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과 지역위원장의 눈치 작전도 가열하는 양상이다. 차기 지도부 선거는 단순히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것을 넘어,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의 세력 재편을 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 지도부 임기가 2년으로, 2014년 지방선거 공천과 승패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역시 의원들의 신경을 건드린다.
‘친노 패권주의’에 직격탄
보고서 공개 이후 물밑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쪽은 비주류 측이다. 비주류는 친노 세력을 물러나야 할 패장으로 몰아간다. 2012년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잇따라 패한 장수들이 어떻게 박근혜 정부 초기에 민주당을 진두지휘할 수 있느냐고 주장한다. 실제 보고서는 계파 패권주의를 비판하면서, 지난해 4·11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당시 한명숙 대표 후임으로 동일한 계파의 보스인 이해찬 전 총리가 앉은 것이 바로 계파패권주의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비주류가 친노 세력에 강하게 맹공을 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수치’가 자리 잡는다. 이번 대선평가보고서에서는 이례적으로 ‘불명예 순위’를 공개했는데, 이 자리를 친노 인사가 싹쓸이했다. 당내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대선 패배 책임 순위는 76.3점을 받은 한명숙 전 대표가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이해찬 전 대표 72.3점, 박지원 전 원내대표 67.2점, 문재인 전 후보 66.9점, 문성근 전 최고위원 64.6점 순이었다. 100점 만점에 점수가 높을수록 대선 패배 책임이 크다. 비주류는 이번에야말로 친노 세력의 실책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라면서 보고서 공개 직후부터 물밑 여론 확산에 열을 올린다.
민주통합당 대선평가보고서가 대선 패배 책임자로 지목한 한명숙 전 대표, 박지원 전 원내대표, 문재인 전 대선후보, 문성근 전 최고위원(왼쪽부터). 이를 두고 문재인 대선캠프 출신 인사들의 반박이 이어지고 있다.
5·4 전대를 앞둔 당 대표 후보들도 대선평가보고서 발표 이후 여론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4월 10일 한 인터넷 언론이 주최한 첫 토론회에서 대선 패배 책임론과 계파패권주의 문제를 놓고 설전이 벌어진 것이 단적인 예다. 범주류로 분류되는 강기정, 신계륜, 이용섭 후보는 대선평가보고서가 ‘당의 분란’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반면, 비주류인 김한길 후보는 “보고서 내용의 큰 흐름을 잘 수용해 참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안철수 486의 운명은?
민주통합당 한상진 대선평가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2월 1일 충남 보령 한화리조트에서 열린 대선평가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하는 모습.
이런 내용 때문에 거론된 인사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야권 지지층을 ‘멘붕(멘털 붕괴)’에 빠지게 했던 2012년 대선 패배에 대해 당시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분명한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문 전 후보의 정치적 입지, 안철수 신당창당론,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과의 관계 설정, 486정치인 대망론이 펼쳐질 상황에서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비주류 일각에서는 문 전 후보의 의원직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문병호 의원은 4월 10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문 전 후보가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발언은 대선평가위원회가 “문 전 후보가 안 전 후보의 제안을 빨리 수용하지 않아 아름다운 단일화가 되지 않았다”고 평가한 부분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비주류는 문재인 개인의 정치적 야욕에 의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친노 일부 세력이 문재인을 내세워 본인들 정치 입지를 강화하고 또다시 당을 장악해 과거 행태를 답습할까 봐 우려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한 외부 영입인사도 “친노 세력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지만, 대선 이후 친노는 더는 정치 세력으로 결집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친노 세력의 재결합과 부활을 강하게 견제한다는 의미다.
반면 이런 분위기에 대해 문재인 대선캠프 출신들은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문재인 대선캠프는 ‘친노’로만 꾸린 것이 아니며, 대선 패배의 주요 원인은 다른 곳에도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문 전 후보 비서실장 출신인 노영민 의원은 대선 패배 책임에 대해 안 전 후보를 지목했다. 문·안 협상 실패의 원인이 안 전 후보 측의 무리한 요구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의 주장은 민주당 바닥에 존재하는 ‘안철수 공동책임론’과도 맞닿아 있다. ‘안철수가 조금만 더 일찍, 열렬히 도와줬더라면 대선에서 아깝게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심리를 자극한다. 대선 승리에 큰 기대를 걸었던 민주당 지지층은 안 전 후보에 대한 섭섭함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 안 전 후보가 서울 노원병 4·24 보궐선거에 출마한 것에 대해 민주당 전통 지지층의 반응이 엇갈리는 이면에는 이런 서운함이 작용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5·4 전대에 출마한 일부 주자도 이런 심리를 의식해 안 전 후보와 관련해서는 극도로 신중하게 발언하고 있다.
한편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 486정치인의 진로에 대한 전망도 엇갈린다. 한상진 대선평가위원장에 따르면, 486정치인에 대한 국민 기대는 2005년만 해도 55~60%에 달했지만, 2013년에는 10% 미만이다. 한 위원장은 대선 평가를 계기로 민주당 정치인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지지자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