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6

2014.12.08

순천만 갈대숲 하얀 가슴 겨울철새 뜨겁게 품다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만 캠핑, 1~2일은 너무 아쉬운 여정

  •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입력2014-12-08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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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만 갈대숲 하얀 가슴 겨울철새 뜨겁게 품다

    광활한 순천만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갈대데크’.

    가을은 이미 저만치 멀어졌고 겨울빛이 완연하다. 그래서 여행하기가 마땅치 않다는 사람도 적잖다. 하지만 나에게는 매년 이맘때마다 본능처럼 꿈틀거리는 그리움을 삭이지 못해 기어이 발길을 향하는 곳이 하나 있다. 광활한 갈대밭이 바다처럼 일렁이는 순천만(061-749-6052/ www.suncheonbay.go.kr)이 그곳이다. 하도 많이 봐서 식상할 법도 하건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날아드는 철새처럼 그곳을 다시 찾곤 한다.

    순천만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위치한 내만(內灣)이다. 갯벌, 염습지, 갈대군락 등으로 이뤄진 하구(河口)의 자연생태계가 원형에 가깝게 잘 보전된 곳이다. 세계 5대 연안습지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규모도 크다. 2003년에는 습지보호지역, 2006년에는 람사르 습지, 2008년에는 국가문화재 명승 제48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540만㎡(160여만 평) 갈대밭과 2260만㎡(680여만 평)의 광활한 갯벌을 품은 순천만은 생태계 보고이자 철새들의 낙원이다.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 검은머리갈매기, 노랑부리저어새, 황새, 검은머리물떼새 같은 국제보호종 25종을 포함해 총 220여 종의 조류가 관찰됐다고 한다. 10월 초부터 순천만 일대에 날아들기 시작한 겨울철새는 예년보다 그 수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 순천만자연생태관 부근 대대들에서는 청둥오리, 고방오리, 흰죽지, 홍머리오리 같은 겨울철새들이 떼 지어 날아다니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세계 5대 연안습지 가운데 하나

    흑두루미는 순천만의 대표적인 겨울철새다. 올해는 이미 지난해 854마리를 훌쩍 넘어섰고, 최대 1000마리 이상이 날아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순천만의 어디서나 흑두루미 떼가 쉽게 눈에 띈다. 특히 순천시에서 정기적으로 먹이를 뿌려놓는 대대들에서는 흑두루미 수백 마리가 떼 지어 내려앉은 광경을 늘 볼 수 있다. 생태탐사선과 어선이 종종 오가는 수로 주변 갯벌에서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장관은 커다란 몸집의 흑두루미들이 우아한 날갯짓으로 유유히 하늘을 나는 광경이다.



    ‘대한민국 생태수도’를 자임하는 순천시는 순천만 일대를 순천만자연생태공원으로 지정했다. 그와 함께 공원 내 음식점들을 이주하게 하고, 전봇대 수백 개를 없앴으며, 자동차 출입도 금지했다. 자연훼손을 최소화해 데크 산책로와 용산전망대도 설치했다. 탐방객의 이동과 탐조활동을 돕고자 순천만 생태체험선과 갈대열차도 운행한다. 드넓은 갈대밭 사이를 가로지르는 1.2km ‘갈대데크’,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용산전망대, 순천만의 ‘S’자형 수로를 운행하는 생태체험선(에코피아) 탑승은 이제 순천만 탐방의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순천만에서 가장 압권은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순천만의 해질 녘 풍경이다. 해발 100m도 안 되는 야산이지만, 순천만 일대에선 최고 천연 전망대로 손꼽힌다. 설핏 기울어진 햇살 아래 갈대밭은 금빛으로 물들고 S자로 구불거리는 수로는 은빛으로 반짝인다. 때마침 작은 배 하나가 물살을 가르면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카메라 셔터소리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는다.

    순천만 갈대숲 하얀 가슴 겨울철새 뜨겁게 품다

    고방오리, 청둥오리 등 겨울철새가 순천만자연생태관 부근 대대들 상공을 떼 지어 날고 있다.

    순천만 갈대숲 하얀 가슴 겨울철새 뜨겁게 품다

    둥근 성안에 나직한 초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낙안읍성 민속마을.

    금빛으로 물든 해질 녘 풍경 장관

    순천만자연생태관에서 용산전망대를 가려면 1.2km 갈대데크와 1.4km 나직한 산길을 지나야 한다. 훨씬 짧은 지름길도 있다. 순천시 해룡면 농주리 쪽에서는 차를 세워두고 400m가량 계단만 오르면 전망대에 당도한다. 전망대가 있는 농주리와 그 이웃 상내리는 순천만 동쪽에 위치한 갯마을이다. 그 덕택에 어느 바닷가에서나 멋진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바로 앞바다에 ‘솔섬’이 떠 있는 상내리 와온마을은 남해안 일대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일몰 명소로 유명하다.

    순천만은 해질 녘 풍경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순천만 서쪽 해안에 위치한 순천시 별량면의 우명, 화포, 청산, 거차 등 갯마을에서는 동해안의 어느 바닷가 못지않게 멋진 해돋이를 구경할 수 있다. 물론 수평선 위로 불끈 치솟는 동해안의 해돋이만큼 장엄하지는 않다. 하지만 순천만의 갯벌과 수로, 하늘을 붉은빛으로 찬찬히 물들이며 슬그머니 해가 떠오르는 광경은 동해안의 해돋이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고 서정 넘친다. 그래서 이곳은 해가 막 떠오를 때보다 해뜨기 전의 은은한 노을빛이 더 환상적이다.

    순천만 갈대숲 하얀 가슴 겨울철새 뜨겁게 품다

    해질 녘 순천만 ‘S’자형 수로를 달리는 생태탐사선 ‘에코피아’. 한쪽 발로 뻘배를 밀며 순천만 갯벌로 칠게잡이를 나가는 주민.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의 소장품 가운데 하나인 ‘미인도’(위부터).

    순천만에서는 자연과 사람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순천만의 자연을 누구보다 아끼고 보존하는 데 앞장서는 사람도 토박이들이다. 순천만이 건강해야 그들의 삶도 안정되기 때문이다. 이곳뿐 아니라 갯마을 주민은 대부분 물때에 따라 일상이 좌우된다. 썰물 때가 이른 날에는 제아무리 엄동설한이라도 새벽밥을 해먹고 갯벌로 나가야 된다.

    순천만 어민의 가장 중요한 어구이자 이동수단은 뻘배다. 좁고 긴 널빤지로 만든 뻘배는 구조가 아주 단순하다. 그러나 효용성만큼은 진짜 배를 능가할 정도다. 사람과 어구, 그리고 갯벌에서 수확한 해산물까지 한꺼번에 싣고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갯벌을 거침없이 누빌 수 있는 것은 뻘배 말고 없다. 겨울 칼바람 속에서도 한쪽 발로 뻘배를 밀며 가없는 갯벌을 누비는 순천만 사람들이 나의 현재 모습과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푸근한 낙안읍성 민속마을

    수도권에 사는 사람은 순천만 일대를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1박 2일 여정이 빠듯하다. 순천만정원, 선암사와 송광사, 낙안읍성 민속마을, 순천드라마촬영장 등 순천의 다른 여행지까지 둘러보려면 2박 3일은 잡아야 한다. 그래도 빼놓을 수 없는 한 곳을 추천한다면 낙안읍성 민속마을(사적 제302호/ 061-749-8831/ www.nagan.or.kr)이 첫손에 꼽힌다. 우리나라 여러 민속마을 중에서도 으뜸이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에는 총길이 1410m의 둥근 석성 안에 초가 수십 채가 올망졸망 들어앉았다. 언제 봐도 고향처럼 아늑하고 정겹다. 골골샅샅 사람 온기와 체취가 가득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정이 넘친다. 겉만 그럴싸한, 박제된 민속마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마을은 120가구 280여 명 주민이 살고 있는 삶터다. 마을 한복판 민속음식점에 들러 파전 안주에 사삼주(더덕술) 한 잔을 맛보는 일은 순천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성벽 옆에 자리 잡은 ‘뿌리깊은나무박물관’(061-749-8855)은 일부러 들러볼 만한 문화공간이다. 고(故) 한창기(1936~97) 선생이 평생 동안 수집한 민예품, 전통악기, 고서, 도기, 회화 등 유물 6500여 점이 전시, 보존돼 있다. 그는 최초의 한글 전용 월간지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하고, 색다른 여성교양지 ‘샘이깊은물’을 발행함으로써 한국 잡지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문화인’이다.

    박물관은 하나의 전시동 건물과 한옥, 야외전시장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한옥은 단소 명인이자 인간문화재였던 고 김무규(1908~94) 선생의 구례 생가 ‘수오당’을 고스란히 옮겨온 것이다. 1922년 건립됐다는 이 집은 영화 ‘서편제’에서 사랑채 누마루에 앉은 김무규 선생이 직접 거문고를 타는 장면이 촬영되기도 했다. 우뚝한 금전산과 고풍스러운 낙안읍성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수오당은 본디 그 자리에 있었던 고택처럼 천연덕스럽다. 박물관 안팎에는 일세를 풍미했던 거장들의 숨결과 자취가 또렷하다. 한창기 선생과의 개인적인 기억과 소회까지 울컥 치밀어 올라 오래도록 발길을 되돌리지 못한 채 박물관 주변을 서성거렸다.

    ■ 여행정보

    ● 캠핑장

    순천만 갈대밭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입구에서 약 700m 거리에 순천만갈대캠핑장(061-741-9325/ http://순천만갈대캠핑.com)이 있다. 도보로 5~10분밖에 걸리지 않을 만큼 순천만 갈대밭과 가깝지만, 도로와 인접한 데다 땅이 협소한 편이라 자연스러운 멋을 느끼기는 어렵다. 반면 순천시 서면 운평리 수리봉(508m) 기슭에 들어선 순천국민여가캠핑장(061-749-8948/ http://yeyak.suncheon.go.kr)은 시설 수준과 규모면에서 순천 최고의 캠핑장으로 꼽을 만하다.

    2013년 9월 준공된 순천국민여가캠핑장에는 총 23개 캠핑사이트가 조성돼 있다. 그중 12개 사이트에만 데크가 깔렸고, 나머지 11개는 잔디블록이나 마사토 바닥이다. 각 사이트 넓이는 소형 알파인텐트 2~4동을 설치해도 될 만큼 널찍하다. 그늘이 없어 여름철엔 타프가 필수품이지만, 겨울철에는 아침나절 내내 햇살을 듬뿍 받을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깨끗한 화장실, 그리고 온수가 상시 공급되는 샤워장과 개수대다. 배전반도 2개 사이트당 1개씩 설치돼 있다. 캠핑장 안팎에는 캐빈하우스, 숲속의 집 등 숙박시설도 있다. 하지만 순천만자연생태공원과의 거리가 20km쯤 된다는 점은 다소 부담스럽다.

    순천만 갈대숲 하얀 가슴 겨울철새 뜨겁게 품다

    순천국민여가캠핑장의 널찍한 데크(왼쪽)와 순천만자연생태관 부근 ‘보리밭사이길’의 보리밥정식.

    ● 숙식

    순천만자연생태관 근처에 무진게스트하우스(061-746-6677), 한옥펜션샘터(061-722-8958), 순천만빌리지펜션(061-746-6677), 순천만쉼표펜션(010-4798-3344) 등 숙박업소가 있다. 순천시에서 운영하는 순천만에코촌유스호스텔(061-722-0800)도 권할 만하다. 해룡면 상내리 순천만에코비치펜션(061-725-3355), 놀펜션(061-723-0150)에서는 객실에서도 순천만 일몰과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순천만자연생태관 부근의 맛집으로는 보리밭사이길(보리밥정식/ 061-741-3157), 강변장어집(민물장어구이/ 061-742-4233), 대대선창집(민물장어구이/ 061-741-3157), 우리밀해물칼국수(061-741-1465) 등을 꼽을 수 있다. 순천시내 일품매우(한우갈비/ 061-724-5455), 다심정가(한정식/ 061-744-5009)도 순천을 대표하는 맛집 가운데 하나다. 낙안읍성과 인접한 벌교꼬막식당(061-754-4098)은 내력 깊은 꼬막요리 전문점이다.

    ● 가는 길

    순천완주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 서순천IC→순천시 서면 소재지→순천자연휴양림(순천국민여가캠핑장)→서면 소재지→순천시내 남교 오거리→인월 사거리(좌회전)→순천만자연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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