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 ‘정교한 거포본능’

프로야구 2년 연속 30홈런, 100타점…선구안 향상 ‘완성형 타자’로 진화

  • 김도헌 스포츠동아 스포츠1부 기자dohoney@donga.com

    입력2013-09-30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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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호 ‘정교한 거포본능’

    지난해 생애 첫 최우수선수 (MVP)를 거머쥔 박병호는 올 시즌 타격 5관왕을 꿈꾸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넥센의 박병호(27)는 2012년 홈런(31), 타점(105), 장타율(0.561) 등 타격 3관왕을 차지하고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기량에 의문부호를 다는 이가 적지 않았다. 풀타임 1군 멤버로 뛴 게 처음이었기에 2009년 MVP 김상현(당시 KIA·현 SK)처럼 ‘반짝 활약’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타율이 0.290에 그쳐 정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올 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같은 1루수인 이대호(31·오릭스), 김태균(31·한화), 이승엽(37·삼성)에 밀려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것도 그래서였다.

    연일 불방망이 ‘포스트 이대호’

    그러나 2013년 페넌트레이스가 막바지에 이른 요즘 그에게 온갖 찬사가 쏟아진다. 이제 아무도 그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으로 건너간 롯데 4번 타자 출신 이대호의 빈자리를 메울 ‘포스트 이대호’란 닉네임이 붙었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 타자인 이승엽과 이대호의 뒤를 잇는 거포로 주목받는다.

    2011시즌 후 이대호가 일본으로 떠났다. 그 대신 일본에서 뛰던 ‘국민타자’ 이승엽과 김태균 두 국가대표 강타자가 국내 무대로 복귀했다. 그러나 이대호의 빈자리를 메운 주인공은 2005년 데뷔 후 늘 유망주로만 머물던 박병호였다. LG 유니폼을 입었을 때만 해도 1, 2군을 오가던 그는 넥센 유니폼을 입은 뒤 잠재력이 폭발했다. 2011시즌 중반 이적한 후 줄곧 4번 타자를 맡으면서 실력을 키워나갔고, 결국 지난해 생애 첫 MVP라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리고 올 시즌 더욱 정교해진 파괴력으로 타격 5관왕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대호는 2010년 롯데 시절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전무후무한 타격 부문 7관왕에 올랐다. 타율(0.364), 최다안타(174), 홈런(44), 타점(133), 득점(99), 장타율(0.667), 출루율(0.444)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것. 지난해 3관왕을 차지한 박병호는 2013년 5관왕이 유력하다. 9월 24일 현재 홈런(33), 타점(105), 득점(83), 장타율(0.592), 출루율(0.435)에서 선두를 달린다.



    2010년 이대호와 2013년 박병호의 기록을 비교하면 타율과 홈런, 타점 등에서 모두 이대호가 앞선다. 풀타임 2년차 박병호는 아직 선배 이대호의 그림자를 넘지 못했다. 스스로도 “아직 이대호 선배와 비교하기에는 멀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을 낮춘다. 그러나 최근 성장 속도를 보면 수년 내 이대호를 넘어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더구나 박병호의 펀치력은 이대호에게 뒤지지 않는다. 2년 연속 30홈런, 100타점을 넘겼다. 2년 연속 30홈런, 100타점은 이대호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이대호는 목동구장보다 훨씬 큰 부산 사직구장을 홈으로 쓰긴 했지만 44홈런을 때린 2010년을 빼면 30홈런을 넘긴 시즌이 한 번도 없다.

    이대호는 세 차례나 타격 1위에 올랐다. 타고난 힘이 워낙 좋아 안타를 치다 자연스럽게 홈런이 나오는 스타일. 홈런 타자라기보다 ‘정교한 거포’에 가깝다. 박병호는 이대호보다 파워가 좋다. 그러나 지난 시즌 타율(0.290)이 보여주듯 정확도는 떨어졌다. 하지만 올해 이 약점을 완전히 극복했다.

    3할이 훌쩍 넘는 타율로 힘과 정교함을 겸비했다. 이는 타석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기다린 결과다. 상대 투수의 견제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와 정면승부를 하기보다 유인구로 헛스윙을 유도한다. 투수들의 심리를 간파한 박병호는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을 좁게 유지하면서 나쁜 공에는 거의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는다. 지난해와 달라진 점이다. 몸 쪽 공과 변화구에 대한 대처 능력이 성장했고, 투수와의 수 싸움에도 노련미가 붙었다. 그 결과 삼진은 지난해보다 훨씬 줄었고, 볼넷은 눈에 띄게 늘었다. 반면 투수들의 실투를 놓치는 법이 없다. 이대호처럼 ‘파워도, 정확도도 있고 유인구에 쉽게 속지 않는’ 완성형 타자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넥센에서 박병호를 지도했던 박흥식 롯데 타격코치는 “타격에 안정감이 있고, 자기 스윙을 할 줄 안다. 배트 스피드와 파워가 다른 타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며 “선구안이 점점 향상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평가한다. 박병호는 스윙 메커니즘이 좋아 밀어서도 곧잘 펜스를 넘긴다는 장점이 있다. 폴로스로(follow through)를 하면서 배를 앞으로 내미는 동작을 하는데, 전형적인 장거리타자의 모습이다.

    올 시즌을 앞둔 박병호의 첫 번째 개인 목표는 4번 타자 전 경기 선발 출장이었다. 지난해 133게임에 전 경기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던 그는 새 사령탑 염경엽 감독의 굳은 신뢰 속에 올해도 4번 타자 연속 선발 출장 기록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4번 타자로 전 경기에 나서면서 나 자신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는 표현이 맞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내가 4번 타자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는 게 그의 말이다.

    박병호 ‘정교한 거포본능’

    2010년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이대호(왼쪽). 9월 15일 SK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친 박병호가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2년 연속 4번 타자 전 경기 선발 출장 기록

    박병호가 나머지 경기에서 4번 타자 선발 출장을 이어간다면, 이대호도 하지 못했던 한국 프로야구사상 최초 ‘2년 연속 4번 타자 전 경기 선발 출장’이라는 금자탑을 쌓게 된다. 전 경기 연속 선발 출장은 빼어난 기량뿐 아니라 철저한 자기 관리 없이는 불가능한 기록이다. 더구나 무거운 중압감과 싸워야 하는 4번 타자로 2년 연속 개근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우등상과 개근상을 모두 받는, 흔히 말하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가 바로 박병호다.

    2010년 세계 최초로 9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세우고 7관왕까지 거머쥔 이대호는 “아내를 잘 만난 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수년간 열애 끝에 2009시즌 뒤 어렵게 결혼에 골인한 그는 “아내가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결혼이 이대호의 야구 인생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듯, 박병호에게도 마찬가지다. 2011시즌 후 아나운서 출신인 4세 연상 이지윤 씨와 결혼한 그는 이듬해부터 한국 프로야구사에 자기 이름을 아로새겼다.

    “집에 가면 나를 반겨주는 아내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일단 집에 가면 아내 덕에 야구에 대한 스트레스를 잊게 된다”는 박병호는 “결혼한 뒤 남편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생겼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도 더 커진 느낌”이라고 했다. ‘가장 박병호’가 야구선수 박병호의 인생을 살찌우는 셈이다.

    성남고 3학년 시절이던 2004년, 그는 한국 고교야구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4연타석 홈런을 때렸다. 3억5000만 원을 받고 1차 우선지명으로 LG 유니폼을 입은 뒤 짧지 않은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그의 재능을 생각하면 뒤늦게 꽃을 피운 게 안타까울 정도다. 그러나 그는 이제 누구보다 화려한 길을 걷고 있다. 과거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낼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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