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한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는 서울 홍대 앞 카페 ‘제너럴 닥터’(제닥). 넓은 창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고, 하나 둘 앉은 사람들이 커피와 치즈케이크를 먹고 있는 풍경은 여느 카페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엔 좀 특별한 것이 있다. 한쪽 구석의 아늑한 방,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박성종(39) 씨의 진료실이다. 작고 딱딱한 의자와 넓고 푹신한 소파, 평평한 탁자가 놓인 공간에 들어서자 박씨는 당연한 듯 작은 의자에 자리 잡았다. 그를 대각선으로 바라보게 돼 있는 소파에 앉자 박씨의 등 뒤로 큰 창이 보였다. 탁 트인 하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박씨는 이곳에서 낮 1시부터 밤 10시까지 정신과 상담을 한다.
“병원은 아플 때만 가는 곳, 의사는 아플 때만 만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아프지 않을 때도 놀러갈 수 있는 병원, 이런저런 얘기 다 할 수 있는 의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제닥’은 그런 공간이다. 정신과에 간다는 부담 없이 누구나 문을 밀고 들어갈 수 있고, 차 마시러 갔다가 의사를 만나 이런저런 궁금증을 물어볼 수도 있다. 운영 형태도 독특하다. 의료소비자가 조합을 만들어 경영을 책임지는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으로, 박씨는 이 병원의 월급쟁이 의사 세 명 중 한 명이다. ‘제닥’에 몸담기 전, 일반 정신과 병원에서도 근무했던 박씨는 이곳의 장점으로 ‘누구나 편안히 자신의 힘든 점을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꼽았다.
하루 8명 환자당 50분 상담
“조울병이나 강박증, 공황장애 같은 문제 때문에 이곳을 찾는 분은 많지 않아요. 보통은 뭔가 좀 불편한데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오시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지 않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혹시 내가 잘못된 걸까’ 같은 고민들,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품게 되는 이야기를 갖고 여기 앉아서 저와 대화를 나눕니다.”
물론 ‘제닥’에서도 약을 처방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상담이 먼저다. 환자당 50분 상담을 원칙으로 한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에 최대한 볼 수 있는 환자 수는 8명인 셈. 요즘 박씨는 거의 매일 8명씩 만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제닥’을 찾는다. 그는 “대부분 이곳에 오기 전까진 정신과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이들”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정신병원이라는 게 얼마나 높은 벽에 갇혀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고 했다.
어린 시절 그도 병원을 두려워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만 보면 자지러지게 울어 이발소조차 못 갈 정도였다. 안타까운 건 그가 꽤 자주 아팠다는 점이다. 병원에 안 간다고 몸부림치다 부모 손에 끌려가 간신히 치료를 받는 날이 많았다. 집에 돌아올 때면 그를 비롯해 온 식구가 녹초가 됐다. 그런 그가 의사가 된 건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흰 가운을 입었을 때 처음엔 신이 났어요. 비로소 오랜 공포를 극복한 것 같았죠. 하지만 점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사람들이 마치 어린 시절의 저처럼 저를 피하고 있더라고요. 용건이 끝나면 도망치듯 떠나는 환자들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싶었어요.”
박씨는 자신이 홀로 ‘흰 가운’ 속에 갇혀버린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제닥’을 만난 건 그 무렵이다. 다른 병원에 근무하던 때라 주말에만 ‘제닥’을 찾았다. 카페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손님들을 만났고, 그가 정신과전문의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차츰 상담을 시작했다. 지난해 봄부터 ‘제닥’을 들락거리던 박씨가 기존 병원을 정리하고 완전히 이 병원 식구가 된 건 6월 중순이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박씨는 상담할 때 흰 가운을 입은 적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기자를 만난 날은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헐렁한 면티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그에게선 정신과전문의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박씨는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다. “가운을 벗은 후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쌈지사운드페스티벌 현장에 ‘제닥’ 부스를 만들고 정신과 상담을 한 경험을 들려줬다. 음악 축제장에서 정신과 상담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주최 측이 냈다. 초청을 받아 현장에 가면서 그는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과연 정신과 상담을 받겠다고 부스에 올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시끄러운 록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그의 앞으로 몰려들었고, 그와 ‘환자’들은 서로의 귀에 대고 “제가 이랬거든요” “네, 그래서요?”라며 고함치는 ‘정신치료’를 했다. 그는 행복했다.
집단상담 ‘멘붕클리닉’ 열 것
“정신과의사들은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오랜 시간 공부하고 수련도 해요. 그런데 막상 병원을 열면 여러 여건상 충분한 상담을 하기 어렵거든요. 정신과의사로서 저를 필요로 하는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무척 좋았습니다.”
그는 그래서 ‘제닥’이 의사와 환자, 둘 다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이라고 했다. ‘제닥’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려면 먼저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조합비 3만 원과 매월 1만 원씩 회비를 낸다. 이런 시스템이 없다면 ‘제닥’ 역시 ‘50분 상담’을 할 수 없었을 거다. 박씨는 “새로운 병원을 꿈꾸는 사람들과 더불어 친근하고 편안한 정신과를 만들어나가는 게 무척 즐겁다”며 최근 조합원을 대상으로 시작한 ‘맘튼튼 세미나’를 소개했다.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듯,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데도 운동이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맘튼튼 세미나’가 그런 자리죠. 책이나 영화를 본 뒤 함께 의견을 나눠요. 자신이 느낀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되고, 마음도 편안해지죠. 마음의 면역력, 말근육, S라인을 만들어가는 방법입니다.”
그는 언젠가 좀 더 전문적인 집단상담을 하는 ‘멘붕클리닉’을 열 생각도 있다. 박씨의 꿈은 이런 활동을 통해 ‘제닥’ 조합원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 병원이 하나의 해프닝이나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하나의 대안이 되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친구 중에 의사가 한 명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딱히 아프지 않아도 이거저거 편하게 물어볼 수 있고, 병에 걸리면 아무 걱정 없이 몸을 맡길 수 있는 사람. 제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를 친구로 생각하는 분들과 함께 편안하고 좋은 병원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곳엔 좀 특별한 것이 있다. 한쪽 구석의 아늑한 방,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박성종(39) 씨의 진료실이다. 작고 딱딱한 의자와 넓고 푹신한 소파, 평평한 탁자가 놓인 공간에 들어서자 박씨는 당연한 듯 작은 의자에 자리 잡았다. 그를 대각선으로 바라보게 돼 있는 소파에 앉자 박씨의 등 뒤로 큰 창이 보였다. 탁 트인 하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박씨는 이곳에서 낮 1시부터 밤 10시까지 정신과 상담을 한다.
“병원은 아플 때만 가는 곳, 의사는 아플 때만 만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아프지 않을 때도 놀러갈 수 있는 병원, 이런저런 얘기 다 할 수 있는 의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제닥’은 그런 공간이다. 정신과에 간다는 부담 없이 누구나 문을 밀고 들어갈 수 있고, 차 마시러 갔다가 의사를 만나 이런저런 궁금증을 물어볼 수도 있다. 운영 형태도 독특하다. 의료소비자가 조합을 만들어 경영을 책임지는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으로, 박씨는 이 병원의 월급쟁이 의사 세 명 중 한 명이다. ‘제닥’에 몸담기 전, 일반 정신과 병원에서도 근무했던 박씨는 이곳의 장점으로 ‘누구나 편안히 자신의 힘든 점을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꼽았다.
하루 8명 환자당 50분 상담
“조울병이나 강박증, 공황장애 같은 문제 때문에 이곳을 찾는 분은 많지 않아요. 보통은 뭔가 좀 불편한데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오시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지 않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혹시 내가 잘못된 걸까’ 같은 고민들,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품게 되는 이야기를 갖고 여기 앉아서 저와 대화를 나눕니다.”
물론 ‘제닥’에서도 약을 처방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상담이 먼저다. 환자당 50분 상담을 원칙으로 한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에 최대한 볼 수 있는 환자 수는 8명인 셈. 요즘 박씨는 거의 매일 8명씩 만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제닥’을 찾는다. 그는 “대부분 이곳에 오기 전까진 정신과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이들”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정신병원이라는 게 얼마나 높은 벽에 갇혀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고 했다.
어린 시절 그도 병원을 두려워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만 보면 자지러지게 울어 이발소조차 못 갈 정도였다. 안타까운 건 그가 꽤 자주 아팠다는 점이다. 병원에 안 간다고 몸부림치다 부모 손에 끌려가 간신히 치료를 받는 날이 많았다. 집에 돌아올 때면 그를 비롯해 온 식구가 녹초가 됐다. 그런 그가 의사가 된 건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흰 가운을 입었을 때 처음엔 신이 났어요. 비로소 오랜 공포를 극복한 것 같았죠. 하지만 점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사람들이 마치 어린 시절의 저처럼 저를 피하고 있더라고요. 용건이 끝나면 도망치듯 떠나는 환자들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싶었어요.”
박씨는 자신이 홀로 ‘흰 가운’ 속에 갇혀버린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제닥’을 만난 건 그 무렵이다. 다른 병원에 근무하던 때라 주말에만 ‘제닥’을 찾았다. 카페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손님들을 만났고, 그가 정신과전문의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차츰 상담을 시작했다. 지난해 봄부터 ‘제닥’을 들락거리던 박씨가 기존 병원을 정리하고 완전히 이 병원 식구가 된 건 6월 중순이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박씨는 상담할 때 흰 가운을 입은 적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기자를 만난 날은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헐렁한 면티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그에게선 정신과전문의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박씨는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다. “가운을 벗은 후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쌈지사운드페스티벌 현장에 ‘제닥’ 부스를 만들고 정신과 상담을 한 경험을 들려줬다. 음악 축제장에서 정신과 상담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주최 측이 냈다. 초청을 받아 현장에 가면서 그는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과연 정신과 상담을 받겠다고 부스에 올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시끄러운 록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그의 앞으로 몰려들었고, 그와 ‘환자’들은 서로의 귀에 대고 “제가 이랬거든요” “네, 그래서요?”라며 고함치는 ‘정신치료’를 했다. 그는 행복했다.
집단상담 ‘멘붕클리닉’ 열 것
‘맘튼튼 세미나’ 모습.
그는 그래서 ‘제닥’이 의사와 환자, 둘 다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이라고 했다. ‘제닥’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려면 먼저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조합비 3만 원과 매월 1만 원씩 회비를 낸다. 이런 시스템이 없다면 ‘제닥’ 역시 ‘50분 상담’을 할 수 없었을 거다. 박씨는 “새로운 병원을 꿈꾸는 사람들과 더불어 친근하고 편안한 정신과를 만들어나가는 게 무척 즐겁다”며 최근 조합원을 대상으로 시작한 ‘맘튼튼 세미나’를 소개했다.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듯,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데도 운동이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맘튼튼 세미나’가 그런 자리죠. 책이나 영화를 본 뒤 함께 의견을 나눠요. 자신이 느낀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되고, 마음도 편안해지죠. 마음의 면역력, 말근육, S라인을 만들어가는 방법입니다.”
그는 언젠가 좀 더 전문적인 집단상담을 하는 ‘멘붕클리닉’을 열 생각도 있다. 박씨의 꿈은 이런 활동을 통해 ‘제닥’ 조합원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 병원이 하나의 해프닝이나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하나의 대안이 되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친구 중에 의사가 한 명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딱히 아프지 않아도 이거저거 편하게 물어볼 수 있고, 병에 걸리면 아무 걱정 없이 몸을 맡길 수 있는 사람. 제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를 친구로 생각하는 분들과 함께 편안하고 좋은 병원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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