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컴퓨터에 도형을 넣으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주는 ‘3차원(3D) 프린터’가 날로 발전하고 있다. 사진은 초기 형태의 3D 프린터로 지금은 가격도 1000달러(약 11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영국 BBC에 따르면, 비영리단체인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는 약 1년에 걸쳐 3D 프린터를 이용해 총기 제작기술을 개발해왔으며, 5월 4일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남부의 한 사격장에서 발사에 성공했다. 놀랍게도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는 총기 설계도를 온라인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넷을 통해 설계도를 다운로드받으면 누구나 3D 권총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 이 단체는 미국 텍사스대학 법학과에 다니는 코디 윌슨(25)이 설립했으며, 총기 소유 자유화를 위해 3D 프린터 총기를 개발했다고 한다.
프린터 총기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8000달러(약 872만 원)에 판매되는 3D 프린터로 출력한 플라스틱 부품 15개를 조립해 만든 것이다. 격발장치를 제외하고는 모두 플라스틱 소재이기 때문에 금속탐지기로는 찾아내기 힘들다. 다만 금속탐지기에 감지돼야 한다는 규제당국의 방침에 따라 170g짜리 금속 부품을 추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미국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끊임없이 총기사고가 발생하는 실정인데, 3D 프린터 총기 제작기술까지 보급된다면 더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총기 소유 반대 단체들은 이 실험 소식을 접하고 즉각 우려를 나타냈다. 다른 한쪽에서는 3D 프린팅 기술이 진일보했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국 3D 프린터 총기 제작 성공
3D 프린팅은 설계도에 따라 물질을 층층이 쌓아 물건을 만드는 기술. 쉽게 말하면 컴퓨터에 입력한 입체 설계도를 실제 모형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사람 얼굴을 스캔한 후 즉시 그 사람 얼굴과 똑같이 생긴 가면을 만들어내는 첩보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3D 설계도에 따라 가루 소재를 360도로 분사하면서 층층이 쌓아 입체 형상을 만든다. 3D 프린터로 재료를 쌓거나, 금속을 레이저로 쏴 입체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3D 프린팅이 보편화하면 제조 분야에 혁신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MIT 테크놀로지리뷰(www.technologyreview.com)는 3D 프린팅을 세상을 바꿀 10가지 기술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세계경제포럼에서도 2013년 10대 유망 기술 가운데 하나로 3D 프린팅을 꼽았다.
그동안 3D 프린팅은 주로 시제품 제작에 사용됐다. ‘제작의 편리함’ 때문이다. 공장이나 설비가 없어도 디자인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시제품을 손쉽게 제작할 수 있다. 3D 프린터 없이 플라스틱으로 모형을 만든다면, 보통 금형을 제작한 후 압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복잡하다. 제품을 개발하기까지 시제품을 대여섯 번 제작한다면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반면 3D 프린팅은 도면과 프린터만 있으면 끝이다. 실제로 람보르기니는 스포츠카 시제품을 제작하는 데 4달간 4만 달러(약 4358만원)를 들여왔지만, 3D 프린터를 이용한 이후에는 20일 동안 3000달러(약 327만원)만 들여 시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시제품 제작 위주로 적용되던 3D 프린팅 기술은 이제 상품을 직접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종양으로 얼굴 한쪽을 잃은 호주 남성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인공 뼈를 제작, 얼굴 재건 수술에 성공했다. 미국에서는 3D 프린터로 실험쥐 복제본을 플라스틱으로 정교하게 만들어냈다. 이 방식이 발전하면 향후 살아 있는 생명체나 장기를 그대로 스캔해 실제와 똑같은 모양의 인공장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오가노보라 기업은 바이오프린터로 혈관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자동차나 항공기에 사용하는 주요 부품도 생산할 수 있다.
3D 프린팅 기술은 디자인 면에서도 상당한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LG경제연구원은 3D 프린터를 통해 디자이너들이 생산 기술에 의한 제약 없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디자인 파일만 있으면 제품을 직접 제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소 복잡하거나 내부가 비어 있는 디자인처럼 기존 생산 방식으로는 제작하기 어려운 제품도 비교적 손쉽게 제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반인 상대 6월부터 판매…한국은 초보
3D 프린터에서 모형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3D 프린팅 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3D 프린팅을 언급하며 “거의 모든 제품의 생산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기술”이라면서 “미국 내 3D 프린팅 허브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연구개발(R·D)을 위해 직접투자도 감행하고 있다. ‘국가 첨단기술 연구개발 발전계획’(863프로그램)과 ‘국가 과학기술 지원계획 제조 분야 2014년 선정 프로젝트’의 주요 기술로 선정해 국가 차원의 단·중·장기 과학기술 R·D 과제에 포함시킨 것이다. ‘베이징저널’은 중국 정부가 올해 3D 프린팅 기술을 위한 장비 제조와 검증에 4000만 위안(약 71억 원)을 쓴다고 전했다.
이런 지원이 이뤄진 가운데 중국 3D 프린터 기업 롱위앤AFS도 데스크톱 3D 프린터 ‘UP 미니’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항공·우주 산업을 위한 시제품을 생산하는 3D 프린터뿐 아니라 일반인도 사용 가능한 3D 프린터도 판매하고 있다.
한국정보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세계 3D 프린터 시장 규모는 2013년 31억 달러(약 3조3775억 원)에 이르고, 2019년 61억 달러(약 6조6460억 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3D 프린팅 기술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들이 있다. 캐리마, 로킷 같은 3D 프린터 전문 업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외국 전문 업체에 비해 역사가 짧고 규모도 작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미국과 일본 기업이 시장을 선점했지만 미래 시장을 본다면 지금부터라도 적극 육성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R·D를 지원하거나 중소기업을 위한 3D 프린팅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