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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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의사 파업은 정부의 ‘망상’에 대한 반대”

질의응답으로 알아보는 의사 파업 이유

  • 서민(단국대 의대 교수)

    입력2020-08-25 10: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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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파업에 참여한 의사들과 의대생들에겐 커피 판매하지 않습니다. 사람 목숨을 흥정 대상으로 삼는 당신들은 커피 한 방울도 먹을 자격 없습니다.” 

    강원도의 한 커피집에서 붙인 벽보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저 글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겠구나. 이 글을 쓰게 된 건 이 때문이었다.

    <질문1>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에 비해 의사수가 부족하다는데, 왜 의대생 정원을 못 늘린다는 거야? 

    -답변:
    우리나라 의사수는 인구 1000명당 2.4명으로, OECD 평균인 3.5명보다 적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의사 수가 아니라 ‘접근성’,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몰려 사는 우리나라의 의료접근성은 세계 최고다. 1인당 외래진료 횟수가 1년 평균 17회로 OECD 평균의 2.5배에 달할 정도다. 의료비가 싸서이기도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한 원인이다. 코로나 사태 등을 대비해서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인구 1000명당 4.0명의 의사를 거느린 이탈리아를 비롯해 우리보다 의사 비율이 더 높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은 코로나 환자가 20만을 넘고, 사망률도 10%대다. 반면 우리나라는 확진자가 1만7000여명에 사망률은 2%가 안 된다. 이게 김치를 먹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의사가 공무원인 그 나라들과 달리 민간인이 의사의 대부분인 우리나라가 의료의 효율성에서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흔히 3분 진료를 비판하지만, 그건 의료수가가 싸서 나온 고육지책일 뿐 의사수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그 3분 진료 덕분에 우리나라는 예약 당일에 전문의를 만나는, 다른 나라에선 상상도 못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나라가 됐고, 이는 코로나19에 대한 대처를 잘 하게 된 비결이기도 하다.

    <질문2> 그래도 지방에는 의사가 부족하잖아? 의사 수를 늘리면 지방에도 갈 거니까 국민에게 이익이야. 

    -답변: 지방에 의사가 적은 건 맞다. 전국 출장을 다녀보다 알게 된 사실인데, 지방의 도로망은 정말 혼자 차 타고 지나가기 미안할 정도로 좋다. 전남 장흥이나 강진에서 화순에 있는 전남대병원까지 걸리는 시간은 차로 1시간 남짓, 이 정도면 접근성이 좋은 것 아닌가? 게다가 KTX와 SRT가 개통되면서 지방 환자들도 근처 병원 대신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한 서울소재 빅5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 건강보험 덕에 동네병원과 빅5 병원의 값이 비슷하고, 문재인 케어로 인해 교수 특진비까지 보험에서 내주니, 이왕이면 최고의 병원을 찾는 건 당연한 일, 빅5 병원에서 지방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60%를 넘는다. 지방에 있는 병원들이 환자가 없어 존폐위기에 처한 이 마당에 의사수를 늘린다고 의사들이 지방에 갈까?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과 관련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8월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과 관련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8월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질문3> 지방은 그렇다고 쳐. 하지만 흉부외과처럼 정작 필요한 과에는 의사가 모자란다고. 의사 수를 늘리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니, 의대생 정원은 늘어나야 해. 

    -답변:
    흉부외과나 외과, 산부인과 등을 소위 기피과라고 부른다. 이들이 기피과인 이유는 수가가 낮은 데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다 보니 의료소송이 제기되는 일이 잦아서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취업’이다. 의대를 졸업한 이가 전공의 4년을 마치고 전문의를 따면 개업을 하든지 아니면 기존 병원에 취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흉부외과 수술은 혼자 할 수가 없어서 개업이 불가능하니, 취업밖에 답이 없다. 그런데 흉부외과 전문의를 뽑는 병원이 얼마나 될까? 내과나 안과 같은 경우 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교수 숫자를 계속 늘려주지만, 흉부외과는 기존에 있던 교수가 그만두지 않으면 교수 충원을 하지 않는다. 1시간도 안 걸리는 쌍꺼풀 수술이 300만원인 반면, 의사 서넛이 몇시간씩 달라붙어야 하는 흉부외과 수술은 100만원도 못 받는다면, 병원에서 흉부외과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그래서 병원들은 흉부외과를 최소한으로 운영하려 들고, 새로 전문의를 뽑지 않는다. 취업을 못한 흉부외과 의사는 어떻게 될까? 일부는 성형 등으로 빠지고, 나머지는 개업한 뒤 감기환자를 보면서 분을 삭인다. 자, 이런데도 의사 수를 늘리면 기피과에 의사들이 몰린다고? 단언컨대, 망상이다.



    <질문4> 그래그래, 네 말 알겠어. 하지만 이건 부인하지 못할 걸? 우리나라는 공공의료가 부족해. 그러니까 공공의대를 만들어 공공의료에 복무할 인재를 뽑아야 해. 

    -답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공공병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공공병원을 짓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럴 이유가 없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은 건강보험의 지배를 받으며, 그래서 가격이 아주 싸다. 공공병원이 아주 싸다면 돈 없는 환자들이 그리로 갈 텐데, 우리나라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 민간병원들은 정부 말을 아주 잘 듣는다. 메르스나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 민간병원들이 환자를 거부한 적이 있는가? 전혀 아니다.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봤다. 민간병원이 다른 나라 공공병원보다 더 공공병원스럽다는 얘기다. 그러니 공공병원이 경쟁력이 있겠는가? 거의 모든 공공병원이 적자에 신음하고, 그러다 보니 의료인력을 감축한다. 근무여건은 더 안 좋아지고, 그곳에서 일하려는 의사를 구하는 게 어려워진다.

    <질문5> 그래그래, 그러니까 공공의대를 만들어서 거기 근무하게 하면 되잖아? 

    -답변:
    졸업 후 공공병원에서만 근무할 수 있는 의대가 생긴다고 해보자. 빅5에서 근무하는 건 꿈도 못꾸고, 박봉을 받으며 3D스러운 일을 평생 해야 한다면, 그런 곳에 지원하는 이의 성적이 아주 좋진 않을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다. ‘꼭 머리 좋은 사람만 의사가 돼야 하나요?’라고 따질지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경련으로 응급실에 온 환자가 있다고 치자. 환자를 보는 순간 의사는 가장 가능성 높은 진단을 골라내 응급처지에 들어가야 한다. 이건 머리나쁜 사람은 하기 힘들다. 왜 모든 나라에서 의사의 봉급이 상위권인지 아는가? 머리 나쁜 이가 의사가 되는 것의 부작용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의대에 올 성적이 안 되는데 표창장을 위조하는 등 편법을 써서 의사가 된 이가 있다고 치자. 장담컨대 그는 과거 의령에서 근무하던 우순경이 죽인 62명을 가볍게 뛰어넘어, 100명을 죽이는 의사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공공의대 신입생을 시도지사가 추천한다는 문서도 나돌고 있으니, 걱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왜 십여 년 후 일을 미리 걱정하냐고 따지지만, 그때 가서 막으려면 이미 늦다. 코로나 시국에 의사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의사파업에는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목적도 있다. 의사 밥그릇을 의사가 안 지키면 누가 지키겠는가? 물론 국민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줄여도 되지만, 지금의 정부 정책이 과연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함일까? 정부의 진솔한 답변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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