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4회째인 지산 밸리 록페스티벌(이하 밸리록)은 라디오헤드와 스톤 로지스를 라인업으로 발표한 3월 31일 저녁부터 최다 관객이 들 것으로 예상됐다. 얼리 버드 티켓 3000여 장은 2분 만에 매진됐다.
7월 27일 페스티벌 첫날, 예상은 자명한 사실이 됐다. 주최 측인 CJ E·M은 이날 입장객을 3만5000명으로 추산했다. 빅 탑 스테이지에 국내 헤드라이너였던 김창완밴드가 올라왔을 때 태양은 뜨거웠다. 하지만 그 전까지 더위를 피해 그늘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한국 록의 영원한 현역을 맞이하려고 무대 앞으로 몰려들었다. 김창완밴드는 런던올림픽 응원가로 만든 ‘아리랑’을 연주하는 것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최근 앨범에 실은 ‘금지곡’을 비롯해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너의 의미’ ‘개구쟁이’ ‘아니 벌써’ 등 산울림 명곡이 이어졌다. 더위에 눌려 있던 함성이 밤하늘 별처럼 객석에서 빛났다.
살아 돌아온 전인권에 눈물이 펑펑
김창완밴드의 공연이 끝나자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과 더불어 2008년 인디 록의 세대교체를 주도한 검정치마의 공연, 그리고 풀 밴드를 편성해 두 번째로 내한한 엘비스 코스텔로의 무대와 들국화 공연이 이어졌다.
들국화가 재결성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려한 점은 단 하나, 과연 전인권 목소리가 돌아올 수 있을까였다. 1990년대 중반 첫 재결성 공연 당시 ‘그것만이 내 세상’이나 ‘행진’의 고음부에서는 객석으로 마이크를 돌렸던 그다. 이번에 재결성하면서 최성원이 “내가 들었던 인권이 목소리 중 최고”라고 말했지만 립 서비스가 아닐까 의심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 흐르는데, 세상에! 들국화 1집에 실린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도입부에서도, 절정부에서도, 결말부에서도 전인권 목소리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들국화는 ‘제발’ ‘매일 그대와’ 같은 들국화 노래 외에 ‘사랑한 후에’(전인권) ‘제주도의 푸른 밤’(최성원) 등 솔로 시절 노래도 연주했다.
멤버 소개를 할 때 최성원은 “죽음에서 돌아온 전인권”이라고 외쳤다. 그렇다.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 김현식과 더불어 용호상박 보컬이었던 전인권. 김현식이 유일하게 질투하고 부러워했다던 전인권. 하지만 온갖 불미스러운 일로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던 전인권. 그 전인권이 불사조처럼 부활해 무대에 서 있었다. 검디검던 사자머리가 희끗한 꽁지머리로 변해 있었지만 머리를 제물 삼아 성대를 되찾은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쨍하고 깊고 우렁차게 끓었다.
들국화의 마지막 곡 ‘사노라면’이 시작됐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를 합창하는데 명치끝에서 격한 감정이 솟았다. 그 감정은 물이 돼 눈으로 쏟아져 나왔다. 공연을 수천 번 봤지만 그렇게 울컥한 건 처음이다. 더는 새파랗게 젊지 않은 자신을 자각했기 때문일까. 전인권 목소리가 ‘새파랗게 젊다’는 문장에 담긴 감정의 현신이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들국화 공연을 보려고 모인 사람들이 울었다는 것. 일반 관객뿐 아니라 뮤지션들 역시 그랬다. 나중에 들국화 얘기를 하면서 모두 펑펑 울었다고 고백했다. 그건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전설이 왜 전설인지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10대부터 40대까지 세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단 두 장의 앨범을 남기고 퇴장한 밴드를 아직까지 숭앙하는 이유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관객을 환각으로 몰아넣은 시간
2012년 7월 27일 저녁 8시 20분부터 한 시간은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감동적인 재회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두 시간은 한국 페스티벌 사상 가장 거대하고 황홀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라디오헤드 공연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빅 탑 스테이지 앞이 물샐틈없이 촘촘했다. 무대 바로 앞은 물론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기 힘든 저 뒤편, 그리고 무대 오른쪽 언덕까지 사람들로 빼곡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어떤 페스티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인파다.
불이 꺼졌다. 첫 곡으로 최근 앨범에 실은 ‘Lotus Flower’를 선택했다. 보컬 톰 요크는 레코딩 기술이 담아낼 수 없는 신비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특유의 오징어춤을 췄다. 별다른 멘트도 없이 두 시간이 흘렀다. 총 8장 앨범에서 최근 10년간 발표한 앨범 5장에 실린 노래가 세트리스트 대부분을 채웠다.
현대 대중예술에서 멀티미디어 아트의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콘서트다. 음악과 영상, 무대 설치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라디오헤드 공연은 멀티미디어 아트의 정수였다. 영상은 아티스트 얼굴을 번갈아가며 클로즈업하는 대신, 분할된 화면을 리드미컬하게 교차 배치하며 ‘사람’이 아닌 ‘소리’를 표현했다. 발광다이오드(LED)와 광섬유로 이뤄진 조명이 음악 열기에 맞춰 다양하게 변하면서 관객을 환각으로 몰아넣었다.
들국화가 감동의 끝을 찍었다면 라디오헤드는 몰입의 극치를 선사했다. 톰 요크가 앙코르 곡으로 ‘Exit Music’을 나지막이 부를 때 객석은 옆 사람의 숨소리도 들릴 만큼 정적이 흘렀다. 그의 날숨과 들숨, 그리고 그 상호작용의 결과인 목소리에만 집중하겠다는 결연함이 주위를 감돌았다. 그렇게 많은 인파가 그렇게 높은 집중력을 보이는 것을 나는 결코 본 적이 없다.
라디오헤드의 파워가 워낙 강했기 때문일까. 나머지 이틀은 첫날만큼 많은 사람이 몰리진 않았다. 그러나 훌륭한 공연이 계속됐다. 귀와 심장과 온몸 근육을 떨리게 하는 저음이 매력적인 제임스 블레이크의 공연은 무대보다는 밤하늘을 보며 듣기에 적합했다. 심야에 밸리록을 달군 이디오테잎은 보컬 없는 일렉트로니카가 어떤 록 밴드보다 화끈하게 스테이지를 불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역시 최고 순간은 스톤 로지스였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결성돼 1989년 충격의 데뷔 앨범을 내고 영국 록이 갈 길을 제시한 이들의 기적 같은 내한에 기뻐한 한국 팬들은 있는 힘껏 노래를 따라 불렀다. 1990년대 영국 3대 기타리스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존 스콰이어의 연주를 듣고 보는 내내 머릿속은 ‘미치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생각은 목이 쉴 정도의 환호성으로 바뀌어 성대에서 폭발했다.
‘I Am The Resurrection’을 끝으로 멤버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관객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공연장에도 각기 다른 차를 타고 오고, 공연 당일에도 싸웠다는 말이 전해질 만큼 불화설이 끊이지 않던 그들이다. 하지만 난생처음 온 나라에서 난생처음 경험하는 열광이 그들 사이의 앙금도 녹여버린 것일까. 모든 광경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얘들아, 인생을 꼭 치열하고 정교하게 살 필요는 없어. 좀 더 즐겁게 막 살렴. 그래도 괜찮아. 그게 바로 로큰롤이야.”
그 순간, 역대 최대 규모 페스티벌의 끝을 알리는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2012 밸리록은 그렇게 끝났다. 슈퍼소닉 페스티벌, 펜타포트 록페스티벌로 이어질 록의 계절 여름이 시작됐다.
7월 27일 페스티벌 첫날, 예상은 자명한 사실이 됐다. 주최 측인 CJ E·M은 이날 입장객을 3만5000명으로 추산했다. 빅 탑 스테이지에 국내 헤드라이너였던 김창완밴드가 올라왔을 때 태양은 뜨거웠다. 하지만 그 전까지 더위를 피해 그늘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한국 록의 영원한 현역을 맞이하려고 무대 앞으로 몰려들었다. 김창완밴드는 런던올림픽 응원가로 만든 ‘아리랑’을 연주하는 것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최근 앨범에 실은 ‘금지곡’을 비롯해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너의 의미’ ‘개구쟁이’ ‘아니 벌써’ 등 산울림 명곡이 이어졌다. 더위에 눌려 있던 함성이 밤하늘 별처럼 객석에서 빛났다.
살아 돌아온 전인권에 눈물이 펑펑
김창완밴드의 공연이 끝나자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과 더불어 2008년 인디 록의 세대교체를 주도한 검정치마의 공연, 그리고 풀 밴드를 편성해 두 번째로 내한한 엘비스 코스텔로의 무대와 들국화 공연이 이어졌다.
들국화가 재결성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려한 점은 단 하나, 과연 전인권 목소리가 돌아올 수 있을까였다. 1990년대 중반 첫 재결성 공연 당시 ‘그것만이 내 세상’이나 ‘행진’의 고음부에서는 객석으로 마이크를 돌렸던 그다. 이번에 재결성하면서 최성원이 “내가 들었던 인권이 목소리 중 최고”라고 말했지만 립 서비스가 아닐까 의심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 흐르는데, 세상에! 들국화 1집에 실린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도입부에서도, 절정부에서도, 결말부에서도 전인권 목소리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들국화는 ‘제발’ ‘매일 그대와’ 같은 들국화 노래 외에 ‘사랑한 후에’(전인권) ‘제주도의 푸른 밤’(최성원) 등 솔로 시절 노래도 연주했다.
멤버 소개를 할 때 최성원은 “죽음에서 돌아온 전인권”이라고 외쳤다. 그렇다.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 김현식과 더불어 용호상박 보컬이었던 전인권. 김현식이 유일하게 질투하고 부러워했다던 전인권. 하지만 온갖 불미스러운 일로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던 전인권. 그 전인권이 불사조처럼 부활해 무대에 서 있었다. 검디검던 사자머리가 희끗한 꽁지머리로 변해 있었지만 머리를 제물 삼아 성대를 되찾은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쨍하고 깊고 우렁차게 끓었다.
들국화의 마지막 곡 ‘사노라면’이 시작됐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를 합창하는데 명치끝에서 격한 감정이 솟았다. 그 감정은 물이 돼 눈으로 쏟아져 나왔다. 공연을 수천 번 봤지만 그렇게 울컥한 건 처음이다. 더는 새파랗게 젊지 않은 자신을 자각했기 때문일까. 전인권 목소리가 ‘새파랗게 젊다’는 문장에 담긴 감정의 현신이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들국화 공연을 보려고 모인 사람들이 울었다는 것. 일반 관객뿐 아니라 뮤지션들 역시 그랬다. 나중에 들국화 얘기를 하면서 모두 펑펑 울었다고 고백했다. 그건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전설이 왜 전설인지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10대부터 40대까지 세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단 두 장의 앨범을 남기고 퇴장한 밴드를 아직까지 숭앙하는 이유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관객을 환각으로 몰아넣은 시간
2012년 7월 27일 저녁 8시 20분부터 한 시간은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감동적인 재회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두 시간은 한국 페스티벌 사상 가장 거대하고 황홀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라디오헤드 공연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빅 탑 스테이지 앞이 물샐틈없이 촘촘했다. 무대 바로 앞은 물론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기 힘든 저 뒤편, 그리고 무대 오른쪽 언덕까지 사람들로 빼곡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어떤 페스티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인파다.
불이 꺼졌다. 첫 곡으로 최근 앨범에 실은 ‘Lotus Flower’를 선택했다. 보컬 톰 요크는 레코딩 기술이 담아낼 수 없는 신비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특유의 오징어춤을 췄다. 별다른 멘트도 없이 두 시간이 흘렀다. 총 8장 앨범에서 최근 10년간 발표한 앨범 5장에 실린 노래가 세트리스트 대부분을 채웠다.
현대 대중예술에서 멀티미디어 아트의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콘서트다. 음악과 영상, 무대 설치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라디오헤드 공연은 멀티미디어 아트의 정수였다. 영상은 아티스트 얼굴을 번갈아가며 클로즈업하는 대신, 분할된 화면을 리드미컬하게 교차 배치하며 ‘사람’이 아닌 ‘소리’를 표현했다. 발광다이오드(LED)와 광섬유로 이뤄진 조명이 음악 열기에 맞춰 다양하게 변하면서 관객을 환각으로 몰아넣었다.
들국화가 감동의 끝을 찍었다면 라디오헤드는 몰입의 극치를 선사했다. 톰 요크가 앙코르 곡으로 ‘Exit Music’을 나지막이 부를 때 객석은 옆 사람의 숨소리도 들릴 만큼 정적이 흘렀다. 그의 날숨과 들숨, 그리고 그 상호작용의 결과인 목소리에만 집중하겠다는 결연함이 주위를 감돌았다. 그렇게 많은 인파가 그렇게 높은 집중력을 보이는 것을 나는 결코 본 적이 없다.
라디오헤드의 파워가 워낙 강했기 때문일까. 나머지 이틀은 첫날만큼 많은 사람이 몰리진 않았다. 그러나 훌륭한 공연이 계속됐다. 귀와 심장과 온몸 근육을 떨리게 하는 저음이 매력적인 제임스 블레이크의 공연은 무대보다는 밤하늘을 보며 듣기에 적합했다. 심야에 밸리록을 달군 이디오테잎은 보컬 없는 일렉트로니카가 어떤 록 밴드보다 화끈하게 스테이지를 불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역시 최고 순간은 스톤 로지스였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결성돼 1989년 충격의 데뷔 앨범을 내고 영국 록이 갈 길을 제시한 이들의 기적 같은 내한에 기뻐한 한국 팬들은 있는 힘껏 노래를 따라 불렀다. 1990년대 영국 3대 기타리스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존 스콰이어의 연주를 듣고 보는 내내 머릿속은 ‘미치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생각은 목이 쉴 정도의 환호성으로 바뀌어 성대에서 폭발했다.
‘I Am The Resurrection’을 끝으로 멤버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관객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공연장에도 각기 다른 차를 타고 오고, 공연 당일에도 싸웠다는 말이 전해질 만큼 불화설이 끊이지 않던 그들이다. 하지만 난생처음 온 나라에서 난생처음 경험하는 열광이 그들 사이의 앙금도 녹여버린 것일까. 모든 광경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얘들아, 인생을 꼭 치열하고 정교하게 살 필요는 없어. 좀 더 즐겁게 막 살렴. 그래도 괜찮아. 그게 바로 로큰롤이야.”
그 순간, 역대 최대 규모 페스티벌의 끝을 알리는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2012 밸리록은 그렇게 끝났다. 슈퍼소닉 페스티벌, 펜타포트 록페스티벌로 이어질 록의 계절 여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