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 년간 뚝심 있게 자리를 지켜온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 많은 시청자의 아쉬움 속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켰고, 평균 시청률이 15%를 웃돌 만큼 사랑을 받았지만 경기 불황의 여파로 최근 3~4개월 동안 1~2개의 광고만 붙는 상황이 이어지자 이번 봄 개편에서 폐지 대상이 된 것이다.
이 드라마는 결혼생활에서 흔히 겪게 되는 소소한 문제부터 ‘과연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충격적인 소재까지 다뤘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 부부들의 교과서 같은 구실을 했다. 수많은 아침드라마, 혹은 ‘막장’ 드라마에서 다룰 법한 이야기를 1시간 분량으로 압축 전개해 시청자들은 금요일마다 다양한 주제의 인생 스토리를 만날 수 있었다.
소재 공모를 하는 ‘단막극’이라는 점 때문에 픽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꽤 있었지만 제작진은 실화에서 오는 ‘리얼리티’야말로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초기에는 변호사 사무실이나 가정법률상담소 등을 통해 실제 이혼 사례를 수집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부터는 시청자가 직접 올린 사연이 많아졌다. 그중 아이템을 채택하면 개별적으로 연락해 집중 취재를 하고 비슷한 사연이 있으면 함께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충격적인 소재 다뤄
여성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 사이트의 상담방이나 언론의 기사 또한 중요한 소스. 그러다 보니 우연히 유명인의 스캔들과 비슷한 사연이 방송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현정 사례를 연상시킨 제265화 ‘7년 만의 컴백’과 신정아 사건과 유사해 관심을 모은 제407화 ‘스캔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7년 동안 ‘사랑과 전쟁’의 작가로 일해온 전현미 씨에 따르면, 방송에서 다룬 사연 중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사창가에서 직업여성으로 일하다 과거를 숨기고 결혼한 뒤 평범하게 살고 있던 한 주부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지갑을 잃어버려서 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서에 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된다. 알고 보니 예전에 일하던 사창가의 포주가 그녀가 돈을 떼먹고 도망갔다고 거짓 신고를 해 수배 조치가 내려진 것. 그녀는 결백했지만 포주는 남편에게 돈을 물어내라고 협박했고 남편은 충격을 받아 가출해버렸다. 방송 후 남편이 아내를 이해하고 어서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시청자의 글이 게시판을 도배했다.
‘사랑과 전쟁’을 즐겨 본 시청자라면 어지간한 드라마 내용에는 충격을 받지 않을지 모르겠다. 현실이 드라마보다 훨씬 충격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적도 꽤 있기 때문이다. 그중 많은 사람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꼽은 작품은 지난해 8월31일 방송된 제399화 ‘씨받이 신부’다.
아버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낯선 한국 땅으로 시집온 우즈베키스탄의 19세 신부 ‘올가’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과 딸, 두 자녀도 낳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대리모가 필요한 부부에게 계획적으로 이용당한 것. 여자 쪽의 문제로 아이를 낳지 못하자 부부가 어린 외국 신부를 받아들여 아이를 둘이나 낳게 하고 아이만 뺏은 뒤 내쫓은 것이다.
‘현대판 씨받이’ 사건으로 꾸며진 제399화는 지난해 7월 모 언론을 통해 보도됐던 한 베트남 여성의 실화를 토대로 제작된 것으로 최근 사회문제가 되는 국제결혼 사기 사례 중에서도 최악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가 아이를 낳고 바로 이혼당한 24세 여성의 사연은 당시 베트남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방송에서는 좀더 극적으로 각색돼 착하고 순진한 올가가 부부 사기단에게 아이를 뺏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도둑 누명까지 쓰고 구속됐는데 이를 본 시청자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 파렴치한 부부를 찾아 구속시켜야 한다’는 글이 폭주했고, 이 사연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져나가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실제 방송 일주일 뒤 SBS ‘뉴스추적’에서는 ‘현대판 씨받이의 실태’를 방송하기도 했다.
여러 언론에 따르면, 이 베트남 여성은 한국인 부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리모가 외국인이면 친권에 대한 소송을 할 수 없다는 법의 허점 때문에 아이들을 찾지 못하고 본국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씨받이 신부’의 뒤를 잇는 충격 사연으로는 제362화 ‘여왕벌의 외출’과 제190화 ‘단체관광의 최후’가 꼽힌다. ‘여왕벌의 외출’은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에 다니는 미모의 유부녀 주희의 엽기적 남성 편력을 그린 것. ‘묻지 마 관광’에서 벌인 불장난으로 성병에 걸린 주부의 이야기인 ‘단체관광의 최후’는 그 파격적 소재만으로도 강렬하게 기억된다. 부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알려졌지만 워낙 민감한 내용이어서 제작진도 당사자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혼조정위에 시청자 참여 유도
매주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집계하는 이혼 찬성 vs 반대 투표에서 가장 높은 찬성률이 나온 방송은 99.5%를 기록한 제371화 ‘주인집 아저씨는 벨을 두 번 울린다’. 빚에 쫓기는 만년 고시생에게 빚을 갚아주는 조건으로 결혼을 제안한 돈 많은 과부가 결혼 뒤 되레 젊은 남편에게 배신당하는 내용이다. 반대로 가장 높은 이혼 반대율(88.7%)을 기록한 에피소드는 제49화 ‘춤바람’. 한편 누리꾼들의 가장 많은 참여를 이끌어낸 에피소드는 제76화 ‘왕비부인’으로 무려 25만7808명이 클릭했다.
사랑과 전쟁의 마지막 장면은 법원 이혼조정위원회실의 의자가 비어 있는 모습이었다. 더 이상 부부들이 연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제작진의 의도가 엿보인다. 지난 9년6개월간 방영되면서 일부에선 ‘이혼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매회 다양한 결혼과 이혼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부부애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는 호평도 적잖다. 드라마가 막을 내려 조정위원장 역할을 맡은 신구의 유명한 대사인 “4주 후에 뵙겠습니다”는 더 들을 수 없게 됐다. 신구는 매주 ‘4주’의 여유를 주면서 “결혼은 서로의 마음을 묶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신구의 말처럼 드라마가 막을 내린 이제, 이 세상 모든 부부가 틈날 때마다 마음의 거리를 측정해보면 어떨까.
이 드라마는 결혼생활에서 흔히 겪게 되는 소소한 문제부터 ‘과연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충격적인 소재까지 다뤘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 부부들의 교과서 같은 구실을 했다. 수많은 아침드라마, 혹은 ‘막장’ 드라마에서 다룰 법한 이야기를 1시간 분량으로 압축 전개해 시청자들은 금요일마다 다양한 주제의 인생 스토리를 만날 수 있었다.
소재 공모를 하는 ‘단막극’이라는 점 때문에 픽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꽤 있었지만 제작진은 실화에서 오는 ‘리얼리티’야말로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초기에는 변호사 사무실이나 가정법률상담소 등을 통해 실제 이혼 사례를 수집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부터는 시청자가 직접 올린 사연이 많아졌다. 그중 아이템을 채택하면 개별적으로 연락해 집중 취재를 하고 비슷한 사연이 있으면 함께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충격적인 소재 다뤄
여성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 사이트의 상담방이나 언론의 기사 또한 중요한 소스. 그러다 보니 우연히 유명인의 스캔들과 비슷한 사연이 방송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현정 사례를 연상시킨 제265화 ‘7년 만의 컴백’과 신정아 사건과 유사해 관심을 모은 제407화 ‘스캔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7년 동안 ‘사랑과 전쟁’의 작가로 일해온 전현미 씨에 따르면, 방송에서 다룬 사연 중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사창가에서 직업여성으로 일하다 과거를 숨기고 결혼한 뒤 평범하게 살고 있던 한 주부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지갑을 잃어버려서 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서에 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된다. 알고 보니 예전에 일하던 사창가의 포주가 그녀가 돈을 떼먹고 도망갔다고 거짓 신고를 해 수배 조치가 내려진 것. 그녀는 결백했지만 포주는 남편에게 돈을 물어내라고 협박했고 남편은 충격을 받아 가출해버렸다. 방송 후 남편이 아내를 이해하고 어서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시청자의 글이 게시판을 도배했다.
‘사랑과 전쟁’을 즐겨 본 시청자라면 어지간한 드라마 내용에는 충격을 받지 않을지 모르겠다. 현실이 드라마보다 훨씬 충격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적도 꽤 있기 때문이다. 그중 많은 사람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꼽은 작품은 지난해 8월31일 방송된 제399화 ‘씨받이 신부’다.
아버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낯선 한국 땅으로 시집온 우즈베키스탄의 19세 신부 ‘올가’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과 딸, 두 자녀도 낳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대리모가 필요한 부부에게 계획적으로 이용당한 것. 여자 쪽의 문제로 아이를 낳지 못하자 부부가 어린 외국 신부를 받아들여 아이를 둘이나 낳게 하고 아이만 뺏은 뒤 내쫓은 것이다.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집계하는 이혼 찬성 vs 반대 투표에 매주 많은 시청자가 참여했다.
방송에서는 좀더 극적으로 각색돼 착하고 순진한 올가가 부부 사기단에게 아이를 뺏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도둑 누명까지 쓰고 구속됐는데 이를 본 시청자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 파렴치한 부부를 찾아 구속시켜야 한다’는 글이 폭주했고, 이 사연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져나가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실제 방송 일주일 뒤 SBS ‘뉴스추적’에서는 ‘현대판 씨받이의 실태’를 방송하기도 했다.
여러 언론에 따르면, 이 베트남 여성은 한국인 부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리모가 외국인이면 친권에 대한 소송을 할 수 없다는 법의 허점 때문에 아이들을 찾지 못하고 본국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씨받이 신부’의 뒤를 잇는 충격 사연으로는 제362화 ‘여왕벌의 외출’과 제190화 ‘단체관광의 최후’가 꼽힌다. ‘여왕벌의 외출’은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에 다니는 미모의 유부녀 주희의 엽기적 남성 편력을 그린 것. ‘묻지 마 관광’에서 벌인 불장난으로 성병에 걸린 주부의 이야기인 ‘단체관광의 최후’는 그 파격적 소재만으로도 강렬하게 기억된다. 부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알려졌지만 워낙 민감한 내용이어서 제작진도 당사자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혼조정위에 시청자 참여 유도
매주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집계하는 이혼 찬성 vs 반대 투표에서 가장 높은 찬성률이 나온 방송은 99.5%를 기록한 제371화 ‘주인집 아저씨는 벨을 두 번 울린다’. 빚에 쫓기는 만년 고시생에게 빚을 갚아주는 조건으로 결혼을 제안한 돈 많은 과부가 결혼 뒤 되레 젊은 남편에게 배신당하는 내용이다. 반대로 가장 높은 이혼 반대율(88.7%)을 기록한 에피소드는 제49화 ‘춤바람’. 한편 누리꾼들의 가장 많은 참여를 이끌어낸 에피소드는 제76화 ‘왕비부인’으로 무려 25만7808명이 클릭했다.
사랑과 전쟁의 마지막 장면은 법원 이혼조정위원회실의 의자가 비어 있는 모습이었다. 더 이상 부부들이 연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제작진의 의도가 엿보인다. 지난 9년6개월간 방영되면서 일부에선 ‘이혼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매회 다양한 결혼과 이혼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부부애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는 호평도 적잖다. 드라마가 막을 내려 조정위원장 역할을 맡은 신구의 유명한 대사인 “4주 후에 뵙겠습니다”는 더 들을 수 없게 됐다. 신구는 매주 ‘4주’의 여유를 주면서 “결혼은 서로의 마음을 묶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신구의 말처럼 드라마가 막을 내린 이제, 이 세상 모든 부부가 틈날 때마다 마음의 거리를 측정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