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초, 그가 삼성 라이온즈 13번째 사령탑에 올랐을 때 야구계 안팎에서 적잖은 우려가 제기됐다. 거함 삼성을 이끌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초보 사령탑인 데다, 전임자의 색깔이 워낙 짙게 배어 있던 팀 컬러도 문제였다. 그러나 그는 페넌트레이스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KS) 챔프에 올랐고, 한국 프로야구팀으로는 처음으로 아시아시리즈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사령탑 첫해 빼어난 성적을 거뒀는데도, 그에게는 여전히 ‘전임 감독의 후광을 입었을 뿐’이라는 평가절하가 이어졌다.
그리고 2012년. 그는 자기 스타일에 변화를 줬고, 또 한 번 삼성을 페넌트레이스 1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제 그에게 ‘후광 효과’를 운운하는 사람은 없다. 그 대신 그는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새로운 명사령탑으로 자리매김했다. 류중일(49·사진) 감독, 그는 이제 한국 프로야구의 새로운 아이콘이다.
● ‘뼛속 삼성맨’의 힘
류 감독은 선수로 입단한 1987년 이후 단 한 번도 삼성 유니폼을 벗은 적이 없는 ‘뼛속 삼성맨’이다. 대구중, 경북고를 거쳐 1987년 삼성에 몸담은 ‘선수 류중일’은 13시즌 동안 통산 타율 0.265, 홈런 45개, 타점 359개, 도루 109개를 기록했다. 스스로 돌아보듯, 방망이 실력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지만 신인이던 1987년과 91년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두 차례나 수상하며 ‘명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노력한 결과였다. 현역 시절 단체 훈련이 끝난 뒤 담당 코치에게 따로 부탁해, 매일 펑고(fungo) 200개를 더 받고나서야 연습을 끝냈다. 그때 ‘연습벌레’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9년 은퇴 후 지도자가 된 ‘코치 류중일’은 첫 전지훈련에서 룸메이트였던 조범현 전 KIA 감독(당시 배터리코치)에게 매일 밤 궁금한 것을 질문해 당시 조 전 감독이 극심한 잠 부족에 시달렸다는 일화는 야구계에서 유명하다. 조 전 감독은 “열정과 욕심이 엄청났다”고 당시의 그를 기억한다.
코치 시절 11년간 그는 감독 3명(김용희, 김응룡, 선동열)을 ‘모셨다’. 삼성이 우승 청부사로 영입한 해태 출신 김응룡 감독이나, 지휘봉을 잡은 뒤 ‘친정체제’ 확립에 힘을 기울였던 선동열 감독도 류 코치와 함께했다. 그가 누구보다 삼성 팀을 꿰뚫고, 선수들에게 존경받는 코치이자 참모였기 때문이다.
● ‘2군 코치 10개월’, 보약이 되다
그러나 ‘코치 류중일’도 위기를 겪었다. ‘언젠가 삼성 지휘봉을 잡을 잠재적 후보’라고 평가받던 그는 선 감독 시절인 2008년 11월 초 코칭스태프 개편 당시 2군행을 지시받았다. 선수 시절에도 부상을 제외하고 2군에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던 그에게 코치로서 2군행은 큰 충격이었다. ‘류중일이 곧 삼성 유니폼을 벗게 될 것’이라는 루머까지 흘러나왔다.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당시 류 코치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한 발 떨어져 1군 경기를 지켜보니 오히려 느껴지는 게 더 많았다. 야구 보는 눈이 넓어진 계기가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2009년 9월 다시 1군으로 컴백해 2군 생활은 10개월의 짧은 외도로 끝났지만, 코치 류중일은 그 10개월 동안 감독으로서 10년을 버틸 수 있는 노하우를 쌓았다.
● 승부는 이겨야 한다, 그게 프로다
2012년 페넌트레이스 1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
2004년 박진만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삼성 유니폼을 입었을 때다. 당시 삼성 수비코치였던 그는 현대에서 오랫동안 수비코치를 지낸 정진호 수석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석코치님, 진만이는 어떻게 수비훈련을 시켰습니까?” 현대로선 전력의 핵 박진만이, 그것도 삼성으로 빠져나가 뼈아프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정 코치는 훈련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해줬다. 유니폼은 달랐지만, 류중일이기에 가능했다. 현역 시절 명유격수였던 그는 삼성에서 수비코치로 명성을 쌓았다. 자신의 노하우로 박진만을 훈련시킬 수 있었지만 그는 귀를 열고 들었다. 감독이 된 뒤에도 마찬가지다. 최종 결정은 수장인 자신이 하지만,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코치 의견도 존중한다.
야구계에서 사람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지만,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승부사다. 내기 골프를 치든, 친선 바둑을 두든, 그라운드에서 승부를 하든 마찬가지다. 사람 좋은 그지만, 승부에선 상대를 봐주는 법이 없다. “게임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게 프로”라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진화하는 류중일 리더십
어느 조직이든 수장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 관리’다. 야구감독도 ‘선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류 감독은 코치 시절부터 선수가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열었다. 그가 ‘감독님’ 이전에 삼성 선수들에게 ‘큰형님’이었던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류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 후 “올 시즌을 앞두고 내 지도 스타일에 적지 않은 변화를 줬다”고 고백했다.
“선수들과 너무 가깝게 지낸 것 같아 올해엔 선수들과 조금 거리를 뒀다. (시즌 초·중반) 6, 7위를 할 때 다가가서 얘기하고 그랬다면 우승을 못 했을 것이다. 오히려 선수들과 멀리하는 대신 코치들과 가까이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고민했던 것이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코치에게 선수를 만들라는 주문을 많이 했다. 감독은 크게 보고 전체를 관리하는 자리다.”
그는 큰형님 이미지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명장 리더십으로 진화했다. 조직 흐름을 꿰뚫는 것은 물론, 난관을 뚫고 비전을 제시해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런 그의 역량이 취임 초 짊어졌던 여러 난관을 단기간에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다.
● WBC, 또 다른 영광에 도전하다
2012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류 감독은 내년 3월 열리는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게 됐다. 그는 삼성 감독이 되기 전, 2006년과 2009년 WBC(감독 김인식),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감독 조범현)에 코치로 참가했지만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대표 사령탑은 영예로운 자리지만, 그만큼 책임과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은 2006년 WBC에서 세계 4강 신화를 이룬 뒤, 2009년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거뒀기에 이번 대회를 앞둔 팬들의 기대치는 예전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투수 전력이 과거보다 못하다는 게 중론. 대만에서 열리는 1라운드 통과는 별 무리 없겠지만, 4강에 오르려면 일본서 열리는 2라운드에서 일본과 쿠바 가운데 한 팀을 따돌려야 한다. 쉽지 않다.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1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류 감독으로선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는 셈. 류 감독은 또 다른 역사를 쓰며 자신의 감독 인생에 소중한 이력을 추가할 수 있을까. 야구계는 ‘감독 류중일’이 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WBC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