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아이스하키 국가대표의 발 책임져요”

양경선 대표는 대학 시절 아마추어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스케이트 날과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용 썰매를 제작하는 스타트업 매시브블레이드를 설립했다. [김도균 기자]

빙상 종목 선수들에게 스케이트 날은 생명과 같다. 정교하게 갈린 날로 빙판을 누벼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건 당연지사. 날에 조그만 흠이라도 있으면 경기가 잘 풀릴 리 없다.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들은 두 개의 날을 부착한 썰매에 하반신을 묶고 두 개의 스틱으로 빙판을 찍고 달리며 경기한다. 썰매에 몸이 안정적으로 고정돼 있는지, 스케이트 날이 날카롭게 잘 갈렸는지 등에 따라 경기 승패가 좌우된다.

스케이트 날 만들다 장애인아이스하키 썰매까지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가 타는 썰매는 선수들의 하반신을 보호하고 빙상에서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설계돼 기존 썰매와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김도균 기자]

동계 스포츠는 아무래도 북미와 북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국내 선수들은 그동안 장비를 수입해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장비가 몸에 잘 맞지 않아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몇 해 전 선수들의 이런 고충을 덜어주는 국내 업체가 생겼는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를 앞두고 더욱 주목받고 있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아이스하키 등의 스케이트 날뿐 아니라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들의 스케이트 날과 썰매를 맞춤 제작하는 회사인 매시브블레이드(Massive Blade)가 그 주인공이다. 

양경선(38) 대표가 운영하는 매시브블레이드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스케이트 날을 생산하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스케이트 날을 직접 만든다. 해를 거듭할수록 사업을 확장해온 매시브블레이드는 현재 캐나다, 체코, 프랑스, 스웨덴, 라트비아 등 12개국 프로 아이스하키팀에도 스케이트 날을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들이 타는 썰매 제작에도 나서 선수별로 주문을 받아 생산하고 있다. 양 대표는 “재미로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며 웃음 지었다. 

처음부터 스케이트 날을 만드는 회사를 창업한 건가요. 

“2012년 11월 회사를 세웠는데 당시에는 스케이트 날을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었어요. 한국원자력의학원의 입자가속기 부품, 연구소의 산업용 로봇 부품 등을 만들었어요. 아무래도 주문을 받은 후 생산해야 하고 비슷한 업종에 큰 회사가 많다 보니 회사를 유지하는 게 어려웠죠. 그러던 중 아이스하키 선수 생활을 접고 초등학교 아이스하키부 코치로 일하던 후배의 부탁으로 스케이트 날을 만들게 됐어요. 시험 삼아 제작했는데 너무 날카롭게 갈았던 탓인지 후배가 학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넘어져 버렸어요. 정말 미안했죠.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오기로 만들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꽤 젊은 나이에 창업을 결심했네요. 

“돌파구를 찾으려 창업한 거예요. 원래는 LCD(액정표시장치), LED(발광다이오드) 등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어요. 전자현미경이나 산업용 로봇을 접하다 보니 제조업 쪽으로 자연히 눈을 돌리게 됐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 스케이트 날을 만드는 회사가 없어서 도전하게 됐어요. 아이스하키가 미국, 캐나다 등 북미나 핀란드, 스웨덴, 체코 등 북유럽에서 인기 있는 종목이라 스케이트 날을 만드는 회사도 그쪽에 많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비인기 종목이라 대체로 장비를 수입해 쓰죠. 이 때문에 잘만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어요.” 

비인기 종목인 데다 시장이 작아서 걱정하진 않았나요. 

“처음에는 미친놈 소리를 들었죠. 내수시장만 봐도 수익성이 낮은데 시작부터 해외 수출을 하겠다고 덤벼드니 주변에서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충분히 자신 있었어요. 일단 국내시장은 인맥이 있던 터라 국가대표들을 상대로 납품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도 상당수 국가대표가 우리 제품을 사용하고 있죠. 이를 토대로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있고 실제로 프랑스, 체코, 라트비아 등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있어요. 향후 입소문이 더 나면 해외 선수들도 우리 제품을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할 거라 확신합니다.”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들의 썰매는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요.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 가운데 절반 정도가 우리 회사 스케이트 날을 쓰고 있어요. 국내 선수들 사이에 제품이 알려지면서 장애인아이스하키팀에서도 연락이 왔죠. 영업을 하러 갔는데 우연찮게 썰매 얘기가 나왔어요. 장애인 선수들은 신발이 아니라 썰매에 날을 부착해 타거든요. 대학(서울과학기술대)에서 기계설계공학을 전공한 터라 썰매 설계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시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장애인아이스하키 공식 후원사인 포스코에서 연락이 왔고 소재 지원을 받아 만들게 됐죠. 선수들의 장애 정도가 전부 다르기 때문에 썰매 모양도 다 달라요. 다양한 요구와 평가를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썰매 독자 개발, 일대일 제작으로 승부

인터뷰 도중 양 대표는 사무실 바로 옆으로 이어진 제작공간을 공개했다. 6.6㎡남짓한 공간에서 양 대표와 직원 둘이 스케이트 날과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용 썰매를 제작한다. 아무래도 동계 시즌이다 보니 주문량이 많아 여유공간이 거의 없었다. 양 대표는 그동안 제작한 선수용 썰매를 보여주며 다리를 넣는 공간의 폭, 다리 끝을 감싸는 지지대의 각도 등 선수들 상태에 따라 어떻게 맞춤 제작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매시브블레이드 제품이 기존 썰매보다 어떤 면에서 더 나은가요. 

“대부분 캐나다 썰매를 쓰는데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마그네슘 합금으로 썰매를 제작해 기존 제품보다 무게가 35% 정도 가볍죠. 마그네슘 합금은 주로 전투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레이싱카 등에 쓰는 신소재로, 소재 자체가 가볍기도 하지만 충격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요. 노면에서 오는 충격이나 떨림을 흡수하기 때문에 고가의 자동차 휠에도 쓰여요. 우리 회사는 1차적으로 모듈을 만들어놓고 그중에서 선수별로 주문을 받아 맞춤 제작하기 때문에 기성 제품에 비해 경쟁력이 있어요.” 

무조건 가볍다고 좋은 건 아닐 것 같은데요. 

“몸이 무거우면 잘 뛸 수 없잖아요. 장애인 선수들도 마찬가지예요. 15분 동안 경기를 하는데 스틱 두 개로 썰매를 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굉장히 힘들고 피로 누적도 심하다고 해요. 선수들이 ‘썰매가 1g이라도 가벼워야 움직이는 데 편하다’고 할 정도죠. 또 하반신을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는데 방향을 바꿀 때 원심력이 커지면 조향이 어려워져요. 그런 걸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썰매는 가벼워야 해요.” 

선수들의 제품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선수마다 반응이 전부 달라요. 아직 제품이 완벽한 상태라고 말하기 어렵죠. 최초 설계한 데서 선수들의 평가와 장비 매니저들의 조언을 듣고 개선해나가고 있어요. 시제품 평가가 좋아도 막상 보완해주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선수들도 있어요. 선수마다 성향도, 상황도 다른 만큼 여러 차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품질을 보완해나가야죠.” 

지금 제작하는 제품을 무상제공한다고 들었는데 힘들지 않나요. 

“누군가 계속 지원해주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네요. 일단 스타트업이니까 자리 잡을 때까지는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상의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번 평창동계패럴림픽에 각국 대표단이 오는데 시제품을 인정받아 이를 계기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죠. 캐나다 아이스하키팀의 경우 몇몇 선수가 우리 스케이트 날을 쓰고 있는데 지난해 11월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왔을 때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용 썰매를 보여줬어요. 거기서 피드백을 얻었고 그쪽 제작업체도 소개받아 조언을 구하는 등 교류하고 있어요. 잘 만들어 해외 선수들이 우리가 만든 썰매를 사용하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조만간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아마추어 선수에서 ‘날파리’로

양 대표가 스케이트 날과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용 썰매를 만들게 된 것은 아이스하키에 유년 시절 추억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인라인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 등을 타고 놀던 중 스트리트 하키를 접했다. 재미 삼아 친구들끼리 경기하는 모습이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였던 오솔길 SBS 아이스하키 해설위원의 눈에 띄었다. 양 대표는 운 좋게 지도를 받아 아마추어 선수로 활약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취미로 하다 어떻게 아마추어 선수까지 하게 됐나요. 

“그때만 해도 동호회 같은 게 없어서 전직 선수들이 모인 클럽팀에 껴서 배웠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골키퍼가 한 명밖에 없는 한양대 아이스하키부에 연습생 신분으로 들어가게 됐죠. 또래 친구들과 겨루다 보니 무척 재미있는 거예요. 부모님을 설득해 군 입대를 미루면서까지 열심히 운동했어요. 이듬해 아이스하키 신입생이 들어왔는데 아무리 해도 후배를 못 이길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뒀어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장비에 관심이 높아진 모양이네요. 

“빙상스포츠와 기계공학의 접점을 가진 사람이 국내에 많지 않죠. 사람들이 스케이트 날 제작에 관심이 없어서 블루오션이 될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외국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아이스하키 등 빙상 종목에 따라 날을 만드는 회사가 나뉘어 있어요. 우리는 후발주자고 국내 유일한 업체다 보니 아이스하키를 비롯해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트 날까지 맞춤 제작하고 있어요. 지금은 빡빡하게 돌아가지만 맞춤형 프리미엄 제품으로 계속해서 인정받다 보면 외국 제품도 앞지를 수 있다고 자신해요.” 

장애인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에 썰매를 기증하는 걸로 아는데 계속할 생각인가요. 

“아니요. 썰매는 향후 판매하려 만들고 있고 완제품이 나오면 팔아야죠. 지금도 스케이트 날은 장애인아이스하키팀에 판매하고 있어요. 저희는 스스로를 ‘날파리(날팔이)’라고 불러요.(웃음) 썰매도 잘 만들어 팔아야죠. 잘 만들면 아마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지 말라고 해도 구매하려고 찾아오는 날이 있겠죠.”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썰매를 타고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찌릿하죠. 선수들이 물고기처럼 달려가 골을 넣는 모습을 보면 대리 만족도 느껴요. 선수들이 썰매 끝부분으로 가슴팍을 치면서 경기를 하는데 그런 걸 보면 아이스하키보다 격렬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쇳덩이가 갈비뼈로 바로 들어오니까 119구조대도 ‘지원 나간 경기 중 부상이 제일 많다’고 하더라고요. 볼록했던 썰매 끝부분이 움푹 들어가기도 하니 말 다 했죠. 우리는 그래서 공격 포인트 말고 ‘매시브 포인트’라고 썰매를 어떻게 타는지 집중적으로 보면서 응원해요.” 

선수들에게 평창동계올림픽이 특별한 만큼 양 대표에게도 평창동계올림픽은 중요한 기회다. 이미 매시브블레이드 스케이트 날을 사용하는 선수들이 국내외에 있지만 한 번 더 어필할 수 있고,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용 썰매를 국제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양 대표는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용 스케이트 날과 썰매의 주문 제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평창에서 선수들 선전하길 응원

장애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 모습. [사진 제공 ·  대한장애인체육회]

평창동계패럴림픽은 3월에 치르는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스케이트 날의 경우 선수마다 요구하는 길이가 달라요. ‘빙상 위의 메시’로 불리는 정승환 선수는 지금도 빠른데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따로 제작을 요구했어요. 규정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날을 최대한 길고 평평하게 만들어 얼음에 많이 닿도록 제작했죠. 과장하자면 쇼트트랙 선수의 날처럼 설계했는데 더 빨라졌고 회전반경도 커졌어요. 회전반경이 커지는 것을 싫어하는 선수들도 있어 날에 라운드를 완만하게 주기도 했어요. 포지션마다 맞춤 제작을 하고 있어요.” 

일이 굉장히 많아지겠네요. 

“기존 캐나다 스케이트 날은 한 종류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홉 종류나 돼요. 선수들에게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게 선택권을 줬고 그만큼 다양한 고객을 흡수하고 있어요. 사실 후발주자로서 그렇게 어필해야 외국 선수들에게도 먹혀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선수들 데이터를 많이 축적할수록 외국 선수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폭도 커질 테니까요. 외국 업체들이 몇백 년 동안 선점해온 시장을 공략하려면 이 정도 노력은 감수해야죠.”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빙상강국의 시장을 공략하는 게 우선 과제예요. 스포츠업계는 톱다운이라고 해서 잘하는 선수가 쓰는 장비를 다른 선수들도 따라서 쓰죠. 또 해외 선수 가운데 18~19세 주니어 유망주를 공략하고 있어요. 향후 고객으로 미리 선점하는 셈이죠. 인력이 부족한 탓에 국내시장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국내 아이스하키 시장에서 알 만한 사람은 매시브블레이드를 다 알기 때문에 해외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계획입니다.”

장애인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에 경량썰매 지원
포스코 철강 신소재로 더 가볍게, 더 튼튼하게 !

양경선 매시브블레이드 대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을 공략해 조만간 해외 선도 기업을 앞지르겠다는 각오다. [김도균 기자]

육상선수는 발에 착 달라붙는 가벼운 러닝화가 기록을 좌우하듯,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들은 가볍고 튼튼한 썰매가 경기력을 결정한다. 그동안 장애인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수입산 썰매를 사용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부터 포스코가 개발한 고망간방진강, 마그네슘 합금, 특수 열처리 스테인리스 등이 들어간 경량썰매를 쓰고 있다. 고망간방진강은 알루미늄보다 강도가 2.5배 높아 충격을 잘 흡수하고, 마그네슘 합금은 무게가 알루미늄의 3분의 2 수준이다. 국가대표팀은 1월 13일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2018 일본 국제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에서 이 썰매를 타고 5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원래 포스코는 장애인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공식 후원사다. 대표팀이 지난해 4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자 권오준 회장은 선수들의 썰매 성능 개선을 위한 신소재 적용을 지시했다. 사실 초반에는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마그네슘 합금 가공을 위해 전국을 돌았지만 기술력을 갖춘 업체를 찾기 힘들었던 것. 그러던 중 매시브블레이드와 협업이 추진됐고 결국 기존 제품 대비 무게를 35% 정도 줄인 경량썰매를 만들어냈다. 

한민수 장애인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주장은 “장애인아이스하키 종목은 장비 성능이 경기력의 약 60%를 차지한다. 포스코와 매시브블레이드가 만든 경량썰매는 가벼워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적고, 충격 흡수기능 향상으로 부상도 방지할 수 있어 경기를 치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