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013 국제농구연맹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 한국과 대만의 3, 4위전에서 유재학 감독이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독이 든 성배’를 든 유재학 감독
축구에서는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특히 감독이 취임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감독은 한 팀의 수장이라는 멋진 직업이기도 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으면 언제든 떠날 각오를 해야 하는 힘들고 외로운 자리다. 이 때문에 감독이 자주 바뀌는 팀의 수장 자리를 빗대어 ‘독이 든 성배’라고 한다.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직이 딱 그런 자리다.
프로농구에서 우승을 차지한 팀의 감독은 그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다. 프로 감독들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데 큰 부담을 느낀다. 대다수 감독이 대표팀을 맡으면 “대표팀은 전임 감독제를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 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했던 유 감독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프로농구 2012~ 2013시즌 모비스를 정상으로 이끈 유 감독은 ‘독이 든 성배’를 흔쾌히 받아들 각오를 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던 한을 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대표팀은 3년 전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중국에 금메달을 넘겨줬다. 당시 아시아 국가들과의 대결을 통해 유 감독은 한국 농구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계산했다. 또한 국내에서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외면받는 한국 농구의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만큼은 국제대회 성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표팀 최고참 김주성(34·동부)은 2012년 런던올림픽 프레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대표팀 은퇴를 결심했다. 대학시절부터 대표팀 멤버로 활약한 그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뜻을 밝히며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김주성은 프로에 입단한 후에도 매년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경기를 치른 탓에 늘 크고 작은 부상과 체력 저하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정작 신경 써야 하는 소속팀 경기에서 100%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그에게는 대표팀 합류보다 휴식이 더 필요했다.
그런 김주성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유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여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국 프로농구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그에게 아시아선수권 출전은 큰 메리트가 없었다. 하지만 김주성은 전적으로 한국 농구를 위해 마음을 바꿨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국내에서 농구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다시 입었고, 합숙에 참가했다.
김주성뿐이 아니다. 대표팀 막내들도 친구들과 함께 출전할 수 있는 세계대회 참가를 포기했다. 대표팀이 아시아선수권을 준비하던 시기에 U-19 세계농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됐다. 이종현(19), 문성곤(19·이상 고려대), 최준용(19·연세대) 등은 또래와 세계무대를 노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 감독이 이들 3명을 일찌감치 대표팀 전력에 포함시켰고, 대한농구협회는 3명을 U-19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 참가시키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아쉬움은 컸겠지만 대표팀 막내들은 흔쾌히 결정을 받아들이고 아시아선수권 준비에 전념했다.
없다던 답을 구해낸 ‘만수’
2013 국제농구연맹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대만을 꺾고 3위가 확정되는 순간 선수들이 서로 껴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만수’ 유 감독은 모두의 우려를 기대로 바꿔놓았다. 유 감독은 탄탄한 수비 전술로 높이에 대비했다. 골밑에서는 적극적인 도움수비를 펼쳤고, 발 빠른 가드들을 기용해 상대 가드를 강하게 압박하는 전술로 골밑으로 공을 쉽게 패스하지 못하게 하는 전술을 마련했다. 필승 전략으로는 다른 팀이 많이 사용하지 않는 1-3-1 지역방어를 훈련했다. 이러한 수비 전술을 바탕으로 조별예선에서 강호 중국을 격파하는 이변을 연출했고, 3~4위전에서 대만을 완파하며 목표를 달성했다. 조별예선에서 이란에 지고, 4강전에서는 홈팀 필리핀에 패해 아시아 정상 도전은 물거품이 됐지만, 유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수비 농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높이에 답이 없다”던 유 감독은 짧은 기간에 해답을 찾았다. ‘만수’는 한국 무대를 넘어 아시아에서도 통했다.
한국 농구가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진정한 수확은 제2 도약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대학에 재학 중인 어린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향후 아시아무대에서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대표팀 선수 12명 가운데 5명이 대학생이다. 경희대 4학년인 김종규와 김민구는 대표팀 핵심 멤버로 발돋움했다. 파워포워드 김종규는 김주성과 함께 한국 골밑을 책임졌고, 슈팅가드 김민구는 이번 대회 베스트5에 선정될 정도로 정확한 외곽 슛을 바탕으로 한국이 대회 3위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어린 선수들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주로 식스맨으로 출전한 센터 이종현은 아시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출전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최준용과 문성곤도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다.
이들 5명은 기존 대표팀을 이끌던 김주성, 양동근(모비스), 조성민(KT), 이승준(동부) 등 30대 선수들과 신구조화를 이뤘다. 선배들처럼 프로에 진출해 기량을 발전시키고, 내년 농구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면 아시아권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한국 농구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건 경험이 있다. 모두 바라던 일이었지만, 이후 한국 농구는 오히려 하락세를 걸었다. 프로농구는 인기를 점차 잃어갔고, 출전하는 국제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많은 팬을 몰고 다닌 농구대잔치 세대들이 하나둘 코트를 떠나면서 한국 농구는 사실상 암흑기를 맞았다.
그러나 한국 농구는 11년 만에 다시 도약할 기회를 잡았다. 방송사는 한국 제1의 스포츠인 프로야구 경기 생중계를 포기하고 아시아선수권 3~4위전을 라이브로 전국에 송출했다. 새로운 스타가 나타났고, 팬들의 시선도 다시 농구 코트로 모아지고 있다. 이제 공은 대표팀에서 한국 농구를 총괄하는 대한농구협회와 프로농구를 주관하는 한국농구연맹(KBL)으로 넘어왔다. 10년 전 실패를 거울삼아 제1의 실내스포츠였던 농구의 위상을 회복하려면 대한농구협회와 KBL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