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1

2015.03.30

각자의 파랑새를 찾자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사치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5-03-30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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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의 파랑새를 찾자

    3월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한 호텔 로비 라운지에서 호텔을 찾은 시민들이 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다.

    일상을 호사스럽게 만드는 마지막 사치가 과연 무엇일까. 물건을 사는 것보다 문화예술을 누리는 게 아닐까. 예술은 모든 사치 가운데 최고 사치이자 가장 즐거운 사치다.

    나는 단골 미술관이 있다.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자주 가는 곳을 내 마음대로 단골이라 정했다. 리움, 금호미술관, 대림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한가람미술관 등이 단골 미술관이다. 단골 공연장은 단연 국립극장이다. 프로그램도 좋지만 건물도 좋고 서울 남산에 있어 더 좋다. 예술의전당과 LG아트센터를 비롯해 수많은 공연장도 단골에 가깝고, 콘서트를 보러 가는 올림픽체조경기장이나 올림픽공원도 익숙한 곳이다. 단골 도서관 하면 이진아기념도서관과 정독도서관을 꼽는다. 해외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미술관, 공연장, 도서관을 꼭 들르는 편이다. 그 나라 문화를 소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값싸고 편리하게 많은 걸 누릴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의 사치가 내일의 보편화로 이어집니다. 모든 문화는 처음 나올 때는 사치입니다. 누군가 더 편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인가를 만들게 되고, 문화는 그렇게 잉태하는 것입니다.”

    조태권 광주요 회장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 문화의 상당수는 과거에 아무나 하지 못하는 특별한 사치였다.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 소비를 통한 행복 탐닉과 작은 사치는 결코 양보할 수 없다. 문화예술 소비는 습관처럼 익숙해져야 더 즐겁고, 더 오래 누릴 수 있다.

    모든 문화는 처음엔 사치였다



    뭔가를 하지 못할 때 우리는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라고 핑계를 댄다. 이건 정말 핑계다. 시간과 돈이 아니라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게 더 정확한 이유다. 우리는 시간과 돈을 우선순위에 따라 지출한다. 연봉이 같아도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다른 이유가 이 때문이다.

    공연 티켓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커피전문점에서 매일 한 잔씩 사 먹는 비용이 4000~5000원인 경우 1년이면 150만~180만 원어치다. 여기에 담배를 하루 한 갑씩 피우거나, 커피에 디저트까지 즐겼다면 비용은 더 커진다. 술값도 마찬가지다. 주당치고 이제까지 집 한 채 값은 마셨을 거란 허풍 섞인 말을 안 하는 사람이 없다. 일상의 푼돈도 모으면 1년에 수백만 원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티끌 모아 태산이란 속담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돈을 자기만의 작은 사치이자 종잣돈으로 삼아야 한다. 새로운 돈을 쓸 게 아니라, 기존 소비지출액을 재편성해보자는 말이다. 매년 같은 수준의 소비를 하더라도 우선순위를 달리하면 의외의 호사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보자. 당신은 무엇을 우선시하고, 어디에서 만족감을 얻는가. 그걸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상의 미션일 수 있다.

    이번이 작은 사치를 화두로 한 칼럼의 마지막 회이자 44번째 이야기다. 일상을 풍요롭고 호사스럽게 만들 방법은 얼마든 있다. 1만 원짜리 한 장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수백 가지가 넘을 것이다. 적은 돈이나마 남을 돕는 기부를 통해서도, 신문지에 둘둘 말아 파는 꽃 한 다발로도, 동그랑땡만한 마카롱 한 개에 따끈한 커피 한 잔으로도 일상의 사치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 칼럼을 계속 읽어온 독자라면 수십 가지의 작은 사치 방법을 배웠으리라 생각한다. 일상을 호사스럽게 하는 화룡점정은 결국 문화적 풍요다. 공연이나 전시 같은 문화예술 소비가 주는 마음의 풍요는 들이는 돈에 비해 만족도가 높고 효과가 아주 크다. 물질로 남지 않아 남에게 보여줄 일도 없으니 스스로 누리는 게 핵심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지만, 경험은 한 번 쌓이면 누가 뺏어갈 수 없다. 안목을 높이고, 취향을 만들다 보면 일상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누군가 내게 단 한 가지만 남기고 다른 분야의 소비를 멈추라 한다면 공연과 전시 감상을 택할 거다. 이게 바로 의식주를 넘어 우리가 누릴 마지막 사치이기에.

    각자의 파랑새를 찾자

    공연이나 전시 같은 문화예술 소비가 주는 마음의 풍요는 만족도가 높다.

    오늘의 행복을 위해 살자

    불황 시대에 작은 사치마저 하지 않고 묵묵히 돈만 모으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건 얼마든지 있다. 그중 하나가 오늘, 아니 지금 이 순간 느끼는 행복이다. 우리가 돈을 버는 가장 큰 이유는 잘 쓰기 위함이 아닐까. 남에게 보여주는 소비가 아닌 자신을 위한 소비를 해야 할 때다. 과소비는 분명 경계할 일이다. 하지만 소비가 위축되는 것 또한 경계할 일이다.

    작은 사치를 설파하는 걸 두고 어떤 이들은 내수 소비를 진작하려는 소비재나 서비스 기업에게 사주를 받은 전략적인 트렌드 유도라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황이라서 작은 사치가 대세인 것은 아니다. 현대인이 개인화하고 자기 행복 찾기에 관심이 커졌음에 주목해야 한다. 더는 직장에 대한 충성이나 재테크, 내 집 마련도 미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미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담보 잡히듯 포기하면서 산 것에 대한 반작용이 지금의 작은 사치다.

    그런 점에서 당신의 일상은 앞으로 더 화려하고, 더 호사스러워져도 된다. 아직 우리가 누려야 할 작지만 큰 행복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남의 소비 활동에 대해 자신의 기준으로 함부로 평가하지 말자. 지금은 욕망을 소비하는 시대다. 각자의 욕망이 다르고 각자의 즐거움과 만족의 지점이 다르듯, 우리는 남을 지켜보는 대신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남의 눈치를 보면서 소비하다 결국 남과 유사한 것만 소비하는 동조화 현상을 경계하라. 이제는 스스로 눈치를 보자.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보자.

    이제 45번째 작은 사치는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일상을 더 호사스럽게 만들어줄 자기만의 작은 사치에 집중해보자. 우리는 더 행복해지고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산다. 내일의 행복만큼이나 중요한 오늘의 행복을 위해 지금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작은 사치의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마라. 행복은 늘 옆에 있다. 우리의 파랑새를 오늘에서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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