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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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 팡파르가 신기루로 끝난 까닭은

원칙이냐 유연성이냐 결론 없는 대통령…참모들도 제각각 딴소리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5-02-06 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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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대화 팡파르가 신기루로 끝난 까닭은

    박근혜 대통령이 1월 19일 청와대에서 통일준비를 주제로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국가보훈처 등 4개 부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11월 14일 개성에서 다시 열릴 통일부-통일전선부 접촉을 앞두고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이 보고했다.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합의했는데 왜 내용이 다르냐고 했답니다. 임태희 장관에게 대통령께 직접 보고해서 답을 달라는 식으로 말했답니다.” 북한이 임 장관을 압박하고 우리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여 싱가포르 접촉 때 자신들이 주장한 것을 관철시키려는 의도로 생각됐다. (중략) 그러나 14일 개성에서 다시 열린 통일부-통일전선부 협상은 북한이 싱가포르 합의서라는 것을 계속 주장하면서 별다른 진전 없이 결렬됐다.

    5년 만의 기시감

    최근 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은 2009년 가을 남북이 정상회담 문제를 두고 벌인 막후접촉과 후속 논의를 공들여 묘사한다. 그해 9월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이 대통령의 명을 받아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논의를 진행했지만, 북측이 대규모 경제지원을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바람에 거부했다는 게 주요 골자다. 그 과정에서 북측은 임 전 장관과의 논의를 ‘합의사항’이라고 주장하며 문건으로 들이밀었고, 청와대 외교안보라인과 통일부 등 공식라인이 후속 논의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자 합의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관계가 악화된 2011년 6월, 북측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했던 논의 내용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남한이 정상회담과 사과를 구걸하며 돈봉투를 건넸다’는 북측 주장은 전 세계에 타전됐다. 남북관계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외교 참사였다. 회고록에서 이 전 대통령은 ‘대가를 주고 정상회담을 열 수는 없다는 원칙을 지켰다’고 강조했지만, 막후접촉과 비공개 논의의 혼선이 물 위로 떠오르면서 청와대가 져야 했던 부담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인사들의 평가는 간명하다.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 정치인 출신 참모들의 견해와 원칙적 태도를 견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 학자 및 관료 출신 참모들의 견해 사이에서 이 전 대통령의 생각이 끊임없이 흔들렸다는 것. 이를 꿰뚫어본 평양은 임태희 전 장관과의 논의를 합의라고 주장하며 청와대를 압박했고, 천영우 당시 외교안보수석과 김태효 대외전략기획관 등 청와대 안보라인은 임 전 장관이 월권했다며 선 긋기에 나섰다. 양측은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2013년 봄 언론 지면을 통해 서로를 비판하며 거친 논쟁을 벌여야 했다.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5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물밑접촉’은 다시 한 번 청와대 주변을 파고든다. 지난 연말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공들여 마련했다는 대북특사 파견 방안이 대표적인 경우다. 2015년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고위당국자가 직접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에 가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보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비공개 접촉도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답했다는 게 정통한 인사들의 설명. 보고 과정에서 일부 청와대 관계자가 ‘원칙 있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 역시 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림이다.

    그러는 사이‘남북관계의 골든타임’은 끝났다. 지난해 연말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 명의로 제안했던 ‘1월 중 대화 재개’는 성과 없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신년사와 함께 급격히 확산됐던 해빙 무드 역시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 “아직 불씨는 살아 있다”는 통일부 측의 공식 설명에도, 2월 하순 시작되는 한미연합군사연습 일정을 감안하면 상황은 이미 진전을 보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내부적으로 ‘최소한의 목표’로 설정했던 설명절 이산가족상봉 행사조차 테이블에 올리지 못한 초라한 결말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당국자는 “메시지가 통일되지 못한 게 결정적인 한계였다”고 말한다. 물론 한미연합군사연습의 중단을 전제조건으로 내건 북측의 경직된 태도가 일차적 이유지만, 한 달간의 밀고 당기기 과정에서 우리 측 자세도 일관성이 부족했다는 것. 5·24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물밑접촉을 하자는 건지 안 된다는 건지, 당국 간 회담이 먼저인지 통준위 차원의 대화 제의가 우선인지, 정리된 시그널을 내보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통일부 장관이 다급한 이유

    남북대화 팡파르가 신기루로 끝난 까닭은

    북한 국방위원회가 미국과 대화 단절을 공식 선언한 2월 4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에서 남북 경계병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원칙과 유연성의 딜레마’라는 표현으로 이러한 상황을 요약한다. 핵 문제 진전이나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는 원칙적인 태도의 유지와, 대화 재개를 위해 이를 뒤로 미룰 수 있다고 보는 유연성 발휘 사이에서 명확한 결론이 내려진 적이 없다는 것. 안보부처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이를 각자 입맛에 맞게 해석하다 보니 일관된 메시지가 나올 수 없었다는 견해다.

    연원을 따지면 이러한 한계는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정책 시스템 자체의 이중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와대 내 관련 조직이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실로 사실상 이원화돼 있는 게 그 시작. 속도를 내기 시작한 나진-하산 프로젝트 등 남북관계 개선에 해당하는 주요 프로젝트는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의 진두지휘로 진행 중이라는 게 정부 안팎의 정설이다. 반면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보상의 위험요소를 평가하고 경고하는 작업은 국가안보실의 몫에 가깝다. 비유하자면 전자가 가속페달, 후자는 브레이크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박근혜 정부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비친 것은 이를 조정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 구성이 바뀌면서부터였다. ‘2015년 북한 급변’을 강조하며 상임위 회의를 사실상 주도했던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물러나고, ‘대선 공신’ 중 한 사람이던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의 자리를 김관진 현 실장이 물려받은 2014년 5월이 그 분기점이었다. 남 전 원장의 후임인 이병기 국정원장이나 법령 개정을 통해 새로 상임위 멤버가 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모두 ‘정무적 감각’이 앞서는 인물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브레이크보다 가속페달에 힘이 실리는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것. 정부 안에서의 통일 논의가 ‘북한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는 기조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로 바뀌게 된 근본적인 이유다.

    이러한 흐름에 기름을 부은 것은 통일부의 활동 공간 변화였다. 대화 주무부처 수장인 류길재 장관이 지난해 상반기까지 NSC 상임위 등에서 남 전 원장과 설전을 반복했을 만큼 곤혹스러운 처지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천해성 당시 정책실장이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으로 발탁됐다가 번복되는 등 이 시기 통일부는 거듭 수모에 시달려야 했지만,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다소 나아지면서 ‘숨 쉴 틈’이 생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류 장관의 최근 움직임은 이례적일 만큼 적극적이다.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봐달라”고 공언할 정도로 단단한 각오다. 통일부 안팎에서는 “(류 장관이) 지금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바뀐 역학관계를 공세적으로 활용해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다급함이 엿보인다는 관측도 있다. 청와대의 개각 논의 과정에서 경질설과 후임 인사 하마평이 구체적으로 떠돌아다닌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 요컨대 연말부터 남북관계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류 장관의 행보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정작 눈여겨볼 대목은 이러한 기류가 대통령의 최종 판단에 따라 조성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점이다. 예컨대 박 대통령이 힘을 싣고 있다는 통준위의 경우, 정작 대통령 본인은 북측과의 관계 개선보다 남한 내부의 통일 논의 확산이나 의견 수렴 기능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핵심 당국자들은 말한다. 연말 통준위 차원의 대화 제의 역시 대북특사 파견 아이디어 대신 마련된 일종의 타협안에 가깝다는 것. 당국 간 공식대화가 쉽지 않고 물밑접촉도 시기상조이므로, 자문기구인 통준위가 남북대화를 제안하는 기묘한 결과물이 만들어진 셈이다.



    남북대화 팡파르가 신기루로 끝난 까닭은

    1월 6일 청와대 위민관에서 열린 2015년 제1회 국무회의에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왼쪽에서 네 번째) 등 국무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정리해놓고 보면 이야기는 한결 간명해진다. 정부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한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1월의 들뜬 분위기는 신기루 혹은 착시현상이었을 뿐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인적 구성 변화로 형성된 공간에서 통일부가 활동 폭을 넓히는 바람에 울림이 커지긴 했지만, 박 대통령 본인의 생각은 여전히 원칙과 유연성 사이에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칙을 중시하되 유연성을 발휘하라’와 ‘유연성을 발휘하되 원칙을 지켜라’. 언뜻 말장난 같아 보이는 두 문장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전자에 방점을 찍으면 막후접촉과 5·24조치 해제를 포함한 다양한 카드가 테이블에 올라오지만, 후자로 추가 기울면 북측의 태도 변화가 관계 개선의 핵심 요건이 된다. 공교로운 것은 통일부와 외교안보수석실 당국자들은 박 대통령의 뜻이 전자에 있다고 말하는 반면, 국가안보실 등 ‘브레이크’ 조직의 관계자들은 후자가 ‘VIP의 참뜻’이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아전인수 해석의 결과물이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였던 셈이다. 한 안보부처 관계자의 말이다.

    “언론은 5월 러시아 전승기념 70주년 행사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시나리오를 줄기차게 보도하지만, 사실 이는 잠깐만 따져봐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이 자리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면 김정은의 국제무대 데뷔에 우리가 팡파르를 울려주는 셈이 되는데 그게 가능하겠나. 문제는 예전에는 언론이 앞서나가면 당국자들이 배경 설명 차원에서 이를 진화했지만 지금은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뜻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면 어떻게 하나. 정상적인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불분명한 지침, 그리고 각각의 플레이어가 자기 입맛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구도. 공교롭게도 이는 앞서 본 이명박 정부의 정상회담 물밑 논의 과정과 꼭 닮아 있다. ‘원칙’과 ‘유연성’을 각각 손에 쥔 당국자들이 ‘대통령의 뜻’을 거론하며 활동 폭을 넓히는 모습은 더욱 그렇다. 어쩌면 성과 없이 끝난 한 달간의 신기루는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2011년의 참사가 재현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떠오르는 이유다. 차라리 ‘골든타임’이 끝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일까. 혼선의 끝에 서 있는 것은, 결국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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