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앞두고 인명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정말 다행스럽고 감사할 뿐입니다.”
김평종(53·사진) 해남소방서 고금119안전센터장은 인터뷰 내내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위급한 사고 현장에서 화마(火魔)의 미세한 변화를 읽고, 그것이 초래할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으며, 즉시 주위 사람에게 대피를 지시함으로써 대형참사를 막았다. 그 공로로 최근 독립청으로 재탄생한 소방청의 1호 표창을 받았다. 10월 2일엔 문재인 대통령이 명절을 앞두고 특별히 격려하고자 전화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돼 대통령과 전화통화도 했다. 그러나 그는 “현장지휘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9월 27일 오전 11시 20분쯤. 전남 완도군 고금면 가교리 고인돌공원 인근 도로에서 16t 탱크로리 차량과 25t 덤프트럭이 추돌했다. 이 사고로 탱크로리 차량에 달려 있던 10t짜리 LPG(액화석유가스)통에서 가스가 새어 나오면서 화재가 번졌다. 김 센터장은 즉시 동료 대원 6명과 함께 현장으로 출동했다. 1km 밖에서도 검은 연기가 보일 만큼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두려운 생각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탱크로리는 기본적으로 액화가스 같은 위험물질이나 유독물을 싣고 다니는 차량 아닌가. 검은 연기가 자욱한 현장으로 달려가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소방차 한 대로 불길을 잡을 수 있을까 걱정할 틈조차 없었다. 덤프트럭 운전자는 사고 직후 스스로 탈출한 게 확인됐지만, 탱크로리 차량 운전자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차 안에 갇혀 있다면 어떻게든 구출해야 했다. 김 센터장은 동료들과 함께 진화작업을 하면서 현장에 조금씩 접근해갔다. 경찰관, 시민 등 수십 명도 화재 진압을 도왔다.
목숨 걸고 불길 뛰어든 대원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 때, 이들의 생사를 가른 작은 바람 소리가 김 센터장의 귀에 들려왔다. 화재 현장에서 ‘쉑’ 하는 가스 분출음이 나더니 이에 비례해 불기둥이 커진 것이다. 김 센터장은 가스 폭발을 예감하고 무전기를 통해 “사고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은 즉시 200m 밖으로 대피하라”고 지시했다. 불을 끄는 데 몰두한 대원들의 반응이 더딘 것 같아 한 번 더 같은 지시를 반복했다.진화작업 도중 탱크로리 차량 운전자가 무사히 대피해 구급차로 이송됐다는 보고를 받은 상태였기에 이런 결정이 가능했다. 김 센터장은 “사고 현장에 갇힌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라 이제는 대원과 주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현장에 있던 의무소방대원이 불길 가까이로 접근하는 게 보여 마음이 급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을 보면 흥분하거든요. 진화를 시작하면 반드시 불길을 잡고 싶어지고요. 하지만 현장에 더 있으면 큰 사고가 날 것 같아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의무소방대원은 소방서에 배치돼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청년이다. 김 센터장이 그들을 포함한 동료와 시민들을 이끌고 현장을 벗어난 지 3분 만에 사고 지점에서 거대한 가스 폭발이 일어났다. 현장 차량들이 갈기갈기 찢기면서 수류탄 파편 같은 흉기로 변해 100m 너머까지 흩뿌려질 만큼 큰 폭발이었다. 김 센터장의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대응이 없었다면 수십 명이 피해를 입는 대형참사로 이어졌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김 센터장은 “내가 가스 폭발 징후를 어떻게 알아챘느냐면…” 하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이 다치지 않고 화재가 진압돼 감사할 따름”이라고만 했다.
그런 김 센터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려면 여러 번 질문을 거듭해야 했다. 그는 가까스로 “1995년 8월 소방사로 소방관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 소방경으로 진급해 센터장 발령을 받기까지 20년 이상 현장 근무를 했다. 그동안 전남 여수소방서 화학119구조대 등에서 근무하며 여러 경험을 쌓은 것이 도움이 된 듯하다”고 밝혔다.
김 센터장은 소방관으로서 전문성을 높이고자 위험물의 성질 및 취급법 등을 익혀 위험물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3년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에서 발생한 대림산업 폴리에틸렌 공장 폭발사고 등 여러 대형사고 현장에서 진화 및 인명구조 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화재 현장에서 가스가 폭발하기 전 가늘게 들리는 소리, 그리고 특정한 불기둥의 모양 같은 것이다. 하지만 20년 넘는 현장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건 이게 다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불을 보고 흥분하거나 위기에 처한 사람을 반드시 구하겠다는 의욕이 앞서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오히려 더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김 센터장의 지론이다.
“농어촌 소방서 확대되길”
사실 그도 소방관 생활 초기에는 의욕이 앞선 때가 많았다고 한다. 김 센터장이 소방관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부터가 ‘불에 대한 증오’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나를 참 아껴주던 조부가 화마에 휩쓸려 세상을 떠나셨다”면서 입을 열었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병충해를 막겠다고 밭언덕을 태우는 일이 흔했습니다. 아흔이 넘도록 정정하던 조부가 바로 그 불 때문에 목숨을 잃으셨어요. 제가 정말 사랑하고 존경하던 분이라 상실감이 컸죠.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길이 뭘까 생각하다 소방관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불만 보면 피가 끓었다. 화재나 폭발 현장에서 훼손된 시신을 보면 가슴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는 “한때는 그런 것들이 힘들어 이 일을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일을 해나가면서 점점 더 마음을 굳게 먹으려 노력했고, 그 덕에 지금 이렇게 칭찬까지 받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소방관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 못잖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강인한 체력을 다지는 일이다. 김 센터장은 “급박한 상황에서 불을 끄고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도 지키려면 체력이 필수다. 누구든 20~30kg씩 나가는 장비를 착용하고 공기호흡기로 숨을 쉬면 그 자체만으로도 숨이 가쁘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런데 소방관은 그 상태로 수십 층 계단을 오르내리고 도끼로 장애물을 격파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체력이 뒷받침 안 되면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쉬는 날이면 늘 산에 오르고 평소에도 조깅을 하면서 체력을 다진다. 소방관 후배들뿐 아니라 의무소방대원으로 군 복무를 마친 큰아들과 입대를 앞둔 작은아들에게도 김 센터장이 늘 강조하는 건 ‘몸과 마음 관리’의 중요성이다.
22년간 소방공무원 외길을 걸어온 김 센터장에게 앞으로 바람을 물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좀 더 안전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소방관들의 개별적 노력과 더불어 사회 여건의 변화도 수반돼야 가능하다고 한다.
“아직도 군 단위에 소방서가 없는 지역이 꽤 많아요. 제가 근무하는 고금119안전센터도 행정구역상 완도군에 있지만 해남소방서 소속이죠.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남도지사 시절 점진적으로라도 모든 군에 소방서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이 실현되면 좋겠습니다. 또 농어촌 지역에 소방인력과 장비를 보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도시는 소화전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도로 여건도 상대적으로 우수합니다. 반면 농어촌은 화재가 발생해도 소방용수를 확보하기 어렵고, 다른 지역 소방서에서 지원하러 오는 데도 시간이 걸려 참사로 이어질 수 있어요. 이런 상황에 대한 관심과 개선 노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공’을 말하는 걸 영 쑥스러워하던 김 센터장이 들려준 얘기다. 그는 시민에게도 “소방관들을 늘 격려하고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며 “다만 허위신고 때문에 소방력이 많이 낭비되고 있으니 그런 건 좀 자제해주시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