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에 충실한 개인(충동 투자자)은 자신이 손해를 볼 뿐 아니라 좋은 상품을 망가뜨려 동료 투자자에게도 손해를 끼친다. 본의는 아니더라도 물귀신 같은 구실을 하는 셈이다. 남의 잘못 때문에 손해 보지 않으려면 이런 물귀신을 피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물귀신은 유형이 매우 다양하므로, 소득이나 교육 수준 등으로 구분해내기가 매우 어렵다. 예를 들면, 재테크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박사 출신 서울 강남 부자도 물귀신일지 모른다는 말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도, 공룡 같은 야성적 본능 앞에선 흔들리는 갈대이자 물귀신이기 십상이다.
어떤 방법을 써야 물귀신을 피할 수 있을까. 물귀신의 공통점은 “외롭게 성공하기보다 함께 망하는 쪽을 훨씬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특징은 외형적 조건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타난다. 스스로 판단하기를 지극히 싫어하며, 소위 전문가의 말이나 매스컴에 바싹 귀 기울이고, 불티나게 팔리는 유행 상품을 부지런히 쫓아다닌다.
신비로움이 풍기는 묘한 매력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미래에 물귀신이 몰려들 만한 상품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펀드를 기억할 것이다. 이들 나라 경제가 한창 잘나갈 때 브릭스 펀드를 발매하자 불티나게 팔렸다. 사람들은 이들 나라의 장밋빛 전망에 매료돼 앞뒤 가리지 않고 몰려들었다. 근사한 상품이 등장하면서 이 광풍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름도 멋진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로, “돈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투자할 테니 구체적인 내용은 묻지 마라”는 펀드였다. 시장이 한창 달아오른 시점에 나온 이 신비로운 펀드가 사람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했는지, 무려 4조 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으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투자자가 아니라 금융회사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말이다.
이 상품을 기획한 이는 십중팔구 투자의 역사에 통달한 사람일 것이다. 300년 전 영국을 휩쓸던 기법을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남해회사 거품이 한창 부풀어 오르던 당시 이른바 ‘투자 전문가’는 온갖 기기묘묘한 사업을 내세워 막대한 투자자금을 끌어모았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엄청난 이득을 올리는 사업이지만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없는 회사’였다. 영국 사람은 그 신비로움에 매료됐다.
인사이트펀드는 시장의 흐름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읽는 데 기막힌 통찰력을 발휘했다. 시장을 읽지 못한 탓에 거품이 절정에 이른 중국에 몰빵했고, 거품이 꺼지자 투자자에게 손실을 안겨줬다. 4년이 흘렀는데도 아직 원금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이 상품은 금융회사에겐 기막힌 효자 상품이다. 원금 회복을 학수고대하는 비자발적 장기투자자로부터 연 3%가 넘는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기기 때문이다. 이 펀드 하나에서 나오는 수익이 웬만한 자산운용사의 이익 전부와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 ‘고객의 쪽박’과 ‘금융회사의 대박’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기념비적인 상품이다.
‘키코(KIKO)’역시 함께 망하고 싶어 하는 군중심리가 잘 드러난 상품이다. 당시 환율 흐름에 전전긍긍하던 중소기업 실무자들은 이 난해한 상품을 놓고 무척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다른 중소기업이 속속 가입하자, 선택 대안이 저절로 정리됐다. 홀로 가입하지 않고 버티다가 자기 회사만 환율에 타격을 입으면 실무자는 무척이나 난감한 처지가 된다. 반면 다른 중소기업과 함께 가입한다면, 설령 손실을 보더라도 실무자 개인 잘못이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은행의 직간접적 압력이라는 면피 거리도 있지 않은가.
세계를 한 방에 흔들어버린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도 비슷한 사례다. 부채담보부증권(CDO)이 뭔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는 안 가지만, 한 푼이라도 아쉬운 투자자에게는 높은 수익률이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게다가 세계 굴지의 신용평가 회사가 AAA 등급을 부여했고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이 앞다퉈 사들였다. 망한다면 다 함께 망할 상품이고, 망해도 내 책임은 아닌 상품으로 보였을 것이다.
공동 책임은 결국 무책임
금융회사는 대중을 끌어들여야 돈을 번다. 그러나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기란 여간 어렵지 않으며, 소통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따라서 평소에는 대중의 관심을 예의주시하다가, 뭔가 뚜렷한 관심 대상이 떠오를 때를 이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매스컴에서 연일 요란하게 보도하고, 사람이 불안감을 느끼거나 갈망하는 상태에 이를 때 야성적 본능을 적당히 자극하는 것이다. 마치 문제가 해결될 듯한 꿈을 심어주면 쉽게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대중이 다 함께 문제 해결을 고민하고 꿈꾸는 시점이란, 대개 거품이 커질 대로 커져서 붕괴가 코앞에 닥친 시점이다. 금융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형성되는데, 대부분 사람이 문제 해결을 꿈꾸면서 샀다면 더는 사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점이 금융회사에는 절호의 기회지만, 투자자에게는 쪽박을 차게 될 위험천만한 순간이다.
요즘 대중이 하는 고민은 무엇일까.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 걱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물가는 무섭게 상승하는데 모아둔 돈은 넉넉지 않고, 쥐꼬리만 한 은행 이자로는 물가상승분도 감당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꿈꾸는 상품이라면 ‘죽을 때까지 높은 이자를 안정적으로 주는 상품’ 아니겠는가. 요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펀드 중 하나가 바로 월 지급식 펀드인데, 일부 금융회사는 심지어 연금형 펀드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높은 이자를 안정적으로 받겠다는 생각은 크고 단 참외를 먹겠다는 생각과 같다. 대개 큰 참외는 달지 않고, 단 참외는 작아서 양에 차지 않는다. 크고 단 참외는 찾기 어려우며, 설령 찾더라도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수익성과 안전성은 이렇듯 상충관계다. 높은 이자를 받으려면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안전을 확보하려면 낮은 이자에도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이자와 위험 사이에서 절충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이자와 위험 중 어디에 관심을 둘까. 당연히 이자다. 매달 받는 이자는 바로 피부에 와 닿는다. 위험은 일종의 확률 개념이다. 확률 개념은 문명이 발달한 근대에야 나온 어려운 개념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당장 배고픈 사람에게는 사치스러운 용어일 뿐이다. 흔히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한다. 한 푼이라도 높은 이자가 아쉬운 사람에게 위험은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일 뿐이다.
더 높은 이자를 추구하면서 위험을 계속 높이다 보면 저축은행 후순위채권에도 손을 댄다. 그래도 불안감 때문에 직원을 붙들고 이 저축은행이 안전하냐고 물어본다. 정말로 궁금해서가 아니라,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고민을 해결할 지혜를 사심 없이 나눠주는 사람이 드물다. 다만 거장이 남긴 투자의 고전은 이런 지혜를 가득 담았다.
*이건은 은행에서 펀드매니저로 국내 주식과 외국 채권 및 파생상품을 거래했고, 증권회사에서 트레이딩 시스템 관련 업무도 했다. 지금은 주로 투자 관련 고전을 번역한다.
어떤 방법을 써야 물귀신을 피할 수 있을까. 물귀신의 공통점은 “외롭게 성공하기보다 함께 망하는 쪽을 훨씬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특징은 외형적 조건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타난다. 스스로 판단하기를 지극히 싫어하며, 소위 전문가의 말이나 매스컴에 바싹 귀 기울이고, 불티나게 팔리는 유행 상품을 부지런히 쫓아다닌다.
신비로움이 풍기는 묘한 매력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미래에 물귀신이 몰려들 만한 상품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펀드를 기억할 것이다. 이들 나라 경제가 한창 잘나갈 때 브릭스 펀드를 발매하자 불티나게 팔렸다. 사람들은 이들 나라의 장밋빛 전망에 매료돼 앞뒤 가리지 않고 몰려들었다. 근사한 상품이 등장하면서 이 광풍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름도 멋진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로, “돈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투자할 테니 구체적인 내용은 묻지 마라”는 펀드였다. 시장이 한창 달아오른 시점에 나온 이 신비로운 펀드가 사람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했는지, 무려 4조 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으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투자자가 아니라 금융회사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말이다.
이 상품을 기획한 이는 십중팔구 투자의 역사에 통달한 사람일 것이다. 300년 전 영국을 휩쓸던 기법을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남해회사 거품이 한창 부풀어 오르던 당시 이른바 ‘투자 전문가’는 온갖 기기묘묘한 사업을 내세워 막대한 투자자금을 끌어모았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엄청난 이득을 올리는 사업이지만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없는 회사’였다. 영국 사람은 그 신비로움에 매료됐다.
인사이트펀드는 시장의 흐름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읽는 데 기막힌 통찰력을 발휘했다. 시장을 읽지 못한 탓에 거품이 절정에 이른 중국에 몰빵했고, 거품이 꺼지자 투자자에게 손실을 안겨줬다. 4년이 흘렀는데도 아직 원금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이 상품은 금융회사에겐 기막힌 효자 상품이다. 원금 회복을 학수고대하는 비자발적 장기투자자로부터 연 3%가 넘는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기기 때문이다. 이 펀드 하나에서 나오는 수익이 웬만한 자산운용사의 이익 전부와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 ‘고객의 쪽박’과 ‘금융회사의 대박’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기념비적인 상품이다.
‘키코(KIKO)’역시 함께 망하고 싶어 하는 군중심리가 잘 드러난 상품이다. 당시 환율 흐름에 전전긍긍하던 중소기업 실무자들은 이 난해한 상품을 놓고 무척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다른 중소기업이 속속 가입하자, 선택 대안이 저절로 정리됐다. 홀로 가입하지 않고 버티다가 자기 회사만 환율에 타격을 입으면 실무자는 무척이나 난감한 처지가 된다. 반면 다른 중소기업과 함께 가입한다면, 설령 손실을 보더라도 실무자 개인 잘못이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은행의 직간접적 압력이라는 면피 거리도 있지 않은가.
세계를 한 방에 흔들어버린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도 비슷한 사례다. 부채담보부증권(CDO)이 뭔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는 안 가지만, 한 푼이라도 아쉬운 투자자에게는 높은 수익률이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게다가 세계 굴지의 신용평가 회사가 AAA 등급을 부여했고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이 앞다퉈 사들였다. 망한다면 다 함께 망할 상품이고, 망해도 내 책임은 아닌 상품으로 보였을 것이다.
공동 책임은 결국 무책임
금융회사는 대중을 끌어들여야 돈을 번다. 그러나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기란 여간 어렵지 않으며, 소통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따라서 평소에는 대중의 관심을 예의주시하다가, 뭔가 뚜렷한 관심 대상이 떠오를 때를 이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매스컴에서 연일 요란하게 보도하고, 사람이 불안감을 느끼거나 갈망하는 상태에 이를 때 야성적 본능을 적당히 자극하는 것이다. 마치 문제가 해결될 듯한 꿈을 심어주면 쉽게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대중이 다 함께 문제 해결을 고민하고 꿈꾸는 시점이란, 대개 거품이 커질 대로 커져서 붕괴가 코앞에 닥친 시점이다. 금융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형성되는데, 대부분 사람이 문제 해결을 꿈꾸면서 샀다면 더는 사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점이 금융회사에는 절호의 기회지만, 투자자에게는 쪽박을 차게 될 위험천만한 순간이다.
요즘 대중이 하는 고민은 무엇일까.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 걱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물가는 무섭게 상승하는데 모아둔 돈은 넉넉지 않고, 쥐꼬리만 한 은행 이자로는 물가상승분도 감당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꿈꾸는 상품이라면 ‘죽을 때까지 높은 이자를 안정적으로 주는 상품’ 아니겠는가. 요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펀드 중 하나가 바로 월 지급식 펀드인데, 일부 금융회사는 심지어 연금형 펀드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높은 이자를 안정적으로 받겠다는 생각은 크고 단 참외를 먹겠다는 생각과 같다. 대개 큰 참외는 달지 않고, 단 참외는 작아서 양에 차지 않는다. 크고 단 참외는 찾기 어려우며, 설령 찾더라도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수익성과 안전성은 이렇듯 상충관계다. 높은 이자를 받으려면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안전을 확보하려면 낮은 이자에도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이자와 위험 사이에서 절충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이자와 위험 중 어디에 관심을 둘까. 당연히 이자다. 매달 받는 이자는 바로 피부에 와 닿는다. 위험은 일종의 확률 개념이다. 확률 개념은 문명이 발달한 근대에야 나온 어려운 개념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당장 배고픈 사람에게는 사치스러운 용어일 뿐이다. 흔히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한다. 한 푼이라도 높은 이자가 아쉬운 사람에게 위험은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일 뿐이다.
더 높은 이자를 추구하면서 위험을 계속 높이다 보면 저축은행 후순위채권에도 손을 댄다. 그래도 불안감 때문에 직원을 붙들고 이 저축은행이 안전하냐고 물어본다. 정말로 궁금해서가 아니라,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고민을 해결할 지혜를 사심 없이 나눠주는 사람이 드물다. 다만 거장이 남긴 투자의 고전은 이런 지혜를 가득 담았다.
*이건은 은행에서 펀드매니저로 국내 주식과 외국 채권 및 파생상품을 거래했고, 증권회사에서 트레이딩 시스템 관련 업무도 했다. 지금은 주로 투자 관련 고전을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