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4

2014.09.15

성장 응급처방보다 체질을 바꿔라!

‘초이노믹스’ 두 달, 불황 고통 덜어주지만 근본 치유에는 한계

  • 김진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 jinskim@woorifg.com

    입력2014-09-15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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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 응급처방보다 체질을 바꿔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8월 2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새 경제팀이 내수 활성화, 민생 안정, 경제 혁신을 골자로 한 경제정책 방향, 이른바 ‘초이노믹스’를 내놓은 지 두 달이 가까워온다. 새 경제팀은 현 경제상황을 위기 국면으로 진단하고, 내수 활성화를 최우선 정책 목표로 삼아 확실한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거시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용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바 있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민생 관련 법안에 대한 여야 합의가 난항을 보였지만, 경기 진작을 위해 전 방위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기본적으로 새 경제팀은 현 경기 상황이 예상보다 비관적이고, 회복세를 자신할 수 없으며, ‘겹겹이 쌓인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조속히 상황을 반전하지 못할 경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것이라고 봤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제팀은 내수 활성화를 최우선 정책 목표로 삼고 ‘41조 원+α’의 경기 부양 패키지, 가계소득 증대를 위한 세제 3대 패키지, 투자 촉진, 주택시장 정상화, 고용 및 처우 개선, 취약계층 지원, 공공부문 개혁, 규제 개혁 및 유망서비스업 육성 대책을 묶어 내놓았다.

    확장정책으로 심리 개선 효과

    그러나 새 경제팀의 이런 경제정책 방향에는 아쉬운 대목이 있다. 광범위한 패키지에 담긴 내용의 면면을 살펴보면 상황 인식과 원인 진단에 비해 무게감이 다소 약하거나 신선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진단과 처방 측면에서 볼 때 환자의 증상을 개선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것임은 분명하나, 근본적인 치유보다 응급처방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뜻이다.

    이를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근혜노믹스’와 비교해보자. 그 내용은 비슷하지만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과거에 비해 낮은 성장은 불가피하다 해도 완만한 경기 회복을 전제로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운다는 게 근혜노믹스의 기본 취지였다면, 초이노믹스는 경기 상황이 예상에서 어긋남에 따라 당면한 저성장 국면을 벗어나는 쪽으로 우선순위가 옮겨간 모습이다.



    재정 투입과 금융 지원은 물론, 단발성일지 모르는 금리인하라 할지라도 단기적인 경기 진작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수출을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우리 경제는 글로벌 경제의 회복이 느린 만큼 활성화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수 활성화 등에 총력을 기울여 기대할 수 있는 성장률 제고 효과는 평균 0.2%p 내외에 불과하고, 그나마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경제팀은 확장정책의 경제 심리 개선 효과를 강조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심리 개선의 약발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변화가 제도적, 장기적으로 유지되리라는 기대가 형성돼야만 경제주체들의 심리도 바뀐다. 최근 경기 심리가 개선되고 있다 해도, 현안과 관련한 여러 입법을 앞두고 대다수 경제주체는 여전히 정부의 입과 손만 쳐다본다. 이는 앞으로도 경기가 부진할 때마다 정책 당국의 구실과 개입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처방이 나와야 할까. 먼저 내수 부진을 타개하는 일 자체보다 중·장기 과제로 밀린 듯한 경제 혁신에 더 주안점을 두는 형태로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선 상당한 기간과 비용이 필요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면적인 구조 개혁이 요구되고 상당 기간 저성장 국면이 지속될 것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성장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구조적인 체질 개선에 매진할 수 있는 적기라는 뜻이다.

    내수 성장 기반 확충, 중견·중소기업 지원, 서비스업 육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해왔음에도 제대로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한 대표적인 이슈들이다. 각각 수출, 대기업, 제조업 중심의 전통적인 성장동력이 약화하고 이들의 이른바 낙수효과가 축소됨에 따라 그 피상적인 대안으로서 이 사안들을 잠시 추진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기에는 경기 진작을 위한 반짝 대안으로 논의되다 회복기에 접어들면 추진력을 잃었던 주제들인 것이다. 반대로 경기 침체가 아예 깊어진 경우에는 가시적인 정책 효과를 얻기 위해 전통적 성장 주도 부문에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체질 개선 방안이 다시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양쪽 바퀴 불균형과 격차 심화

    성장 응급처방보다 체질을 바꿔라!

    ‘9·1 부동산대책’에 따라 2018년 재건축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삼풍아파트 전경. 인근 공인 중개사사무소에 따르면 이 아파트의 전용면적 79㎡는 최근 호가가 9억 원까지 올랐다.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속도 차가 약간 있더라도 수레의 양쪽 바퀴처럼 동반 성장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경우 특징적으로 상응하는 두 부문이 큰 차이를 보이고, 더욱이 그 격차가 점점 심화한다는 데 구조적 문제가 있다.

    한국처럼 높은 수출 점유율과 경쟁력을 갖춘 나라에서 수출에 비해 내수 성장이 크게 떨어진 것은 자원 배분과 소득 분배 등에서 불균형이 심화했기 때문이다. 좁은 내수시장이라는 한계에도 더는 수출의 과실을 통해서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내수의 성장 기반을 다져야 할 시점인 것이다.

    중소기업 역시 대기업과 협업관계를 형성해 동반 성장하거나 고유 영역에서 대기업과 공존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정책적 지원과 배려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배후에는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의 독특한 구조와 방대한 사업 영역, 불합리한 거래 관행과 불공정한 경쟁 구조가 자리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창업과 중견기업의 가업승계, 기업가정신 등을 논하기 전 이른바 경제민주화가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서비스업 역시 경제 규모가 커지고 고도화함에 따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제조업 비중이 크고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제조업에서 이탈한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한 방편으로 서비스업 육성을 인식해온 탓이다. 또한 제조업의 성장 경로와 마찬가지로 서비스업의 성장도 대형화, 국제화라는 틀을 통해 풀어가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몸져누운 환자를 빨리 일으켜 세워 걷고 뛰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고질적이고 복합적인 증상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진단과 적합한 치유 과정을 거치는 게 옳다. 내성이 생길 대로 생긴 처방을 반복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누운 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면밀하게 진단하고, 체질 개선을 통해 온전한 회복과 온전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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