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탄생<br>이어령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292쪽/ 1만1300원
그렇다면 현실은 어떤가? 촛불시위와 대구지하철 방화에서 시작해 남대문과 중앙청 화재로 막을 내린 불의 정권 노무현 정부든, 청계천 복원과 대운하 건설로 끝장을 보려는 물의 정권 이명박 정부든 상관없이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이 두려운 대학생들은 취업 준비에만 열을 올린다.
이렇게 창조적 인큐베이터의 기능을 상실한 대학에는 시장원리만 판친다. 지금 대학은 교육의 유용성이 유의성을 압도한다.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도 공급자와 소비자 관계로 바뀌었고, 취업과 관계 있는 도구학문 외에는 인기가 없다.
대학생들의 대화에서도 청춘이니 지성, 낭만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돈이나 부자라는 말만 나돈다. 그러니 그들의 손에 쥐어진 교양서라는 것도 당장 살아남기 위한 매뉴얼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 일색이다. 그런 책만 읽어서는 결코 상상력의 화롯불을 피울 수 없다. 이러고서 어찌 ‘베스트 원’이 아닌 ‘온리 원(only one)’이라는 독창성에 미래를 걸 수 있단 말인가?
올 3월 서울대 입학식에서 ‘떴다 떴다 비행기’라는 제목의 축사를 했다는 기사를 본 게 두 달 전이다. 축사 내용을 도입부로 삼은 새 책을 펼치고 보니 그가 현실에 대단히 분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은 냉철한 지성답게 분개의 감정을 숨기고 차분하고 간결한 어조로 젊은이들을 설득한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학문인 인문학, 특히 ‘STEP’이라 일컬어지는 사회·기술·경제·정치 활동의 수원지인 인문학에 몰두해보라고 말이다. 수원지가 마르면 문명의 발판인 스텝은 중세를 휩쓸었던 급성 전염병인 페스트로 바뀐다고 경고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970∼80년대에 대학생들이 책을 열심히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화라는 당위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였건, 자신의 정체성이나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해서였건 그들은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단계별로 학습하는 의식화의 세례를 직간접으로 받으면서 권력의 부조리나 사회의 비민주성에 대한 도전의지를 공유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가 정보기술(IT) 강국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저항의 힘을 창조의 힘으로, 갈등의 대립을 융합의 파워로 진화시키는 9개 행동지침을 내놓는다. 대학이 개방·참여·공유가 일상적으로 전개되는 웹2.0처럼 변해가기 위해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지식을 창조하고 공유하는 주체가 되어 실천해야 할 내용들이다. 그리고 지침마다 매직카드와 내재된 키워드가 제시된다. 책 한 권의 내용을 퍼즐처럼 잘 구성하는 재주는 저자만의 특장이라 할 것이다. 첫 번째 지침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가상공간이라는 창조적 상상력의 하늘을 높이 날아오르는 것이다. 물론 높이 날기 위해서는 지식과 상상력과 용기, 목숨을 건 모험과 열정이 충만해야 할 것이다.
다른 8개의 지침은 이렇다. 생각하는 물음표의 젊음과 행동하는 느낌표 젊음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야 비로소 창조적 지성이 탄생한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개미가 그려내는 곡선과 먹이를 찾은 뒤 곧장 집으로 향하는 개미의 직선에서 배우는 실수나 우연을 통한 창조성, 즉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잡아라.
유통기한이 지난 흑백의 이분법을 버리고,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한 겹눈의 시각을 가져라. 모든 다른 존재들이 만나 섞이고 통하여 전혀 다른 하나로 탄생하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의 기술을 체득하라.
균형 잡힌 육각형의 사고, 마음껏 쓰고 지울 수 있는 지우개의 사고를 연필에서 배워라. 함께 그러나 홀로 있는 창조의 외로움과 즐거움을 즐기며 젊음의 빈칸을 메워가라. 아는(知) 자는 좋아하는(好)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樂) 자만 못하니, 진정 즐길 줄 아는 그레이트 아마추어가 돼라. 생각은 글로벌로, 행동은 로컬로 할 줄 알아라.
지금 이 시대 젊은이들의 방황은 그들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젊음은 누리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그들이라고 모르지 않을 터다.
그러나 현실의 중압감이 그들을 옥죄는 바람에 험악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방황을 방치해서는 그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렵다. 소중한 지혜를 사례와 함께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이 책을 부모들이 먼저 읽고 자녀에게 권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