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탕 자구안’ 논란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사옥. [동아DB]
이번 워크아웃은 채권단의 75% 이상이 동의로 시행됐다. 전날 태영건설 채권단은 “태영 측의 자구 계획과 오너 일가의 책임 이행 방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자구안이 계획대로 이행된다면 워크아웃 개시와 이후 실사 및 기업개선계획 수립 작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태영건설이 해결해야 하는 직접채무는 1조3000억 원 규모다. 이외에도 이행보증채무 5조5000억 원과 연대보증채무 9조5000억 원도 채권단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반면 태영그룹은 우발채무가 2조5000억 원 규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11월 태영건설의 PF 우발채무가 3조6000억 원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태영건설 사태’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태영그룹 측에 제시한 첫 자구안에 대해 채권단 측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태영그룹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1549억 원 지원 △에코비트 매각 및 매각 대금 지원 △블루원 지분 담보 제공 및 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 담보 제공 등 4가지 방안이 담긴 자구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채권단이 기대했던 오너 일가 사재 출연과 SBS 매각 등이 담기지 않아 ‘맹탕 자구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태영그룹 측이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가운데 890억 원을 티와이홀딩스의 태영건설 관련 연대보증채무를 갚는 데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1549억 원 가운데 659억 원만 태영건설에 직접 지원한 것이다.
사재 출연 요구에…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태영그룹 입장에서는 태영건설을 털어내는 것이 원하는 방향이었을 것”이라면서 “금융권 요구와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해 여러 자구안을 수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 당국을 필두로 태영그룹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언급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채권단 입장에서는 남의 뼈를 깎는 노력”이라고 질타했다. 대통령실 역시 “대주주의 자구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크아웃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려면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워크아웃에 들어선 동문건설의 경우 워크아웃을 졸업하기 위해 고(故) 경재용 동문건설 회장이 사재 870억 원을 출연했다. 이는 당초 자구안에 담긴 규모의 2배에 달하는 액수였다.
태영그룹이 태영건설 정상화를 위해 채권단에 약속했던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890억 원을 1월 8일 납부하면서 비판은 사그라졌다. SBS 지분 매각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워크아웃 개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윤세영 창업회장은 1월 9일 “부족할 경우 지주회사인 티와이홀딩스와 SBS 주식도 담보로 해 태영건설을 꼭 살려내겠다”고 말했다.
KDB산업은행에 따르면 향후 티와이홀딩스는 SBS미디어넷(95.3%)과 DMC미디어(54.1%) 지분을 담보로 기존 담보대출(760억 원) 초과분에 대해 태영건설을 지원할 전망이다. 이 상황에서도 태영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잦아들지 않으면 오너 일가가 보유한 티와이홀딩스 지분 25.9%와 티와이홀딩스가 보유한 SBS 지분 36.3%를 담보로 추가 자금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질서 있는 정리’ 이뤄질까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월 9일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여의도 사옥에서 워크아웃 관련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정부 당국은 PF ABCP에 대한 차환 지원 프로그램과 보증 프로그램을 확대한다는 방침이지만 시장의 우려는 여전하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주요 건설사로 분류되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상황인데, 어느 기관이 신규로 PF에 진입하겠느냐”며 “금융기관에서는 신규로 본 PF 대출을 해주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브리지론에서 본 PF로 순탄하게 넘어가지 못할 경우 시행사와 증권사가 지불해야 하는 이자비용 등이 커지면서 부동산 PF 리스크가 심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태영건설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PF별 옥석 가리기를 통해 ‘질서 있는 정리’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진형 학회장은 “태영건설을 둘러싼 일련의 소동이 점차 정리되는 분위기지만 부동산 PF 문제는 여전하다”며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위험에 대한 책임 부담을 명확히 하는 선진국형 PF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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