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 겸 대한연방 (임시) 대통령이다. 비록 임시가 앞에 붙었지만 권력이 뒤를 따른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연방 청사는 경기 파주시에서 분양이 안 되어 짓다 만 아파트 3개 동을 구입한 뒤 구조만 변경해 3개월 만에 완공한다고 했다. 근처 아파트 값이 텀블링하듯 뛰어오른 것은 물론, 돈을 싸들고 달려오는 선남선녀들로 인해 자유로가 주차장이 되었다.
“잘된 일이지.”
그 난리통을 보고받은 이명박이 딱 한마디로 그렇게 코멘트했다는 ‘동아일보’ 보도가 나가자 제2자유로까지 막혔다. 장롱 속, 장판 밑에 묻어둔 돈을 다 꺼낸 것이다. 이러니 경기가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고려시에 이어 파주시까지 ‘황금의 땅’이 되었다.
2011년 1월 7일 대한연방 대통령 이명박이 연두성명을 발표한다. 한국 3대 방송인KBS, SBS, MBC와 북한 평양방송이 동시 중계를 한다. 오전 10시 정각, 이명박이 화면에 나타나자 서울역 대합실 안 대형 TV 앞에 수백 명이 운집했다. 오가는 사람도 드문 것이 열차도 안 타려는 것 같다. 이명박이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한반도 동포 여러분, 북조선과 남조선 인민 여러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민 여러분.”
그렇게 한바탕 ‘명칭’만을 부르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시청자를 보았다. 그러고는 말을 잇는다.
“저는 지금부터 여러분을 대한연방 국민이라고 부르겠습니다.”
TV를 보던 정세균 민주당 의원이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곧 통일이 되겠군.”
“운이 맞아떨어진 거지요.”
20년간 정세균의 선거참모를 지낸 윤달중이 TV에서 시선을 떼고 말했다. 국회 의원회관의 정세균 의원실 안이다. 리모컨으로 TV 볼륨을 줄인 정세균이 정색하고 윤달중을 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이명박의 운이 맞아떨어진 것이 아냐.”
윤달중의 시선을 받은 정세균이 말을 잇는다.
“이명박의 용기와 신념에 운이 따라붙은 거지.”
“그렇습니까?”
“소신을 갖고 밀어붙였어. 광우병 시위 때 노 대통령한테 달려가 무릎 꿇고 도와달라고 애걸할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소문으로는 빅딜을 했다던데요.”
“어쨌든 몸을 던져서 저렇게 이룬 거야.”
그러자 윤달중이 쓴웃음을 짓는다.
“이명박 팬이 되신 겁니까?”
“당연하지.”
다시 TV 볼륨을 높인 정세균이 똑바로 윤달중을 보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팬이 되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입맛을 다신 정세균이 말을 잇는다.
“야당도 있어야 이명박이 더 빛나는 법이라고.”
# “군이 문제입니다.”
장성택이 불쑥 말했지만 김정일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주석궁 휴게실 안이다. 이곳은 대형 TV가 설치돼 있는 데다 집무실과 가까워 김정일이 자주 찾는다. 장성택이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제4군단 사건 이후 중국파들이 조심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잠자코 TV만 보았다. 이명박의 연두성명이 끝나가는 중이다. 연두성명에서 이명박은 한민족의 번영과 평화를 강조했다. 자신에 찬 표정이었고 내용이었다. 그때 머리를 돌린 김정일이 장성택을 보았다.
“이대로 두면 북조선뿐 아니라 대한연방이 위험해져.”
방 안에는 둘뿐이다. 10m쯤 뒤쪽 벽에 호위장교 한 명이 붙어서 있고, 앞쪽 스탠드에 여종사원 두 명이 대기하고 있을 뿐이다. 긴장한 장성택은 눈만 껌벅였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네 짐이 무겁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위원장 동지.”
“군 일각에선 나에게 북조선을 팔아먹었다고 하는 놈들도 있을 거야.”
“….”
“모두 제 기득권만 챙기는 놈들이지. 그놈들한텐 인민은 물론, 조국도 없다.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중국에 조국과 인민도 팔아먹을 놈들이지.”
“명단을 작성해놓았습니다. 몸통부터 하나씩 처리하겠습니다.”
“그놈들은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 그런 수단으로는 위험해.”
눈을 치켜뜬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몸통 하나는 자르고 또 하나는 승진시키는 방법을 써라. 그래서 자중지란이 일어나도록. 누가 배신자인 줄 모르도록 해. 그러면 겁이 나서 서로 동지를 고발하게 될 것이다.”
김정일의 두 눈이 번들거렸으므로 장성택은 입안의 침을 삼켰다.
# 동북삼성(東北三省)이란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을 일컫는다. 한반도 북쪽에 위치한 성으로, 그중 지린성에 옌볜조선족 자치주가 있다. 중국은 동북삼성을 중심으로 이른바 동북공정을 추진해왔는데, 그것을 한국 측은 역사왜곡으로 받아들였다. 발해는 물론 고구려까지 중국의 한 지방으로 편입한 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역사란 곧 그 민족, 국가의 기록이다. 증명서나 같다. 고구려가 중국 역사에 편입되면 평양성도 중국 지방정부 격이 된다. 그 동북공정이 발전해 지린성 옌볜의 조선족 동포들 사이에서 곧 북한이 중국의 조선성(朝鮮省)이 되리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던 것이다.
2011년 1월 7일 오후 4시 반, 오늘도 베이징의 이화원 근처 안가에서 후진타오가 두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 간사 왕휘안과 부주석 시진핑이다. 왕휘안이 말했다.
“김정일은 곧 친중(親中)파 장군들을 숙청할 것입니다. 노련한 인물이니만치 자중지란을 일으켜 결속을 못 하게 하겠지요. 군을 숙청하고 난 뒤에는 당을 개편할 것입니다.”
왕휘안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간사로 군 실력자다. 77세지만 아직 정정했고 3년 전까지 후방군 총사령직을 맡았던 군 원로다. 왕휘안의 말이 이어졌다.
“이명박의 대한연방이 발족하면 중국은 턱 밑에 종양 덩어리 같은 혹을 매달고 있는 셈이 됩니다. 중국 지도자들은 그 정도가 되도록 방치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테고요.”
“왕 간사께서 모르시는 말씀인데….”
입맛을 다신 후진타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우리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이 이명박을 시켜 제4군단 지휘부를 폭사하는 강수를 두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소?”
“지금이라도 손을 써야 합니다. 늦으면 천추의 한이 될 것입니다.”
왕휘안이 말했을 때 시진핑이 묻는다.
“왕 간사께선 복안이 있으십니까?”
“한반도 통일에 위협을 느끼는 건 중국만이 아닙니다. 일본은 배에 떨어지려는 불덩이를 보는 심정일 것입니다.”
“허어, 배에 떨어지는 불덩이라.”
이 와중에도 후진타오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일본 열도를 누워 있는 사람에 비유하면 그런 모습이 될 것이다. 그때 왕휘안이 정색하며 말했다.
“또한 북한 핵을 껴안은 채 동북아의 새 세력으로 등장하려는 한국이 미국으로서도 불편한 존재입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반쪽 국가로 남아 있는 것이 더 낫거든요.”
“그렇지요.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으로 이미 태평양방어선을 만들어놓았으니까요.”
시진핑이 거들었다. 이 방어선은 오래되었다. 1949년 필리핀과 오키나와, 일본 본토를 잇는 이른바 에치슨라인이 설정되면서 대륙에 붙은 한반도는 미국의 태평양방위선에서 제외되었다. 그 후 남한에서 미군이 철수하자 안심한 북한군이 남침해온 것이다. 그것이 바로 6·25 전쟁이었다. 왕휘안이 후진타오와 시진핑을 번갈아보았다.
“따라서 국제적인 분위기는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동지들.”
# 2011년 1월 11일, 신의주특구 장관으로 세우리당 정몽준 의원이 임명되었다고 대한연방 홍보수석 유근종이 발표했다. 남북한 통치자인 이명박과 김정일의 합의에 의한 임명이다. 또한 신의주특구는 의주군, 용천군, 피현군, 삭주군 일부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지역으로 평안북도 넓이의 8분의 1에 달했다. 조·중 국경 지역에 고려시만한 넓이의 경제특구가 탄생한 것이다. 현재 상주인구는 200만 명. 이곳에 한국 이주민 50만 명을 더 받아들여 인구 500만 명의 대규모 중공업도시를 건설할 예정이다.
“신의주특구 장관으로 임명된 소감이 어떻습니까?”
발표 직후 장관 취임 인사를 마치자 한 기자가 정몽준에게 물었다. 프레스센터 대회의장 안이다. 질문을 받은 정몽준이 씩 웃었다.
“기쁩니다. 최선을 다해 신의주특구를 세계 제1의 중공업도시로 만들겠습니다.”
그때 기자 한 명이 다시 묻는다.
“특구 장관에 임명됨으로써 제18대 대선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되신 겁니까?”
그 순간 대회장 안의 분위기가 굳어졌다. 예민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정몽준은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그때 정몽준이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저는 지금 신의주특구를 건설하는 것 외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 그 장면을 TV로 보던 전 대통령이자 국가원로인 김영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18대 대선 따위는 암 것도 아니다.”
옆쪽에 앉아 있는 김현철이 시선만 주었고 김영삼의 말이 이어졌다.
“제2대 대선을 노려야 하는 기라.”
“제2대라니요?”
김현철이 묻자 김영삼은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렸다.
“대한연방 대통령 말이다.”
“아아!”
“이명배기가 1대고 제2대는 선거를 해야 될 기라.”
“그렇군요.”
“정몽준이는 신의주에서 기반을 닦고 와서 제2대 대한연방 대통령에 나설 것이다.”
“정동영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지.”
“박근혜는 제18대 대선에 나갔다가 대한연방 대통령으로 올라가려고 하겠지요?”
“당연하지.”
“재미있게 되겠습니다, 아버님.”
“정치하는 놈들한테는 기회가 많아지는 셈이지.”
입맛을 다신 김영삼이 말을 잇는다.
“이명배기가 자리를 많이 맹글어놓았다. 잘하는 짓이다.”
# 랴오닝성 선양에 위치한 선양군구(瀋陽軍區) 소속 39집단군 병력이 나진·선봉지구에 진입한 것은 2011년 1월 14일이다. 39집단군의 제115 보병사단, 제116 기계화보병사단과 제3 장갑여단, 방공·포병·공병여단 등 병력 7만여 명이 장갑전차 수백 대와 함께 진입해온 것이다. 물론 나진·선봉지구는 북한과의 조약에 따라 중국에 50년간 임차된 상태다. 그러나 군부대 투입은 ‘특별한 사태’에 한한 것이어서 북한은 물론 한국 측도 긴장했다. 즉각 반응한 것은 북한이다. 평양방송의 ‘아줌마’ 아나운서가 등장해 말했다.
“나진·선봉에 중국군이 투입된 것은 조약 위반이다. 중국군은 즉각 철수할 것을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명의로 엄중히 경고하안다.”
지금 이명박과 이회창,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TV로 ‘아줌마’를 보고 있다. 이명박이 볼륨을 줄이라는 손짓을 하고 나서 말했다.
“이건 신의주특구에 대한 중국 측 반응인데,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중국은 대한연방이 한국 측 주도로 진행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입니다.”
김성환이 대답하자 김관진도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국은 북한 핵을 폐기하기 전에 대한연방이 발족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사사건건 한국군의 장비 도입과 훈련에 제동을 거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 또한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남북한이 통일하면 핵을 보유한 거대한 군사 대국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물론, 일본과 미국까지 견제하고 나섰다. 그때 이명박의 시선을 받은 김성환이 말했다.
“푸틴 총리는 2월 초 상호방위조약을 맺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 중에 1차 협상단을 출발시킬 예정입니다.”
이명박과 이회창의 시선이 마주쳤고 둘은 거의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적의 적은 우군이 된다. 이는 고금의 역사가 증명한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나라를 돕는 국가는 없다. 바탕에는 타산이 깔린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은 비밀리에 러시아와 상호방위조약을 추진했고 2월에 조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대한연방이 맺는 첫 군사동맹, 상호방위조약인 것이다. 한미 간 군사동맹은 남한과 미국과의 조약이었다. 이명박이 차분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조선 말기 강대국의 노리개가 되었던 때하고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고는 이명박이 주위를 둘러보았고, 가장 먼저 시선을 받은 이회창이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우리를 가지고 논다고 생각했겠지만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 “막을 방법은?”
하고 오바마가 묻자 국가안보보좌관 도닐런이 머리를 내저었다.
“막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대통령 각하.”
“그럼 놓아두라는 말입니까?”
짜증난 목소리로 오바마가 묻자 국무부 장관 힐러리가 부드럽게 말한다.
“대통령 각하,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보시지요.”
집무실 안의 시선이 모두 힐러리에게로 모아졌다. 좁은 집무실 안 소파와 의자 이곳저곳에 장관, 보좌관, 각 군 사령관은 물론, 오늘은 부통령 조 바이든과 국방부 장관 로버트 게이츠까지 참석해 걸터앉아 있다. 힐러리가 말을 잇는다.
“지금 우리가 긴장하는 건 일본을 태평양방위선으로 삼는다는 선입견 때문에 생긴 강박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바마는 물론,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오늘로 대한연방과 러시아 간 상호방위조약관련 소회의가 여섯 번째 열렸다. 작년 말부터 2011년 1월 15일인 오늘까지 약 한 달 동안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여섯 번 열린 것이다. 다시 힐러리의 말이 이어졌다.
“1949년 에치슨라인이 설정되고 나서 1950년 북한이 한국을 남침했습니다. 그런데 60년 후 우리가 일본을 태평양방위선으로 삼는다는 전철을 밟자 한반도가 동요하는 것 아닙니까?”
“잠깐만.”
국방부 장관 로버트 게이츠가 나섰다.
“장관, 요점을 말해주세요. 지금 러시아와 대한연방의 군사동맹이 미국의 정책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자위책이라는 것입니다.”
차분한 표정으로 힐러리가 말을 잇는다.
“중국군이 며칠 전 나진·선봉지구에 대군을 진입시켰습니다. 우리는 일본과 연합해 북한의 핵 폐기, 독도 지역의 무력시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 처지에서는 자위책을 마련해야겠지요.”
“그런 말은 이 회의에 도움이 안 돼요, 장관.”
하고 로버트가 비난했을 때 힐러리가 머리를 내저었다.
“저는 현실적인 제안을 하는 겁니다. 미·일 공조로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본을 끌어안고 남북한 연합인 대한연방을 적으로 돌리는 건 개와 친구하려고 호랑이를 적으로 삼는 것이나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더니 힐러리가 서둘러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혹시 이곳에 일본계는 없겠지요? 제 비유를 트집 잡을지 몰라서요.”
# 고려시 버스터미널은 언제나 붐빈다. 특히 일요일 오후 버스는 거의 빈자리가 없다. 주말은 고려시에서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관광객들 때문이다. 티켓을 받은 오종택이 출국 심사대로 발을 떼었을 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오 사장!”
몸을 돌린 오종택은 서둘러 다가오는 서상국을 보았다. 뒤에는 이애주가 따르고 있다. 다가선 서상국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얌마, 연락도 안 허고 가면 어떻게 혀? 하마터면 만나지도 못할 뻔했잖아.”
“곧 만날 거다.”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면서 오종택이 말을 잇는다.
“그래서 연락을 안 한 거야.”
“너 서울에 있을 거지?”
서상국이 묻자 오종택은 머리를 내저었다.
“아니, 떠날 거야.”
“어디로? 고향으로?”
“아니.”
다시 손목시계를 본 오종택이 말을 잇는다.
“신의주특구로.”
서상국이 입을 다물었고 이애주는 숨을 죽였다. 오종택이 말을 잇는다.
“거기서 중국 밀무역이 대박을 칠 거라고 한다. 한국산 전자제품을 중국에 파는 거야. 원가의 5배는 받는다고 했어. 그리고….”
힐끗 이애주에게 시선을 준 오종택이 헛기침을 했다.
“중국 아가씨를 데려와 룸살롱을 본격적으로 하는 거다. 중국에서 여자들이 무더기로 몰려올 것이라고 하는구먼. 어쨌든….”
다시 손목시계를 본 오종택이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선수를 치는 거야. 그래야 돈을 만진다고. 내가 꼭 신의주에서는 한탕할 거다.”
오종택이 뒷모습을 보이면서 심사대 쪽으로 사라지자 서상국이 길게 심호흡을 했다.
“저렇게 해서 돈들을 번 거여. 저것이 바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이애주는 눈을 가늘게 떴는데 알 듯 말 듯한 표정이 되어 있다. 어깨를 늘어뜨린 서상국이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씨발놈, 겨우 총살 집행을 면제받고 알몸으로 추방당허는 놈이 벌써 신의주행을 계획허고 있었구먼.”
“잘된 일이지.”
그 난리통을 보고받은 이명박이 딱 한마디로 그렇게 코멘트했다는 ‘동아일보’ 보도가 나가자 제2자유로까지 막혔다. 장롱 속, 장판 밑에 묻어둔 돈을 다 꺼낸 것이다. 이러니 경기가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고려시에 이어 파주시까지 ‘황금의 땅’이 되었다.
2011년 1월 7일 대한연방 대통령 이명박이 연두성명을 발표한다. 한국 3대 방송인KBS, SBS, MBC와 북한 평양방송이 동시 중계를 한다. 오전 10시 정각, 이명박이 화면에 나타나자 서울역 대합실 안 대형 TV 앞에 수백 명이 운집했다. 오가는 사람도 드문 것이 열차도 안 타려는 것 같다. 이명박이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한반도 동포 여러분, 북조선과 남조선 인민 여러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민 여러분.”
그렇게 한바탕 ‘명칭’만을 부르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시청자를 보았다. 그러고는 말을 잇는다.
“저는 지금부터 여러분을 대한연방 국민이라고 부르겠습니다.”
TV를 보던 정세균 민주당 의원이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곧 통일이 되겠군.”
“운이 맞아떨어진 거지요.”
20년간 정세균의 선거참모를 지낸 윤달중이 TV에서 시선을 떼고 말했다. 국회 의원회관의 정세균 의원실 안이다. 리모컨으로 TV 볼륨을 줄인 정세균이 정색하고 윤달중을 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이명박의 운이 맞아떨어진 것이 아냐.”
윤달중의 시선을 받은 정세균이 말을 잇는다.
“이명박의 용기와 신념에 운이 따라붙은 거지.”
“그렇습니까?”
“소신을 갖고 밀어붙였어. 광우병 시위 때 노 대통령한테 달려가 무릎 꿇고 도와달라고 애걸할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소문으로는 빅딜을 했다던데요.”
“어쨌든 몸을 던져서 저렇게 이룬 거야.”
그러자 윤달중이 쓴웃음을 짓는다.
“이명박 팬이 되신 겁니까?”
“당연하지.”
다시 TV 볼륨을 높인 정세균이 똑바로 윤달중을 보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팬이 되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입맛을 다신 정세균이 말을 잇는다.
“야당도 있어야 이명박이 더 빛나는 법이라고.”
# “군이 문제입니다.”
장성택이 불쑥 말했지만 김정일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주석궁 휴게실 안이다. 이곳은 대형 TV가 설치돼 있는 데다 집무실과 가까워 김정일이 자주 찾는다. 장성택이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제4군단 사건 이후 중국파들이 조심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잠자코 TV만 보았다. 이명박의 연두성명이 끝나가는 중이다. 연두성명에서 이명박은 한민족의 번영과 평화를 강조했다. 자신에 찬 표정이었고 내용이었다. 그때 머리를 돌린 김정일이 장성택을 보았다.
“이대로 두면 북조선뿐 아니라 대한연방이 위험해져.”
방 안에는 둘뿐이다. 10m쯤 뒤쪽 벽에 호위장교 한 명이 붙어서 있고, 앞쪽 스탠드에 여종사원 두 명이 대기하고 있을 뿐이다. 긴장한 장성택은 눈만 껌벅였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네 짐이 무겁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위원장 동지.”
“군 일각에선 나에게 북조선을 팔아먹었다고 하는 놈들도 있을 거야.”
“….”
“모두 제 기득권만 챙기는 놈들이지. 그놈들한텐 인민은 물론, 조국도 없다.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중국에 조국과 인민도 팔아먹을 놈들이지.”
“명단을 작성해놓았습니다. 몸통부터 하나씩 처리하겠습니다.”
“그놈들은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 그런 수단으로는 위험해.”
눈을 치켜뜬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몸통 하나는 자르고 또 하나는 승진시키는 방법을 써라. 그래서 자중지란이 일어나도록. 누가 배신자인 줄 모르도록 해. 그러면 겁이 나서 서로 동지를 고발하게 될 것이다.”
김정일의 두 눈이 번들거렸으므로 장성택은 입안의 침을 삼켰다.
# 동북삼성(東北三省)이란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을 일컫는다. 한반도 북쪽에 위치한 성으로, 그중 지린성에 옌볜조선족 자치주가 있다. 중국은 동북삼성을 중심으로 이른바 동북공정을 추진해왔는데, 그것을 한국 측은 역사왜곡으로 받아들였다. 발해는 물론 고구려까지 중국의 한 지방으로 편입한 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역사란 곧 그 민족, 국가의 기록이다. 증명서나 같다. 고구려가 중국 역사에 편입되면 평양성도 중국 지방정부 격이 된다. 그 동북공정이 발전해 지린성 옌볜의 조선족 동포들 사이에서 곧 북한이 중국의 조선성(朝鮮省)이 되리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던 것이다.
2011년 1월 7일 오후 4시 반, 오늘도 베이징의 이화원 근처 안가에서 후진타오가 두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 간사 왕휘안과 부주석 시진핑이다. 왕휘안이 말했다.
“김정일은 곧 친중(親中)파 장군들을 숙청할 것입니다. 노련한 인물이니만치 자중지란을 일으켜 결속을 못 하게 하겠지요. 군을 숙청하고 난 뒤에는 당을 개편할 것입니다.”
왕휘안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간사로 군 실력자다. 77세지만 아직 정정했고 3년 전까지 후방군 총사령직을 맡았던 군 원로다. 왕휘안의 말이 이어졌다.
“이명박의 대한연방이 발족하면 중국은 턱 밑에 종양 덩어리 같은 혹을 매달고 있는 셈이 됩니다. 중국 지도자들은 그 정도가 되도록 방치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테고요.”
“왕 간사께서 모르시는 말씀인데….”
입맛을 다신 후진타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우리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이 이명박을 시켜 제4군단 지휘부를 폭사하는 강수를 두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소?”
“지금이라도 손을 써야 합니다. 늦으면 천추의 한이 될 것입니다.”
왕휘안이 말했을 때 시진핑이 묻는다.
“왕 간사께선 복안이 있으십니까?”
“한반도 통일에 위협을 느끼는 건 중국만이 아닙니다. 일본은 배에 떨어지려는 불덩이를 보는 심정일 것입니다.”
“허어, 배에 떨어지는 불덩이라.”
이 와중에도 후진타오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일본 열도를 누워 있는 사람에 비유하면 그런 모습이 될 것이다. 그때 왕휘안이 정색하며 말했다.
“또한 북한 핵을 껴안은 채 동북아의 새 세력으로 등장하려는 한국이 미국으로서도 불편한 존재입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반쪽 국가로 남아 있는 것이 더 낫거든요.”
“그렇지요.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으로 이미 태평양방어선을 만들어놓았으니까요.”
시진핑이 거들었다. 이 방어선은 오래되었다. 1949년 필리핀과 오키나와, 일본 본토를 잇는 이른바 에치슨라인이 설정되면서 대륙에 붙은 한반도는 미국의 태평양방위선에서 제외되었다. 그 후 남한에서 미군이 철수하자 안심한 북한군이 남침해온 것이다. 그것이 바로 6·25 전쟁이었다. 왕휘안이 후진타오와 시진핑을 번갈아보았다.
“따라서 국제적인 분위기는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동지들.”
# 2011년 1월 11일, 신의주특구 장관으로 세우리당 정몽준 의원이 임명되었다고 대한연방 홍보수석 유근종이 발표했다. 남북한 통치자인 이명박과 김정일의 합의에 의한 임명이다. 또한 신의주특구는 의주군, 용천군, 피현군, 삭주군 일부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지역으로 평안북도 넓이의 8분의 1에 달했다. 조·중 국경 지역에 고려시만한 넓이의 경제특구가 탄생한 것이다. 현재 상주인구는 200만 명. 이곳에 한국 이주민 50만 명을 더 받아들여 인구 500만 명의 대규모 중공업도시를 건설할 예정이다.
“신의주특구 장관으로 임명된 소감이 어떻습니까?”
발표 직후 장관 취임 인사를 마치자 한 기자가 정몽준에게 물었다. 프레스센터 대회의장 안이다. 질문을 받은 정몽준이 씩 웃었다.
“기쁩니다. 최선을 다해 신의주특구를 세계 제1의 중공업도시로 만들겠습니다.”
그때 기자 한 명이 다시 묻는다.
“특구 장관에 임명됨으로써 제18대 대선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되신 겁니까?”
그 순간 대회장 안의 분위기가 굳어졌다. 예민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정몽준은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그때 정몽준이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저는 지금 신의주특구를 건설하는 것 외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 그 장면을 TV로 보던 전 대통령이자 국가원로인 김영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18대 대선 따위는 암 것도 아니다.”
옆쪽에 앉아 있는 김현철이 시선만 주었고 김영삼의 말이 이어졌다.
“제2대 대선을 노려야 하는 기라.”
“제2대라니요?”
김현철이 묻자 김영삼은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렸다.
“대한연방 대통령 말이다.”
“아아!”
“이명배기가 1대고 제2대는 선거를 해야 될 기라.”
“그렇군요.”
“정몽준이는 신의주에서 기반을 닦고 와서 제2대 대한연방 대통령에 나설 것이다.”
“정동영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지.”
“박근혜는 제18대 대선에 나갔다가 대한연방 대통령으로 올라가려고 하겠지요?”
“당연하지.”
“재미있게 되겠습니다, 아버님.”
“정치하는 놈들한테는 기회가 많아지는 셈이지.”
입맛을 다신 김영삼이 말을 잇는다.
“이명배기가 자리를 많이 맹글어놓았다. 잘하는 짓이다.”
# 랴오닝성 선양에 위치한 선양군구(瀋陽軍區) 소속 39집단군 병력이 나진·선봉지구에 진입한 것은 2011년 1월 14일이다. 39집단군의 제115 보병사단, 제116 기계화보병사단과 제3 장갑여단, 방공·포병·공병여단 등 병력 7만여 명이 장갑전차 수백 대와 함께 진입해온 것이다. 물론 나진·선봉지구는 북한과의 조약에 따라 중국에 50년간 임차된 상태다. 그러나 군부대 투입은 ‘특별한 사태’에 한한 것이어서 북한은 물론 한국 측도 긴장했다. 즉각 반응한 것은 북한이다. 평양방송의 ‘아줌마’ 아나운서가 등장해 말했다.
“나진·선봉에 중국군이 투입된 것은 조약 위반이다. 중국군은 즉각 철수할 것을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명의로 엄중히 경고하안다.”
지금 이명박과 이회창,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TV로 ‘아줌마’를 보고 있다. 이명박이 볼륨을 줄이라는 손짓을 하고 나서 말했다.
“이건 신의주특구에 대한 중국 측 반응인데,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중국은 대한연방이 한국 측 주도로 진행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입니다.”
김성환이 대답하자 김관진도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국은 북한 핵을 폐기하기 전에 대한연방이 발족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사사건건 한국군의 장비 도입과 훈련에 제동을 거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 또한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남북한이 통일하면 핵을 보유한 거대한 군사 대국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물론, 일본과 미국까지 견제하고 나섰다. 그때 이명박의 시선을 받은 김성환이 말했다.
“푸틴 총리는 2월 초 상호방위조약을 맺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 중에 1차 협상단을 출발시킬 예정입니다.”
이명박과 이회창의 시선이 마주쳤고 둘은 거의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적의 적은 우군이 된다. 이는 고금의 역사가 증명한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나라를 돕는 국가는 없다. 바탕에는 타산이 깔린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은 비밀리에 러시아와 상호방위조약을 추진했고 2월에 조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대한연방이 맺는 첫 군사동맹, 상호방위조약인 것이다. 한미 간 군사동맹은 남한과 미국과의 조약이었다. 이명박이 차분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조선 말기 강대국의 노리개가 되었던 때하고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고는 이명박이 주위를 둘러보았고, 가장 먼저 시선을 받은 이회창이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우리를 가지고 논다고 생각했겠지만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 “막을 방법은?”
하고 오바마가 묻자 국가안보보좌관 도닐런이 머리를 내저었다.
“막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대통령 각하.”
“그럼 놓아두라는 말입니까?”
짜증난 목소리로 오바마가 묻자 국무부 장관 힐러리가 부드럽게 말한다.
“대통령 각하,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보시지요.”
집무실 안의 시선이 모두 힐러리에게로 모아졌다. 좁은 집무실 안 소파와 의자 이곳저곳에 장관, 보좌관, 각 군 사령관은 물론, 오늘은 부통령 조 바이든과 국방부 장관 로버트 게이츠까지 참석해 걸터앉아 있다. 힐러리가 말을 잇는다.
“지금 우리가 긴장하는 건 일본을 태평양방위선으로 삼는다는 선입견 때문에 생긴 강박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바마는 물론,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오늘로 대한연방과 러시아 간 상호방위조약관련 소회의가 여섯 번째 열렸다. 작년 말부터 2011년 1월 15일인 오늘까지 약 한 달 동안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여섯 번 열린 것이다. 다시 힐러리의 말이 이어졌다.
“1949년 에치슨라인이 설정되고 나서 1950년 북한이 한국을 남침했습니다. 그런데 60년 후 우리가 일본을 태평양방위선으로 삼는다는 전철을 밟자 한반도가 동요하는 것 아닙니까?”
“잠깐만.”
국방부 장관 로버트 게이츠가 나섰다.
“장관, 요점을 말해주세요. 지금 러시아와 대한연방의 군사동맹이 미국의 정책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자위책이라는 것입니다.”
차분한 표정으로 힐러리가 말을 잇는다.
“중국군이 며칠 전 나진·선봉지구에 대군을 진입시켰습니다. 우리는 일본과 연합해 북한의 핵 폐기, 독도 지역의 무력시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 처지에서는 자위책을 마련해야겠지요.”
“그런 말은 이 회의에 도움이 안 돼요, 장관.”
하고 로버트가 비난했을 때 힐러리가 머리를 내저었다.
“저는 현실적인 제안을 하는 겁니다. 미·일 공조로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본을 끌어안고 남북한 연합인 대한연방을 적으로 돌리는 건 개와 친구하려고 호랑이를 적으로 삼는 것이나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더니 힐러리가 서둘러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혹시 이곳에 일본계는 없겠지요? 제 비유를 트집 잡을지 몰라서요.”
# 고려시 버스터미널은 언제나 붐빈다. 특히 일요일 오후 버스는 거의 빈자리가 없다. 주말은 고려시에서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관광객들 때문이다. 티켓을 받은 오종택이 출국 심사대로 발을 떼었을 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오 사장!”
몸을 돌린 오종택은 서둘러 다가오는 서상국을 보았다. 뒤에는 이애주가 따르고 있다. 다가선 서상국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얌마, 연락도 안 허고 가면 어떻게 혀? 하마터면 만나지도 못할 뻔했잖아.”
“곧 만날 거다.”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면서 오종택이 말을 잇는다.
“그래서 연락을 안 한 거야.”
“너 서울에 있을 거지?”
서상국이 묻자 오종택은 머리를 내저었다.
“아니, 떠날 거야.”
“어디로? 고향으로?”
“아니.”
다시 손목시계를 본 오종택이 말을 잇는다.
“신의주특구로.”
서상국이 입을 다물었고 이애주는 숨을 죽였다. 오종택이 말을 잇는다.
“거기서 중국 밀무역이 대박을 칠 거라고 한다. 한국산 전자제품을 중국에 파는 거야. 원가의 5배는 받는다고 했어. 그리고….”
힐끗 이애주에게 시선을 준 오종택이 헛기침을 했다.
“중국 아가씨를 데려와 룸살롱을 본격적으로 하는 거다. 중국에서 여자들이 무더기로 몰려올 것이라고 하는구먼. 어쨌든….”
다시 손목시계를 본 오종택이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선수를 치는 거야. 그래야 돈을 만진다고. 내가 꼭 신의주에서는 한탕할 거다.”
오종택이 뒷모습을 보이면서 심사대 쪽으로 사라지자 서상국이 길게 심호흡을 했다.
“저렇게 해서 돈들을 번 거여. 저것이 바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이애주는 눈을 가늘게 떴는데 알 듯 말 듯한 표정이 되어 있다. 어깨를 늘어뜨린 서상국이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씨발놈, 겨우 총살 집행을 면제받고 알몸으로 추방당허는 놈이 벌써 신의주행을 계획허고 있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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