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6

2013.12.09

그 골목에 가면 허리띠 풀고 포식

광명시장

  • 박정배 푸드 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3-12-09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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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골목에 가면 허리띠 풀고 포식

    광명시장의 빈대떡과 칼국수.

    거대도시인 서울과 인천 사이엔 인구 수십만 명이 사는 도시가 꽤 있다. 1970~80년대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하면서 생긴 도시들이다. 서울 남쪽의 과천, 안양, 군포, 의왕, 안산, 부천 같은 도시가 대표적이다. 광명시는 그중 서울과 가장 가깝다. 지금도 그렇지만 도시가 처음 생길 때부터 광명 사람들은 일은 서울에서 하고 잠은 광명에서 자 광명은 ‘베드타운’ 혹은 ‘침상도시’라고 불렸다.

    오랫동안 서울 편입을 염두에 둔 도시계획으로 사람이 몰렸지만 정작 1981년 광명시로 독립했다. 독립 당시에도 인구 2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사람이 넘쳐났다. 그런데 시장은 달랑 광명시장 하나였다. 게다가 서울과 인접해 있어 복잡한 도시개발로 72년 개설된 이 시장은 81년 시가 출범한 이후에도 무허가 상태였다. 하지만 2013년 현재 인구 35만 명의 광명시민은 물론 인근 서울 구로, 개봉, 고척동 주민도 빈번히 이용하는 광명시장 안에는 점포 350여 개가 질서정연하게 들어서 있다.

    40년 넘게 재래시장의 모습과 대도시 생태를 모두 안은 덕에 광명시장에는 싸고 맛있는 음식집이 널렸다. 때깔 좋은 생선과 신선한 채소, 먹음직스러운 정육이 넘쳐나니 그 재료로 만든 음식이 맛없을 리 없다.

    광명시장은 규모가 제법 큰 재래시장이라면 어디라도 있는 빈대떡집이 골목 하나를 이룬다. 빈대떡집 10여 곳에서 풍기는 빈대떡 냄새 때문에 이 골목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대낮에도 빈대떡집 골목에 사람이 가득하다. ‘원조광명할머니빈대떡’과 ‘춘자네빈대떡’이 터줏대감 격이다. 한 장에 3000원 정도를 받는 녹두빈대떡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빈대떡 맛 제1 법칙을 충실히 지킨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7000원에 굴빈대떡과 고기빈대떡을 함께 주는 메뉴다.

    빈대떡은 만들기 쉬워 보이지만 기름 온도, 재료의 수분 유지에 적절한 굽기 타이밍까지 실제로는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다. 기름으로 튀기거나 지진다고 해서 그 안에 기름기가 가득해선 안 된다. 기름은 수분과의 싸움을 통해 재료를 익히지만 수분 배출을 억제해 촉촉하게 만드는 이중적 구실을 담당한다.



    두툼하고 커다란 파전도 좋다. 잘 숙성한 반죽은 풋내가 없고, 두툼한 반죽 사이에 들어간 고추, 오징어, 김치, 해물이 적당한 공간을 만드는 덕에 속까지 제대로 익어 있다. 1만 원 한 장이면 배를 채울 수 있을 양이고, 몇천 원을 더하면 막걸리를 곁들여 취할 수도 있다. 광명시민은 다 아는 집들이지만, 좋은 맛에 비해 허세가 없으니 먹는 내내 기분이 즐겁다.

    빈대떡집 골목 한켠에 솥이 도열한 ‘홍두깨칼국수집’도 숨겨진 고수다. 가게 입구에서는 장정 한 명이 홍두깨로 쉬지 않고 밀가루 반죽을 밀어낸다. 그 반죽을 칼로 자르고, 멸치를 기본으로 한 육수에서 익힌 뒤 그릇에 담아 손님 앞에 홍두깨손칼국수 한 그릇을 내놓는다. 손반죽, 홍두깨로 밀기, 칼로 자르기, 멸치육수 같은 과정을 모든 거친, 제대로 만든 칼국수 한 그릇이 고작 2500원이다. 보통 사람의 배를 채우고도 남는 양이다. 멸치육수 상태가 고르고 깊으며, 면발은 탱탱하고 적당하다.

    취재하면서 괴로울 때는 한 지역에 모인 음식이 대부분 맛있을 때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고 혀와 뇌, 그리고 위장이 음식을 계속 원하기 때문이다. 광명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족발집도 제법 있다. 시장에서 빠지면 안 되는 순대로 유명한 집도 자리하고, 두부와 냉면도 제법 먹을 만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서울에서 먼 전주, 진주, 여수 같은 맛 도시에는 자주 가도, 서울에 바싹 붙은 광명에 먹으러 가본 적은 없다. 광명시민 35만 명이 매일 검증하는 시장의 맛이다. 사람은 언제나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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