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3

2013.09.02

거리 떠돌던 일탈 청소년 ‘서커스 학교’서 희망 텀블링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렌트·로렌스 부부

  • 고영 소셜컨설팅그룹 대표 purist0@empas.com

    입력2013-09-02 09:4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거리 떠돌던 일탈 청소년 ‘서커스 학교’서 희망 텀블링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청소년 문제 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케이프타운 시장에게 메달을 받고 있는 브렌트(왼쪽). 그가 운영하는 서커스 학교 ‘집잽’의 수업 모습.



    청소년 강력 범죄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01년 1000여 건에 불과하던 청소년 강력 범죄가 2011년 3000여 건을 훌쩍 넘어섰다. 첫 검거 연령도 낮아졌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13~15세 아이들이 청소년 범죄의 60%를 차지한다.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은 범죄자로 낙인찍혀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서는 흑인 청소년의 방황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가난과 부모의 냉소적인 시선 탓에 청소년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어떤 아이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갱단에 들어가거나 약물에 빠지기 일쑤였다. 자극적인 것에 기대 현실의 고통을 잊고 싶어 했다.

    남아공 출신의 프로 서커스 트레이너인 브렌트는 그런 아이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프랑스의 유명한 서커스단에서 촉망받는 트레이너로 활동하던 29세 브렌트는 그런 아이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아내 로렌스를 설득해 결혼 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동료들은 브렌트의 선택에 우려를 표했지만, 브렌트는 신뢰의 스포츠인 서커스를 활용해 남아공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서커스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고 생각했어. 공중그네 전문가인 당신이 더 잘 알 거야. 공중그네를 할 때 상대를 믿지 못하면 절대 위험한 장면을 연출할 수 없지. 하지만 서로를 믿으면 공중에서 그 누구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연기를 펼칠 수 있잖아.”



    아이들 호기심 자극 ‘놀라운 놀이터’

    거리 떠돌던 일탈 청소년 ‘서커스 학교’서 희망 텀블링

    서커스 학교‘집잽’ 단원들과 함께한 브렌트, 로렌스 부부 (오른쪽에서 세 번째, 네 번째).

    브렌트와 로렌스 부부는 케이프타운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건물을 임대해 서커스 전문학교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일탈 청소년들과 가난해서 스포츠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려다 서커스 전문가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건물은 서커스 기자재들로 하나둘 채워졌다. 그리고 공중그네를 연기할 때 나는 ‘휙휙’ 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집잽(Zip Zap)’을 서커스 학교 이름으로 정했다.

    부부는 교육할 대상의 연령을 고민했다.

    “여보, 다른 서커스단은 훈련이 혹독하고 냉철해. 우리 집잽은 7세부터 12세까지 유소년의 행복한 운동 배우기에 목적을 두는 건 어떨까.”

    “좋은 생각이야. 행복한 운동 배우기.”

    부부는 전단을 만들어 학부모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브렌트가 프랑스에서 쌓은 명성은 학부모들에게 믿음을 줬고, 정부단체의 후원으로까지 이어졌다.

    드디어 집잽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커스를 배우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일반 학교에서는 도통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직접 해볼 수 있었다. 타악기와 관악기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심지어 묘기를 하는 동물들까지 있었다. 그곳은 아이들에게 ‘놀라운 놀이터’ 자체였다. 브렌트는 연령대에 맞춰 기초체력훈련을 실시했고, 아이들은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급기야 일탈 청소년도 친구를 따라 하나둘 서커스 학교에 오기 시작했다. 브렌트는 아이들을 이렇게 격려했다.

    “인생의 가치는 역경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달렸다. 서커스는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의 예술이다. 늘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동시에 환희를 주는 동작 하나하나를 떠올리면서 땀 흘려 노력했던 자신을 믿어야 한다.”

    브렌트와 로렌스는 케이프타운 내 여러 초등학교와 제휴를 맺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잠재력을 배가하는 프로그램도 개발하며 체계를 갖춰갔다. 일종의 서비스 혁신이었다. 먼저 초급자를 대상으로 시무네(Simunye ·‘우리는 하나’라는 뜻) 그룹을 만들었다. 이 그룹은 리더십, 팀워크, 신뢰, 자신감 등의 가치를 배우는데, 일주일에 사흘간 집중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들의 활동은 철저히 팀 중심으로 이뤄지며, 브렌트와 로렌스는 아이들의 성장 정도를 일일이 기록하고 분석한다. 학생들은 한 과정을 마쳐야 다음 과정을 밟을 수 있다.

    브렌트는 아이들이 취미로 서커스를 배울지, 아니면 전문 서커스 단원이 될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해외 서커스 단원들을 초대해 재능 있는 아이들을 뽑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놀랍게도 학교를 운영한 지 3년이 되자 프로로 전향하는 아이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욕설과 약물을 벗 삼았던 아이들이 유럽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리 떠돌던 일탈 청소년 ‘서커스 학교’서 희망 텀블링

    브렌트와 로렌스 부부가 만든 서커스 학교‘집잽’의 공연(왼쪽)과 연습 모습.

    또래 아이들 돕기 전국 공연

    브렌트는 어느덧 50대 초반이 됐다. 서커스 학교를 운영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20여 개가 넘는 나라에서 집잽 출신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는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 사업을 진행해 2005년부터 남아공 일탈청소년재활원에 집잽 지부를 설치했다. 그리고 무료로 서커스 교육을 담당할 멘토들을 모집해 그들의 재능기부를 확대하고 있다. ‘실수를 후회하는 청소년들에게 사회의 편견이 아닌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놀랍게도 서커스를 배운 아이들의 재범률은 절반 이하로 급감하고 있고, 이 사업은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로 확대됐다.

    하지만 브렌트와 로렌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11년부터 새로운 혁신사업을 시작했다. 집잽과 국제기구들이 손잡고 에이즈 환자를 돕는 기부금 마련 행사를 매달 진행한 것이다. 늘 무기력하던 아이들은 집잽에 참여하면서 자신들도 또래를 도울 수 있다며 공연에 열중했고, 그 결과 공연은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브렌트는 로렌스에게 멈추지 않는 희망을 속삭인다.

    “여보, 첫 수업을 들으러 온 아이들이 생각나? 지금 집잽은 아이들의 작은 희망이 됐어. 앞으로도 많은 청소년이 자신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서커스를 통해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 난 그들을 위해 더 많은 아이디어를 실현하면서 함께 나아가고 싶어.”



    댓글 0
    닫기