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군(火箭軍).’ 중국 인민해방군이 1월 1일 공개한 핵·미사일 전담 부대의 새 이름이다. 1964년 10월 첫 핵실험을 실시한 중국은 이듬해 5월 탄두를 소형화해 항공기에서 투하하는 폭발실험을 진행했고, 66년 6월 6일 기존 육·해·공군과는 별개의 핵전력 전담 부대를 창설해 ‘제2포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외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도록 지은 이 이름이 근 50년 만에 변경된 것이다.
1949년 첫 핵실험에 성공한 소련은 59년 ‘전략로켓군’을 창설해 핵과 미사일전력을 맡겼다. 2006년 1차 핵실험을 실시한 북한 역시 2012년 ‘전략로켓군’ 창설을 공개했고, 2년 뒤 ‘전략군’으로 이름을 바꿨다. 세계 최초·최대 핵 보유국인 미국은 1946년 창설한 전략공군사령부(SAC)를 거쳐 지금은 전략사령부(STRATCOM)에서 핵전력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주요 체계를 운용한다.
이렇듯 역사상 핵전력 보유에 성공한 모든 국가는 예외 없이 첫 핵실험 후 수년 이내 별도의 전략부대를 만들었다. 뒤집어 말해 이러한 군사적 운용체계를 갖춘 뒤에야 비로소 사전적 의미의 ‘작전배치’를 완료할 수 있었고, 핵무장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무도 몰래 산간벽지에 숨겨놓았다 갑자기 꺼내 쏘아 올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군사지휘구조 속에서 명확한 명령체계를 완비해야 국제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변수가 된다는 뜻이다. 여기까지 갈 수 없는 게 확실하다면, 주변국 누구도 신경 쓸 리 없다.
‘인식(perception)의 싸움’
이렇게 놓고 보면 명확한 사실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핵무장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사이의 절대적인 상관관계다. 한국이 핵무장을 선언할 경우 이어질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등 다양한 난관에 대한 논의는 일단 차치하기로 하자. 미국이 이를 용인해가며 한미동맹을 유지할 개연성이 극히 낮다는 사실 역시 무시해보자. 어렵사리 핵실험과 미사일 탑재, 전력화를 진행한 뒤 이를 운용할 부대를 ‘전략미사일사령부’라는 이름으로 창설했다고까지 가정해보자.그리고 발생한 북한과의 전면전. 평양을 향해 진격해 들어가는 한미연합군의 공세에 몰린 북한 김정은이 핵미사일 발사단추를 눌러 서울이 폭격됐다. 수십만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이미 데프콘(DEFCON)3을 훌쩍 넘어선 상황에서 전작권은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넘어가 있다. 한국군 핵무기를 관장하는 사령부 역시 이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전 후 연합사령관은 한미 양국 대통령의 통수권 지휘를 받아 전략적 결정을 수행한다. 핵무기의 사용은 그 핵심 중 핵심이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핵무장에 성공한다 해도, 실제 전쟁 수행 과정에서 미국 대통령의 동의 없이 이를 사용할 방법은 없다.
국제정치는 본질적으로 ‘인식(perception)의 싸움’이다. 한국의 핵무장이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에게 유효한 변수가 되려면, 한국이 자신의 결정에 따라 핵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그러나 전작권이 미국에 있는 현 상황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할 리 없다. 억제든 강압이든 공포의 균형이든, 핵무기의 효과에 대한 모든 의미도 유명무실해진다.
이렇듯 한국군의 전시작전 지휘체계가 지금처럼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서, 한국의 독자 핵무장과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것 사이에는 본질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핵 삼원체제(triad)로 상징되는 미국의 정교한 핵 운용체계와 비교하면, 독자 핵무장의 위력은 주변국에 오히려 불합리해 보일 수도 있다. 김정은이 핵우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한국 핵무기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전환 논의,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도
진짜 본론은 지금부터다. 한국의 핵무장 주장이 커질수록 이에 반응할 유일한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앞서의 논란을 뒤집어보면 이는 워싱턴 인사들에게 전작권을 한국에 돌려주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후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미국으로서는 통제할 방법이 사라지기 때문. 추후 전작권 전환 논의가 다시 본격화된다면 미국으로서는 2016년 한국에서 일었던 핵무장 논쟁과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동맹이 유지되는 한 전작권 전환은 영원히 불가능해지는 지름길이 열리는 셈이다.실제로 워싱턴 인사들은 2013년 전작권 전환 연기 합의와 관련해 “한국의 독자 행동을 통제할 수단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는 논리로 설명해왔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 전면전을 우려해 개입을 꺼렸던 미국은, 이후 남북의 우발충돌을 경계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가져갈 테면 가져가라”며 전작권 논의에 ‘쿨’한 태도를 보이던 워싱턴 분위기가 10여 년 만에 바뀐 배경이다. 핵무장 논의는 이러한 기류에 쐐기를 박을 공산이 크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최근 핵무장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이들이 대부분 전작권 전환 논의에서 가장 격렬히 반대해온 당사자들이라는 점이다. 2월 1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평화핵’을 주장한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대표적인 경우. 핵무장 논의를 공공연히 거론해온 일부 언론과 단체 역시 다르지 않다. 이들이 핵무장을 거론하기 시작한 시점이 전작권 전환 연기보다 앞서 있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잠시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기본적인 논리구조가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듯하다.
2월 6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F-22 등 미군 전략 자산이 신속하게 한반도에 투입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워싱턴이 한국 내부의 핵무장론을 의식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이 ‘선을 넘지 않도록’ 동맹에 제공하는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케 해주는 것이라는 해석에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일각에서 핵무장론 역시 ‘미국의 적극적인 자세를 유도하는 레버리지로서 효과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근거다. 이를테면 ‘떡 하나 더 받으려는 아이의 울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맹점이 숨어 있다. 정말로 핵을 원하는 나라는 사전에 이를 입 밖에 내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1970년대부터 미국의 양해 아래 핵연료 재처리 능력을 보유해왔고 40t 이상의 재처리 플루토늄을 상시적으로 보관하고 있지만, 핵무장이라는 말만큼은 절대 금기시하는 일본이 대표적인 경우다. 일본 정부는 67년 ‘비핵 3원칙’을 선언한 이래 핵의 군사적 이용을 금지하는 국내법을 제정했고, 94년 1차 북핵 위기 직후 ‘핵 옵션을 검토했으나 가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비밀문서를 언론에 흘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순수성’을 강조해왔다.
민족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상대를 위협하기에 더없이 좋은 카드지만 자신도 다치기 십상이다. 핵무장이라는 극단의 민족주의와 동맹이라는 집단안보 메커니즘이 양립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국제정치의 냉정하기 짝이 없는 논리를 감안하면, 잠깐의 인기나 정서에 취해 함부로 이 칼을 꺼내 드는 건 위험천만한 행동에 불과하다. 그 칼날이 결국 겨누는 것은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권이기 때문이다. 핵무장을 말하지 않는 이들은 바보라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미군 전술핵 재배치, 한다면 어떻게?▼ B61-3 탄두 오산공군기지 인근 배치가 최대치
1980년대 미국 의회 자료에 따르면, 당시 주한미군이 운용했던 전술핵전력의 총규모는 핵폭탄 60개와 9인치 대포용 탄두 40개, 155mm 대포용 탄두 30개, 핵 지뢰 21개 수준이었다. 미 육군이 경기 의정부 근처 도봉산 탄약창에 전진배치용 핵무기 저장소를 유지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기억할 것은 핵을 대포로 쏜다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지금은 당시의 전술핵전력 대부분이 폐기됐다는 사실. 예컨대 2000년대 이후 미군이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전술핵탄두인 B61-3은 0.3kt부터 170kt까지 다양한 파괴력 옵션을 가졌으나 주로 B-52와 F-15E 같은 항공기에 장착한다. 2007년까지 200기가 작전배치돼 있었고 186기의 재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미국 측 자료로 확인되는 만큼, 한반도에 들여올 여유분도 충분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현실적으로 가장 개연성 높은 전술핵 재반입 시나리오는 2014년부터 F-15E 전력이 순환배치되고 있는 오산공군기지 인근에 B61-3 탄두를 상시배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의 조밀한 방공망을 감안할 때 미군이 실제로 이 탄두를 사용할 개연성이 높지 않다는 것. 한반도에서 전술핵이 철수된 1991년 이후 북한 지역에 대한 전술핵 보복 공격 임무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시모어존슨 기지에 주둔 중이던 제4전투비행단으로 이관됐지만, 98년 실시된 비행훈련 결과를 다룬 문서는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대신 미군 측이 주로 검토해온 시나리오는 태평양에 배치된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에서 전술핵탄두가 탑재된 트라이던트 D5 미사일을 발사하는 방식. 명령 후 13분 이내 발사가 가능하고 요격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결국 앞서 본 대로 오산공군기지에 전술핵탄두를 배치한다 해도 이는 ‘우리 땅에도 핵이 있다’는 심리적 안도감을 동맹국에 제공하는 정치적 목적이 전부일 뿐, 실제로는 잠수함 전력을 작전계획의 주축으로 둘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군당국 관계자들은 미국 측이 수용할 수 있는 전술핵 재배치 시나리오로 전략핵잠수함이 한반도 인근 해상에서 상시적으로 순찰 기동하는 방안을 꼽는다. 대(對)중국 압박 수위를 높이는 이중효과를 노릴 수 있는 데다, 작전배치 탄두 수를 늘릴 필요가 없으므로 ‘핵 없는 세계’를 공언해온 오바마 행정부로서도 거부감이 적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미군 핵잠수함은 태평양 멀리서도 똑같이 북한을 향해 미사일을 날릴 수 있으므로 가까이 기동한다 한들 군사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더욱이 위치 확인이 불가능한 잠수함의 특성상 워싱턴이 그 같은 원칙만 천명해놓은 채 실제로는 다른 해역으로 돌려도 파악하기 어렵다. 한 당국자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 측이 립서비스 차원에서 꺼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카드”라고 말했다. 별다른 군사적 효용도 없이 위치가 노출되는 해외 지상기지에 핵탄두를 보관하는 아이디어 자체를 미국 측이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