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1

..

사회적기업가와 ‘30년 동행’ 세계를 바꾸고 미래를 이끌고

사회운동가 빌 드레이턴

  • 고영 소셜컨설팅그룹 대표 purist0@empas.com

    입력2013-08-19 10: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회적기업가와 ‘30년 동행’ 세계를 바꾸고 미래를 이끌고

    2010년 6월 3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한국개발연구원(KDI) 대회의실에서 열린 ‘사회적기업가 정신 국제컨퍼런스 2010’에서 빌 드레이턴 아쇼카재단 창립자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은 소수만을 위한 자본주의가 아닌, 함께 잘사는 자본주의를 꿈꾼다. 하지만 사회적기업가들은 대부분 경영과 회계에 밝지 못해 큰 벽에 부닥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는 고독감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많다. 빌 드레이턴은 바로 이들의 눈물에 주목했다.

    드레이턴은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예일대 로스쿨까지 나왔다. 학부 시절 그는 마틴 루서 킹 목사와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을 보며 ‘시민을 어떻게 조직화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로스쿨을 나왔지만 변호사가 아닌 경영 컨설턴트를 택한 드레이턴은 맥킨지 앤드 컴퍼니를 다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환경청 부국장으로 일했다. 젊은 청년을 많이 고용했던 카터 대통령은 드레이턴이 새로운 기업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드레이턴은 환경청에서는 기업의 궁극적인 변화를 꾀하지 못한다며 자책했다.

    시장을 혁신하는 ‘창조적 파괴자’ 발굴

    그러다 뜻을 세운 그는 환경청을 그만두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사회적기업을 찾아 나섰다. 1980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종잣돈 5만 달러(약 6000만 원)로 사회적기업가 지원단체인 아쇼카재단을 설립했다. 사회적기업가가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도록 그들을 물심양면 돕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초기엔 주위의 냉대가 심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당신이 사회적기업가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명이라도 도와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세계 이곳저곳을 누볐다.

    “괴테가 그랬던가.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한 것에서 성공이 시작된다고….”



    드레이턴은 3년 동안 노력한 결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사회적기업가 15명을 만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1984년 맥킨지 재단으로부터 연구 자금 20만 달러(약 2억4000만 원)를 지원받았고, 이후 85년까지 40여 개국을 돌면서 사회적기업가 36명을 발굴했다.

    드레이턴은 그들을 만나면서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명확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진정한 사회적기업가는 ‘누군가에게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어획 산업 자체를 바꾸는 창조적 파괴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드레이턴이 눈여겨보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그는 사회적기업가들을 면접하면서 참신한 발상과 창의력, 기업가 자질, 윤리성에 주목했다. 지원자의 아이디어는 적어도 한 국가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혁신적이어야 했다. 사고의 틀이 거대하지 않으면 시장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먼저 지원자의 80%는 이력서와 에세이만 보고 탈락시켰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지원자의 20%는 기업·시민 영역 전문가 14명 앞에서 12~20시간에 걸쳐 면접을 치렀다. 1시간 정도의 짧은 면접은 지원자가 가진 사업 의도, 모델, 실행력, 네트워크, 조직운영 등의 역량을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사람 한 명에게 내재된 잠재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사회적기업가가 머무는 국가에 직접 찾아가 기업 현장을 실사하며 대상자를 선정했다.

    한편 드레이턴은 사회적기업가의 아이디어를 성공시키려면 그들의 생계를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쇼카재단이 기업가들이 사업에 전념할 수 있게 3년간 생활비를 지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아쇼카재단은 유수의 경영컨설팅 회사와 제휴를 맺어 사회적기업가가 언제든 이들 회사에서 무료 컨설팅을 받을 수 있게 지원했다.

    사회적기업가와 ‘30년 동행’ 세계를 바꾸고 미래를 이끌고

    아쇼카재단 홈페이지(왼쪽)와 체인지 메이커스 홈페이지.

    무함마드 유누스도 지원받아

    시간이 흐르면서 드레이턴의 노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창립자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는 아쇼카재단의 지원으로 사회적기업을 일군 경우다. 사회적기업가들은 드레이턴의 도움을 받아 사업모델을 운영했고, 노인들을 위한 정보기술(IT) 센터 등 수많은 성공 사례들이 빈곤국을 변화시키고 있다.

    “아쇼카재단이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의 56%가 시행 5년 안에 그들이 속한 사회의 정책과 제도를 바꾸고 있다. 아쇼카재단의 사회적기업가들이 이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드레이턴은 지난 30년 동안 80개국에서 사회적기업가 3400여 명을 발굴, 육성했다. 초기 자본금은 5만 달러(약 6000만 원)에 불과했지만 27년 만에 예산 규모가 3500만 달러(약 380억 원)로 늘어났다. 이 사회적기업가들은 세계 각지, 특히 제3세계에서 빈곤퇴치와 교육운동 등에 헌신하며 의미 있는 변화를 일구고 있다. 한편 그는 사회적기업가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려고 ‘체인지 메이커스’(www.changemakers.com)라는 온라인 사이트도 개설했다. 아쇼카재단의 지원을 받는 사회적기업가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소통체계를 강화한 것이다. 고군분투하던 사회적기업가들은 이 사이트를 활용해 파트너를 만나고 있다.

    드레이턴은 사회적기업가를 찾아 헤매던 처음의 열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는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비슷한 경제 수준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아쇼카재단의 원칙에 따라 수십 년째 월급도 받지 않고 일한다. 재단 창업자의 노력 덕분일까. 창업 3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사회적기업가들이 아쇼카재단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다음은 드레이턴의 소망이다.

    “새로운 비전을 가진 사회적기업가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더해져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다. 앞으로도 세계 곳곳에서 그런 인재를 찾아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