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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빈 강정 아니었어?” 서방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 버티는 이유

우크라이나 침공 후 붕괴 예측 빗나가… 고유가로 수출액 증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속 빈 강정 아니었어?” 서방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 버티는 이유

러시아 여성이 슈퍼마켓에서 유제품을 고르고 있다. [TASS]

러시아 여성이 슈퍼마켓에서 유제품을 고르고 있다. [TASS]

‘포템킨 경제(Potemkin Economy)’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전혀 없는 경제를 뜻한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뜻이다. 제정 러시아 시대 황제인 예카테리나 2세가 새로 점령한 크림반도를 시찰할 때 당시 연인이자 총독이던 그레고리 포템킨이 여제의 환심을 사려고 낙후된 크림반도의 상황을 감춘 채 겉만 화려한 가짜 마을을 만들어 보여준 데서 유래했다. 이처럼 현실을 감추고 가공으로 연출된 도시를 ‘포템킨 빌리지(Potemkin Village)’라고 부른다. 옛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포템킨 경제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포템킨 경제라는 용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한 이후 러시아 경제에도 빗대어 사용됐다. 2013년 러시아 경제성장률은 7%였지만 2014년에는 크림반도 강제병합에 대한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제재 조치로 1.3%까지 급락했다. 당시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 약세, 국가 신용등급 강등, 외국 자본 이탈이 이어지면서 이 용어가 회자됐다.

전쟁 전보다 강세인 루블화

러시아가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이 강력한 각종 제재 조치를 내리자 경제 전문가 상당수는 러시아가 포템킨 경제 때문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사상누각’이라던 러시아의 포템킨 경제는 전쟁 발발 6개월이 지나도록 붕괴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 경제는 서방의 각종 제재 조치로 어느 정도 약화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굳건하다. 수도 모스크바와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경우 식당과 술집이 여전히 붐비고, 슈퍼마켓 등에는 일부 수입 품목을 제외하면 각종 제품이 가득 차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6개월이 지난 현재 러시아는 그 나름 위기를 극복하며 잘 버티고 있다”면서 “러시아 중앙은행과 통계청이 무역, 투자 등 경제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서방 경제 관련 기관들이 내놓은 지표를 보면 러시아 경제가 붕괴하리라는 예측은 빗나간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경제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사용하는 현재활동지수(CAI)를 보면 러시아 지수는 3∼4월 급격히 떨어졌으나 이후 회복세로 돌아섰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도 6월 러시아 산업 생산이 지난해와 비교해 1.8% 줄었으나 심한 불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물가나 환율 지표도 안정적인 편이다. 소비자물가는 연초부터 5월 말까지 약 10% 올랐지만 지금은 떨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3월 17.6%였으나 7월에는 11%로 하락했다. 루블화 가치도 2월 말부터 3월까지 폭락했다 이후 서서히 상승해 지금은 전쟁 전보다 강세로 돌아섰다.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는 러시아 국민의 중위소득이 봄 이후 상승했고 소비자 지출도 줄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서방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했지만, 그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4%를 기록했지만 경제전문가들의 예상치인 -4.7%보다 양호한 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올해 GDP 성장률이 -6%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개전 초기 경제전문가들이 예상했던 -10%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중국·인도·튀르키예, 러시아산 석유 수입 늘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맨 앞줄)이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석유 터미널 건설 조감도를 살펴보고 있다. [크렘린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맨 앞줄)이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석유 터미널 건설 조감도를 살펴보고 있다. [크렘린궁]

물론 러시아 경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빨간불도 여러 곳에서 켜지고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제조업 생산이 곤두박질쳤다. 외국산 부품 수입이 경제 제재로 중단되면서 가동을 멈춘 공장이 많고, 이 때문에 강제 휴가 중인 인력도 늘고 있다. 러시아의 올해 산업생산량은 약 62%나 줄어들었다. 러시아 최대 판매 차량인 라다의 제조사 아브토바즈는 몇 달째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대주주인 프랑스 자동차 회사 르노는 보유 지분의 68%를 러시아 국영회사에 단돈 1루블에 넘기고 떠났다. 아브토바즈는 현재 에어백과 브레이크 잠김 방지 시스템(ABS), 에어컨이 장착되지 않은 라다를 생산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60만 명이 고용된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은 급여를 3분의 2만 받는 조건 등으로 강제 휴직에 들어갔다. 러시아 정부는 실업률을 4%로 유지하기 위해 기업들에 노동자를 해고하지 말고 급여를 줄여서라도 일자리 나누기나 휴직제 등을 활용할 것을 요구했다. 소매 판매도 2분기 들어 지난해보다 10% 줄었고, 소비자신뢰도는 2015년 이후 최저치다. 러시아 정부가 7월 발표한 재정적자도 9000억 루블(약 20조 원)로 GDP의 8% 수준에 달했다.

그럼에도 러시아 경제가 버티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 때문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가스 수출국이자 두 번째 석유 수출국이다.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가스 가격이 상승하고 석유 수출이 증가해 올해는 지난해보다 에너지 부분 수출에서 더 많은 이익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경제개발부에 따르면 올해 에너지 수출 흑자 전망치는 3375억 달러(약 455조 원)로 지난해 2442억 달러(약 329조 원)와 비교해 38% 증가했다.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산 가스와 석유의 수입을 중단하거나 줄였지만 수출 금액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석유 수출의 경우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산 수입을 줄이고 있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오히려 수입을 늘렸다. 게다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의 고유가 덕분에 러시아의 석유 수출 이득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7월까지 러시아 석유 생산과 수출이 예상보다 호조를 보였는데, 이는 중국과 인도, 튀르키예(터키) 등이 석유 수입을 늘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석 달째 대중(對中) 최대 석유 공급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까지 육상 송유관과 해상 운송을 통해 중국에 공급된 러시아산 석유는 총 715만t으로, 지난해 대비 7.6% 증가했다. 인도도 6월 러시아산 석유 수입이 하루 95만 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은 전체 석유 수입의 20%를 차지한다. 튀르키예는 올해 러시아산 석유 수입량이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튀르키예는 올해 들어 지금까지 하루 평균 20만 배럴에 달하는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는 등 지난해 같은 기간 9만8000배럴과 비교해 수입량을 크게 늘렸다. 심지어 러시아는 아시아 국가들에 석유 장기 공급 계약 조건으로 공급가를 최대 30% 할인해주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IEA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7월 하루 산유량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보다 3%(31만 배럴)가량 감소했다. 러시아의 석유 수출량(원유, 석유제품)도 전쟁 전 수준보다 하루 58만 배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아예 금지했고, 유럽연합은 12월 5일까지 해상을 통한 러시아 석유 수입을 금지하는 동시에 내년 2월 5일까지 석유제품을 수입하지 않기로 했다.

러시아의 가스 수출은 석유와 달리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은 올해 예상 가스 수출량을 1850억㎥에서 1704억㎥로 하향 조정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내년 3월까지 가스 소비량을 지난 5년 평균보다 15% 감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중 가스 수출량은 전체 수출량의 10%에 불과한데, 파이프라인이 추가 건설되지 않아 수출량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며, 이에 러시아가 유럽 이외에 가스를 수출할 지역은 없다.

러시아 시베리아에 위치한 유전 모습. [Statoil]

러시아 시베리아에 위치한 유전 모습. [Statoil]

서방 “시간은 우리 편”

서방에서는 러시아 경제가 장기적으로는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본다. 제프리 소넌펠드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정부 재정 수입의 60%를 에너지에 의존하는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 조치를 뚫고 석유를 수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현재 러시아가 배럴당 35달러라는, 전례 없는 저렴한 가격으로 중국과 인도에 석유를 팔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남는 게 없다”면서 “러시아가 앞으로 에너지 패권국 지위를 잃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마리아 샤기나 에너지 안보 및 제재 전문가도 “중국은 서방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에 러시아산 석유 수입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언 브레머 미국 유라시아그룹 회장도 “러시아가 갈수록 제재에 따른 타격을 크게 입고 있다”면서 “러시아 GDP가 앞으로 전쟁 전 수준보다 30~50%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 경제 붕괴 여부는 결국 시간 싸움이 될 듯하다.





주간동아 1355호 (p48~50)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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