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폐기물을 럭셔리 패션 상품으로 변화시킨 에코이스트의 핸드백.
멕시코로 떠난 가족여행과 쓰레기 장인
2004년 마르코쉐이머 가족은 멕시코로 여행을 떠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마르코쉐이머 남매들은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장소는 길거리 시장. “할아버지, 이거 폐기물 아닌가요? 비닐봉투, 과자봉지, 각종 플라스틱 제품이네요. 헬렌, 이거 만져봐. 질감이 다른데. 이게 핸드백이라니 믿겨져?” 조나단 마르코쉐이머는 누나 헬렌 마르코쉐이머에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물으며 연거푸 ‘언빌리버블(unbelievable)!’을 외쳤다.
“어 그러네. 정말 놀랍다. 할아버지 이걸 어떻게 만들게 되셨어요?” 어이가 없다는 듯 할아버지는 “돈이 없으니까 쓰레기장에 가서 재료를 찾았을 뿐이야. 그게 뭐 대단하다고…”라고 했다. 막내인 예일 마르코쉐이머는 할아버지 말에 해머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 맞아. 우리가 너무 풍족하게 살아서 오히려 재활용에 관심을 갖지 않았어.” 그들은 핸드백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잡아나갔다. 그러곤 숙소로 와 미국으로 돌아가면 뭔가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새로운 소재를 얻게 될지도 몰라.”
이들 가족은 인터넷을 뒤져 자신들이 원하는 쓰레기 소재의 위치를 파악했다. 평소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쓰레기 폐기장, 각종 화학재료상, 매립지 등을 돌아다니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특히 매력적으로 느낀 건 사탕봉지와 초콜릿봉지였다. 에나멜 처리된 사탕봉지는 정말 매혹적이었다. 동물을 잡아 만든 가죽과는 전혀 다른 촉감과 색감으로 멋진 핸드백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매일 먹는 코카콜라와 스니커즈 등 온갖 과자봉지를 생산하고 폐기처분하는 글로벌 회사를 찾아갔다. 제휴를 맺기 위해서였다. 안정적으로 소재를 공급받아야 핸드백 품질을 구현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렇게 모은 소재는 사탕포장지, 식품 패키지, 음료수 상표, 지하철 지도, 비즈니스 카드 신문, 캔 뚜껑 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산업폐기물이었다. 각 가정마다 골머리를 앓던 쓰레기, 수거처리 날만 되면 귀찮던 쓰레기 등 각종 쓰레기를 모으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쓰레기 소재가 충분히 모이면서 머릿속에 있던 핸드백 디자인을 직접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마르코쉐이머 가족은 각자 자신이 생각한 핸드백 기본 모델을 잡았다. 포트폴리오를 충분히 만든 다음 이를 보완하려고 패션디자이너와 협력하기로 했다. 가족 모두가 패션디자이너였기에 알고 지내던 다른 패션 디자이너들을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협력하는 패션디자이너들은 마르코쉐이머 가족처럼 확신에 차지 않았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반신반의하며 작업에 참여했을 뿐이다.
그러나 마르코쉐이머 가족은 멈추지 않았고, 각종 소재를 이어붙이고 분해하고 다시 이어가면서 첫 완제품을 냈다. 그리고 바로 작업에 들어간 건 그 제품에 어울리는 액세서리 소품이었다. 사람들에게 팔려면 쓰레기 재활용 제품이라는 인식을 주기보다 ‘특별함과 완성품’이라는 이미지를 함께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움을 줄 수 있는 패키지 제품 라인을 구축한 것이다.
마르코쉐이머 가족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자신감을 얻었다. 눈앞에 놓인 여러 제품군,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소재가 ‘누구도 생각지 못하던 제품’으로 전시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품군과 패키지 상품이 많아지면서 제품을 재구매하는 고객이 점점 늘어갔다. 일종의 마니아층이 생긴 것이다. 고객의 놀라운 반응은 순식간에 패션디자인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미국 유명 드라마 주인공의 필수품
소재의 독창성, 환경적 가치, 일체감을 주는 개성적 패키지… 이렇게 제품 라인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핸드백은 출시 2년 만에 영화 ‘섹스 앤드 더 시티’에 등장하게 된다. 여주인공이 사탕봉지로 만든 흰색 핸드백을 들고 등장했던 것이다. 이 장면은 골드미스와 30대 직장 여성에게 흥분을 일으킨다. 일종의 센세이션이었다. 순식간에 미국 전역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패션 피플’ ‘뉴요커’ 등 유력 잡지가 제품을 소개했고, 마르코쉐이머 가족은 ‘에코이스트’라는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마르코쉐이머 가족은 좀 더 본격적인 쓰레기 디자인 패션(Trashion)을 구축하려고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감행했다. 먼저 뉴욕 소호 거리의 다양한 패션디자이너와 협력해 사탕봉지로 만든 의자를 선보였고, 겉모양은 핸드백이면서도 소재를 달리해 10대부터 50대까지 같지만 다른 디자인의 핸드백을 구매할 수 있는 핸드백 라인을 확장했다. 일종의 티셔츠처럼 크기가 같은데 무늬가 다르거나 그림이 다른 핸드백이었다. 그렇게 에코이스트는 히트작을 쏟아내면서 사람들이 친환경 제품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품 전략은 놀랍게도 사람들의 인식뿐 아니라 지역사회까지 바꿨다. 지역마다 매장이 만들어지면서 일자리가 생겨난 것이다. 특히 여성 40명으로 구성된 생산인력 지부가 지역마다 만들어지면서 안정적인 생산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매장에 배치하는 제품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더 많은 고객을 불러 모았으며, 매장 직원 수도 증가했다. 이후 에코이스트는 6년간 2000만 개 넘는 식음료 포장지를 재활용했다. 100% 손으로 만드는 친환경제품으로 탄소 절감에도 기여했다.
일자리 창출 못지않게 기술력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지금은 지역 여성을 핸드백 장인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했다. 에코이스트는 어느새 40대 주부가 가장 선호하는 직장 가운데 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마르코쉐이머 가족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품 공급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를 줄이려고 관련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매년 수익금 중 일부는 아이티, 인도, 우간다 산림 보호를 위해 쓴다. 마르코쉐이머 가족은 지금도 첫 작품을 보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