥을 힐끔 쳐다보고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닐봉투에 싼 설순의 편지는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둘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아마 지금쯤 밀입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쉽지 않아요.”
“제가 가서 잡아오겠습니다.”
“여기서도 할 수 있어요. 기다려보세요.”
“어떻게요?”
경찰관은 여옥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옥은 그를 따랐다. 경찰관은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문 앞에 서서 여옥을 기다리다 손을 내밀었다.
“필승이 그 친구, 한 번 오라고 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갔네요. 곧 돌아올 거예요.”
경찰관은 여옥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주소록에서 진보라의 이름을 찾아 꾹 눌렀다. 여옥은 빨간색 스포츠카의 조수석 문을 열었다. 판수의 스포츠카가 경찰관의 시선에서 사라져갔다.
필승은 그리움과 설렘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간간이 울리는 기적 소리도 가슴 저변의 향수를 자극했다. 날이 밝아올 무렵 산책을 나섰다. 호텔 앞 두만강에는 안개가 깔려 있었다. 강둑을 따라 걷는데 한 결음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공안에 끌려가는 북조선 아이를 보았소.”
“언제 말이오?”
“아, 바로 어제였소.
“어케 되었소?”
“무심합디다. 놓아달라고 애원하는 아이를…. 울부짖는 소리에 구경꾼이 쫙 깔렸더랬소.”
“기어이 북조선에 넘겼단 말이오?”
“애원하는 애를 중조 다리로 끌고 갔지 않았겠소. 오줌을 쌌는지 바지가 축축하게 젖었습데다.”
“짐승만도 못한…. 아, 북조선도 좀 잘살면 얼마나 좋기요.”
“기린데 말이오. 울며 발버둥 치던 애가 인민군을 보자마자 뚝 그쳤지 뭐요.”
필승은 걸음을 멈췄다. 강둑을 따라 쌓아올린 담장에 기대어 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숲속에 참호가 있고, 그 사이로 인민군의 움직임이 보였다. 중국 쪽 두만강은 사람의 땅이었고, 북한 쪽 두만강은 인민군의 땅이었다.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필승은 로비에 보이지 않았다. 하나는 프런트 데스크에서 객실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올라가 객실 문을 두들겼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하나는 호텔을 나섰다.
출입문 옆에 있던 공안의 시선이 하나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있었다. 하나가 호텔을 나가자 공안은 프런트 데스크로 걸어갔다. 여직원과 몇 마디 나눈 후 제자리로 돌아와 어디론지 전화를 걸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이 호텔 로비로 퍼져나갔다.
하나는 두만강 둑에 올라섰다. 북강과의 경계에서 잠깐 생각하다 두만강을 택했다. 한참을 가도 필승은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하나는 전화를 받으면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알겠습니다.”
도문시 광장에 이르러 전화를 끊었다. 그곳에서도 필승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는 다시 호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른쪽에서 흐르는 두만강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하나는 듣고만 있었다. 간간이 그런 일이 있었군요라는 말과 알겠습니다라는 말이 섞여 들렸다. 단호한 어조로 전화를 끊었다.
“알겠습니다만, 고객 관리 차원에서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필승은 돌아와 두만강과 북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낚시꾼을 발견하고는 강둑 아래로 내려갔다. 두만강 쪽에 한 명, 북강 쪽에 세 명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필승은 두만강 쪽 남자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좀 잡았습니까?”
“물살이 너무 쎄서리 한 마리도 못 잡았소. 어디서 오셨소?”
“서울에서 왔습니다.”
“여기는 어떻게?”
“정암촌에 가보려고요? 사람을 찾고 있거든요.”
“내가 정암촌 출신이데.”
“네? 지금도 거기 사세요?”
“투먼시로 나와서 살아.”
“설씨라는 분들이 아직 살고 있습니까?”
“설씨요? 오래전에 떠나서리….”
노인에게서 뭔가를 기대했으나 그의 입에서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나가 저쪽에서 헐레벌떡 달려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노인은 필승을 힐끔 쳐다보았다.
“강짜를 만났나 보오. 어서 가보오.”
노인은 낚싯대를 걷어 북강 쪽으로 걸어갔다.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사람들을 믿으면 큰일 납니다.”
“정암촌 출신이라던데요.”
정암촌, 1938년 일제의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청주, 청원, 보은, 옥천의 80여 가구 농민이 이주해 일군 마을이었다. 뒷산 정자 모양의 바위를 보고 동네 이름을 정암촌이라고 지었다. 마을 회관에는 원로 네댓 명이 모여 있었다. 필승은 큰절을 올린 후 입을 열었다.
“함자는 모르는데요. 설씨입니다.”
“설씨라 했소? 난 열 살 때 부친을 따라 이곳에 왔어. 부모님은 고향땅을 그리워했지. 설씨와 우리 집은 아주 가까운 사이였어. 북조선으로 이주해갔는데 예전엔 자주 나왔더랬지. 발을 끊은 지 10년도 넘었어.”
“아, 설씨 손녀라고 다녀간 적이 있지 않았소?”
옆에 있던 노인이 거들었다.
“근자에 중조 다리를 건너 일하러 가는 길에 들렀다는 그 처자야. 다시 오겠다더니 여의치 않은가 보오.”
필승은 순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여길 왔었단 말씀이세요?”
“북조선 사람들은 중조 다리를 건너 일하러 오지. 어딘가 공장이 있다고 했어. 그 처자는 선걸음에 돌아갔어. 감시원도 한 사람이 있었고. 뒷돈을 많이 주고 왔을 게야.”
“혹시, 어디로 간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음, 글쎄….”
노인은 하나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하나가 자리를 떴지만 필승은 끝내 다음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휴대전화를 든 손이 심하게 떨렸지만 필승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돌아가는 길에야 비로소 필승은 보라의 문자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필승아, 급히 서울로 오래. 아마 설순 씨에 대한 정보가 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