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 고텐바 공장.
그중에서도 일본 1위 기업인 도요타그룹은 가장 인기 있는 코스다. 도요타를 세계적 기업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도요타 생산방식(TPS·Toyota Production System)의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서다.
TPS는 생산공정에서 불필요한 과정을 생략해 제품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단축하고 최종적으로 비용절감 효과를 얻는 시스템이다.
일본 내에서 이러한 TPS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에서도 제조업계를 중심으로 TPS 관련 연수 프로그램이 붐을 일으켰다. 실제 수년간 일본 기업 연수 문화의 트렌드를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처럼 TPS 연수 경험자들의 만족도는 기대만큼 높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다수 TPS 연수 프로그램은 도요타그룹 본사와 핵심 계열사가 아닌 한두 협력업체의 일부 생산과정을 형식적으로 둘러보는 ‘관광’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장 연수 경험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TPS 기법을 무작정 적용하려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본 기업 연수 전문업체인 워너십코리아(대표 김화동)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 리코(RICOH)그룹 연수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1936년 설립된 리코그룹은 일본 사무자동화(OA)기기 업계 점유율 1위 업체로 322개 자회사와 8만1900명의 직원을 보유한 세계적 기업이다.
리코 유니테크노의 순이익 단시일에 7배 끌어올려
리코그룹은 TPS 모델을 도입, 계열사와 각 협력업체들 사정에 맞게 적용해 큰 성과를 냈다. 일본 내에서도 TPS 응용의 최고 성공 사례로 꼽힐 만큼 기업개선 결과가 탁월했다.
일본에서 10여 년 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현지 기업들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김 대표는 TPS 모델을 응용해 리코그룹의 기업개선 활동을 주도한 고도 겐지 전 리코 유니테크노 대표(현 고도경영종합연구소 소장)를 영입해 초석을 다졌다. 고도 겐지 소장은 TPS 도입과 응용 활동을 통해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던 리코 유니테크노의 순이익을 단번에 7배까지 끌어올림으로써 리코그룹 전체에 동반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한 현장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김 대표는 이런 고도 겐지 소장과의 연계를 통해 TPS 모델이 적절하게 응용, 정착된 리코그룹의 핵심 계열사와 협력업체 현장 체험이 가능한 연수 프로그램을 출시하면서 일본 내 다른 연수 프로그램과의 차별화에 나섰다.
고도 겐지 소장이 제안한 이른바 RIPS(RICOH Innovation Product System·리코의 TPS 생산방식을 응용한 혁신활동) 연수 프로그램은 고도 겐지 소장이 연수에 동행해 교육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특히 삼성전자 사장단과 간부진이 이 프로그램에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 삼성전자는 고도 겐지 소장의 노하우와 경험을 높이 사 지난해 삼성전자 LCD총괄 고문으로 임명해 자사 및 협력업체들의 기업환경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도 겐지 소장(오른쪽)과 통역으로 나선 김화동 대표가 연수 대상자들에게 일본 리코사의 기업혁신 사례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첫날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연수단 일행이 찾은 곳은 에비스야 공업㈜. 고도 겐지 소장이 리코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고문격으로 나서 중소기업 현실에 맞게 TPS와 RIPS를 적절히 접목해 성공을 거둔 대표적 회사다.
연수단은 첫 생산공정이 아니라 소비자와 가장 맞닿아 있는 최종 완성품 출하장부터 개선 작업을 펼친 에비스야 공장의 현장 실태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생산 이후 마케팅 단계에 와서야 비로소 고객을 고려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현실과는 너무 달랐던 것.
‘개선하되 돈은 들이지 않는다’는 고도 겐지 소장의 독특한 ‘현장 철학’이 생산공정 곳곳에서 묻어났다. 쓰다 남은 박스 용지를 완제품 쿠션으로 재활용하는 등의 아이디어 개선 사례에 참가자들은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둘째 날 오전 도쿄의 한 호텔에서는 고도 겐지 소장의 특강이 열렸다. 그는 이 자리에서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회사 임원과 직원 간 경영방침과 정보, 이념 공유를 통한 가치관 통일 △고객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의 개선 의지 확립 △‘리드타임’ 단축을 위한 생산방식과 작업 개선 혁신 △이른바 멀티 탤런트라고 불리는 인재나 다(多)기능공 육성 발굴 등을 RIPS 성공의 충분조건으로 꼽았다.
이날 오후에는 리코그룹의 혁신적 이미지를 대외에 알리는 창구인 리코판매㈜를 견학했다. 이 법인은 사내 오피스 환경 개선, 고객정보 안전 및 친환경활동 등을 통해 회사 이미지를 제고한 곳이다. 한국인 연수자들은 3000명이 넘는 직원 전체가 페트병 뚜껑을 모으고 사무실 쓰레기양을 ‘제로(0)’로 줄이는 등 기업개선 활동 목표의 작은 부분부터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셋째 날 오전에는 리코그룹의 대표적 사무자동화기기 생산현장인 리코 고텐바 사업소를 방문했다. 한 사람이 여러 공정을 수동으로 맡아 처리하는 셀 방식 등 다양한 생산방식이 배치된 환경과 이러한 방식들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껴 쓰고 바꿔 쓰고 … 박스 용지 하나도 재활용
생산현장 전체를 연수자들이 직접 돌아보는 과정에서 독특한 기능 및 기술자 육성 시스템과 에너지 절약 실천 사례들이 눈길을 끌었다.
오후에는 지쿠마 라이치로 전 도요타판매 노조위원장의 일본 선진기업 노사문화에 대한 특강이 마련됐다. 지쿠마 전 위원장은 도요타의 노사 협력 역사를 설명하면서 노사간 건전한 위기의식 확립과 상호간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공정한 노사관계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열쇠라고 역설했다.
연수 일정은 마지막 날 오전 리코 OA기기 부품을 제조해 공급하는 야마토 인더스트리㈜ 공장 방문으로 끝났다. 이번 연수 직전 도요타 연수 프로그램도 다녀왔다는 한 참가자는 “도요타 모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응용되고 성공을 거두게 됐는지 이번에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며 연수 프로그램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나머지 참가자들도 ‘효과 만점’이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김 대표는 이번 연수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무조건적인 ‘TPS 기법 따라하기’는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현장 상황과 문화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의 성공모델을 구체적으로 벤치마킹하려고 하는데, 솔직히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TPS 이론만 배워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사무·생산 현장 등 다양한 곳에서 과연 TPS 기법들이 어떤 식으로 응용돼 효과를 얻고 있는지를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