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근 건축가가 1960년 설립한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건축가들은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비단 한 건축사무소의 잘못이 아니라 건축계 전반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업계 6위에 해당하는 공간건축은 내로라하는 건축가를 키워낸 건축사관학교. 이곳 출신인 김원(70) 광장건축환경연구소 소장(1965~70년 재직), 오섬훈(62) 건축사사무소어반엑스 대표(1980~2006년 재직), 이관직(56) 비에스디자인건축 대표(1984~86년 재직), 홍택(46) 시스템랩그룹 건축사사무소 대표(1995~97년 재직)를 만나 위기 진원을 짚어봤다.
기업형 설계사무소가 등장한 이유
독립기념관, 국립국악원, 코엑스 등을 설계한 김원 소장은 “건축사무소는 부도 처리되고 법정관리되는 곳이 아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건축은 서비스업이며, 문화적으로는 예술집단이기 때문에 경영상 이유로 부도 처리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건축은 창조적 작업이다. 일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해야 한다. 설계는 대부분 건축가 한 사람 아이디어로 완성하기 때문에 건축사무소가 클 필요는 없다. 그런데 공간건축은 비대하게 운영해 이런 일이 생겼다.”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에는 거대한 건축사무소가 필요하지 않았다. 공간건축의 전신인 김수근건축연구소는 직원 수가 10명 내외인 아틀리에 형태였지만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공간건축은 커졌다. 공간건축 홈페이지에는 “공간그룹은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으로 성장해왔다. 현재는 서울, 뉴욕, 두바이, 마닐라, 알제리, 알마티, 루안다 등 7개 도시에 사무실을 갖고 있으며, 600명에 이르는 전문인력이 전 세계 30여 도시를 대상으로 건축도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이는 기업형 설계사무소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과거만 해도 설계는 건축사무소, 시공은 건축가 설계를 가장 잘 구현할 시공사가 맡았다. 하지만 공사기간 단축, 책임 소재 일원화 등의 장점 때문에 설계와 시공을 일괄 계약하는 턴키방식이 대형 공사를 중심으로 확대됐다.
“턴키방식으로 입찰받으려면 건설사와 건축사무소가 협업해야 한다. 건설사로서는 큰 사업을 잘해낼 수 있는 다양한 인력을 확보한 건축사무소를 파트너로 택하려 하고, 이런 이유로 건축사무소는 외형을 키운다. 수주받을 일이 공공 프로젝트뿐이라, 이마저 못하면 일거리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턴키방식 설계공모에 참여하면 낙찰받지 못해도 기본설계비 일부를 받을 수 있어 건축사무소로서도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턴키방식 설계공모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입찰 담합 심사위원 로비 등의 비리가 만연하고 결과적으로 큰 기업에 일이 몰린다는 점이다.”(이관직 대표)
턴키방식에서는 건축사무소가 대형건설사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건설사가 협업을 제안하지 않으면 운영이 어려워지는 대형 건축사무소는 철저한 ‘을’이 되는 것. 하지만 이마저도 공공건축물 발주량 감소로 줄었다.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개발사업에 건축사무소가 참여할 기회가 많아지긴 했지만, 이마저도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시행사가 사업 성공 이후 설계비를 지급할 테니 설계안을 먼저 완성해달라고 요구하곤 했고, 일감이 달린 건축사무소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 해당 사업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돈 한 푼 받지 못하는 위험성은 고스란히 건축사무소 몫으로 남았다.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 수상자 전무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차선책으로 건축사무소는 국외시장으로 눈을 돌리지만, 설계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해외 투자인력을 양성해도 동종업계 이직이 잦아 사업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해외시장 진출 선두주자인 공간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축가 위상은 기대할 수 없다. 설계 아이디어 저작권이 건축가가 아닌 시공사에 귀속되는 경우가 잦고, 건축 완공식 테이프커팅 행사에 건축가 자리는 없으며, 설계도면은 종잇장 취급을 받는다. 신진 건축가가 나오지 않는 건 물론이다.
“40세 이하 건축가는 일할 기회도 없다. 고객이 ‘설계해서 완공된 건물이 있느냐’고 물으면 말문이 막히는 건축가가 많다. 반면, 일본은 정책적으로 젊은 건축가를 육성한다. 지자체 공공건축 설계공모는 젊은 건축가를 대상으로 한정하는데, 건축가는 이런 성과를 발판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간다. 한국인이 수상한 적 없는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를 일본인 건축가가 많이 수상하는 근본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홍택 대표)
그렇다면 건축가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까. 김원 소장은 “공간건축 부도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면서 “이제는 우리도 토건국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국토 넓이당 인공구조물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2008년 한국 시멘트 소비량이 일본 시멘트 소비량의 2배에 달했는데, 우리 국토가 일본의 절반인 점을 감안한다면 시멘트 소비량이 4배가 넘는다. 그동안 우리 건축가들이 토건국가라는 시류에 편승해 우후죽순 건축물을 설계하다 어려워졌으니 이젠 달라져야 한다. 집 한 채에 두 가구가 사는 땅콩주택 열풍에서 알 수 있듯이 ‘창의적 건축’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은가.”(김원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