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조창현</b> 석좌교수<br>● 1935년생<br> ● 1958년 연세대 법학과 졸<br> ● 1968년 미 조지워싱턴대 행정학박사<br>● 1968~2001년 미 펨브로크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br> ● 2002년 5월~2006년 8월 제2, 3대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br>● 2006년 9월~2008년 2월 방송위원회 위원장<br>● 2008년 9월~ 한양대 석좌교수 겸 정부혁신연구소장
조창현 교수를 인터뷰한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현행 15부2처18청의 중앙행정조직을 17부3처17청으로 개편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인수위 발표 다음 날 조 교수에게 전화해 이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더니 중앙인사위원장으로 재임한 탓인지 무엇보다 인사혁신에 대한 내용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성과평가 시스템 도입 필요
“인사정책 전담 기구에 대한 언급이 없어 실망스럽다. 조직 개편을 통해 인원을 늘리고 기구를 설치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좋은 정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인사혁신을 통해 공무원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효과적인 정책도 나온다. 인사혁신 핵심은 성과평가 시스템 도입이다. 가령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 복지에 많은 예산을 투입할 텐데 그에 대한 효과를 점검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조직 개편만 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도 없이 애국심으로 열심히 일하라고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 박근혜 당선인에게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 당부하고 싶은 말은.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한다는데, 정부조직 하나 새로 만든다고 갑자기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만들어야겠지만 멀리 봐야 한다. 얼마만큼 투자하면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국민이 불필요한 기대감을 갖지 않도록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 국민이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수 있도록 다독이면서 모든 국가 역량을 집중해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
또 하나, 잘 알려진 얘기지만 1957년 소련이 우주선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자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자국 우주항공 프로그램을 조사해보니 육·해·공군 모두 예산만 탕진할 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195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했다. NASA는 전통 조직과 달리 사명에 기반을 둔(mission oriented), 즉 ‘달에 간다’는 목표 하나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만인 1969년 미국인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당시 NASA는 옛 조직에서 인원을 차출하지 않고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원을 구성했다.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려면 미래창조과학부에 필요한 인재를 기존 공무원 제도로 충원해서는 안 된다. 엄정한 기준을 만들고 공정하게 심사해 계층적 조직이 아닌, 사명 중심의 조직을 만든다면 성과가 있으리라 본다. 발상을 달리 해야 한다.”
▼ 정권교체 때마다 정부조직을 개편하는 건 바람직한 일인가.
“외국의 경우 수십 년에 한 번 조직 개편을 하고, 그것도 한 개 부처를 신설하는 정도다. 부처를 없애는 일은 그 기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다. 정부기구는 국민에게 필요한 재화를 조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에서 비롯한 만큼, 장사꾼이 잘 안 팔리는 품목을 없애듯 쉽게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함부로 조직을 없앴다가 4~5년 뒤 다시 만들기를 반복한다. 그러니 국민도 불안하고, 또 거기서 일하는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MB정권 조직 개편은 최악
▼ 그런데도 정권교체 때마다 정부조직 개편 문제가 대두되는데.
“평소 해야 할 일을 안 해 문제가 누적됐다가 대선 때 쟁점으로 부각되면 그것을 기회 삼아 해결해버리려는 성향이 하나의 이유다. 또 하나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저항해 개편 추진이 쉽지 않다 보니 그것을 미뤄뒀다가 정권교체 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러니 정권교체 때마다 정부조직 통폐합이 행사처럼 돼버렸다.”
▼ 외국의 정부조직 개편은 구체적으로 어떤가.
“국내외 환경이나 정치적 수요에 부응하려고 조정을 단행하지만 신중하게 처리한다. 한 예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 후 국토안보부를 만드는 데 2년이 걸렸다. 여러 부처에 흩어진 국토안보 관련 부서를 통폐합하는 작업이었는데도 공무원 약 20만 명의 이해가 걸린 문제여서 그랬다.”
▼ 인수위 시절 후다닥 해치우는 우리와 너무 비교된다.
“행정학자로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미국 국무부는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데 왜 이름이 외교부가 아니라 국무부냐는 것이다. 미국 건국 초기 정부 임무가 그리 많지 않을 때는 국무부와 재무부를 비롯해 부처가 몇 개 되지 않았고, 국무부에서 외교를 포함해 아주 많은 일을 두루 맡았다. 이후 국무부 내 여러 부서가 하나의 부처로 독립해나가면서 지금은 외교 업무만 남았다. 그런데도 초창기 기능과 이름을 존중해 바꾸지 않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혼란을 주지만, 그만큼 정부조직의 전통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그런 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역사성을 너무 쉽게 훼손하는 편이다.”
▼ 이명박 정권의 정부조직 개편을 평가한다면.
“가장 잘못된 개편이었다. 원칙도, 큰 그림도 없이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단 하나의 논리에 얽매여 정부 부처를 없앴다. 중앙인사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중앙인사위원회는 대한민국 행정학회의 50년 숙원사업이었다. 인사 독립이 이뤄져야 공정 인사가 가능하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김대중 정부 때 출범했는데, 현 정권에서 아무 이유 없이 없애버리고 지금은 행정안전부 산하 작은 조직이 그 업무를 담당한다. 마찬가지로 교육부와 과학기술처를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하고, 해양수산부와 건설교통부를 합쳐 국토해양부를 만든 것도 잘못이다. 부처가 커지면 장관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업무는 무시되거나 사장될 수 있다. 그러면 제때 법률을 개정해 대응하는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전문성이나 독립성이 중요한 업무는 부처 규모가 작더라도 독립시켜 수상이나 대통령이 관심을 갖도록 한다.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여러 부처를 통합해 하나의 거대 부처를 만들어놓으면, 그로 인한 손실이 엄청나다.”
▼ 작은 정부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다는 얘기인가.
“작은 정부라고 하면서 방 개수를 줄이긴 했는데, 규모는 더 커졌다. 현 정권 들어 공무원 수가 오히려 1만5000명 늘었다.”
▼ 지금까지 정부조직 개편 가운데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 있다면.
“과거 경제기획원이 있었다. 경제기획원이 우리 경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예산 관리를 포함한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면서 다른 경제 부처를 지휘 감독했다. 경제기획원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경제개발이 그렇게 체계적이고 조직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 현재 우리 정부는 혁신적이라고 볼 수 있나.
“아직 멀었다. 우리 공무원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지금 대학생 취업선호도 1순위가 공무원이다. 신분 보장되고 열심히 일 안 해도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도록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지금 상당히 어려운 시기이며 세수는 이것뿐인데 복지에 필요한 돈은 이렇게 많다. 그러니 우리가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효율적으로 일해야 한다’라면서 공무원을 독려해야 한다. 그게 정부 혁신의 출발이다.”
그는 중앙인사위원장 시절 가장 보람 있던 일로 고위공무원단 창설을 꼽았다.
“과거에는 고시 합격하고 20년 정도 지나면 연공서열에 따라 중앙부처 국장 후보가 됐다. 이때 국장이 되려고 정치권 인사를 동원해 장관에게 인사 청탁을 하는 등 인사 로비가 심했다. 이런 폐단을 없애려고 과장급에서 국장급으로 올라갈 때 역량평가를 하도록 했다. 소통 능력, 책임감, 개혁성, 창의성 등 국장에게 필요한 자격 조건을 제시하고, 고위공무원과 인사전문 민간단체 임원, 관련 전공 교수들로 평가단을 꾸려 심사를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과장들이 국장 승진을 위해 정치권 줄대기를 할 필요도 없어졌고, 연공서열 기다리다 지쳐 이탈하는 인재도 붙잡을 수 있었다. 이걸 만드는 데 2년 걸렸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법
▼ 그럼에도 고위공무원단이 된 뒤 좋은 보직을 받으려고 여전히 인사 로비를 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렇다곤 해도 검증된 인재 풀이 있으니 최소한 장관이 엉뚱한 사람에게 보직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장관이 고위공무원단 가운데 함께 일할 사람을 선택할 권한 정도는 가져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고위공무원단 창설을 장관들이 가장 반겼다.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을 국장으로 승진시켜달라는 정치권의 청탁 내지 압력 전화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 같은 제도를 가진 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5개국뿐이다. 지금 일본 경제가 일어서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정체된 관료사회 때문이다. 관료는 정부조직에 꼭 필요하지만 관료사회에 계속해서 신바람을 불어넣고 신선한 피를 공급하지 않으면 국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 중앙인사위원장 시절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공무원교육 제도를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 공무원에게 교육은 새로워지는 기회이자 신바람 나는 일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를 강조하는데, 하루아침에 몇조 원을 더 푼다고 당초 목표한 대로 복지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사를 제대로 교육한 다음 돈을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행하려면 반드시 공무원교육부터 먼저 실시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전거 탈 줄도 모르면서 자전거만 잔뜩 사놓는 형국 아닌가. 예산 배정하면 끝이라고 보는데, 행정의 많은 요소 가운데 99%는 사람과 관련돼 있다. 결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공무원이 옳은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제대로 된 교육과 평가, 적절한 대우 같은 행정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