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도 팔아먹는 배고픈 변호사

법조계 치열한 생존경쟁에 일부 도덕불감증…브로커·사무장과 짜고 기획소송

  • 조순열 법무법인 문무 대표변호사 law119@naver.com

    입력2014-01-03 1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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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면도 팔아먹는 배고픈 변호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기획소송.’ 이 소송은 말 그대로 변호사가 기획을 통해 피해자나 의뢰자를 모아서 하는 소송을 뜻한다. 언론을 통해 부정적인 모습만 비쳐서 그렇지, 기획소송이라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변호사의 희생과 노력이 따르는 공익소송, 집단소송도 적지 않다. 문제는 소송 의뢰인이나 사건 피해자, 상대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해만 입히는, 또 소송 결과가 빤히 예상되는데도 의뢰인에게 소송을 부추기거나 의뢰인을 모집해 자기 배만 불리는 일부 변호사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기획소송은 주로 원고가 다수인 집단소송으로,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변호사가 희생하는 착한 기획소송, 의뢰인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진성 기획소송, 변호사 배만 불리는 위장 기획소송이 그것이다.

    먼저 변호사가 희생하는 착한 기획소송은 흔히 공익소송이라고 부른다. 공익소송의 경우, 소송에 참가하는 의뢰인은 자기 이익보다 국가기관이나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거대 기업을 상대로 나쁜 관행에 철퇴를 가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등 공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짙다. 변호사 또한 무료로 소송을 진행하기도 하고, 시민단체와 힘을 합쳐 모금하거나 후원을 통해 소송 실비를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소송으로, 변호사 자체가 큰 희생을 치르게 된다.

    굶주린 사자보다 더 무서운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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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뢰인에게 이익이 되는 진성 기획소송은 피해자가 피해를 입고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거나, 수많은 동종 피해가 발생했더라도 개별적으로 대응하면 소송비에 비해 얻을 이익이 거의 없을 경우 각자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소송을 가리킨다. 변호사가 피해에 대한 원인 분석을 전문적으로 한 후 소를 진행하고 집단으로 대응해 비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의뢰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소송이다.



    마지막으로 변호사 배만 불리는 위장 기획소송은 진성 기획소송을 빙자해 소송을 유인하고 그 결과 변호사나 사건을 중개한 브로커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소송에 참가한 사람은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하거나 심지어 손해배상청구를 당하고, 상대방 소송비까지 부담하게 되는 나쁜 기획소송이다.

    그렇다면 위장 기획소송을 하는 나쁜 변호사가 생기는 구조적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변호사 수 때문에 생존경쟁에 내몰려 도덕성이 둔감해진 변호사가 많고, 그들을 뒤에서 부추기는 노련한 법조 브로커와 사무장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법조계가 60년을 맞은 2012년을 기점으로 지난 10년간 배출된 변호사는 앞서 50년간 배출된 변호사 수를 넘어섰다. 최근 몇 년간은 한 해 법조인 2500명이 배출돼 사회에서 흡수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향후 사법시험이 폐지된다고 해도 연간 법조인 1500명이 양산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영미법계의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지만 영미에는 없는 유사 법조직역(법무사, 변리사, 세무사, 공인노무사, 관세사 등)이 존재하며, 그 수만도 법조인 수를 훨씬 넘는다. 연간 배출되는 수도 법조인보다 많다.

    법조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변호사의 생존문제 역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사법시험 출신자의 경우 사법연수원을 통해 국가가 양성한 덕에 공익을 강요한다 해도 그 빚이 있어 반감이 덜했지만, 국가 양성이 아닌 로스쿨 제도하에서 배출된 변호사에게는 공익 카드를 꺼내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한때 돈을 잘 벌지 못하는 법조인이 청렴의 상징으로 존경받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돈 없는 법조인은 법조계 내부는 물론, 의뢰인에게도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는 더는 청렴 변호사에게 경외심을 갖지 않는다.

    언론에서 연일 ‘변호사가 잘사는 시대는 갔다’는 기사가 쏟아지면서 변호사 직군은 결혼시장에서도 선호하는 배우자 직업 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변호사 업계에서도 서민을 위한 변호사, 인권변호사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졌고, 누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문만 빨리 나면서 그만큼 부러움을 사는 실정이다.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고, 그런 소문이 일시에 퍼져 체면을 구기거나 법조계에서 퇴출당하는 시대도 이미 지났다. 이제 변호사 사회는 거대해졌다. 사고를 치고 잠적하거나 범죄를 저질러 구속돼도 그 변호사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다. 체면보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굶주린 사자보다 더 무섭다는 배고픈 변호사가 도덕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날뛰는 경우가 많아진 게 현실이다.

    무한경쟁 내몰린 변호사와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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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뢰인과 직접적인 접촉이 많은 사무장은 그 문제가 더 심각하다. 법조시장에서 필요악인 사무장 수는 변호사 수보다 훨씬 많다. 그 성장세도 변호사를 앞지른다. 사무장이 많아진 만큼 경쟁도 치열해졌다. 예전에는 사무장끼리만 경쟁했지만, 이제는 사무장을 두지 않고 직접 모든 것을 챙기는 변호사와도 경쟁해야 한다. 실제 경쟁에서 밀려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무장도 적지 않다. 따라서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사무장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처절하다. 이들이 이끄는, 또는 부추기는 나쁜 기획소송은 법도, 도덕도 막아낼 방법이 없다. 또한 수십 년간 쌓아온 법조 노하우와 경제력을 앞세운 노련한 사무장은 경험과 능력이 일천한 젊은 변호사를 현혹해 로펌 대표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들 나쁜 사무장은 기획소송 등 각종 소송을 무분별하게 유치해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고, 문제가 터지면 모든 책임을 변호사에게 떠넘긴다. 이때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변상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나쁜 기획소송이 일으키는 손해의 종착점은 아무 죄도 없는 의뢰인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공적 통로를 통해 변호사 사무실이나 로펌에 속한 사무장의 자격시험 제도 도입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사법시험조차 폐지하고 변호사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추는 분위기에서 사무장 자격시험 제도는 자유경쟁체제에 역행하는 구태라며 매도당했다.

    법조시장에 불어닥친 국제적 외풍 또한 변호사를 코너로 밀어붙인다. 국제화 바람을 타고 사법시장 개방이 진행되면서 외국계 로펌의 한국 상륙이 시작됐고, 국내 외국계 기업에 대한 자문시장의 경우 조금씩 잠식당하는 수준을 넘어 이미 국내 대형 로펌이 밀리는 형세다. 그러자 국내 대형 로펌은 사건 선임을 위한 그물망을 촘촘히 해 중소 로펌이 장악한 영역을 잠식해나갔다. 그들은 외형상 대형 로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형 로펌의 연합체로 운영되며, 선임료 관행을 파괴하는 등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 법조시장은 외연이 확대할 기미는커녕 오히려 공급 과잉을 넘어 수급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다. 여기에 사법시장 개방을 통한 외국계 로펌의 침투가 더해지면서 법조시장은 그 질서를 상실하기 일보 직전에 와 있다. 이렇게 내리막이 빤히 보이는 법조시장에서 잠행하는 법조 브로커, 검증되지 않은 사무장, 그리고 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변호사, 도덕적으로 무장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도덕의 옷을 벗어 던진 변호사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위장 기획소송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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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 21일 경기 고양시 장항동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제42기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수료생들이 서약선서를 하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상관없음).

    위장 기획소송 피해 막는 법

    위장 기획소송은 교묘하게 이뤄진다. 많은 이익을 남겨줄 것처럼 감언이설로 꾀어낸 뒤 의뢰인의 돈을 편취한다. 그들이 쓰는 방법은 마치 합법적 사기꾼을 방불케 한다. 소송 당시에는 그 피해를 결코 알 수 없고, 당한 후 돌이켜봐야만 알 수 있다. 의뢰인 처지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손해배상을 받아준다거나 이익을 얻게 해준다니 현혹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의뢰인 처지에서 위장 기획소송의 피해를 사전에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먼저 변호사 사무실에서 소송을 권유할 경우 그 이유를 잘 들어봐야 하고, 권유하는 자가 변호사인지 사무장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변호사가 직접 설명하지 않는 소송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변호사 사무실 소속 사무장이 아니더라도, 불법 법조 브로커가 소송을 유치해 변호사에게 넘기고 수수료만 챙긴 뒤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소송 수행이 부실해지거나, 심지어 소송이 시작되기도 전 브로커가 도주하는 사례도 많다.

    변호사가 직접 소송을 권한다 해도 다른 변호사와의 상담을 통해 승소 가능성을 명확히 확인해야 한다. 또한 변호사가 승소를 다짐할 경우 그 다짐을 문서화할 필요가 있다. 통상 변호사는 승소 가능성에 대해 보수적인 평가를 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승소를 확신한다면 사건을 맡길 변호사뿐 아니라 다른 변호사에게도 의견을 들어 폭넓게 참고할 필요가 있다. 소송비가 소액이라고 승소 가능성에 대한 정보 없이 소송에 뛰어들었다가는 패소 때 소송비의 수십 배, 수백 배 이상의 손해배상청구를 당할 수 있으며, 상대방 소송비까지 모두 부담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 승소를 다짐했던 변호사는 꽁무니를 빼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는 승소 후 집행 가능성을 꼭 확인해야 한다. 소송에서 쉽게 승소하고도 강제 집행할 재산이 없어 소송 실익이 없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나쁜 기획소송의 경우 이러한 허점을 파고든다. 승소하게 해줬으니 변호사로서 할 일은 다했다고 오리발을 내밀 수도 있다. 소송 상대방이 이미 무자력(無資力·채무가 재산 총액을 초과하는 상태)이거나 소송으로 도산하는 경우 소송은 백해무익이 되고, 화려한 승소 뒤 소송 의뢰인의 주머니만 털리는 결과가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소송 상대방의 도산 가능성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계약관계를 통해 해결할 경우에는 늦더라도 약속을 지킴으로써 예상된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집단소송을 벌임으로써 소송 승패와 무관하게 상대방이 도산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 경우 결과적으로 의뢰인과 상대방은 도산하고, 소송을 벌인 변호사만 유일한 승자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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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형 로펌은 변호사 업계의 재벌처럼 등극해 중소 법무법인과 힘없는 변호사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나쁜 변호사를 응징하라!

    위장 기획소송의 폐단과 문제점에 대해선 지속적인 조명이 이뤄지지만 형사처벌이나 징계,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변호사에게 직접 응징을 한 사례는 거의 없다. 불법 법조 브로커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단속과 처벌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제보에 의해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위장 기획소송은 피해자가 그 피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피해를 입고도 책임을 묻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승소 가능성에 대해 문서상으로 확답하는 변호사가 거의 없고, 승소에 따른 강제집행 가능성에 대해서까지 책임지는 변호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위장 기획소송을 벌이는 변호사가 다수의 의뢰인이 조금씩 모아낸 거액의 착수금을 받아 소송할 경우, 설령 소송에서 패소한다 해도 변호사는 손해날 것이 전혀 없으며 변호사에게 그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승소한 경우에는 강제 집행할 재산이 없어 소송 실익이 전혀 없더라도 승소한 이상 성공 보수를 빼앗길 우려는 있어도 그 소송에 대한 책임을 물을 일이 더더욱 없다. 의뢰인만 착수금만큼의 금전적 손해와 정신적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승소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강제 집행 가능성이 없는 사건에 대해 기획소송을 벌여 거액의 착수금을 받아 자기 배만 불린 변호사가 있다면, 이는 형사처벌 대상뿐 아니라 징계 및 손해배상청구 대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위장 기획소송이 의심되는 사건이라면 대한변호사협회나 각 지방변호사회에 징계 의뢰를 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와 각 지방변호사회에서는 내부 징계를 강화하고 징계위원회 조사를 통해 문제 있는 변호사를 징계하는 것은 물론, 적극적인 검찰 고발을 통해 자체 정화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위장 기획소송을 하는 나쁜 변호사에 대한 감시와 응징의 시작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몫이다.

    체면도 팔아먹는 배고픈 변호사
    조순열 변호사 | 전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및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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